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 우렁이 총각 박민재

마을이장 2014.07.15 00:31 조회 수 : 8977

 

 

56일이었나? 긴 연휴의 마지막 날에 한 청년이 구례를 찾았다.

카페 산에사네에서 만나고자 청하는 사람이 있다는 전갈을 받았다.

하루 전에 피아골에서 머물렀고 다음 날 아침에 피아골 계곡을 올라 노고단에서

다시 구례읍내로 내려선 모양이다. 간명하게 깨끗하게 생긴 청년이었다.

내 첫 책을 들고 있었다. 출신성분이 얼핏 또렷하게 잡히지 않았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면 보통은 말투를 듣고 전라도다, 경상도다 하는 판단을 하지만

이 친구는 전라도 억양인데 명확한 전라도 말이 아니다. 전남 장흥에서 왔다고 했다.

두 시간 정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냥 그렇게 찾아오시는 분들과 나눈 시간에 비하면

오래 이야기한 것이다. 전반전에는 질문을 받았고 하프타임 이후로는 내가 주로 질문을 했다.

농사를 짓는다고 했다. 흥미로웠다. 구례에서는 비슷한 유형은 있지만 밀접한 유형이 없는,

내가 기대하는 농사꾼의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근본주의 자세의 농부 또는 농부 지향적 인생은 종종 볼 수 있지만 그들은 언더그라운드를

떠날 생각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땅에 대한 인간의 죄악에 대한 반성이 이들의 몫이다.

이런 유형의 엄숙한 반성은 새로운 연대기 창조를 위한 출발점이긴 하지만 스스로 그 주역이

될 가능성은 낮다. 주로 거름으로 기능하더라.

양지 지향의 오버그라운드 형 농부는 농부의 95%를 점유한다. 그 중에서 5% 정도의 농부가

탁월한 기술을 무기로 농사를 짓는다. 그러나 그들의 대부분은 기존 시장의 순환구조 속에

너무 강하게 소속되어 있다. 그리고 통상 인문학적 소양과 쾌락에 대한 욕구가 낮다.

이를테면 적 관점이 강하다. 이타적이기 힘들다는 소리다.

내가 기대하는 농사꾼은 농사+마케팅+스토리텔링 능력을 겸비한 유형이다.

돌배나무 아래에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작업장으로 자리를 옮겨서 이야기를 이었다.

그렇게 늦은 오후에 청년은 떠났다. 배웅한다고 마을정자 앞으로 나갔는데 청년의 차는

라이트핸들의 소형 외제차였다. 떠나는 차를 보며 빙긋이 웃었다. 얽매임이 없구나.

나와는 다른 종족이다. 인연이 되어 다시 본다고 해도 연장자를 지위로 가르칠 일은 없다.

사실 세월이, 나이가 인간을 성숙하게 만들지는 않더라. 세상은 사표를 낼 수 있는 사람과

낼 수 없는 사람으로 애당초 나누어져 있었다.

청년은 가기 전에 장흥에서 검은밀을 키우고 있다는 말을 남겼고,

몇 주 후에 장흥에서 만나야 할 사람이 있다던 월인정원이 이 청년의 검은밀을 보고 돌아왔다.

그러니까 대략 60일 조금 넘는 시간 동안 구례와 장흥을 오가며 네댓 차례 만남이 있었고

그런 인연으로 이 청년은 전국의 우리밀을 자신의 쇼핑몰에서 일괄해서 판매하는 지경으로까지

상황이 진행되었거나 진행되고 있고 앞으로도 교류가 있을 것 같다.

청년은 이제 서른이고 이름은 박민재다.

 

 

 

 


 

 

청년이 가고 나서 남기고 간 명함에 적힌 도메인을 입력하고 사이트를 일별했다.

쇼핑몰이다. 나 역시 사이트를 만드는 사람이라 어느 사이트건 보면 사람이 관리하는

곳과 기계가 관리하는 곳이 구별되어 보인다. 우렁이총각이라는 표현은 쌀농사에

제초제 대신 우렁이를 투입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를테면 무농약을 지향하는 것이다.

브랜드 명은 <한 되>였다. 괜찮다. 곡물 중심 쇼핑몰이니 <한 되>는 쉽고 명확하다.

하나에서 열까지 자신의 생각을 요구한 사이트다. 스스로 관리할 의지가 있는 것이다.

