9월 끝자락이 보이는데 구례의 한낮은 삼십 도를 넘어선다.
콩잎 색이 바뀐 지 제법 되었고 들판도 하루가 다르게 초록을 벗겨내고 있다.
이제 곧 일 잔치가 벌어지겠지만 마을은 일단 폭풍전야의 고요 같은 차분함이 완연하다.
막 추석을 지나쳤고 그것만으로도 한바탕 전쟁을 치루었을 것이다.











나는 어쩌면 매일 아침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이 반복되는 영화의 한 장면을 감상한다.
마을 동쪽 제일 끝 집에 사시는 화산댁이 팔각정과 집을 무한 왕복하는 이 장면은 하루에도
몇 번이고 볼 수 있는 대표적인 컷이다. 아흔 일곱 해를 사셨다. 여전히 정정하시지만
금년 들어서 내 눈에는 마을의 어르신들 기력이 어느 한 고비를 넘어 선 듯한 느낌을 받는다.
동작과 이동 거리, 몸매의 변화를 통해서 그런 것을 감지할 수 있다.











운조루로 들어섰다.
추석 지내고 와서 인사를 드렸던 탓에 ‘무슨 일인가?’ 하는 표정으로 쳐다보신다.

“엄니, 전에 칼국수 썰던 도마 있잖아요. 그거 디게 오래되었다고 하셨는데…”
“도마? …아, 암반! 그거이 머더게?”
“암반요? 암? 안?”

도마가 아니라 암반이라. 처음 듣는다. 몇 년 전에 어느 잡지사의 요청으로 운조루 종부께서
콩국수를 만드는 과정을 촬영했는데 그때 도마보다 훨씬 넓은 나무판을 들고 나오셔서 칼질을 하셨다.











종부가 시집오기 전부터 사용하던 물건이라고 하셨다. 종부가 오미동으로 시집오신지
육십 년이 지났으니 그 ‘암반’ 이라는 물건의 수명은 얼마나 되었을까? 이런 경우 시골 사람들은
‘백 년’을 쉽게 불러낸다. ‘백년도 더 되얏어.’
이후로도 종종 사용하시는 것을 보았던 터라 박물관에 고이 모셔져 접근 불가한
지극히 높디높은 보물이 아니어서 더 눈길이 가는 그 물건을 보고 싶었다.

“국수도 썰고, 메주도 맹글고 하제. 넙적한게 일 하기 영판 핀해. 큰일 칠 때 사용허제.”

일종의 다목적 작업대다. 좌식문화권의 소형 ‘아일랜드키친 스딸’이라고 하면 억지스러울까.











“엄니 연세가 올해 팔순이시죠?”
“팔십 한나.”
“스무 살에 오미동으로 시집오셨다고 하셨지요?”
“열아홉에 했제. 하사에서 한 해 살고 스무 살에 오미동 들어왔제.”

운조루 9대 종부의 친정은 차로 이동하면 3분 거리에 있는 구례군 마산면 하사마을이다.

“그런데 엄니 댁호는 왜 하사댁이 아니고 사평댁입니까?”
“사둘(사도리 - 아랫 사둘이라고 부르기도 한다)서 왔다고.
만사 핀안하라고 시아버님이 사평떡이라 지서주셨지.”
“왜, 금강댁 시엄니 댁호가 하사댁 아닙니까? 화산댁이라고 들리기도 하고…”
“하산떡이라고 하제. 하산떡도 나 하고 같이 하사마을 사람이제.”
“그럼 어릴 적이나 처녀 적에는 두 분이 아셨겠네요.”
“몰랐어! 나 허고 나이 차도 많고. 아, 하산떡이 나를 중신 섰다니까.”
“예?”

오미동에서 일곱 해를 보내고 있는 나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인연의 끈들이 쏟아져 나온다.

