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 죽이 되건 밥이 되건 올라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또는 간혹 초조해지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정한 연곡분교에 대한 내 마음을 구체화하는 시간이 그렇게 많이 남지 않았다.
나의 시계는 2013년 예산을 확정하는 금년 10월 중순 또는 말까지 남겨져 있다.
저마다 타고 난 소질 같은 것에 근거하지 않은 내 역할을 거의 스스로 그렇게 규정했다.
얼마 남지 않았고 구체적인 성과는 없고 전략과 전술도 좀 답답한 상태다.
관찰자에서 참여자로 바뀌는 순간 가볍고 즐거운 놀이와 실천을 기조로 하는
인생 모토는 잠시 접어야 했다. 어쩌면 수년간 그렇게 피해왔던 ‘회의’와 ‘토론’을 해야 하는
상황이 도래했을 때부터 나는 부자연스러워졌을 것이다.
2012년 9월 20일 아침의 연곡분교는 꽃무릇石蒜이 지천으로 피어 있었다.











부서질 것처럼 바스락거리는 햇살이 유난했던 아침에 아이들은 밖으로 나왔다.
오늘은 거의 하루 종일 연곡분교에 있을 생각으로 올라왔다.











장소를 옮겨서 피구를 할 모양이다.
수가 되나?











여덟 명이다.
1학년 아림이가 최근에 전학을 왔다.
아림이 어머님으로부터 문자를 받은 것이 9월 7일 늦은 밤이었다.
아림이가 등교를 시작한 것은 9월 12일부터다.
뭐랄까…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 것인지 나 역시 어지러운 속도였지만
‘나’라는 생각의 범주는 접기로 했다. 간단했다. 올 사람은 온다.
이제 우린 여덟이다.











2학기 시작과 함께 전학 온 다현, 다인 자매는 자매라서 투닥거리고
자매라서 언니가 동생의 신발 끈을 묶어 준다.
다현이가 온 이후로 전체적으로 매끄러운 연결 고리가 생겼다는 느낌이다.











운동을 끝낸 아이들은 간식을 먹고 텃밭으로 갔다.
보아하니 지난주에 배추 모종을 심은 모양이다.
벌레를 잡겠다고 장화에 각종 장비를 들고 출동했지만 내가 보기엔
잡을 벌레가 없다.











오늘은 조촐한 행사가 있다.
공개수업의 날이다. 그리고 연곡분교 운영위원회를 발족하는 날이기도 하다.
나는 지난 주에도 이곳에 앉아 있긴 했다. 운영위원회 출범을 위해 학부모와 교직원의
간담회가 있었다. 자격은 없지만 이야기를 들어봐야겠다는 생각에 학교로 올라왔었고
교무실로 들어가는 계단에서 카메라를 들고 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날 세 가구 학부모들이 참석했다. 찬서 아빠, 다현이 엄마, 아림이 엄마.
찬서 아빠가 학부형 대표가 되었다. 나머지는 모두 신입들 아닌가.
그리고 오늘, 9월 20일에 교장선생님을 모시고 공개수업을 하고 연곡분교운영위원회를
출범시키려는 것이다.
토지초등학교 본교 교장 선생님께서 새로이 오셨다. 8월 21일자 발령이었다고 하셨다.
개학 하는 날 본교가 아닌 이곳을 먼저 찾으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오늘 인사를 드렸다. 김선행 교장 선생님. 이미 지리산닷컴을 보시고 계셨다.

교장님 / 연고도 없고 고향도 아니고?
나 / 그냥 제 모교라고 생각합니다.
교장님 / 김선행이라는 자연인으로서 저는 연곡분교가 보전되고 발전되었으면 합니다.

뭐랄까… 좋았다.












손영미 선생님.
2012년에 내가 다시 연곡분교 취재를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은 손영미 선생님이
모교로 부임했다는 영화 같은 장면에 이유가 있었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
방송을 섭외할 때에도 그 지점을 ‘활용’했다.
김미행 선생님.
김 선생님은 연곡에서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금년으로 2년의 시간이 종료되고 다시 본교로 내려가야 한다.
첫 해는 얼핏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했던 흔적이 있다.
그것은 어쩌면 나의 갈등과 같은 것이었을 것이다.
나에게 김&손 조합은 일종의 ‘투톱시스템’과 같았다.
가을이 빨리 찾아오는 분교라서 그런 것인지 오늘 두 선생님 보는데 마음이 좀 짠하다.
2009년부터 지금까지 나는 여덟 분의 선생님을 보았다.











다시 아침으로 돌아가자.







나는 교무실로 들어가지 않았다.
햇살을 쫒았다.







열려진 창문으로 아이들의 소리가 드문드문 들렸다.







그렇게 혼자 학교의 꽃들 사이를 걸었다.







유난히 작은 것들이 눈에 들어오는 아침이었다.







세상에는 아주 많은 학교가 있지만 ‘다른 학교’는 드물다.







태풍 설거지 때문에 김 주무관님은 힘들었을 것이다.







가을에는 햇볕 부서지는 미루나무가 좋았다.







피아골 계곡의 물살도 가을을 닮아 가고 있었고







학교 안의 모든 작은 것들은 계절 마다 표정을 달리했다.







햇살의 결이 계절을 달리 한다는 사실은 상투적이지만 경이롭다.







항상 이 나무 아래에 40년 전 내 기억이 존재한다는 착각을 한다.
모교니까.







나는 계속 거닐었다.
다시 만나기 힘든 아침이란 것은 분명했다.







계속 셔터가 눌러지는 그런 빛을 만난 아침.







세상의 모든 아침이거나







유일한 아침.







그 속을 혼자 걷는 아침.







그래서 전하기 힘든 마음.







그래서







지키고 싶은 가치.







왜 같아야 하냐고.







왜 효율이 우선이냐고.







왜 결국은 경쟁력이냐고.







그렇게 살아보니 행복하냐고.







이미 다 해봤으면서







어른들은







참 바보다.







세상에







이런 학교 하나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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