이른바 C.I 개념이 있다. 그러면 그 다음 이야기가 쉬워진다.

 

 

 

 

 

 

 

 


 

 

그리고 흑밀을 중심으로 우렁이 총각과 월인정원의 연락이 이어졌다.

무엇보다 전국의 우리밀 소생산자들의 밀을 아주 적은 양이라도 한 곳에 모아서

판매해 보려는 월인정원의 기획이 가능해진 것이다. 원래는 지리산닷컴이 안식년을

결정하지 않았다면 지리산닷컴에서 어찌했을 사안이었다.

우렁이 총각 사이트가 그 역할을 맡기로 했다. 일이 되려니 그렇게 인연이 된 모양이다.

전국의 우리밀 작황과 수확 시기, 가공 장소 등에 대한 문제로 이런저런 소통들이 이어졌다.

지리산닷컴은 그냥 몇 년 동안 하던 일이라 제일 먼저 진도를 나가서 얼마 전까지 판매를 완료했다.

아직도 가공이 끝나지 않은 밀들이 있다. 이번 주에는 대략 가공까지 완료될 듯하다.

 

 

 

 

 

 

 

 


 

 

그 과정에서 우렁이 총각은 갑작스럽게 이런저런 인연들과 계속 만나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 동안은 단지 농사를 지었을 뿐인데 자신이 생산한 흑밀을 매개로 그 결과물을 소비자들이

가공 후 다시 보내오고, 그들과 대화를 지속하는 과정에서 이를테면 그 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일종의 새로운 문화를 경험하게 된 것이라고 짐작한다.

결국 햇밀 축제 하루 전, 구례로 와서 월인정원의 6월 워크샵에 참석까지 하게 되었다.

생산 농부로서, 자신의 농산물로 처음 빵을 만들어 보는 경험을 자청한 것이다.

 

 

 

 

 

 

 

 


 

 

원래 세부적인 대화를 피하는 편인 나는 그냥 그런 모습을 곁눈으로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의 편린을 짜 맞추어 볼 뿐이었다. 단지 내가 확신할 수 있었던 것은

우렁이 총각은 변화 중이라는 사실이었다.

그와 처음 만났을 때, 나는 사업적으로는 조언해 줄 수 있는 자질이 없는 사람이고

공익적 측면을 강화하고 싶다면 몇 가지 생각을 말 해 줄 수는 있을 것 같다고 말했었다.

다른 말로는, 사업을 돈 안 되게 하는 몇 가지 팁을 알려 줄 수는 있다는 뜻이었다.

원래 카운슬링이니 멘토니 하는 표현과 짓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거 다 헛소리다.

원래 가능하지 않은 일이니 헛소리다. 더구나 최근 몇 년 동안 그 용어들은 단지 하나의 제품일 뿐이다.

파종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싹이 날 것인지 여부는 땅이 결정할 뿐이다.

 

 

 

 

 

 

 

 


 

 

상황이 전개되었을 때 우렁이 총각은 받아들였다. 왜 받아들였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서로의 생각이 일치하는지 나는 확신하지 못한다. 아직은. 어차피 다름이 확인되어도

별 달리 취할 수 있는 행동도 없다. 그냥 미루어 짐작해서 그리 진도가 나가고 있는 것이다.

여하튼 우렁이 총각은 6월의 마지막 주를 구례에서 햇밀축제와 함께 보내었다.

이곳이나 그곳이나 같은 시골이지만 구례는 장흥과는 다른 분위기와 사람들이 있었던 모양이다.

나는 장흥의 어떤 요소를 부러워했고 우렁이 총각은 구례의 어떤 요소를 부러워했다.

71일 화요일에 장흥을 다시 찾았다. 박민재 군을 인터뷰하기 위한 걸음이었다.

가능하면 그의 검은밀 밭도 촬영을 할 생각이었다.

 

 

 

 

 

 

 

 


 

 

나는 언제나 형사 취조 방식으로 인터뷰를 진행한다.

 

/ 생년월일?

/ 1985610일 생입니다.

/ 형제는?

/ 남동생 한 명 있습니다.

/ 부모님은?

/ 아버님은 55년생이고 어머님은 63년생이십니다.

 

부산 사직동 외가에서 태어났으니 부산 생이라 할 수 있지만 부산에 대한 기억은 전혀 없다.

