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 연곡분교이야기 - 단심丹心

마을이장 2012.11.01 00:35 조회 수 : 9147








10월의 마지막 날.
최대한 빠르게 두 가지 일을 처리하고 옥산에 가서 짬뽕 한 그릇을 마시고
서둘러 피아골로 향했다. 분교 아이들이 피아골에 올랐다가 내려오는 길에
잠복하고 있다가 같이 하산하면서 가을 그림을 건질 좋은 기회다.
아침 아홉 시부터 오후 세 시까지 일정이라고 해서 처음부터 함께하기 힘들었다.
분교에 주차하고 거기서부터는 다현이 엄마의 차를 얻어 타고 직전마을 까지 이동했다.
평일이었지만 그래도 피아골 가을이라 갓길에 주차한 차들 때문에 부분적으로 막혔다.
불곰산장 앞에서 내려 늙고 짧은 다리를 최대한 넓게 벌려 헐떡이면 직전 맨 꼭대기에 당도했다.
거기서부터는 산행이다. 아이들이 어디 쯤 내려왔을까?
구계포 다리를 지났다면 그림을 건지기는 좀 힘들다.











나는 왜 가을에 일장춘몽을 꾼 것일까.
막 등산로로 진입하려는 순간 고개를 오른편으로 돌려 ‘산아래첫집’을 흘깃 보았는데
식당에서 김미행 선생님이 찬 그릇을 들고 주방으로 들어서려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이 뭥미? 벌써 내려왔다고! 식당으로 진입해서 좌중을 살펴보니 아이들이 모두 앉아 있다.
사진 때문에 다시 올라가야 한다는 시답잖은 소리를 했지만 아이들은 산채비빔밥에 코를
쳐박고 있었다. 그래도 다행이다. 순간 오른편을 보지 않았다면 나 혼자 갈 때까지 갔을 것 아닌가.
이왕 이렇게 되었으니… 피아골 직전마을 제일 꼭대기 민박식당 ‘산아래첫집’은 연곡분교
폐교를 막은 일등 공신 졸업생 사장님이 운영하는 집이다.
무엇보다 이런 관광지 스딸 식당거리에 있어서 그렇고 그럴 것이란 예상을 모두 하겠지만
(나도 당연히 그렇게 생각했다) 음식을 정말 제대로 하는 집이다. 나물정식과 백숙은 강추.











오후 1시경이다. 개인적으로는 아쉽지만 산에서 아이들을 담지 못하고 길을 내려선다.
금년에도 단풍 산행은 힘들 것이다. 단풍은 이미 직전마을까지 내려왔기에 이번 주에
하루를 들어 낼 가능성이 없는 나와 주변 선수들의 일정을 감안하면 거의 그렇다.
이렇게 우발적으로 산을 찾았지만 아쉬운 마음을 남겨 두고 내려선다.
오늘 뒤태 제법 찍겠다.











내동리 직전마을을 내려선다. 전학생 다현, 다인이 집은 저 사진 속에 있다.
올라오기 직전에 다현이 엄마와 잠시 마을의 빈집 현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가능성이 있는 집이 몇 채 있다. 물론 민박집이다. 사글세로. 이곳으로의 전입을 희망하는
세대에게 가장 가능성이 높은 집은 민박집이다. 사진 속에서 두세 채의 집만 해결되어도
숨통이 좀 트일 것인데 쉽지 않다. 오늘(10월 31일)이 공동학구제 신청 서류 접수 마감일이다.











공동학구제. 아주 중요한 사안이고 꼭 이루어야 하는 과제다.
우리가 추진 중인 공동학구제는 구례군 토지면 내에 존재하는 학교 중 원하는 학교를
자유롭게 입학할 수 있는 내용이다. 이게 뭔 말이냐면, 현재의 학구제에서는 같은 토지면
내에서 내동리와 내서리 정도를 제외하고는 원해도 연곡분교를 다닐 수 없다.
토지면 내에는 지금 연곡분교와 토지본교, 두 개의 초등학교가 있다. 내용적으로는 같은 학교다.
본교와 분교. 본사와 암자 같은 성격이다. 그러면 해당 주소지 밖으로 학생들은 움직이지 못하는가?











