外道 / 보내다

마을이장 2013.07.07 14:41 조회 수 : 16120

 

 

 

 

고등학교 시절. 몇몇 고등학교 친구들이 모여서 만든 문학 써클이 있었다.
<양지촌>이라 이름을 붙였고 두 번인가? 자체 문집을 발행했다. <양지소리>라고 제호를 붙였다.
첫 문집은 비교적 글씨 예쁜 녀석이 파라핀을 바른 종이게 철필로 모든 친구들의 원고를 옮겨 쓴
것을 등사기로 인쇄한 것이었다. 글씨를 알아보기 힘들었다. 잉크가 번진 것이다.
그래도 그것은 우리 인생의 첫 인쇄물이었다. 요즘 하는 말로 극단적 아날로그 정서와 낭만이 있었다.
두 번째 문집은 당시 신문물이었던 제록스로 만들었다. 복사기가 아닌 제록스. 피자가 아닌 피자헛이었듯.
나의 첫 단편소설이 담긴 유일한 종이뭉치는 대학시절 지하작업실에 쳐 박혀 있다가 곰팡이와
습기로 인한 얼룩으로 모두 폐기했다. 내가 없앤 모든 종이 중에 가장 후회스러운 버림이었다.
김승옥의 <서울, 1964년 겨울>을 명백하게 흉내 낸 내용이었는데 아주 가끔 고등학교 시절과 관련한
상황이 발생하면 그 문집이 생각나곤 한다. 요즘 그 시절을 상기 시키는 것은 거의 부음문자지만.

그리고 나는 대학시절에도 그럭저럭 인쇄라는 영역과 인연을 맺고 있었다.
처음 옵셋 인쇄를 한 것은 나를 포함한 세 친구가 의기투합해서 부산 남포동 어느 화랑에서
3인展을 열면서이다. 대학교 2학년과 3학년들이 그런 짓을 했으니 학교에서 좋아할 리는 없었다.
그때 무지와 기대가 만나면 얼마나 참담한 인쇄 결과를 맞이한다는 것을 경험했다.
외국화집에서 본 인쇄는 이런 것이 아니었는데… 서체는 뭐가 모서리가 이리 둥글고 여백은
왜 이렇게 빡빡하지? 그리고 블랙은 왜 이리 탁하게 나온단 말인가. 정말 촌스러웠다.
그리고 학생회관을 중심으로 한 남들 보다 좀 긴 대학시절을 보내면서 부산 서면의 인쇄골목을
들락거리는 일이 많았다.
당시는 마스터인쇄가 대학가 인쇄물의 대부분이었다. 그때는 대지 작업이라는 것을 했다.
전산사식 글자로 원고를 받아오고 모눈종이 위에 손으로 편집을 했다.
몇 가지 자와 로트링펜, 칼과 풀은 내 가방의 필수품이었다. 80년대 편집자 일을 한 사람들은
주로 이 일을 했었다. 지금 내 주변의 출판편집자들에게 이 시절 이야기는 풍문에 불과하다.
그때 지금까지 내가 만난 가장 부적절한 직업을 가진 사람을 만났다. 전산사식 기사였다.
카메라로 보자면 파인더에 눈을 들이대고 원하는 완성형 글자를 찾아서 원고를 ‘치는’ 사람이었다.
단골로 가던 마스터인쇄 집의 전산사식 기사는 문맹이었다. 글의 모양만 보고 원고를 완성했던 것이다.
인쇄골목 사장들이 시켜주는 밥은 맛있었다.