“하루는 하사서 저녁에 어린 여자들 몇이 모여서 논디, 윗자리에 안거 있든 어떤 여자가
‘쟈는 누구냐?’ 해서 ‘누구 집 누구다’ 한게 그라믄… 하고 중신을 선 사람이 하산떡이제.”
“하산댁은 원래 문수리 사셨다고 들었는데요. 어떻게 운조루랑 알아요?”
“문수리가 아니고 웃대내 살았어. 전쟁 때 모다 소개疏開당해서 내려 올 때 시방 운조루
행랑채에 임시로 살고 있었제. 내가 공부를 안 해 가꼬, 공부를 계속 했시믄 월급 받는
사람한테 시집갔을 꺼인디. 사방디서 중신이 들어왔는데…”

종부는 어린 시절에는 학교를 다녔다. 그러나 아홉까지였다.
종부의 할아버님은 ‘왜정시대’에 학교에 가봐야 ‘개글’만 배운다고 손녀를 집 안으로 거두었다.
원래 여자 나이 아홉이 되면 숨겨 놓고 키워야 한다고 했다. ‘귀수’라고 들었는데 정확하지 않다.











“정말 귀한 거 볼라요?”

종부는 앞장서서 사당으로 걸음을 옮긴다. ‘암반 앞에서’ 말씀하시다가 그 옛날이 다가 선 모양이다.











제실 안에는 위패들이 모셔져 있고 사진들이 있었다. 조심스럽게 사진을 보여 주신다.

“이거이 마이 상해가꼬 어찌 손을 볼 수도 있다고 흐던디. 시방은.”
“예, 저한테 주시면 컴퓨터에서 어찌 해 가꼬 말끔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두 손으로 사진을 모셨다.

“뉘십니까?”
“시조부님하고 시조모님.”

그렇다면… 7대 류형업柳螢業 부처夫妻의 생전 모습이다. 류형업은 열세 살 때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해서 40여 년간의 일기를 남겼다. 「기어紀語」라는 이름으로 남긴 이 일기는
내가 오미동의 지나간 속살을 공부했던 소중한 자료다. 일반적 가치로 보자면 한 집안의
오래 된 사진에 불과하지만 나에겐 평생 뵌 적 없는 책 속의 스승을 뵙는 소중한 순간이다.
지리산닷컴이라는 사이트에서 나의 글쓰기와 기록은 사실 류 씨 일가의 두 일기,
5대 류제양柳濟陽의「시언是言」과 「기어紀語」를 이어 쓰는 소임이라는 과분한 의미를
스스로 두고 있었다. 7대 종부의 모습에 눈길이 오래 머물렀다. 꼿꼿하고 단아하다.
지금 종부의 꼿꼿함이 유전적 DNA와는 무관하게 대물림 되었다는 것을 실감했다.











“엄니, 시조모님 하고 비슷하신데요. ㅎ”
“하이고 밸 소리를… 그때는 엄중하고 무서워서… 하여간 무조건 물팍 꿇고 빌어야제.
그때는 바깥사랑채로 여자들은 나가들 못했어. 그래서 시방도 집 구경 온 여자들이
바깥 사랑 누마루에 올라 선 거 보면 마음이 불핀하고 그래.”

토지면에 ‘활동사진’ 왔다는 소리가 들리면 그렇게 보고잡았지만 나갈 수 없었다.

“이 날 핑상 화장이라는 거를 못해. 시어르신은, 화장은 화류계 여자들이나 허는 거이다.
그 여자들은 남자들 주머니에 돈 빼는게 일이라 그렇다. 가정부인은 가정부인답게 살믄 된다.
그때는 비누도 쓰들 못해. 끄니로 밥을 묵을 때 밥에서 비눗내가 난다고. 글고 우리 시어른은
절대로 바로 말 안해. 꼭 시엄니 통해서 말을 전하제. 꼭 칼끝 위에 올라서서 사는 거랑 같았제.
한 번은 쩌그 관산떡하고 며치서 저녁에 모여서 일함서 노래 소리가 문 밖으로 나갔는데
전부 싹 다 마당으로 끌려 나왔어. 이 년들 청롯방에 넘겨뻐린다고. 그 날 밤에 관산떡은
겁시 나서 잠도 못잤다고 하더마. 관산떡 보믄 물어보쇼. 시방도 그 야그 하면 웃어. 그라고 살았어.”
“청롯방이 뭡니까?”
“몰러. 그때는 청롯방이라고 그라더만. 기생들 있고 남자들 노는디.”

