外道 / 겨울여행

마을이장 2012.12.12 23:37 조회 수 : 7807

 

 

 

 

2012년 12월 8일 정오 전에 출발해서 12월 10일 늦은 여덟 시경에 돌아오다.
출발은 목적이 있었고 과정은 두서없는 길이었다. 그래서 글 또한 두서없이 난사한다.










원래는 열 명 정도가 경북 봉화에서 보는 것이었지만
대부분 날씨 탓으로 취소하고 나와 월인정원만 이동했다.











도로 상황을 체크하고 출발했지만 제법 험한 길이 될 것이란 것은 뻔한 노릇이다.
이동에 문제가 있는 도로 상황은 아니었지만 운전 중에 긴장을 풀 수 있는 길 또한 아니었다.











봉화로 들어섰고 선돌마을까지 길은 눈밭이었다.
송석헌 입구에서 눈밭에 길을 놓치고 잠시 우회했다.











이를테면 책이 나왔으니 인사를 드리러 온 것이다.
집과 노인에게. 지금은 없는. 그러나 존재하는.











지난 며칠 동안 어느 정도의 눈이 왔는지 가늠할 수 있었다.
머문 시간은 짧았다. 인삼차를 마셨다. 곶감을 먹었다.
사과 꽃이 필 무렵에 안채에서 하루 머물면서… 다섯 번짼가?
이제 익숙하다. 이 공간이.











저 왔습니다.
어찌하다보니 책을 만들었습니다.
누를 끼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인데 그것이 걱정입니다.











조금 이른 저녁. 봉성면의 고깃집에 앉았다.
가는 길은 굽이굽이 얼어 있었다. 봉화 읍내를 벗어나면 도로는 힘들었다.
젊은 한학자와 마주 앉았다. 노인의 생전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나누었다.
대화는 시종일관 즐거웠다. 그는 나의 할아버지뻘이고 서른이다.
무엇보다 그는 권헌조 어르신의 제자다웠다.











12월 9일 이른 아침. 숙소를 빠져나왔다.
새벽에는 두통이 올 정도로 실내 공기가 차가웠다.
실내에는 화장실이 없었고 주인 할머니는 뉴스가 끝나고 바로 마루에서 잠 드셨다.
감금당했다. 거의 잠을 이루지 못했다.
도망치듯 빠져 나와서 시동을 걸고 계기판을 보니 영하 15도다.
봉화 읍내를 좀 돌아다녔다. 순전히 차를 덥히기 위해서.











그리고 도산서원을 입력했다.
안동 봉정사를 오르는 완만하지만 외진 도로를 오를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고
무엇보다 나는 도산서원을 가보지 않았다. 길은 시작부터 끝까지 살얼음판이었다.











퇴계종택. 집이 단아하다.
운전에 집중하는 와중에도 이곳까지 들어서는 길의 깊이가 제법이고
그것은 의도된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세상을 등지고 있다는 명징한 의지에 어떤 이견도 있어서는 안 된다는.











‘시대’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내가 옛 재야 사대부들에게 호감을 가지지 못하는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그런 ‘나를 설명하는 장치와 의도’ 때문이다.
지난밤에 젊은 한학자는 말했다.

“안동에 가면 권 씨가 권 씨 보듯 한다는 말이 있니더.”

권 씨 성을 가진 나는 박장대소했다.











스무 살이 넘어서면서부터 내 생각 밖의 곁길로 발걸음을 남기지 않으려고 했다.
그것은 학습의 결과가 아니라 본능에 가까운 것이었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철이 든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원래 생겨 먹은 대로 산다.
눈밭을 보면 항상 ‘행보’라는 낱말을 생각했다.











그러나 나 역시 탐내었을 장소다.











의도와 계획의 관전 포인트는











조망과 관조다.
단, 다른 이들이 그것을 알 수 있게 하는 것.
짐짓.











발표되는 은둔 또는 숨겨짐.











의도가 무엇일까?











권력욕이다.











전라도 땅에 살고 있는 경상도 남자인 나는











이곳의 그런 속살이 나의 속살과 닮아 있다는 확신을 한다.











도산서원.











계단형의 좌우대칭 형 집채의 포석은 자체로 ‘단계’를 뜻한다.
세속과 비속은 모두 재물과 정신의 클래스를 정의하는 버릇을 가지고 있다.











그 속에서 나는











수많은 ‘사이’를 보았다.











송석헌에서의 사이와 비교할 수 없는 무수한 사이들.











시선을 집어 넣을 수 있는 많은 이야기들은 많은 사진을 양산할 수 있다.
물론 개인적인 취향이겠지만.











이것은 장치다.











기획하고 의도하는 것은 수컷의 본능이겠지만











마음을 더 잘 숨기는 사람들이 권력에 가까웠다.











추웠고 재미있었다.











계속 모든 사이를 찾는 놀이를 해야 할 것 같은 강박으로
집채 사이를 체크하듯 사이를 찾았다.











도산서원의 건축적 노림수는 자간과 행간의 절묘한 간격 같은 것이다.











집을 어떻게 지을 것인가가 아닌,











집과 집 사이를 어떻게 할 것인가가 키워드다.


