外道 / 영산암에서

마을이장 2012.08.15 21:46 조회 수 : 8403








2012년 8월 10일 금요일 아침.
하루 전에 경북 봉화 송석헌을 방문하고 내쳐 안동으로 내려섰다.
안동 시내에서 잠을 청했지만 물론 오래된 호텔에서 나는 잠을 뒤척였다.
새벽 5시 30분에 알람을 맞춰두었고 일어나는 것은 힘들지 않았다.
불편한 숙소를 벗어나는 것이 정답인 듯했다.
그리고 ‘만약에 안동으로 간다면’ 예정했던 영산암으로 향했다.
서후면 봉정사 입구 버스 정류장에는 이곳에서 안동으로 향하는 첫 버스가 하루를 시작하려는 중이었다.











휴가?
여행?
그 모든 것이거나 그 무엇도 아니거나.
지리산닷컴 사무실 입구에 ‘休’ 자 하나 붙여 놓고 십여 일 칩거하듯이 일만 했다.
휴가 차량은 19번 국도에 넘쳤고 의자 옆에 붙여 둔 열 한 개의 작업 리스트 중 두 개를 지웠다.
그리고 하나를 더 지우기 위해 봉화行은 필연적이었다.
봉화 송석헌 방문 이야기는 책이 출간되는 9월에 이곳에서의 에필로그를 위해 미루어 두자.











나의 목적지는 영산암이다. 영산암은 봉정사에 속한 암자다.
따라서 영산암을 가기 위해서는 봉정사를 통해야 한다.
봉정사는 낡음을 유지하고 있는 몇 안 되는 아름다운 절집이다.
그러나 영산암은 나에게서 봉정사를 지워버린 악마적인 아름다움을 간직한 ‘낡은 집’이다.
주차 하고 5분도 걷지 않아서 절집이 가까워 졌다는 랜드마크가 보인다.











1998년이었을 것이다.
14년 전에 봉정사를 처음 보았다.
14년이라니… 젠장.











14년 전에 비해 안동에서 이곳으로 오는 길은 더 넓고 빨라진 듯하다.
당시에는 제법 돌고 돌아 온 길이었다. 명성에 비해서 한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그 당시에는 나 역시 ‘극락전’을 보기 위해서 이곳을 찾았지만
극락전을 찾는 數가 극락전의 명성에 비례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14년 전이나
지금이나 같은 모양이다. 절집 아래 상가의 규모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다행이다.











계단을 오르면서 생각했다.
풀이 자란 돌계단은 설정일까 빈곤함일까.
설정이라면 다행이고 빈곤이 이유라면 이 역시 시한부 아름다움일 것이다.











14년 전 그 모습 그대로 계시니 고맙습니다.
진심으로.
그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기에.
구례 화엄사의 돈지랄에 질려버렸기에 더욱 감사합니다.











14년 전.
힘든 시기였다. 이른바 IMF시절이었고 나는 처음으로 양복 입어야 하는 직장에 취직을 했었다.
컴퓨터 학원 강사가 왜 양복을 입어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1년을 근무했는데 정말 끔찍한 경험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얼굴이 화끈거리는 유치한 1년이었는데 나의 무료함과 덧없음을
달래기 위해서(아마도) 스터디그룹을 꾸렸다. 이름이 ‘명륜당’이었다.
수업 이외의 시간에 희망자를 대상으로 한국미술사와 양놈 예술사를 강의했다.
대부분 직장인이었던 당시 학생들과 감은사와 병산서원, 봉정사를 찾는 여행을 했었다.











기억으로는,
그때 학생들은 약간 이상한 증상의 컴퓨터 학원 강사를 봉양하기 위해
제법 시간과 돈을 갹출했을 것이다. 그들도 허기졌고 나도 배가 고팠다.
좀 폼 나게 살고 싶은데 퇴근 후 기껏 컴퓨터 학원을 끊어서 포토샵이나 배우는 것으로
젊은 인생의 돌파구가 찾아질 수 없다는 사실은 딱 3개월 컴퓨터 앞에 앉아 있으면 알 수 있다.
예나 지금이나 나는 사람들에게 작은 돌맹이를 톡톡 던지는 일을 하기는 한가지다.