단지 태어난 장소일 뿐이다. 당시 우렁이 총각의 부모님은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시고 계셨다.

곧바로 서울로 옮겨갔다. 열세 살까지 서울에서 살았다. 신림동과 시흥, 대림에서 살았다.

 

 

 

 

 

 

 

 


 

 

아버님이 고향으로 귀농을 결정하면서 장흥으로 옮겼다. 부모님은 헤어진 상태였다.

아버님 먼저 장흥으로 내려가고 아이들은 큰엄마 집에서 6개월을 살았다.

그 이후로 사춘기가 지나도록 우렁이 총각은 그 조건이 그렇게 견디기 힘들었다고 한다.

큰어머님 , “못 키우겠다. 별난 놈들이다.”는 항복 선언을 하셨다고 한다.

장흥으로 옮겨 온 이후 더욱 적응이 힘들었다.

장흥중학교를 다녔다.

우렁이 총각은 자신의 과거에 대한 서류적 확인 차원에서 학생기록부를 열람한 모양이다.

결석 일수가 92일이다. 성적은? 전체 재적 147. 박민재의 최하등수는 142. 그 학교에는 축구부가 있었다.

나 역시 내 뒤에 두 명 있는 등수가 최고였는데 우리학교는 복싱부가 있었다.

 

/ 왜 그렇게 힘들었나?

/ 잘 모르겠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사람의 문제 같습니다. 동생은 바르거든요.

 

가출을 일곱 번 정도 했다. 단기와 장기가 혼재되어 있었다.

부산, 경주어린 청춘은 극심한 롤러코스트를 탔다. 집이 싫었던 것이다.

화장실에서 수돗물로 배를 채우기도 했고 놀이터에서 잠을 청하기도 부지기수였다.

어떤 때에는 견디기 힘들어 제 발로 경찰서로 찾아가서 차비 얻어서 집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처음 만났을 때에도 인터뷰를 진행한 장흥 읍내 커피숍에서도 우렁이 총각은

노트를 펴고 메모를 했다. 지금 우렁이 총각의 모습을 보면 질풍노도 시기의

분노에 찬 소년의 모습을 상상하기는 힘들다.

 

/ 고등학교는 어디로 갔나?

/ 장흥실고도 안 될 성적이어서 강진농고로 갔습니다.

 

1년은 통학하고, 2년은 기숙사 생활을 했다. 1때에는 역시나 게임방에 칩거했다.

당시는 스타크레프트의 절정기였을 것이다. 처음 만났을 때 대학을 나온 것으로 들었으니

이제까지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집안에 교육부 장관이 있거나 돈으로 입학했을 것이다.

 

/ 대학은 갈 수 있었나?

/ 2가 되면서 좀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대학을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국농수산대학으로 갔다. 본인 결정이다. 04학번.

한국농수산대학은 경기도 화성에 있다. 3년제다. 졸업 후 일정 기간 동안 농사를 지어야 하고

대신 병역에 대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특용작물학과 버섯 전공이다.

 

/ 대학은 다닐 만 했나?

/ OT에서부터 변하자, 변하자! 라고 다짐했습니다.

내성적이었는데 스스로 적극적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작정했습니다.

/ 원래 농업에 관심이 있었나?

/ 부모님 워낙 힘들게 농사짓는 것 보고 농사는 싫었습니다.

집안이 부농도 아니고 어린 시절 서울 경험이 오히려 마이너스였습니다.

 

우렁이 총각에게 그때까지는 장흥+농사+아버지=가족사라는 단순 순열이 워낙에 강하게

작용했던 것 같다. 라고 짐작만 할 뿐이다. 농수산대학에서 다른 유형의 친구들을 만났다.

부농의 자식들도 있었고 삼성, 엘지 다니다가 온 친구들도 있었다.

농사로 성공한 집안이나 농사를 사업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을 접할 수 있었던 것이다.

기업형 농가를 보면서 자신의 경험과 다르게 농사도 돈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농수산대학에서는 1년 동안의 외국 실습 프로그램이 있다.

호주로 1년 동안 팜스테이 방식의 실습을 떠났다. 40ha의 멜론 농장이었다.

그때 일이 가장 힘든 농사였다고 한다. 말이 실습이지 거의 농노 상황이었다고 한다.