물론 아니다.
세상에는 위장전입이라는 것이 있고 대한민국에서는 이 음성적인 방법이 거의 양성화 되어 있다.
지금 면 단위에 거주하면서 읍내 중학교로 등교하는 모든 아이들은 위장전입 방법으로 입학하는 것이다.
현실이 이러하니 토지면 내에서 공동학구제를 운영해도 막상은 분교와 본교의 문제이니 학생들의 이동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를테면 중국집 있는 토지면 소재지에 사는 아이들이 중국집 없는 내동리에 있는
학교로 전학할 가능성은 없는 것이다. 시골 부모들의 염원은 서울이지 ‘더 시골’은 아니다.
그러면 우리는 왜 공동학구제를 실현하려고 하는가?











집 때문이다. 내동리, 내서리 안에서 빈집은 있지만 아무래도 범위가 지나치게 좁아진다.
2012년 2학기 현재 이미 세 가구가 정확하게 연곡분교 학구 안으로 이사를 왔다.
다현이네, 아림이네, 지강이네. 지강이도 지난주에 할머니와 지강이만 평도마을 민박집으로 옮겨왔다.
읍내에서의 군내버스를 이용한 이동에 문제가 많았기 때문이다.
지난여름부터의 이런 움직임 때문에 이미 인근 민박집의 사글세는 ‘급등’하고 있는 중이다.
물론 토지면 어느 곳에서나 집을 구하고 위장전입을 하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합법적인 공동학구제를 통해 ‘통학지원’을 추진할 것이기에 위장전입이라는
전술만으로는 불완전하다. 막상 20km 정도의 거리를 매일 왕복해서 아이들 등하교를 시킨다면
무시할 수 없는 기름 값을 감당해야 한다. 아이를 위해서 매일 칠팔 킬로미터 운전을 계속할 수 있겠는가.











공동학구제를 실현하고 통학버스건 지정 택시건 이 길을 따라 다현이 다인이를 태우러 오는
것은 특혜가 아니라 나라에서 몫을 해 주어야 할, 국가가 존재하는 101가지 이유 중 하나다.











하루 전에 토지본교에서 운영위원회가 있었다. 나는 당연히 참석할 자격이 없다.
그러나 마음이 쏠리니 전화해서 결과를 물었다. 그리고 지난 1주일 동안 여러 가지
서명을 받는 작업이 있었다. 가급이면 조용하고 신속하게 처리해야했다. 선생님들이 바빴다.
무엇보다 인근 다섯 개 정도의 마을 이장님들을 모시고 설명을 해야했고 토지본교를 포함한
학부형들의 서명을 받아야 했다. 도의원, 군의원의 의견서도, 물론 찬성한다는 서류도
받아야 했다. 그 서류는 물론 앞 선 서류의 서명들이 찬성 분위기 일 때 원활한 것이다.











이른바 지역민의 뜻이 그러하다면…
민의民意란 선거승리와 같은 의미다. 개새끼들이라 표현하면 일 추진 과정에서 좋지 않은데…
그럼에도 개새끼들이란 표현을 참지 못하는 것은 도대체 ‘제 뜻’은 없는 것이다.
다수결을 보고 뜻을 정하는 것이다.











내 성격이라면 오늘 아이들은 산행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모든 촉각을 구례교육청에 제출하는 서류 접수에 집중하느라고 다른 어떤 일도 하지 못한다.
어두워져서 전화를 받았다. 접수가 연기 되었다.
토지본교 학부형 중 일부가 반대의견을 내었기 때문이란다.
교육청의 입장은 학부형은 100% 찬성을 받아 오라는 것이다. 100% 찬성이라…











‘초록불에 길을 건너자’와 같은 주제에 대해 100% 찬성을 구해오는 것이 아니라
제 각각의 이해가 얽힌 문제에 대해 100% 찬성을 구해 오라고?
이를테면 법안에 대해서 의원들 만장일치라는 결과 서류를 접수해 달라는 것이다.
그게 가능한가. 본질은 단 한 명의 민원도 받고 싶지 않다는 것이겠지.











