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밀 이야기, 하나

마을이장 2014.06.06 18:20 조회 수 : 6224

 

 

 


 

 

201465일 아침. 순영이 형의 전화를 받았다.

선거로 수고가 많았다는 말씀을 깔았고 곧이어 본론은 오후에 앉은뱅이밀을 베어야겠다는 말씀이다.

원래는 63일이 예정이었으나 비가 있었고 7일로 잠정했지만 또 바뀐 것이다.

그럴 수도 있다는 예상은 했지만 내 숨은 조금 빠듯했다. 오늘 하루 정도는 선거가 끝난

하루를 온전히 빈둥거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몸은 습관이 지배하는 기계인지라 몇 개 월 동안 제대로 사진을 찍지 않은 일상은 카메라를

잡아야 한다는 상황 자체가 부담스러웠다. 4시에 벤다고 하셨으니 3시에는 출발해야 했다.

330분 경에 광의면 앉은뱅이밀 밭에 먼저 가서 베기 전의 밀밭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일천 평 조금 넘는 하나의 덩어리와 건너편 한 단지 되지 않는 땅에 앉은뱅이밀을 파종했었다.

채종도 목적이었기에 형은 비교적 주변으로부터 안전한 위치로 앉은뱅이밀 자리를 잡았다.

가급이면 다른 종이 날아와서 교잡하는 상황을 최대한 방어하는 것이 좋다.

그래도 완전할 수는 없는 것이 밭이다.

 

 

 

 

 

 

 

 


 

 

며칠 전에 광의면으로 올라가서 형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정확한 양은 가늠할 수 없으니 금강밀에 비해서 80% 정도의 수확량을 예상한다고 했다.

비교하면 금강밀에 비해 낟알 사이즈가 작다. ‘모가지라고 하는데 낟알이 열리는 모가지

길이도 조금 더 짧다. 상태는 좋은 편이라고 한다.

 

 

 

 

 

 

 

 


 

 

나는 지나치며 매일 보는 광경이고 특히 금년은 지리산닷컴을 쉬고 있는 상태라

어쩌면 나는 소 닭 보듯 들판을 지나쳤다. 들판의 색은 단지 나에게 계절의 시간을

알려주는 용도도 작용했을 뿐이다. 목적 없는 시선 앞에서 들판은 의미가 없었다.

그렇다고 내가 들판을 풍경으로 바라 볼 입장도 아니지 않은가.

 

 

 

 

 

 

 

 


 

 

 

지난 3월부터 들판으로 한 발로 내려서지 않았다.

나의 얼굴은 영락없이 사무직의 허여멀건 컬러를 유지하고 있었고 무얼까?에게 억지로

끌려 내려가서 잠시라도 햇볕을 맞을 기회는 원래 없었다. 어쩌면 오늘 이 글조차 없는

방관자이기를 희망했지만 애당초 그것은 불가능해했다. 특히 농사는 그렇다.

내가 짓는 농사는 아니지만 내가 기획한 농사는 있었기에 그 책임은 수확 시즌이면

어김없이, 꼼짝할 수 없는 증거로 나에게 들이밀어지는 것이다.

구름이 옅었고 사진은 충분하게 만족스러운 조건은 아니었다.

 

 

 

 

 

 

 

 


 

 

고라니일 것이다. 사이즈로 보자면.

콤바인이 가장자리에서부터 가운데로 수확을 진행하면 결국 그 가운데서 튀어 나가는

짐승들을 보고 깔깔거리곤 했었다. 녀석 며칠 배터지게 먹었을 것이다. 어쩌면 녀석들

사이에 소문이 돌았을 수도 있다. 이 밀밭은 몸에 좋은 곳이라고. 약 안하는 밀밭이라고.

순영이 형은 수확량 때문에 단순 수매용 농작물은 화학비료를 고민하기도 한다.

몇 년 사이에 형 집은 가족이 많이 늘었다.

 

 

 

 

 

 

 

 


 

 

오후 430분이 되어서 순영이 형의 콤바인이 밭으로 들어섰다.

쉽게 할 수 있는 부탁은 아니다. 구례로서는 대농이니 가능한 부탁이다.

채종까지 부탁을 했으니 부담스러웠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작년에 확보할 수 있었던

앉은뱅이밀 종자는 100kg에 불과했다. 2013년 한 해 동안 앉은뱅이밀은 나름 선전했거나

화제의 중심에 있었다. 물론 관심 있는 사람들 속에서 그렇다.

슬로푸드 머시기 행사장 등에 등장하고 언론에 자주 오르내리면서 귀한 몸이 되었다.

그런 지점에서 그 동안 고생해서 여기까지 온 사람들의 본심은 결국 표현된다.

내 느낌으로는 진주 금곡정미소를 서서히 마음의 문을 닫고 있었다.

지난해에 금곡에서 가공한 앉은뱅이밀 건국수는 완판 적자였다. 가공비용이 원인이었다.

사유재산에 공공의 이익을 요구하기는 힘들다. 그래서 100kg 이후로는 결국 내 스스로

종자를 확보하는 방법 이외에는 다른 길이 없었다.

 

 

 

 

 

 

 

 


 

 

지금 여기서 말하는 앉은뱅이밀은 이른바 토종이 아니다. 몇 번의 개량을 거친 밀이다.

이름이 앉은뱅이밀이다. 제 각각의 특성이 있는데 내 입에도 이 품종이 더 맛은 있다.

금년 구례밀의 대세는 백중밀이라는 종자다. 수확량이 많은 모양이다. 종자 보급에서

최우선 조건은 수확량이다. 그래서 금강밀 조차 종자를 구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으니.