그런 어른들의 사진을 더 상하지 말라고 요즘은 구할 수도 없는 디디티 가루를 넣은 통 안에
보관하시고 계셨다. 칼끝에 선 것 같은 젊은 시절의 기억도 종부가 지켜야 할 도리 앞에서는
무디어진 모양이다. 사진은 ‘애지’는 몰라도 ‘중지’는 분명했고 그것은 지금의 종부 스스로
정한 당신의 길이었다. 자유로울 수 있음에도 여전히 그렇게.











운조루를 나서서 마을 팔각정으로 향했다. 점심시간이 지났으니 노인들 출근 시간이다.
명절 뒤라 그런가? 점심 막 지났는데 어르신들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공칠 일은 없다.
지정댁의 애마가 팔각정 앞에 딱 버티고 서 있다. 기대 놓은 연장을 보니 아래 논에 다녀오신 모양이다.

“논 갔다 오세요?”
“하아. 메로가 버글버글해서 환장하것네. 분재를 구해야 쓰겠는디 아즉에 농약방에
가도 요즘은 팔들 안하네.”

또 두 가지 용어에서 문제에 봉착한다. ‘메로’는 무엇이고 ‘분재’는 또 무엇일까?
일식집 가면 간혹 구워 나오는 메로 구이는 아닐 것이고, 소나무 분재라 부르는 그 분재도 아닐 것이다.
물어봤자 타박만 돌아오겠지. 그래도…

“엄니 메로는 뭐고 분재는 뭡니까?”
“아, 메로는 메로고 분재는 분재지 머라.”

역시… 패스.











“엄니한테 이 전기차 없으면 큰 일 나것제?”
“글제. 자석보다 더 중한 거이지.”
“언제부터 타셨어요?”
“자네가 언제 왔는가?”
“이천칠 년요. 오 월.”
“… 이천칠 년이지 싶네. 내가 고장이 난게 요놈이 있어야제.”
“얼마 줬어요. 한 이백만 원 하죠? 지원을 받았습니까?”
“나가 장애인 판정을 못받아. 이거이 독일째란디 하루 지난 중고를 백구십만 원인가
백오십만 원인가 주고 샀어.”
“엄니 이거 첨에는 나락도 싣고 그랬어잉?”
“글제. 이거이 없으면 나는 시방 한 발째욱도 못 움직에. 시방도 요(오른편) 다리
아랫쭉지가 땡겨. 요 다리 아프면 저 다리도 곧 아플거이란 소리제. 무리가 간게.
그나저나 인자 허리도 아프고 다리도 아프고 물논에 댕겨싼게 틀려끄마.”
“얼마 전에 밧데리를 갈았던가요? 성호한테 뭐라 그랬지 않나요?”
“글제. 밤 새도록 충전하믄 나갈때는 나간디 들어올 때 되믄 딱 요 앞에서
애 떼는 거처럼 서부러.”











“그라고… 자네 언제 시간 나믄 내 영정사진 좀 찍소.”
“왜 지난번에 면에서 찍을 때 안 찍으셨어요?”
“하. 나가 살림을 일으켜 났는디 영정 사진 정도는 새끼들이 알아서 해주겠지 싶어서.
그란디 시방 대평댁이고 누구고 다 있는디 나만 엄써. 왜 거시기 기분이 그란가?”
“아뇨. 저야 엄니들 영정사진 찍으면 영광이죠. 봄에 찍으까요? 아니면 가을걷이 끝나고?”

지나가던 부녀회장 이춘자 여사가 돌팍 위에 같이 앉았다.
이어서 갑동댁이 읍내 가는 버스 기다린다고 돌팍 앞에 선다. 가는 귀가 먼 갑동댁에게 지정댁이 고함을 질렀다.

“장에?”
“분재.”
“아즉에 나 갔다 왔는디 분재 안 팔어. 나가지 마.”

부녀회장 님이 케이비에스 <고향극장>에 뒷담화와 출연료가 나오면 어쩔 것인가에 대해
강론을 펼치고 있는데 슬슬 노인들이 팔각정으로 올라서기 시작했다. 최광두 어르신의
첫 마디는 역시 ‘메로’에 관한 것이었다. 몇 년 동안 보이지 않다가 금년이 유난하다고.
옛날에는 석유 몇 방울 논에 넣고 손으로 끼얹었다고 하셨다. 그것이 농약이었다.
이 장면에서 나의 궁금증을 풀어야 했다.

“어르신, 메로가 뭡니까?”
“벼멸구.”
“분재는요?”
“디디티 가리.”

