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 28일 금요일.
분교로 가야했다. 방학식을 하는 날이다.
밤사이에 폭설이 내렸다. 마당에 서서 가늠을 해야 했다.
눈의 양으로 봐서는 내가 분교에 도달할 가능성은 희박해 보였다.
시동을 걸었다. 담배를 한 대 더 피웠다.
천천히 마을을 벗어나 19번 국도에 차를 올렸다.
다른 차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국도조차 흰색이었다.
제설도 큰 차도 지나간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휴교령이 내려졌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휴교령이 내려지지 않아도 어차피 내가 8km 피아골 계곡을 완주할 수 없을 것이다.
휴교령과 도달하지 못할 것이란 나의 판단은 전혀 다른 맥락이었지만
내가 목적을 달성하지 못할 것이란 예정은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전화를 걸어 휴교 여부를 묻지 않았다.
방학식이 없어도 나는 분교로 갈 것이고 눈 쌓인 분교를 찍을 것이다.
12월 연곡분교 이야기는 미루어진 많은 이야기들을 채워야했다.
그것은 아이들이나 선생님들, 학부형들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필요한 이야기들이었다.
나는 지난 1년 가까이 계속 바라만 보았지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
오류이건 편견이건 나는 분교에서의 많은 일들이 그렇게 궁금하지 않았다.
나는 알고 있다. 또는,
나는 내가 가진 정보에 의지하기보다 내가 가진 의지의 증명을 위해 정보를 필요로 했다.
외곡리에서 좌회전해서 500m 정도의 낮은 경사로를 오르다가 차는 멈추었다.
길은 얼지 않았지만 눈의 양이 문제였다. 다른 차는 보이지 않았기에 그냥 잠시
멍하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거뭇한 나무 가지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약간 비현실적이었고 많이 아름다웠다. 당분간 만나지 못할 풍경이었다.
이상하게 그 설국을 찍기 위해 카메라를 들고 싶지 않았다.
바퀴 네 개가 모두 눈 속에서 헛돌았다. 내려서 바퀴 앞뒤의 눈을 손으로 밀어내고
겨우 차를 돌렸다. 눈은 계속 내렸다. 조금 전 보다 더 힘들어진 19번 국도를
따라 다시 토지면으로 올라왔다. 토지본교에 잠시 들어갔다.
주차장에 차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휴교다.
나는 분교로 가지 못한다. 도로가 열리면 눈도 녹아 있을 것이다.
그것은 딜레마였다.
나는 설국 속의 분교를 찍고 싶었고 분교가 설국이면 길은 나의 입장을 허락하지 않는다.

오후 2시 넘어 다시 분교로 향한다.
학교에는 손영미 선생님이 대기 중이었다.
도로 상황을 물었다. 아직 버스가 올라오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간혹 차가 보인다고 했다.

“일단 다시 출발합니다.”
“조심히 오셔요.”











4시에 읍내에서 약속이 있었지만 나는 2시 30분에 다시 외곡리 초입에 서 있었다.
여기까지 오는데 속도는 거의 시속 40km.
6시간 만에 풍경은 바뀌어 있었다.
아침에는 저 나뭇가지들이 보이지 않았다.
분교에 오르더라도 아침의 풍경을 소환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여전히 분교에 도착할 수 있을지는 확신할 수 없다.











가파른 녹차 밭과 비탈진 산허리에 모습을 드러낸 어제까지의 풍경은 앙상했다.
길은 바닥을 부분적으로 보였다. 그러나 얼어 있었다.
간혹 제동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계속 분교로 향했다.











나보다 더 느리게 비틀거리며 산을 오르는 차를 추월했다.
그리고 가끔 차를 세웠다.











내 뒤를 제설차가 따르고 있었다.
길은 열릴 것이다.











나는 계속 제설차보다 앞서서 계곡을 따라 올라갔다.
제설차의 도움 없이 분교에 도착하고 싶었다.