연곡분교를 취재하면서 한 번씩 난감한 경우는 아리따운 두 여 선생님들 앞이라
육두문자를 사용할 수 없다는 점이다. 연곡분교 문제가 아니라면 내가 교육청을 방문하거나
관료들과 마주할 일은 현재로서는 없다. 간혹 지리산닷컴 관련한 일로 찾아오는 공무원들에게
‘솔직한 심경’을 피력하고 나면 꼭 피곤한 일이 생기더라.
면전에서는 당했지만 돌아가서 생각하니 기분이 좋지 않았던 것이지.
그래서 자신의 직위에서 구사할 수 있는 원칙(꼬장)과 정도(시비)를 발휘한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이른바 ‘100% 찬성’ 대목에서 평소대로 표현할 수 없어 가슴이 좀 답답했다.









 

학구제 변경을 하려면 정말 학부모 100% 찬성 서명이라는 조항이 과연 존재할까?
그게 말이 되는 소릴까? 교육청 내 6급 인원 감축 안에 대해 교육청 직원들의 100%
찬성 서명을 받아오라는 과제를 드릴까?
100%를 빌미로 서류 접수 자체가 되지 않는다면 나도 민원이라는 놀이에 동참해 볼란다.
요즘은 민원의 방법이 아주 다양하지 않은가. 개싸움이 되는 것이다. 개싸움이란 이른바
치사한 싸움 방식이다. 본질은 외면하고 현상과 싸우고 한 놈만 줘 패는 방식이다.
그 한 놈은 그 조직에서 약한 놈으로 정해야 한다. 치사함의 요건이다. 기꺼이.
개싸움이란 개들끼리 싸우는 것이다.

 

 

 

 

 

 



 

단심丹心이라고 한다. 내 속에서 배어 나오는 진짜 마음. 개도 丹心이 있다.











공동학구제와 더불어 풀어야 할 과제는 ‘돈’이다. 예산.
무엇에 사용할 예산인가. 역시 집 문제를 해결할 예산이다.
지난여름부터 스무 장 정도의 전입희망서를 받았지만 희망자들이 거주할 집이 여의치 않다.
방송의 여파였다. 희망자 중에는 진중하지 못한 경우가 있을 수도 있다.
진정성을 가려내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러나 그들이 스스로 이곳까지 걸음해서 서류를 작성했다.
그 사실이 중요하다. 그들이 제대로 된 집을 마련하기까지 머물 수 있는 인큐베이터를 마련한다면
일이 좀 더 수월해 질 것이란 생각을 했다. 내 집도 없지만.











예산은 이 문제와 관련해서 두 종류가 있다. 교육청 예산과 지자체 예산이다.
그 가닥을 정리하는 것이, 좀 더 가능성이 높은 쪽을 선택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이 미션은 어쩌면 나에게 부여된 일이었다.
2012년 예산 문제에서 나는 실패했다.











사실은 진행조차 하지 못했다. 원치 않았지만 어떤 이가 움직였고 그 사실만으로
다른 경로는 막혔다. 같은 사안을 온갖 부처에 청원을 하면 될 일도 되지 않는다.
입은 많았지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발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직접 움직였어야 했는데
판단하고 기다리다가 버스는 떠났다. 오늘이 군의회 회기 마지막 날이었다.











이 상황 때문에 나는 약간 화가 나 있는 상태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 입은 원래 입이고 발은 원래 발이다.
하루에도 몇 번 자책의 담배 연기를 날린다.
그리고 이 실책을 내 스스로 외면하지 않을 방법에 대해 생각 중이다.
문제는 그렇게 되면 장기전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사실이다.
연곡분교 문제에 집중하는 나의 실질적인 시한은 오늘 밤이었는데.
찬서야, 나에게 길을 보여 다오.











