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 봄, 어느 날. 둘

마을이장 2013.04.10 23:26 조회 수 : 12136

 

 

 





바라보면 좋은 곳이 있다. 영암촌이 그런 곳이다.
그러나 인가가 많지는 않다. 섬진강을 내려 온 바람이 용두를 넘어서
속력을 올리면서 저 골을 때리게 된다.
저곳에서 바라보는 오미와 금내리 들판은 시원할 것이고 섬진강은 종종 빛날 것이다.
무엇인가를 얻고 다른 불편을 감수한다.











짧게 산을 오를 것이다. 그러나 출발부터 힘들다.
겨우내 움직이지 않았던 몸은 급한 경사로에서 통증과 후들거림을 동반한다.
하긴 봄이 와도 딱히 몸을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산허리의 가파른 밭들도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왜 이런 가파른 곳에 살고 있을까.
선택이었을까, 삶의 이력이 강제한 일종의 운명이었을까.
운명. 필연. 뭐 그런 것들.
내 모습이 내 아들에게 출력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조금 심각하게
인식하는 이런저런 산만한 생각들을 종종한다.
그것은 내 안에 내 아버지가 존재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잎들이 올라온다.
곧 연두가 될 것이고 연이어 초록이 될 것이다.
내 주변의 포유류들은 점점 황록색이 되어 간다.
혈액검사를 했었고 다음 날 전화로 결과를 물어 본다.
별 이상이 없다.

“그럼 왜 이리 피곤할까요?”
“계절적인 요인이 많고요…"
“그리고요?”
“허허허…”

의사의 목소리에서 그의 표정이 들렸다.











높은 곳의 꽃은 사람의 마을보다 늦고 드물고 화려하다.
3월 말부터 4월 중순까지 이곳은 압도적인 꽃의 나라다.
풍경 앞에서 간혹 아버지를 생각한다. 워낙 불화했다.
아버지를 모시고 단 한 번도 여행을 하지 못했다. 않았다.
가끔 그것이 후회스럽다.











영화 <마농의 샘>에서 이브 몽땅의 마지막 편지가 가끔 생각난다.

"내가 한 일을 생각하면 지옥마저도 감미롭다."

얼마나 후회스러우면 저런 표현이 가능할까.
후회는 쉽지만 표현은 힘들다.











지난 3월의 마지막 주말. 지리산 북쪽의 한가한 도로를 지나고 있었다.
구례와 하동으로 사람들은 몰려들었고 나는 반대 방향으로 방향을 잡았다.
남원 산내에서 함양 마천, 금천, 산청까지 이어지는 60번 도로는 아름다웠다.
1박 2일 동안 단 한 장의 사진도 찍지 않았다.
가끔 정말 남기고 싶은 장면들이 있었지만 계속 운전만 했다.
그리고 생각을 했다. 상념의 나열이 아닌 생각을 조직할 수 있도록 많은 질문을 던졌다.
나는 질문을 했고 나는 답을 했다.
오도재에서 뒤돌아 본 들판과 끝없이 이어진 전깃줄이 인상적이었다.











많은 결정에서 구차스럽지 않기 위해 포기해 버린 것이 많다.
그런 결정은 항상 빨랐다. 언젠가부터 느리게 결정하기 위해 의식한다.
그 방법의 하나로 명제나 주제에 관한 생각을 하지 않는다.
처리할 업무에 대한 프로세스만 머릿속으로 리허설 한다.
그러면 일상의 언어는 간명하거나 메말라진다. 그리고 말이 없어진다.
아주 간혹 필담으로만 의사소통하고 싶을 때가 있다.
말은 나를 정확하게 대변하고 있는가?











큰 살구나무가 쓰러져 있었다.
쓰러진 상태에서 꽃을 피운 모양이다.
쓰러진 살구나무는 사람의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와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태풍의 흔적은 오래갈 것이다.











살아남은 것들은 화려하다.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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