여하튼 그 경험을 바탕으로 영어권과 접촉을 한 것은 우렁이 총각을 설명하는 이른바

<토익 900점 농부> 이야기의 촉매제가 되긴 되었다. 말귀를 알아들어야 농노에서

해방될 수 있었을 것이니 그야말로 살아남기 위한 현지 영어공부였을 것이니.

살아 돌아와서 2007년에 대학을 졸업하고 다시 장흥으로 왔다.

하나의 생각뿐이었다. 집에 손 벌릴 수는 없다는 생각. 읍내 보습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쳤다.

옷 두 벌, 사전과 책. 낮 농사, 밤 학원. 그 시절 박민재를 설명할 수 있는 몇 단어다.

단지 스스로를 확인하기 위해서 순천에서 7개 월 정도 토플 공부만 하기도 했다.

201010월에는 네 명의 친구들과 미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그리고 돌아와서 우울증이 시작되었다.

목적 없는 용맹정진의 무참한 말로라고 할까.

이 청년은 지독하게도 자기 앓이를 심하게 겪었다. 그 시절은 이미 부모님께서 재결합을 한 이후이니

언제까지 부모님의 이혼 때문에라는 핑계를 댈 수만도 없는 상황이었다.

어머니의 편지가 이어졌다. 신음하는 아들을 향해 어머니는 거의 매일 편지를 보냈다.

박민재는 여전히 그 편지들을 간직하고 있다.

광주로 갔다. 룸메이트였던 친구들이 쇼핑몰을 운영하고 있었다.

건강, 화장품, 김치, 한방차이른바 바이럴 마케팅 기법의 대부분을 경험했고 관리할 수 있었다.

그때 블로깅, 브랜딩, 네이밍 등의 개념을 경험적으로 정리한 것이다.

 

 

 

 

 

 

 

 

 

 

2012년 7월, <한 되>라는 브랜드를 런칭했다.

 

/ 쇼핑몰은 왜 만들었나?

/ 우리 집 쌀 팔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가격 결정권은 누구에게 있지? 우리 집 쌀은 어느 집으로 가나?

 

젊은 농부가 당연히 품어야 할 의문이다. 의문을 품었으면 달려 들어봐야 한다.

인생 갈림길은 부모님의 이혼이 아니라 이런 장면에서 결정이 된다.

기존 시장에 머리 숙이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될 것이고

대가리를 쳐들면 생각하는 대로 살게 될 것이다. 어느 길이건 정답은 없고 어느 길이

행복할 것이란 보장도 물론 없다. 단지 중학교 연간 결석일수 92일의 박민재는

스스로 의문의 답을 찾기로 결정했을 뿐이다.

 

/ 그 기부말이죠. give me?

/ 기부미는 쌀 판매 수익의 10%를 지역 아동들에게 환원하는 제품입니다.

 

설명이야 간명하지만 나는 역시 이 청년을 이해하기 힘든 또 하나의 경우를 만났다.

기부라니? 살아 온 이력에서 기부의 가능성을 유추하기가 쉽지 않았던 까닭이다.

맥락이 끊어지는 것이다. 물론 겨우 세 번 정도 만난 관계고 이 청년의 속살을 알지 못한다.

 

/ 그러니까왜 해요? 기부.

/ 저는 아이들이 좋습니다.

/ 그게 이해하기 힘든데. 보통 수컷은 그러지 않는데.

/ 아이들은 나라의 뿌리잖아요. 무료 공부방 같은 것도 하고 싶습니다.

이후로는 쌀 뿐만 아니라 모든 판매에서 10% 적용하고 싶습니다.

사회에 대한 십일조라고 생각합니다. 그냥 마음이 그런 것 같습니다.

 

이 무슨 바른생활 청년 같은 소리지?

질풍노도의 시기를 심하게 겪은 이후 이 청년은 판단의 나침반을 상실한 것일까?

이런 멘트는 새누리당의 젊은 피들이나 할 법한 소리 아닌가.

 

/ 아니, 그러니까맥락이 없어요.

/ 아뇨. 저 원래 그런 일 좋아합니다. 저 헌혈왕입니다.

/ 헌혈?

/ 2주일에 한 번 정도 계속 헌혈했습니다. 주변에서 피 좀 작작 뽑아라고 할 정도로요.