십년 묵은 체증이 내려갔다.

“어르신 댁에 뭐 오래된 물건 없습니까? 아끼시는 거.”











장欌이다.

“우리 집은 새살림이라 오래된 거이 없어.”
“이 장은 언제쩍 겁니까?”
“나 어릴 적 부텀서 있었슨께 한 백 년?”

또 백년이구나.











“어르신 첨 집 자리가 여기 아니었습니까?”
“원래 우리 집이 광의 대산리라. 할부지 때 오미동으로 들어왔슨께 한 구십 년이나 되남.”

마을의 좌장과 같은 역할을 자임하시는 분이라 최근 뜸했던 나에게 마을의 이런저런
일들에 대한 말씀이 계셨다. 젊은 사람들이 제대로 하라는 말씀이 요지다. 일전에 마을에
이주일이나 머물던 방송국 카메라로부터 젊은 사람들이 모두 도망간 일에 대한 말씀이지 싶었다.











다시 팔각정으로 나왔다.
홍수 형님이 운조루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하산댁의 무한 왕복과 홍수 형의
마을 배회가 없다면 오미동의 그림은 뭔가 결정적인 요소가 빠진 느낌이다.
봄, 한 달 동안 형이 순천 병원에 있는 동안 이상한 허전함은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마을이 완성되지 않는’ 한 달이었다.











팔각정에는 몇 분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양춘댁, 관산댁, 덕암댁이 계셨다.
설명 없이 양춘댁 팔을 잡고 댁으로 가자고 끌었다.

“머더게?”
“긍께… 집에서 사용하는 물견 중에 엄니가 아끼는 것들 있잖아요. 이를테면 ‘이 식칼이
없으면 나는 음석을 못한다‘ 뭐 그런 거.”
“우리 집에는 밸거 없어. 귀한거이 없는디.”
“아, 누가 금붙이 보자 그러요. 제일 오랜 된 거는 영감님이죠?”
“하하하.”











“이거니 뭐다요?”
“소쿠리.”
“채반은 아니구요? 깨 까불고 하는 거.”
“걍 소쿠리여. 광열이 최샌이 만들어 줬어.”

아, 최광열 어르신! 지금은 같은 세상 분이 아니다. 사 년 전이었나? 사고 며칠 전에
운조루 앞에서 나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갑작스러운 소식에 황망했던 기억이 또렷하다.
내가 아는 최광열 어르신은 시력을 거의 잃어가는 중이셨기에 그 어른이 만든 소쿠리라니
어른 대하듯 새록하다. 보기보다 오래 된 모양이다.











“한 삼십 년 썼어. 그때 세 개 만들어서 광두 최샌 하나 우리 한나 그렇게 줬제.
광열이 최샌이 썽썽했을 때는 손재주가 좋았거든.”

양철을 접고 몇 겹의 대를 둘러 이은,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던 소쿠리는
‘광열이 최샌’ 이라는 이름이 부여되자 하나의 온전한 의미가 되었다. 의미를 획득한
하나의 ‘물건’은 아연 활기가 돌고 피가 돈다. 물건이 남아 사람을 되새기니 인생 허투루
살 일이 아니다. 어디에 나의 흔적과 평판의 증거가 남아 구천을 떠 도는 중에 나의 귀를
어지럽힐 수도 있지 않은가.











소쿠리로는 약하다는 생각이 드셨는지 마을 노인회장 님이신 강 어르신이 훌태를 보여주신다고
뒤안으로 나를 데리고 가신다.

“이거니 모다가 있어야 해.”
“모다야 구하면 되죠. 야, 아직 훌태를 가지고 계셨어요.”
“하. 아즉 훌태 있는 집은 몇 있을 꺼인디. 누가 쓸 일이 있어야제.”
“하하, 금년에는 성호가 쓸 겁니다. 잘 되었네요.”
“사무쟁이? 왜?”
“성호가 아래 논 몇백 평 짓지 않습니까. 키도 안 되고 뭣 도 안 되고 낫으로 베고
훌태질 하라고 그랬거든요. 만약 진짜 훌태질 하면 어르신이 좀 도와주세요. 사용법.”
“아, 재미지고 좋제.”