2011년 4월 22일 파주.
나는 오늘 출판을 예정하고 진행했던 취재파일을 내 안에서 내보낼 것이다.
한 꼭지 이야기로 취하는 것을 포기하는 것이다. 그 날의 취재 또는 인터뷰는 아주 힘들었다.
그냥 비협조적이었다. 당사자들이 원하지 않는 인터뷰를 진행하는 것은 사건사고 전문 기자도
아니고 난감한 일이다. 그럼에도 온전히 낮 시간을 투자한 이유는 그곳의 그림을 포기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사진 찍기는 티벳에서 맑은 하늘 사진 찍기와 같은 것이다.
들이대면 사진이 나온다. 열리지 않는 입을 통해서 새어 나온 말들은 작은 노트에 7페이지 정도,
그것도 듬성듬성한 글씨로. A4로 다듬으면 2페이지도 되지 않을 분량이었다.
어차피 다시 한 번 취재를 해야 할 상황이었다. 그리고 2년이 지났다.
아주 간혹 내 작업 전용 게시판에 잠자고 있는 지나간 글들을 본다.
그리고 이틀 전에 그날 파주에서의 이야기를 접기로 결심했다.
나는 살아 있는 이야기를 취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곳은 박제된 공간이었다.
내 발길이 지난 2년 동안 다시 그곳을 찾지 않은 이유도 같을 것이다.
스스로 살아 있지 않으니 ‘지금 이야기’는 없는 것이고 그 어른들은 입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그 어른들만의 책임은 아니다.
주조기술자, 문선공, 식자·조판공. 이런 이름들이 모여서 작업을 하는 곳은 활판인쇄소다.
당시 가장 ‘막내’가 일흔둘의 어른이었다. 그는 여전히 납으로 ‘글자’를 만들고 있었다.
납활자는 일천 장 정도의 인쇄를 하면 마모되었다. 그러면 다시 만든다. 여전히 그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직지直指만 가지고 놀고 있어요. 아이티가 아니면 기술로 인정하지 않아요.”

여전히 사농공상의 관념이 무거운 그림자를 드리운 사회에서 낡은 가치는 가차 없이 버려진다.

원도
동판
자모
주조
저장대
문선대
식자
교정서리
인쇄
지형
청타기
사식기
.
.
.

사진을 찍었다.
활판인쇄는 가장 오래된 인쇄 기술의 하나다. 여전히 사용하고 있는 나라들도 있다.
활판인쇄는 지식을 전달해 주는 오래된 징검다리다.
나는 우리나라의 근대화 과정에서 가장 큰 실수 중 하나가 이런 일들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한낱 기술자로 만들어 버린 것이라고 생각한다.
석굴암과 팔만대장경이 있었지만 근세 100년 동안은 자랑할 일이 별로 없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제 스스로의 가치를 챙기지 못하고 천대한 것이다.

조금 맥락 없는 이야기지만 상대적으로 디자이너들은 존중받는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다큐멘터리 중에 「Helvetica」라는 영화가 있다.
하나의 서체를 두고 만든 다큐멘터리다.
결과적으로 ‘Helvetica’ 라는 서체를 만든 이들은 스위스의 장인들이었다.
우리 개념으로 공돌이들이었다. 그러나 그 사회는 그 사람들의 가치를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다.
글씨를 그리고(원도) 그것을 주조한 장인들이 아니었다면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무질서할 것이다.



디자이너의 삶은 싸움의 삶입니다.
조악한 것과의 싸움입니다.
그것은 의사가 병과 싸우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에게 시각적인 병은 주변에 늘 있습니다.
우리가 애쓰는 것은 디자인으로 그것을 치료하는 겁니다.
좋은 타이포그래퍼는 항상 낱자들 사이의 거리에 대한 감각을 가집니다.
우리는 타이포그래피를 블랙 앤 화이트라고 생각합니다.
타이포그래피는 블랙이 아닌 화이트입니다.
블랙 사이의 공간들이 타이포그래피를 만드는 것입니다.
음악과 비슷하죠.
음악은 기록이 아닙니다. 그것은 음악을 만드는 기록들 사이의 공간입니다.
사람들은 서체가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관점과는 다릅니다.
저는 서체가 표현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dog' 글자는 어떤 서체로도 쓸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강아지 모양으로 보일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들이 'dog'라고 썼을 때,
그것이 짖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Massimo Vignelli



‘명조’ 라는 다큐멘터리가 만들어진다면,
당연히 지난 100년 동안의 주조공과 문선공과 식자공들에게 헌정되어야 할 것이다.
오늘로 이 사진들에 대한 미련을 끊는다. 내 안에서 당신에게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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