장흥에는 헌혈하는 곳이 없어서 요즘은 좀 그렇습니다만. 여하튼 기부미는 탐스슈즈를

흉내낸 것입니다.

* 탐스슈즈(TOMS shoes)는 미국 캘리포니아에 본사를 두고 있는 신발 업체로서,

"내일을 위한 신발"(Shoes for Tomorrow)이라는 슬로건을 가지고 있다.

소비자가 한 켤레의 신발을 구입하면 한 켤레의 신발을 제3세계 어린이들에게 기부하는

일대일 기부 공식(One for one)을 도입하고 있다. / 위키백과

 

/ 혹시 장기 기증도 한 거 아녀?

/ 각막 기증, 골수 기증, 장기 기증 및 대기중입니다.

 

그리고 증서를 테이블 위에 올려 놓는다. 젠장.

 

/ 믿음을 가지는 것은 나를 낮추는 일이라 좋은 일입니다.

쌀 팔아서 소득 10%는 지역 아동들에게 환원시키는 정도는 지키고 싶습니다.

많이 벌고 싶습니다. 돈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돈이 전부는 아닙니다.

저 한달에 생활비 150만 원 쓰거든요. 연간 수십 억 원 매출 올리는 친구들은

저보고 그것만 가지고 어떻게 생활 하냐고 합니다. 그런데 저는 일단 불편함이 없거든요.

만약에 상황이 월 10만 원 쓸 수 있다면 또 그렇게 살 것 같습니다.

 

 

 

 

 

 

 

 


 

 

통상 지리산닷컴의 인터뷰는 훨씬 오랜 시간 동안 관찰한 사람들이 선정된다.

이번 인터뷰는 아래로 이어질 우리밀 살리기 또는 판매촉진을 위해 기획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년 박민재는 분명 하나의 이야기로서 충분하다.

그의 사이트에서 그가 출연한 방송이나 인터뷰를 몇 건 보았다.

위에 나열한 이야기들이 주로 소재로 채택되어 있다. 나는 몰랐지만 그는 이미 아는 사람은

알고 있을 만큼 매체에 노출이 된 상태였다.

자료 차원에서 일별하면서 그런 상황이 우려스러웠다. 기우겠지만 나의 우려는 항상적이다.

농부 홍순영에 대한 나의 우려와 같은 범주다.

왜 매체는 우리 또는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보일까?

물론 개인적인 원칙이자 철학이겠지만 나는,

내가 그들에게 활용당하는 경우를 최대한 경계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나의 이런 자세가 옳다는 것은 아니다. 나의 잣대일 뿐이다. 물론 반대의 논리도 가능하다.

그러나 활용론을 내세우며 조선일보 인터뷰에 응한 선배들이 강을 건너가는 풍경을 워낙

많이 본 세대 입장에서 나의 잣대는 아직은 완강하다.

그러나 청년 박민재는 나와 근본과 맥락과 시대적 배경이 다른 친구다.

그럼에도 나는 나의 정서가 준동하는 어느 지점의 기대를 품고 있다.

그것은 좀 더 긴 시간 이 친구를 경험하고 판단할 문제다.

2014715일 현재 나에게 청년 박민재는 여기까지다.

10년 후에 다시 이 청년과 인터뷰가 가능하기를 기대한다.

 

 

 

 

 

 

 

 


 

 

전국의 아주 작은 우리밀 생산자들의 수확물을 한 곳으로 모았습니다.

마당에서 키운 사람도 있고 넓은 밭에서 키운 사람도 있습니다.

앉은뱅이밀도 있고 금강밀도 있고 호밀도 있고 검은밀도 있습니다.

50kg을 내어 놓은 사람도 있고 2톤을 내어 놓은 사람도 있습니다.

가공이 끝난 사람도 있고 아직 가공 중인 사람도 있습니다.

 

대한민국 연간 밀가루 소비량은 500만 톤 정돕니다.

그 중 우리밀은 5만 톤 정돕니다. 그 중 현재 구례를 중심으로 연결된

소생산자들이 담당하는 시장 규모는?

전체 밀 시장의 0.000002%입니다. 말 그대로 한 알의 밀알입니다.

그러나 그들을 우습게보면 안 됩니다.

10년 내에 카길(Cargill, Incorporated)은 끝장났다고 봐도 됩니다.

 

 

우렁이 총각 사이트로 가서 우리밀 충동구매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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