길은 간혹 쉬웠고











대부분은 어려웠다.











소정 변관식의 수묵화를 생각했다.
서울 시절, 덕수궁 미술관의 전시회 사이트를 전담해서 제작할 때 좋았던 일은











첫 번째가 돈이었고
두 번째는 전시 오픈 전에 도착한 작품들을 개봉하고 벽에 기대어 둔 상태에서
촬영하고 홀로 그 그림들을 감상하는 일이었다.











변관식의 젊은 시절 수묵화가 가장 좋았다.
그가 도달하고자 했던 곳이 돈이나 명성이 아닌,
단지 터질 것 같은 가슴을 화폭에 쏟아 부을 수밖에 없었던 시절의 큰 그림들.











그리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았던 청년.











어쩌면 그 절실함이 기억나 심장에 소름이 몇 개 돋았을 것이고











더 이상 그런 절실함을 경험할 수 없을 것이란 스스로에 대한 평가는
가슴을 시리게 만들었을 것이다.











몇 년간 집착했던 일은,
되돌아보니.
새롭게 이루고자 했던 일이 아니라 지키고자 했던 이야기들이었다.











“어디쯤이실까요?”
“거의 다 왔습니다.”











분교에 도착했다.
막상 분교 사진은 몇 장 찍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지,
유난하게,
오늘 내가 분교에 도착하려고 했던 것은
그렇게 하면 학교가 유지될 것 같다는,
한 아이가 전학을 올 것 같다는,
내 안의 내가
내 밖의 나와 내기를 한,
일종의 기도.

 

 

 

 

 

 

 

 

jirisan@jirisan.com

 

 

 

 

공지 지리산닷컴 사진사용에 관해 마을이장 2013.05.24 20205
212 생각 / 빵긋 - 5월의 빵테이블 [79] 마을이장 2013.05.29 16055
211 外道 / 더 맛있고 더 올바르며 더 행복한 커피 - 커피 리브레 서필훈 [54] 마을이장 2013.05.12 21256
210 생각 / 완장 [58] 마을이장 2013.05.02 14090
209 생각 / 옴니버스 - 그녀에게 [18] 마을이장 2013.04.26 13667
208 생각 / 그들은 행복한가? - 윤하네를 보내며 [106] 마을이장 2013.04.23 14555
207 생각 / 봄, 어느 날. 둘 [63] 마을이장 2013.04.10 12127
206 생각 / 봄, 어느 날. 하나 [48] 마을이장 2013.04.10 10899
205 생각 / 연곡분교이야기 - “이렇게 또 인사를 하게 되네요.” [43] 마을이장 2013.04.05 10444
204 그곳 / 梅, 가슴을 베이다 [88] 마을이장 2013.03.22 9803
203 생각 / 연곡분교이야기 - 새로운 시작 그리고 끝 [66] 마을이장 2013.03.06 8654
202 생각 / 연곡분교이야기 - 졸업 [54] 마을이장 2013.02.16 7838
201 마을 / 특선영화 - 누가 로저 래빗을 모함했나 [72] 마을이장 2013.01.15 9144
200 생각 / 雜새 [58] 마을이장 2013.01.06 7734
» 생각 / 연곡분교이야기 - 분교로 가는 길 [38] 마을이장 2012.12.30 7062
198 생각 / 연곡분교이야기 - 김장, 밥상을 차리다 [30] 마을이장 2012.12.20 7768
197 外道 / 겨울여행 [53] 마을이장 2012.12.12 7807
196 장터 / 책 - 『아버지의 집』고택 송석헌과 노인 권헌조 이야기 [76] 마을이장 2012.11.27 9839
195 생각 / 연곡분교이야기 - 2차 학교설명회 [26] 마을이장 2012.11.23 7463
194 생각 / 연곡분교이야기 - 단심丹心 [35] 마을이장 2012.11.01 9110
Copyright© 2007. All Rights reserved www.jirisan.com 4dr@naver.com | 지리산닷컴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