11월 17일과 18일 동안 연곡분교 두 번째 학교설명회가 예정 되어 있다.
우리는 지금 유치부 2명이 갈급하고
지금 2, 3, 5학년을 애타게 찾고 있다.
유치부는 3명만 되어도 내년에 복원할 수 있다.
2, 3, 5학년이 충원되지 않는다면 2013년에는 복식수업 1학급에 머물고 만다.
원론적으로는 손영미 선생님 한 분만 남게 된다는 소리다.











우리에게는 인원증가도 당연히 필요하지만 한 학급 더 증설하는 일이 더 간절하다.
그래서 학교설명회를 여는 것이다. 여름의 학교설명회 때에 선생님들은 읍내에 직접
선전물을 부착하러 다녔다. 그러나 관내에서는 단 한 명도 참석하지 않았다.
나는 예상한 결과다. 시골 사람들이 더 시골로 아이들을 보낼 가능성은 제로다.
나의 예상이 적중했기에 좋은 상황은 아니다.











오늘 현재 나에게 설명회 참석을 메일로 신청하신 분은 없다.
설명회를 준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지만 참석자가 없는 설명회는 헛짓이다.
단 한 명이라도 희망자가 있다면 설명회는 꼭 개최한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은 전입 확인이 아니라 설명회 참석을 희망한다는 메일이다.
<전라남도 구례군 토지면 내서리 20 전화번호061-782-6124> 이다.











이번 학교설명회의 주안점은 귀농귀촌과 관련한 이야기들이다.
결국은 가족 이주에 대한 결정이 연곡분교로의 전입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삶에 대한 이야기다. 개인도 아닌 가족 전체의 삶.
현재 전입생 세 가구는 모두 기러기 가족이다.
제 각각의 사연이야 어떠하건 기러기가 될 수밖에 없는 본질은 밥벌이 때문이다.
학교설명회에서 이런 문제에 대한 답을 드릴 수는 없지만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결정하고 살고 있는지는 살펴 볼 수 있다.











이번 학교설명회에는 공동학구제 문제는 결과를, 인큐베이터 문제는 계획을
말씀 드릴 수 있을 것이다. 여름에는 말 그대로 학교설명회만 준비했다.
결국은 아이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가족에 전체에 대한 문제라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유림이가 사진 아저씨를 찾았다.
모두 나뭇잎에 소원을 적고 있던 중이라 뭔 일인가 싶었다.
아, 김유림의 슬픈 사랑에 대한 이야기였다. 토지면민 구 할이 알고 있는.

“이거 사이트에 올리면 안 되는 사진인데. 그 녀석 이름 지우고 올리까?”
“올리세요. 다 아는데요 뭐.”











그러니까 유림이는 → 그 녀석 → 그 녀석은 여친이 있는데 그 여친은 유림이와 친하고…

“유림아, 그런 경우에 대부분 그 녀석은 직장에서 실장님이다.”











2012년 11월 17일~18일은











연곡분교 두 번째 학교설명회 날입니다.











참가 신청은 4dr@naver.com 또는 061-782-6124 학교로 문의해 주시고











단 한 명이라도 참가하신다면 무조건 진행합니다.

개인적으로 연락해서 언론에 어느 정도 노출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작은 학교의 학교설명회를 사전에 기사화 하는 일은 설득력이 좀 떨어진다.
혹시 이곳을 보시고 계신 매체 종사자 분들 중 11월 13일 전에 저희들의 이런 이야기를
기사화하실 의향이 계시다면 메일 주시기를. 보도자료 형식의 소스를 보내드리겠습니다.











오늘은 연곡사에서 수업을 종료한다.
여학생들은 다현이 집으로 몰려갔고 남학생들은 찬서 집으로 몰려갔다.
아이들이라 아림이와 지강이도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 가는 느낌이다.











자, 다시 단체 촬영이다.
금년 봄 벚꽃 아래 단체 사진은 여섯 명이었다.
가을의 단체 사진은 아홉 명이다.
아이들아, 우리 잘 하고 있지 않냐.

 

 

 


 

 

 

 

4d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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