어르신들 피해서 잠시 담배 한 대 피러 들판으로 나왔다. 쉰하나에 나는 숨어서 담배를 핀다.
코스모스가 하늘거리고 있었다. 보름 정도 지나면 이 들판은 풍경이 아닌 일감으로 다가올 것이다.
어쩌면 지금 이 며칠이 딱 좋은 것이다. 명절 지나고 잠시 나른하고 한가로운.
그러나 지금은 다시 팔각정으로 진격할 때이다.

"관산떠억! 갑시다이."











아, 다듬이! 오래간만이다. 내 어린 시절에도 엄니의 돌 다듬이가 있었다. 작은 사이즈였다.
그 소리는 기억 속에서는 명확하고 입으로는 재현할 수 없는, 법정에서의 심증과 같은 것이다.
관산댁의 다듬이는 아주 큰 놈이다. 평상 위로 들어 올리는데 혼자서 제법 낑낑대었다.

“뭔 놈에 나무가 이리 무겁습니까?”
“박달나무라. 팽야.”

지켜보던 관산 어르신이 말씀을 보탠다.

“얼마나 되었을까요?”
“내가 안 걸로 시방 백 년이라 그라제. 더 될지 몰라.”

또 백 년이군.











“요즘은 사용하지 않죠?”
“하. 대리미 나오고는 잘 사용하들 안 하제. 원래 이 박달나무가 삘건데…”

기억 속의 붉은 색이 나오지 않아 섭섭하신 모양이다.
관산댁은 결국 걸레를 들고 와서 다듬이를 닦기 시작했다.
“이 보란게. 닦은게 삘게지자녀.”

그제야 만족하신 모양이다. 몇 초 정도 저 다듬이를 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를 부를까? 역시 아니다. 물견은 제 있을 곳이 있기 마련이다. 관산 어르신의
박달 다듬이는 관산댁 집에 있을 때 제대로일 것이다.

“엄니 자주 닦아 주쇼잉. 내가 살지도 모른게.”











오미동 동쪽으로 걸어갔다.
수령 이백오십 년 서어나무는 작년 태풍 때에 오른팔을 잃었다. 나무는 불평하지 않았다.
다만 다시 잎을 밀어 올리고 햇빛을 받고 그렇게 묵묵하게 서 있었다. 여름의 절반 동안
대평댁은 저 나무 아래에서 살다시피 했었다.











추석 전에 인사도 드리지 못했고 겸해서 간만에 대평댁 집을 찾았다.
대평댁 ‘말래(마루)’는 전봇대 전깃줄 마냥 할머니들이 쪼르르 앉아 있곤 했는데
이제 한두 분씩 그 자리를 떠나고 있다. 그래서 지난 2년 동안은 세 사람 이상
대평댁 마루에 앉아 계신 모습을 보지 못했다.











자식들과 통화중이신게다. 대평댁의 통화 열 번 중 열한 번은 자식들과 통화다.

“올라가고 연락이 없슴께 어매가 전화를 했제. 알것다. 시방 손님 왔슨께 끊으마.”

대평댁이 금년 들어서 좀 시크해지고 나긋해졌다.
그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해 주변의 의견을 구하고 나 역시 짐작도 해 보곤 했다.
「맨땅에 펀드」책 표지에 등장하시기도 했고 사이트에 워낙 자주 출연을 하시다보니
종종 ‘즐믄사람들이’ ‘기념촬영 하잠서’ 붙잡는 모양이다. 이를테면 대평댁은 아주 약간
유명인이 되어 가는 중인 것이다. 따라서 공인의 몸가짐을 의식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심을 해본다. 아님 말고. 마루에 앉자마자 시크한 언어들이 쏟아진다.











“호랭이 똥구녕을 씹어뿔까? 아, 머던다고 그리 얼굴 보기 힘든가 자네는.”
“그니까 인사드리러 왔잖아요. 글고 엄니는 호랭이 똥구멍이 뭔 곱창도 아니고 뭘 그리
자주 씹어싸요. 지리산에 호랭이 사라진지가 언젠데… 껌 한 통 사들고 올 껄 그랬네.”
“호랭이 똥 싸는 소리 해쌌네.”