얼핏 과거 속으로 들어 온 느낌을 받았던 경험이 몇 번 있다.
14년 전 봉정사에서 그랬다.
그렇게 모일 수 없는 공간에서 유유상종이 있었고
부조화스러운 여행과 그래야만 하는 허기짐이 참 쌍팔년도스러웠던.
그때.
약간 비현실적인 공간 속에 속해 있다는, 과거의 어느 시간에 던져졌다는.
그런 부자연스러움이 우리와 어울렸기에.
그들, 그리고 나. 모두 원하지 않는 삶을 살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살아내고 있다면,
살아가고 싶다면,
생각의 중심을 세우고 땅에 발을 딛고 싶은 것이다.
14년 전 그 날 그랬다.











과거에 기대어 현재를 살아가는 집단은 조신할 필요가 있다.
자신의 능력이 아닌 역사의 능력으로 지금을 연명하는 것이니
그 권위 또는 여유를 감사하게 생각하면서 살아가야 할 의무가 있다.
봉정사는 포괄적으로 겸손하다. 그래야 존중할 일말의 진심이 생길 수 있다.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이다 아니다’는 극락전은 14년 전에 처음 보았을 때 보수 공사 중이었다.
공사를 떠나서 특별한 아우라를 느낄 수 없었다. 가령 부석사 무량수전이나 화엄사 각황전
앞에서는 피조물을 존중해야 하는 자발적 경외감이 생긴다.
배흘림기둥 좌우로 직선의 같은 고동색을 칠해서 배흘림 모양새를 죽인 발상은 분명히 한심한 생각이다.
2012년 현재 이런 작업을 탁월하게 진행할 인력이 없는 것이다.
불교문화가 가장 빛났던 시절은 당연히 불교가 스스로 권력이거나 권력과 한 몸이었던 시절이었다.
사회적으로 가장 강력한 권력과 경제를 흔드는 집단으로 인재들이 모이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이런 분석이 지극히 세속적인 관점이라 평하더라도 세상은 어차피 그렇게 흘러왔다.
국보나 보물을 우선시 하는 관람객을 염두에 둔 탓인지 봉정사에서 가장 중요한 건축물은
가장 볼 품 없는 자태로 그렇게 서 있었다.











석축과 돌계단과 풀과 꽃이 극락전 보다 더 좋았다면 지나친 결례일까.
어쩌겠나. 결례를 무시로 범하는 인간이니.
무심했다. 그 무심함이 편했다.
찾아오는 분들에게 내가 무심한 눈길을 던지면 섭섭한 모양이다.
나름 예를 갖춘 환영인산데.











대웅전 안으로 들어섰다.
잘 하지 않는 행동인데 이른 아침 산사의 불전 앞은 조용했기에 잠시 앉아 있고 싶었다.
이전에는 아주 간혹 화엄사 각황전 내부의 가장자리 기둥에 몸을 기대고 사람들을 구경하곤 했다.











나에게 내가 기도하기 어색하니 절대자가 있는 것이다.
결국은 스스로 풀거나 주저앉겠지만.
내 안의 나와 화해하는 시간.











아주 조금 바람이 불었고 아침이었지만 흐렸다.











스님은 채마밭에서 아침을 보내고 있었다.











대웅전 오른편을 지나 이제 영산암으로 걸음을 옮긴다.











14년 전에 아무런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영산암을 만났다.











입구에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을 촬영한 바로 그 절집이라고 기록되어 있었다.
배용균 감독은 당시 대구 어느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사람이라고 했었다.











