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간만에 연곡분교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학예회를 한단다.

말끝에 최 선생님은 찬서가 사회를 봅니다.” 라고 했다.

몇 초 고민하다가, “올라가겠습니다.” 라고 대답했다. 칩거 계획은 다시 하루 미루어졌다.

20141223일 오후 2.

학예회가 시작되었고 무려 3시간 가까이 진행되었다.

학부형들의 합창 순서도 있었다. 세상에 연곡분교에서 학부형 합창이 가능하다니.

모두 나오지도 않았다. 20123, 집중 취재 시작 무렵의 연곡분교는 전교생 여섯 명이었다.

학예회가 끝나고 급식실로 이동했다. 준비된 떡국을 나누고 행사를 종료할 모양이다.

몇 술 뜨고 있는데 앞에 앉았던 학부형이 말을 걸어왔다.


그런데누구세요? 어느 아이 부모님이세요?”

, 학부형이 아니고 토지면에 사는 주민입니다.”


아는 학부형 보다 모르는 학부형이 더 많다. 재학생 스무 명, 유치부 여덟 명이란다.

2015년은 전 학년이 구성된다고 한다. 한 세월 넘었다.

학교를 유지해야 한다는 명분으로는 이제 정말 내가 올라와야 할 이유는 없어졌다.

2년 정도 지나면 지금의 선생님들은 모두 떠나고 없을 것이다.

그때가 되어 내가 학교로 들어서면 낯선 사람 등장알람이 울릴 것이고,

그때가 되면 어쩌면 서른 명 정도 되는 아이들이 연곡분교를 다니고 있을 것이고,

분교의 벚나무는 조금 더 늙어 있을 것이다.


예정대로였다면 2013년 가을 무렵에 단행본 <연곡분교 이야기>가 출간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책은 출간되지 않았고 별 이변이 없는 한 앞으로도 출간되지 않을 것이다.

계약서에 계약금까지 받은 책을 갈아엎은 것은 출판사가 아니라 나였다.

정확한 이유는 당사자인 나도 설명하기 힘들다. 시간이 좀 더 흐르면 알 수 있을지 모르겠다.

여하튼 그 책은 달랑 프롤로그 성격의 앞머리 글 일부만 여전히 완성하지 않는파일로

내 작업폴더에 남아 있다.












프롤로그 - 한 장의 사진


200910.

나는 당시 한 방송국에서 제작하고 있던 전남 구례를 무대로 한 여행 관련 다큐멘터리의

현지 코디네이터 역할을 요청받았다. 서울에서 시골로 옮겨 온 이후 종종 그런 요청이 있었다.

제작팀은 구례의 일상적인 가을 풍경을 찾고 있었다.

담당 PD는 가을운동회를 영상으로 담기를 원했다.

그러나 그 해는 신종플루 때문에 대부분의 운동회가 취소된 상태였다.

구례군에서는 단 하나의 학교가 예정대로 운동회를 개최할 것이란 정보를 입수했다.

토지면에 있는 토지초등학교였다. 사이트를 찾아 들어가서 운동회와 학예회를 확인했다.

그리고 학예회 프로그램 중에 '전교생 바이올린 연주'라는 대목을 보았다.

연주는 연곡분교로 되어 있었다.

분교가 있었나?” 그림이 될 것 같았다.

작은 학교와 능숙하지 않을 것이 뻔한 시골아이들의 바이올린 연주.

담당 PD에게 강하게 추천했다. 나 역시 그런 장면을 촬영하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다.


20091027일 오전.

본교의 허락은 구한 상태였지만 막상 분교를 찾았을 때 부장 선생님은 촬영을 쉽게

허락해 주시지 않았다. 담당 PD가 부장 선생님과 촬영에 관한 협의를 하는 동안

나는 조용히 1층 복도를 거닐었다. 하루 전에 촬영 팀과 노고단에서 피아골로 내려서면서

단풍을 촬영한 강행군 덕분에 몸은 휴식을 원하고 있었다.

1층 복도 어느 교실, 창 너머로 단 한 명의 학생과 단 한 분의 선생님이

늦은 가을볕이 스며드는 창가에서 수업을 하고 있었다.


김찬서, 토지초등학교 연곡분교장 1학년. 한상모, 연곡분교 1학년 담임선생님.

선생님 한 분이 두 학년의 통합 수업을 진행할 수 있지만 2009년 연곡분교에는 2학년이 없었다.

어렵게 촬영 허락이 떨어졌고 우리는 자유로운 상태에서 촬영을 했다.

찬서는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았고 교실은 공간과 여백이 충분했다.