언제나처럼 대화 중에 ‘뭘 좀 퍼줄까?’ 하는 속 마음이 보이는 눈매로 계시다가
결정이 되면 용수철처럼 튀어 오르신다. 그리고 바로 행동개시다.
분명히 별 것 없을 것 같은 잠겨진 방문 열쇠를 여는 것을 보니 ‘각종’일 가능성이 높다.











대평댁 잠겨진 방 안은 베지밀 비밀공장이 분명하다. 그리고 배, 포도 한 송이.
언제나 그러하듯 있는 것은 모두 나눈다. 그리고 대평댁 대문을 나설 때에는 마을의
누구도 이 사실을 알아서는 안 된다.











“차 가지고 왔제. 이 양파도 이삐제. 한나 가져가이.”
“걸어왔는데요. 엄니, 오늘은 그거이 아니고 뭐 가지신 물견 중에 아끼는 것 없소?”











잠시 생각을 하시더니 다시 용수철이 튀어 오른다.
비닐 포장을 뜯지 않은 냄비를 들고 나오신다. 음… 짐짓 관심이 있는 척 시늉을 하면서
이야기를 이어간다. 대평댁은 냄비의 효능에 대한 일장연설을 이어가셨다.
그러다가 말씀은 급 좌회전을 한다.











“닝게루 한나씩 맞는게 확씰히 다르더만. 자네 덕분에 그라고 일 년에 두 번씩 맞은게.”
“무슨 말씀이세요?”
“아 그 서울서 일 년에 두 번씩 으사들이 내려와서 닝게루 놔 주자녀.”

아, 오미동과 일사일촌의 연을 맺고 있는 서울동부병원의 의료봉사 말씀을 하시는 것이다.

“그거 한나 맞고 나면 기력이 짱짱하자녀. 나는 몸뚱아리가 젤루 중요한디.
이날 이때꺼정 다리고 팔이고 한 번도 아파 본 적이 엄써.”

그렇다. 마을의 어느 엄니보다 대평댁은 건강한 몸을 유지하고 계시다. 스물두 살에
산동면 대평리에서 오미동으로 시집와서 올해로 ‘칠십야덟’이 되셨지만 ‘썽썽한 몸’이다.
대평댁의 애지중지는 대평댁의 몸이었다. 몸으로 살아 오셨다. 다른 수단을 알지 못한다.
대평댁의 애지중지를 더 찾을 필요는 없었다.

“엄니 갈랍니다. 또 오께요.”
“바로 가제?”
“금강댁 들렀다가 갈라는데요.”
“안돼야. 깜장 비니루 시방 사무실에 가서 넣어노코 볼일 보란게.”











9월 23일. 추분이다. 해와 달의 시간이 같은 날이다. 달에 기댄 농사로 보자면 세월의
시계가 정중앙에 와 있다. 땀이 흘렀다. 바람은 없었다. 두어 시간 있으면 어둑해질 것 같다.
작은 마을이지만 몇 시간 싸돌아다니고 노인들 말씀 받아 적자니 약간 지치기도 한다.
그러나 오래된 새로운 이야기들을 많이 들었다. 좋다. 감사하다. 말씀들이.











근동댁 집을 바라고 운조루 왼편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근동댁은 계시지 않을 것이다.
근동댁의 그이 ‘헬로키티 영감님’을 뵈러 간다. 어느 겨울, 자주 있었던 일이지만
바퀴 빠진 수레를 끌고 사무실로 찾아오셨고 바퀴를 끼워 드렸다. 돌아가시는 노인의
뒷모습을 본 이후 나에게는 ‘헬로키티 영감님’이 되셨다.
노인의 패딩 점퍼 등짝에는 낡은 프린트의 헬로키티 인형이 새겨져 있었다.











7년 전에 오미동에 처음 자리 잡았을 때 노인은 거의 걷지 못했다.
구례병원에서 3년을 입원하고 막 퇴원하신 다음이었다.

“다리가 아픈거이 아니고 3년을 누워 있슨게 다리가 굳어뻐린거라.”