1989년은 부산 동의대사건이 터진 해였다. 학생운동은 집중포화의 비난에 직면한 시절이었다.
나의 대학 4년은 이미 끝이 났지만 졸업은 하지 못한 상태였다.
나의 마지막 보직은 엉뚱하게 총학생회에 남아서 설거지를 하는 것이었다.
그 해 가을에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을 개봉했다.
외국 영화제에서 상을 받지 않았다면 개봉관도 잡지 못했을 영화는 일시적으로 화제가 되었다.
화염병과 최루탄이 낮이고 밤이고 하늘을 수놓던 그 시절에 나는 극장에서 넋을 놓고 영화를 보고 있었다.
내가 빠진 것은 영화의 스토리나 화두가 아니라 영상이었다.
그 지루했던 타르코프스키의 어떤 대목이 보이기도 했지만 나는 영화를 보는 시종일관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했다.











그런 기억 탓인지 14년 전 어느 날 아무런 정보 없이 그 영화의 현장에 뜻하지 않게
서 있게 되었을 때 마음속이 짠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익숙했다. 느낌이 그러했다.
처음 와보는 익숙함 같은 것이었다.











14년 전에는 준비되지 않은 일행이 많았지만
오늘은 단출하다. 나는 목적으로 영산암을 찾았고
이제 14년 동안의 기다림을 보상받을 시간이다.











기록을 남기지 않았던, 또는 남길 수단이 없었던 시절이었으니
오로지 나의 기억에 의존해야 재현할 수 있는 아름다움이었다.











그래서 영산암은 나에게 일종의 향수이거나 노스탤지어와 같았다.
기억 속의 영화는 필연적으로 흑백영화일 수밖에 없었다.











왜 그때 글조차 남기지 않았을까.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글이건 뭐건 끌쩍거릴 아무런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손으로 뭔가를 쓰던 시절은 이미 아니었고 나는 마음 담을 목적과 방향 없이
단지 나와 아이의 연명에 모든 것을 집중하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우울했고 그래서 아무것도 쓸 수 없었다.











우현 고유섭 선생의 에세이 <나의 잊히지 못하는 바다>를 읽다보면 낡은 수첩과 기억에 의존해서
기록을 남겼던 시절의 아련함이 묻어난다. 신기한 것은 문장 자체로 그것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그런 문장 속에 있다 보면 필사적으로 그 문장의 어느 대목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
그래서 경주를 찾을 때면 꼭 추령을 넘어 감포로 향한다. 어쩌면 내가 경주에서 감포로 이어지는
‘그곳’을 좋아 한다기 보다는 고유섭의 문장에 묘사 된 그 길 위에 등장하고 싶은 것이다.











젠장…
이런 것이 살 떨리는 아름다움이다.
이런 것이 살 떨리는 섹시함이다.











시멘트까지 조화롭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쉿!
이제 영산암으로 들어선다.











‘ㅁ’ 자 모양은 기본이다.











영산암은 ‘ㅁ’ 자 모양 절집의 미니어처와 같다.











그것도 아주 정교하고 오래된 미니어처다.











세월과 시간의 조화로움이 가장 적절하게 만나는 낡은 집.











그 이상도 그 이하도 필요 없는 완벽한 필요의 집합.











아침 절집 마당은 항상 발을 딛기 부담스럽다.











배우들은 사라졌지만 누군가는 새벽에 이 마당을 쓸었을 것이다.
그리고 탑 하나.











마치 더 이상 단 하나의 구조물도,
단 한 평의 넓이도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는 완벽한 배치.











최순우 선생에게 그것이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바라보는 안양루 너머 산들의 유영이었다면,
나에겐











이 모습이 사무치게 그리운 하나였다.











구례의 식구들을 생각했다.











모두가 정신없는 한 해를 넘어서고 있는 중이다.
밖으로 보이는 것은 주로 나 하나지만 모두가 제 각각의 역할이 있다.











외형적으로 볼 때 지리산닷컴은 온오프라인으로 더 짜임새 있는 모양을 갖추어 가고 있고
그런 외형은 내부를 더 피곤한 일상으로 만들어 가고 있다.











불가피 하거나
불가항력이거나
결정은 결과를 낳고 예측은 현실을 감당해 주지는 않는다.
당분간은 이런 시간이 지속될 것이다.











여름이 끝이 날 무렵에 지리산닷컴 스태프들만의 여행을 할 수 있을까.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다시 여유다.











이런 ‘사이’는
의도된 것인가 저절로 생긴 것인가.











