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2. 13 금요일. 토지초등학교 88회 졸업식.

별 이변이 없는 한 나의 토지초등학교 졸업식 촬영도 오늘이 마지막이다.

찬서가 졸업한다.

그 말은 나 역시 졸업을 할 것이란 예고이기도 하다.

졸업식장에 늦게 도착했고 거의 마지막 순서로 졸업생들이 무대에 올라 합창을 하고 있다.

축하는 당연하지만 저 아이들이 떠난 빈 자리가 제법 넓을 것이다.

본교의 인원은 몇 년 동안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










212일 목요일 오후 4. 연곡분교는 자체적으로 조촐한 행사를 마련했다.

유치원까지 포함하면 스물여덟 명의 아이들이 같은 공간에 머물고 있다.

행사를 시작하기 전 교실 안은 귀가 얼얼할 정도로 시끄러웠다.

그 소음 속에서 최관현 선생님은 나를 보고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웃었다.

그 웃음의 의미를 아는 사람은 안다.









도시 학교에서도 여전히 그러한지 모르겠다. 경험해 보지 않아서.

이곳에서의 헤어짐에는 여전히 눈물이 있다.

아이들에게 인사를 하던 최관현 선생님이 중간에 감정 조절에 실패했다.

주마등처럼 이라는 표현이 필요할 것이다.

내가 아는 그의 이력으로 보자면 십몇 년 전에 스스로 유별난 결정을 하지 않았다면

그는 지금 서울에서 교사 생활을 하고 있어야 하는 사람이다.

2013년에 연곡분교로 올라왔다. 세 명의 자식들까지 데리고 왔다.

시작부터 나는 최 선생님의 의욕을 기대했고 그것의 과도함을 걱정했었다.

명과 암은 모두 예정된 길을 걸어갔고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옳은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나는 연장자라는 지위를 이용해서 두어 번 그를 질책했다.

때로 신념은 고집과 분별이 힘든 경우가 있다.

내가 생각해도 제법 통증이 심한 일도 몇 번 겪었다.

그 모든 것은 연곡분교가 급변하는 시기에 필연적으로 예정된 일들이었다.

풀리지 않을 것 같았던 그 장면들의 다음 날, 그는 항상 웃고 있었다.

교실이건 운동장이건 아이들을 볼 때 그는 항상 웃고 있었다.

그의 희망의 근거는 아이들이었다.

연곡분교가 살아날 수 있었던 이유의 하나는 바로 선생님들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십여 분의 선생님들은 모두 분교를 사랑했다.

대한민국의 모든 선생님들이 그러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토지본교의 선생님들이 대부분 그런 자질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방적 인사 발령이 아니라 지난 수 년 동안 누가 올라갈 것인지를 평교사 논의를 통해서

실질적인 결정을 했다. 논의는 공유되었고 생각은 이어졌다.

가령 나의 지난 6년 동안의 자유로운 분교 입출입은 그래서 가능했다.

어느 한 해라도 거부당했다면 나는 당연히 사라졌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항상 존중받았다. 존중은 나에게 에너지였다.







본교에서의 졸업식을 마치고 연곡식구들만 모여서 단체 촬영을 했다.

유치원 아이들은 내려오지 않았으니 대략 스무 명이다. 사진에서 세 명이 빠져 나간다.

다인과 예진은 동중학교로 진학하고 찬서는 읍내의 중학교로 진학한다.

6년 전에는 찬서가 이렇게 많은 후배들과 함께 졸업식 사진을 찍을 것이란 상상도 하지 않았다.

그것은 지난 다섯 학기 동안 벌어진 일이었다. 찬서는 4학년 1학기까지 언제나 혼자였다.

2012년 여름방학식을 하던 날 은희가 본교로 내려갔다. 여섯 명에서 다섯 명이 된 날이다.

학부형들의 그 어떤 결정도 정당한 것이었지만 그 날은 많이 아팠다.

세 가구 다섯 아이, 두 선생님이 전부였다.













연곡분교가 2012년의 위기를 넘어서 유치원을 복원하고 어쩌면 전교생 서른 명도

가능할 것 같은 일이 가능한 지금의 상황은 찬서가 있었기 때문이다.

정확하게는 찬서 집이 있었기에 연곡분교는 진행형이다. 네 아이를 모두 지켜보았다.

찬우, 하은, 찬서, .

이야기는 항상 주인공을 필요로 한다. 나에게 있어 연곡분교 이야기의 주인공은 찬서였다.

20091027, 연곡분교 첫 방문에서 내 파인더에 잡힌 첫 피사체는 찬서였다.

이 아이의 6년을 담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이 학교가 6년을 지속할 것이란 확신은 없었다.

어느 순간 전입자가 아닌 대를 이어 살던 유일한 학생은 찬서 집만 남았다.

20126월 어느 날 밤에 찬서 집에서 도장을 찍었다면연곡분교는 사라졌다.

20명 이하 학급 통폐합이라는 비현실적인 정책을 시행하기 위해서는 학부형들의 도장을

필요로 했다. 세 가구 다섯 아이 중, 찬서 집이 세 명이었다.

몇 년 동안 통폐합 동의라는 유구유언의 그 압박을 외면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찬서 아빠 또는 엄마에게 왜 도장을 찍지 않았는지?” 묻지 않을 것이다.

때로 수많은 밤의 고민은 단 한 마디로 표현되곤 하는데 말이 무슨 소용인가.

행동은 말보다 힘이 세다.

결국 찬서가 연곡분교로 입학해서 연곡분교에서 졸업할 수 있었던 기적은 결국 스스로 행한 일이다.

무조건적으로 작은 것을 지키기 위해연곡분교에 집중한 것은 아니다.

생각해보면 내가 마음을 두었던 일은 원형(Archetype)에 관한 장면들이었다.

할아버지가 자주 찾던 마을의 술집 테이블에 손자가 자라서 앉아 있는 풍경 같은 것이 좋다.

낡고 오래된 것에 대한 이른바 골동antique 취미적 관점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맥락 없는 스타일리쉬 따위를 경멸한다. 상대평가 보다는 절대평가를 선호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비로소 제대로 된 온전함이기 때문이다.

나에게 있어 초등학생 김찬서와 경북 봉화의 노인 권헌조는 다르지 않았다.

나에게 있어 찬서는 그런 의미다.








졸업식이 끝나고 운동장에서 찬서가 주뼛주뼛 나에게 다가 와서 꽃 한 송이를 건넸다.

같이 가자고? 그래 고맙다. 아저씨도 이제 너와 함께 졸업을 할까한다.

6년 전에는 이 날이 막연했는데 비로소 확연하구나.

무엇보다, 연곡분교에서 졸업해 주어서 고맙다.

지난 6년 동안 속을 알 수 없는 너라는 녀석을 간혹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수고했다 찬서야. 읍내에서 간혹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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