수업은 계속되었고 우리도 조용한 가운데 촬영을 지속했다.

셔터를 누르면서 나는 편안하고 차분했다. 파인더 속의 두 사람은 아름다웠다.

돌아와서 사진을 일별하면서 어쩌면 연곡분교 이야기를 계속 기록하게 될 것이란 예감을 했다.

그것은 분명히 의지 또는 계획이 아닌 예감이었다.

이 이야기는 한 장의 사진에서 출발하게 된 것이다.



한 장의 사진으로부터 시작된 이야기는 20134월까지 기록으로 이어졌다.

연곡분교 이야기는 어쩌면 지리산닷컴의 대부분 시간과 호흡을 같이 했다.

그 출발점에 1학년 찬서가 있었고 이제 찬서는 6년 졸업을 눈앞에 두고 있다.












몰라볼 정도로 키가 자랐다.

사회를 보는 목소리는 변성기로 접어들어 영감 목소리다.

오늘도 찬서는 잊지 않고 가벼운 목례를 던졌다.

순전한 나의 착각이겠지만 언젠가부터 찬서의 눈에서 내가 왜 연곡분교를 올라오는지

알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나는 찬서를 동지同志라고 생각한다.

찬서와 육 년. 예감은 했으나 예정은 하지 않았다.

이제 내년 2월 졸업식 사진만 찍으면 나도 같이 졸업을 하는 것이다.

원래 그리 생각했다.



<다시 쉼 알림>

안식년 끝낸다고 글 올리고 태만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내년부터 뭔 게임을 한다고 스리슬쩍 흘리고 또 감감 무소식이었습니다.

분명한 것은 이곳 마을이장은 아직 사이트에 진력할 정신무장이 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다급한 글 빚이 좀 쌓여 있고 빚쟁이들의 독촉이 점점 극악해지고 있는 탓에

저도 마치 작가인 것처럼 한 달 정도 칩거해서 글만 쓸 생각입니다.

한 달 정도 지리산닷컴의 모든 일정을 연기하겠습니다.

그것이 펀드건 뭐건 간에 어차피 겨울이라 딱히 진행할 농사도 없는 관계로

1월이나 설 지나서 모집에 들어가도 별 문제는 없겠다는 판단입니다.

죄송합니다. 꾸벅.










jirisan@jirisan.com







공지 지리산닷컴 사진사용에 관해 마을이장 2013.05.24 20448
262 그곳 / 꽃, 2016 – 포토그래퍼 또는 노점상 [40] 마을이장 2016.03.23 1697
261 그곳 / 꽃, 2016 - 거절 [19] 마을이장 2016.03.18 1201
260 그곳 / B컷. 2011. 3. 30 [11] 마을이장 2016.03.17 932
259 그곳 / Replay [25] 마을이장 2016.03.14 1628
258 생각 / 노래는 끝이 났는가 [16] file 마을이장 2016.03.08 1277
257 화개 / <낫짱의 부엌> 판매 알림1 & 놀이터 구상 [30] 마을이장 2016.02.24 2272
256 생각 / 물과 불 [10] 마을이장 2016.02.23 1353
255 생각 / 피할 수 없다면 [22] 마을이장 2016.02.19 1504
254 그곳 / 지리산인듯 [23] 마을이장 2016.02.11 1679
253 생각 / 지리산닷컴V3.0 또 다른 설명 [34] file 마을이장 2016.02.10 1487
252 생각 / 백조의 발 [38] 마을이장 2016.02.04 1659
251 생각 / 나는 무엇을 먹고 어떻게 살고 있나? [26] 마을이장 2016.01.28 2051
250 생각 / 내가 친 그물 [40] 마을이장 2016.01.19 2329
249 생각 / 차카게 살자 [32] 마을이장 2016.01.08 1757
248 생각 / 세ː믿 [24] file 마을이장 2015.12.22 1803
247 外道 / 의대 대신 귤… 장태욱의 선택 [48] file 마을이장 2015.12.17 2600
246 外道 / 한 번뿐인 삶 YOLO – 출판사 이야기와 공동 필자의 진심 [38] file 마을이장 2015.11.24 2636
245 外道 / 한 번뿐인 삶 YOLO - 작가 속마음 [64] file 마을이장 2015.11.15 2402
244 外道 / 한 번뿐인 삶 YOLO - 보도자료 [37] file 마을이장 2015.11.13 2076
243 생각 / 플랫폼의 소비자들 그리고 지리산닷컴 [10] file 마을이장 2015.08.01 2204
Copyright© 2007. All Rights reserved www.jirisan.com 4dr@naver.com | 지리산닷컴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