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 완장

마을이장 2013.05.02 01:30 조회 수 : 14090

 

 

 

 





대략 다섯 번의 미팅이 있었던 날이고 내 업무 처리는 단 한 건도 되지 않은 날이라
‘뭐지?’ 라는 생각이 들어 주절거리는 글이다. 글을 통해서 나는 뱉어 내고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때문에 손가락으로 주절거린다. 따라서 내용만큼 심각한 일도 아니고
오늘 나를 만난 분들이 이 글을 본다면 불편해 하실 필요도 없다.
어차피 나는 당신들을 만나야 하니까.
나의 이런 어투는 있는 그대로를 툭 던지는 것이니 해석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여러 가지 문제들을 들고 찾아오신다.
이런 경우는 보통 내가 하는 일이 두 가지 조건일 경우 가능한데,
- 군수이거나 의원이거나 여튼 시골 유지인 경우
- 조폭이거나 논두렁 깡패인 경우

영화 <대부>는 많은 남자들과 다르지 않게 나 역시 손가락 안에 꼽는 영환데
대부분의 대사를 외운다. 깜장 양복을 입고 고양이를 안고 있지는 않지만 뭔가 약간 나른한
눈길 속에 날카로움을 감추고 듣는 듯 마는 듯 상대방의 이야기를 접수하고,
“거절 못할 제안을 하겠습니다.” 라는 무게 있는 대답 한 번으로 상대방에게 해결에의
확신을 던져 주는 장면은 갈퀴 세우기 좋아하고 우쭐거리기 좋아하는 수컷 포유류의
일반적 속성상 한 번 정도 현실에서 맡아보고 싶은 역할이긴 하다.
내 안의 그런 로망을 숨기지 못한 탓인지 군수도 아니고 조폭도 아닌데 사람들이
찾아와서 나에게 그런 역할놀이를 제안한다. 문제는 날이 갈수록 그 횟수와 강도가
점점 난해해 진다는 점이다.

결론적으로 나는 이런 역할을 좋아하지 않는다.
언젠가부터 타인의 문제가 궁금하지 않다. 따라서 타인의 고민을 자청해서 묻지도 않는다.
아픔은 나누어야 한다고 하니 그것을 자청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기본적으로는 ‘제 몫의 아픔과 고통’은 숙명이고 인간은 결국 타인의 말을 잘 듣지 않는다.
사실은 내가 벌이는, 벌여 놓은 일들을 처리하는 것만으로도 나의 하루는 빠듯하다.
그리고 날이 갈수록 업무 처리 능력이 형편없는 수준으로 하락하고 있기에 타인의 문제까지
개입하거나 처리하는 일은 명백한 과부하다. 그런데 거절을 잘 못한다.

왜 나를 찾아올까?
그럴 수도 있겠다. 몇 가지 문제를 처리하기도 했고 목표했던 과업을 성취하기도 했고
이곳을 통해 그런 일들을 ‘결과적으로’ 자랑도 한 것이니 근거는 내가 제공한 것이 맞다.
그런 사례는 아주 사소하고 다종다양한 것들이었다.
명함을 만들어 주거나, 사이트를 만들어 주거나, 인쇄물을 만들어 주거나 농산물 박스를
만들어 주거나 언론을 통해서 소식을 알릴 수 있게 주선하거나 예산을 확보할 수 있게
필요한 사람을 만나거나 직접 로비를 하거나 사람과 사람을 연결시켜 주거나 언 감을
천 박스 판다거나 철 지난 감을 오백 박스 판다거나 여튼 뭔가를 완판한다거나…
홍 반장보다 몇 가지 더 해결한 것은 맞다. 훨씬 많은 일들을 해결하지 못했는데 그것은
발표되지 않으니 사람들이 모르는 것이다.

완장.
완장은 그렇게 씌워진다. 시골에서 원하건 원치 않건 어느 날부터 내 왼쪽 팔뚝에,
지리산닷컴이라는 이름에 완장이 둘러진다. 타인이 볼 때 그것은 하나의 권력이다.
권력이란 ‘공인된 힘’이다. 따라서 ‘완장’은 정확하게는 공인되지 않은 뒷골목 권력이다.
완장을 즐기는가?
그런 것 같다. ‘그렇다’는 표현은 스스로에게 너무 야박하니.
미션이 쉽지 않을수록 성사시키고 나면 스스로 잘난 기분이 든다. 내가 황진이 앞에
무감한 땡초가 아니지 않은가. 그렇다면 성사의 비결이 무엇일까?

될 만한 일을 추진하기 때문이다. 가령 연곡분교 60분 다큐멘터리를 섭외한다.
그것이 왜 가능한가? 작가와 PD와 방송사가 좋아할 만한 스토리 체계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무언가 필요할 때 전국판 기사로 나가게 만든다. 데스크에서 전국판을 결정할 만한 이야기를
제시하는 방법 이외의 다른 꼼수는 없다.
‘그들이 모르는 재미있는 이야기’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매체는 이야기를 갈구한다.
매체를 가장 열심히 보는 사람은 매체 종사자들이다. 매체에 노출되면 다른 매체가 다시 주목한다.
그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이야기가 아닌데 보도를 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사주의 압력 이외에는 없다.
사주가 아닌 여러분들도 해 보시라. 죽을 것 같으니 삼천만 땡겨주세요 라는 메일 말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제보해 보시라. 그것의 기사적 가치는 데스크에서 판단할 것이다.
물론 이 미끼를 문다, 물지 않는다는 감은 필요로 한다.
예산을 필요로 한다? 그것이 설득 가능한 정당한 요구라면 의회로 전화해서 면담 약속 잡고
의원들을 만나라. 그들은 주민을 만나야 할 의무가 있다. 사심이 없을수록 설득력이 있다.
‘나’의 문제가 아닌 공공적 성격이 강하다면 위정자는 선거가 있기 때문에 고민을 한다.
그들의 해결에의 사적 부담감을 덜어주는 것이다. 그것이 협상의 묘다.

문제는 그럴 만한 콘텐츠가 아닌데 ‘나도!’를 주장하는 경우다. 이런 경우는 지리산닷컴
이장이라는 닉네임의 사람이 ‘인맥’이 있다는 판단을 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그런 라인을
따라서 일을 성사시킨다는 뿌리 깊은 관념이 작용을 한다.
누구 부탁은 들어주고 내 부탁은 거절하나! 그 자식 완장질 하고 있구만.
완장은 그런 과정을 통해서 팔뚝에 둘러진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그 완장을 어찌할 것인가.

지역 브로커의 길로 쭈욱 나설 것인지 산으로 들어갈 것인지 결정을 해야 하는 시기다.
더 두꺼운 완장을 찰 수밖에 없다는 것이 냉정한 현실 평가다. 스스로는.
만나는 사람마다 “바쁘시죠?” 라고 물어오면 “2017년까지 바쁩니다.” 라고 대답한다.
2017년까지 플랜을 가지고 있다. 은행을 만들고 싶다. 정교하지 않은 문학성 강한 플랜이다.
문학을 현실로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서 허명과 더 두꺼운 완장이 필요하다.
그렇게 되는 것이 늙은 시골디자이너의 노후 대책이기도 하다.
단지 과정을 천박스럽지 않게 진행하려는 의도와 연기력이 요구될 뿐이다.
나는 완장이 좋다. 또는 완장을 부인해서는 안 된다. 역할이 그렇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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