잠시 생각해 보았지만
기획된 것으로 판단했다.











영산암은 무수한 사이와 사이의 조합이다.
그 사이와 사이의 조합은 기하급수적인 시각적 즐거움을 제공한다.











어찌하면 이 사이를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나.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고,
나한을 만나면 나한을 죽이고,
부모를 만나면 부모를 죽이고,











그래서 미시마 유키오는 금각사를 불태운 모양이다.











결국은 볼 수 있음에 감사하고











세월이 갈수록 점점 더 많은 것이 보이는 듯하다.











그래서 나는 지금이 좋다.











물론 더 많이 보이면 더 많은 기쁨 이외에도
더 많은 아픔도 감내해야 한다.











‘행복하십니까’ 라는 편지의 최종적인 수신자는 스스로다.











나는 여전히 타인의 행복보다 나의 행복에 더 많은 관심이 있기에
매일 아침 나의 안부를 묻는 것이다.











언젠가부터 먼 길을 나설 때에는 차를 빌린다.
돌아가면 차를 바꾸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비에 대해서 거의 적대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다.
절대적 필요 이외의 소비를 부추기는 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다.
우리는 누군가의 소비를 자극해서 판매하고 그것으로 먹고 살아간다.











나의 소비만 감시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소비까지 내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성질이 지랄인 것이다.











‘그게 정말 필요해?’
소비는, 적어도 나의 최근 관념 속에서는 본질적으로 비윤리적이다.
‘정말 그렇게 많은 것을 소유해야 하나?’











차를 바꾼다는 결정은 아주 오랜 시간 거부했던 할부 인생으로 다시 들어선다는 의미다.
‘정말 차를 바꿔야겠어?’











영산암에서 차를 바꾸어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은 아이러니였다.
이전에 에어컨을 집에 설치하는 문제에 필적하는 화두와 마주한 것이다.
아, 그건 구매가 아니었지. 박과장이 버린 것을 대신 소비한 것이지.
약간 정상참작의 여지가 있다.











하긴 똥을 싸다가 결혼을 결정할 수도 있는 일이고
김밥을 먹다가 살인을 결심할 수도 있는 일이다.











무엇을 염원한다고 작은 돌을 쌓았을까.
작은 사유私有를 향한 염원이 대부분일 것이다.











"고통을 애써 참지 마세요."
<미 앤 유 앤 에브리원> 이라는 영화에 나오는 대사다.
고통과 불편은 다른 것이겠지.











14년 전에 카메라가 있었다면 어떠했을까.
당시는 카메라가 없다는 사실 자체를 그다지 불편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기계란 것은 결국 소유하고 사용해 본 사람이 ‘없음’을 아쉬워하는 것이다.
그래서 영산암에 대한 기억은 책임성이 없었다.
원하는 방식으로 그 날의 모습을 구성하면 되는 것이다.











내 손에 카메라가 쥐어 진 것은 2001년이었을 것이다.
그 이후로 나와 주변의 상황은 계속 기록되었다.
기억의 저장량은 카메라를 바꿀수록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기억은 데이터로 변했고 그 기억을 옮겨 다니고 보전하기 위해
외장하드의 저장량도 증가했다. 그리고 걱정한다.
데이터가 날아가면 기억도 사라지는 것이다.
이미지 없이 기억을 되살리는 것이 힘들어진 것이다.











작은 절집 안에서 제법 많은 사진을 찍었다.
그러나 충분하지는 않다. 디테일들을 찍지 못했다.
셔터를 누르다보면 이상하게 마음이 급해진다.
누가 재촉하는 것도 아닌데 그렇다.











‘ㅁ’ 자의 마지막 모서리로 왔을 때 이번 영산암 방문은 대략 끝이 난다.
항상 생각하지만 메모리에 담는 것이지 마음에 새기지는 못한다.











다시 찾기 쉬운 곳은 아니지만 다음을 기약한다.











터줏대감에게 인사를 드린다.
매력적인 양서류다.
나도 매력적인 포유류로 늙고 싶다.











다음에 찾을 때에도 이 모습이기를.











산문山門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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