7년 전에 노인은 등짝과 팔에 작대기를 수평으로 집어넣고 아주 느리고 힘들게 걸음을 옮겼다.
길에서 만나면 노인의 불신검문에 응해야 했고 나는 노인의 말씀 대부분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렇게 1년 정도 지났을 때 노인은 지팡이를 짚고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속도는 여전히 느렸다.
노인의 거동이 조금씩 나아지는 만큼 내 사무실 문을 두드리는 횟수도 늘어났다.
어느 날은 시계를 들고 오시고 어느 날은 전기장판 조절기를 들고 오시기도 했다.
원하시는 대답을 얻으실 때까지 말씀은 끝없이 반복되었다. 때로 나는 건성으로 대답했다.
그리고 다시 2년 정도 지나자 노인은 수레를 밀고 다니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걷기 위한
보조 도구라고 생각했다. 분명히 수레는 그런 기능도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노인의 수레에는 나무토막 하나, 종이 박스 몇 장이 올려졌다.
지금 노인의 마당에는 그렇게 하나둘 씩 모은 나무가 쌓여져 있다. 가지런하게.
같은 마을이지만 자주 들어오지 않는 골목이라 나는 모르고 있었다.
매일 오후면 수레를 끌고 어디론가 갔다가 돌아오는 노인의 일과를.











누군가에게는 너무 쉽고 짧은 길이 누군가에게는 너무 어렵고 먼 길이다.
노인에게 지난 몇 년 동안 저 골목길은 사하라 사막의 끝자락 즈음이었을 것이다.
숨은 턱에 닿고 보폭은 이십 센티미터를 넘지 않았다.











헬로키티 최종엽 어르신. 올해 팔순이시다. 북파공작원 부대를 이르는 HID출신이라고
주장을 하시니 근동댁에게 여쭈어 보았다.

“맞아요?”
“하아. 우리 영감은 군대 있을 때 좋았는디. 뭐 하러 나와가꼬…”

볕 좋은 날은 아주 가끔 헬로키티 영감님의 무용담을 듣기도 하지만 나는 여전히 노인의
말씀을 절반 정도 알아 듣는다. 다만 그렇게 누군가와 소일하고 말을 나눈다는 것.
노인은 그 자체로 항상 기분이 좋아지신다.











“구례 밖으로는 군대 말고 한 번도 나가지 않으셨어요? 도시에 나가고 싶어하잖아요.”
“안 그래. 그때 논이 스무 마지기 소도 두 마리 정도 있었슨게 살만했제. 뭐 하러 도시
나가서 고생할꺼라.”
“처음부터 이 자리가 댁이셨어요?”
“아니. 시방 박기문이 집 있제. 그게 원래 우리 본집이었제.
여그는 내가 독립하믄서 지섰고. 이 집은 내 손으로 지섰어.
그때 주택자금 육십만 원 군청에서 받아가꼬. 마흔다섯에 집 지슨거 안 잊어부러.”











노인은 마흔다섯에 자신의 손으로 이 집을 지었다.
내가 헬로키티 영감님에게 느끼는 부끄러움의 실체는, 노인은 집이 있고 나는 없기 때문이 아니다.
팔순의 노인은, 칠 년의 스스로 재활을 통해 보폭 이십 센티미터가 가능해졌고 하루에도
몇 번씩 ‘몸을 풀지 않으면 마비가 온다’는 그럴듯한 핑계를 대면서 지난 3년 동안 땔감
나무를 모아왔다. 그 행위의 본질은 ‘가족으로서 나의 역할’에 대한 것이었다.
첫 만남과 첫 인상으로 사람을 평가할 수 있다. 흔히들 그렇게 한다.
내가 헬로키티 영감님의 ‘진실’을 알게 된 것은 노인을 알게 된지 칠 년만이었다.
내가 아는, 오미동에서 가장 느린 속도의, 하지만 가장 치열한 세월을 살아 온 어르신이다.
그의 이십 센티미터 앞에서 나는 무릎을 꿇는다.

“그러면 어르신한테 수레가 젤로 애지중지한 물건이네요?”
“하아!”











추분. 오미동 하루해가 넘어간다.











홍수 형님이 다시 등장했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오미동 엄니 아부지들이 ‘매우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는’ 것은 물건이 아니라 서로다.
시간과 기억으로 얽혀 있는, 그 풀 수 없는 실타래들이 오미동 사람들의 애지중지라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금강댁이 아래 논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용두 고개를 넘어 온 바람이 마음을 헤집고 지나갔다.
머릿속 기억 몇 조각이 오미동 들판으로 날아가는 것이 보였다.
그러나 다시 돌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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