잠이 와서 더 못 쓰겠다.
내일 쓸란다.











전라도는 정자가 많다. 소쇄원 뭐 그런.
경북은 서원이 많다.
정자와 서원.
귀양과 칩거.











전라도 사람은 속을 잘 내비추지 않는다.
그러나 속을 숨기는 연기력은 형편없다.











경상도 사람은 속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그것이 연기인 경우가 많다.











정자는 환경과 조건 속에 있는 듯 없는 듯 그렇게 서 있고
서원은 노골적으로 숨어 있는 경우가 많다.











유배의 기억은 실패의 쓰라림이고
패배는 사후에 어떤 명분을 부여하건 당대에서는 일종의 부끄러움이다.
그때 자연은 치유이고 도피처이다. 건축물은 그 속으로 스며들 수밖에 없다.











칩거하는 자는 뒤통수로 세상을 보고 귀는 쫑긋하다.
성공과 실패라는 두 가지 패를 쥐고 있지만 혁명보다 발탁을 선호한다.
그때 자연은 경영해야 할 환경이고 건축물은 하나의 랜드마크다.











도산서원은 아름답다.
건축물 하나하나가 특출한 것이 아니라
의도된 사이와 완성도가 아름답다.











그것도 분명히 또 다른 결의 아름다움은 분명하다.











공부를 하는 곳이다.
이런 곳에서 공부가 될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을도 아름다울 것이다.
어느 가을을 기약할 수 있을까.











정오가 가까워지지만 날씨는 여전히 춥다.











아직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공복의 쓰라림이 약간 밀려왔다.











강은 바다인 듯 시퍼렇고 나는 바다로 방향을 잡을 생각이다.
차가운 회가 먹고 싶었다.











안동에서 영덕으로 넘어서는 34번 국도는 생각보다 무난했다.
고갯길을 졸음 운전했다.
그리고 7번 도로를 따라 내려와서 포항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무작정 구룡포로 방향을 다시 잡았다.
포항과 경주 사이에 있는 친구와의 만남은 6시 무렵이고 구룡포에서
잠시 바다를 만나고 싶었다.











다시 호미곶까지 이동해서야 차를 멈추었다.
그래도 일요일이라 바다로 나온 사람들은 얼어 죽을 것 같은 얼굴이었다.











해는 숨었고 바다는 추워 보였다.
원래 다음 날 아침에 이곳을 촬영할 생각이었다.
일찍 일어날 수 있다면.











경주산업단지 쪽으로 차를 되돌렸다.
구룡포읍 삼정리 즈음을 지나고 있다.
929번 도로. 몇 년 전에 구룡포에서 호미곶 까지 이 길이 인상적이었다.
삼정리에 며칠 머물면서 촬영을 할 수 있는 여유가 이 겨울에 가능할까.
이곳을 전혀 알지 못하던 시절, 그러니까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그때.
이곳은 내가 그림을 전공하게 만든 원인을 제공했다.
하루 종일 소설책만 읽고 있던 내가 어느 날 지도를 보다가 한반도 토끼꼬리에
있는 등대 표시를 보았고 ‘이곳에서 미술선생하면서 소설이나 쓰자’는,
‘없던 희망’을 만들었고 그 길로 화실로 가서 그림을 그리게 만들었다.
그리고 나는 화가도 되지 않았고 소설가도 되지 않았고 더더구나 선생도 되지 않았다.











그리고 현존하는 나의 가장 오래된 친구와 만났다.
‘가장 오래된 친구에게 오래된 집과 노인의 이야기를…’ 이라는 서명을 해서
책을 한 권 건내주었다. 우리들의 이야기는 40년 전 부산 양정 어느 골목의
구멍가게 앞의 평상 위에 앉아 있던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로부터 시작했다.
아득하고 어제 같다. 젠장.
친구가 잡아 놓은 숙소에서 잠을 청하고 늦게 일어났다.
예정했던 바다 사진은 이미 떠났다. 많이 피곤했다.
그러나 추령을 넘어 감포로 가서 아침을 먹을 것이란 계획은 그대로다.
감은사를 지나치려 했지만 인사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리고 한낮의 바다.
사진을 적극적으로 찍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걷지 않는다면 사진은 힘들 것이기에 걷기와 사진을 교환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지.











그렇게 드문드문 포구를 들러 사진을 찍었다.











지나간 2012년보다











남아 있는 2012년을 더 많이 생각했다.











일이 많이 남아 있다는 압박이다.











1월까지는 주로 글쓰기에 주력하고 싶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하나의 사이트를 끝내어야 하고











세 개의 사이트를 리뉴얼해야 하고











하나의 서버를 비우고 남아 있는 집들을 이사시켜야 한다.











맨땅에 펀드 2013년을 모집해야 하고…











일을 헤아린다.











싫다.











그러나 그것이 나의 일상이다.











젠장.











넌 왜 그러고 있냐.











다시 호미곶에 섰다.











만약 그때 사범대학이 없어지지 않았고 내가 사범대학을 갔다면











나는 교사가 되었을까.











집에 가자.
내 집이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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