국산밀가루가 제품으로서 표준적 퀄리티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종자의 균일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종자에 따라 제빵, 국수, 과자 등으로 제 역할을 가지는 것이다. 이것이 몇 년 동안 들쑥날쑥이다.

 

 

 

 

 

 

 

 


 

 

종자용으로 대략 200kg 정도를 햇볕 건조시키는 중이다.

순영이 형님 집 마당이다. 날씨가 좋으니 이틀 정도면 될 것이다.

금년 가을에 역시 정해진 땅은 없지만 사천 평 정도 면적에 파종할 수 있는 양이다.

금년의 두 배 면적이다. 금년 가을에 이 밀이 뿌려질지 그냥 다른 곳으로 종자로

팔려갈지는 지리산닷컴의 이후 게획과 맞물려 결정될 것이다. 아직 정한 바는 없다.

 

 

 

 

 

 

 

 


 

 

다른 밀과 비교하면 확실히 붉은 색이 돈다. 이제 팔아야 한다.

파종을 부탁했으니 최소한 파종한 면적에서 나올 수 있었던 일반밀의 수확량 보다는

조금 더 생각한 수매가격 정도는 형에게 건내줄 수 있어야 한다.

구례에서 가공할 시설이 없으니 아마도 완주로 가게 될 것이다. 가공비용, 운송비, 진행비

금년 밀가루 가격을 어찌 해야 할까. 디테일한 산수를 할 수 없다기 보다는 하기 싫은 것이다.

나는, 누구는, 우리는 대기업이 아니다. 도무지 가격 경쟁력은 불가능하다.

일단 패스. 아마도 다음 주에 가공을 할 것이다. 조금 전(6. 6 )에 진주 씨로부터 문자가 왔다.

2,100kg 정도 된다고. 건조가 끝이 난 모양이다. 가공하면 1.3톤 정도 가능할 것이다.

 

 

 

 

 

 

 

 


 

 

오미동 이 포지션 사진을 오래간만에 보시고 계시다.

나 또한 처음 촬영했다. 며칠 가늠을 했지만 의외로 만족스러운 햇살이 나오지 않았다.

아침 7시경에 나왔어야 했는데 늦었다. 9시가 넘었다. 요즘 잠이 장난이 아니다.

오미동은 금년에 대략 4천 평 이상 금강밀만 파종했다. 제일 가까운, 그러니까 지난 해까지

맨땅에 펀드 부지는 금년에 무얼까?가 임대해서 역시 밀을 파종했다. 그 아래와 이어지는

논까지해서는 류정수 농부가 언제나처럼 밀을 파종했다. 땅의 연수로 보자면 무얼까?

임대한 제일 윗논이 거의 무화학농 연수 6년차다. 서로 자신의 농사가 더 잘되었다고

주장하지만 내가 볼 때는 둘 다 엉망이다.

 

 

 

 

 

 

 

 


 

 

들의 면적은 광의면이 훨씬 넓지만 그림은 역시 오미동이 훨씬 잘 나온다.

들판은 언제나 데자뷰다.

 

 

 

 

 

 

 

 


 

 

들판에 참여하지 않으면 지루하다. 금년은 지루하다.

무얼까?가 땅을 빌리겠다고 했을 때 나는 반대했다. 수익 목적이 아니면 임대하지 마라는

것이 나의 소리였고 무얼까?는 공들인 땅이 아깝다는 논리였다.

 

 

 

 

 

 

 

 


 

 

이 땅은 작년에 파종 전에 소똥도 뿌리지 않았다. 그 전 두 해 동안 밀과 콩이었기에

땅에는 최적화된 조합이었다. 논을 밭으로 두 해를 사용했으니 다시 논으로 가는 일이 아까운 것이다.

땅도 습관이 있다.

 

 

 

 

 

 

 

 


 

 

2009년부터 우연히 밀가루 장사를 시작했다. 그 해 6월에 비니루 봉지에 밀가루 담는

일을 하면서 이 일은 다시 할 일은 못 된다는 선언을 했지만 결국 5년 째 밀가루를 팔아야 한다.

 

 

 

 

 

 

 

 


 

 

이 들판의 밀가루를 인연으로 지리산닷컴의 최초 오프라인 행사가 있었고 많은 사람들과의

인연도 이어졌다. 그 인연 중에 무얼까?와 일탈도 있고 지금 오미동과 서울동부시립병원과의

일사일촌 협약도 가능했다.

 

 

 

 

 

 

 

 


 

 

201179일 그 날 그 자리에 있었던 어떤 아가씨는 지금 지구 반대편

브라질로 파견 근무를 나갔고 그 날 그 자리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전히 간혹 안부를 물어온다.

공통의 기억인데, 비오는 운조루와 뜨거운 콩국수 그리고 제 각각의 그 무엇 등에 대한 기억의

힘은 강하거나 영원할 것 같다.

어쩌면 지난 6년 동안의 이야기는 이 들판에서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장기적 기획 없이 그리 시작된 일은 이후로 많은 이야기들을 쏟아내었고 펀드로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여전히 나는 2015년 이 들판의 상황을 알지 못한다.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아니면 나는 이 일들을 해야 할까?

 

 

 

 

 

 

 

 


 

 

면적은 늘어나고 가내수공업 방식으로 감당하기 힘든 상황으로 변화한다.

그리고 멈추었다.

 

 

 

 

 

 

 

 


 

 

식재료와 밥상은 지리산닷컴이 생각하는 가장 강력한 커뮤니케이션 도구다.

어쩌면 기획하는 행사가 아닌 일상의 그 어떤 일로 자리해야 하는 것이 옳다.

그래서 멈추었다.

2014년에는 지리산닷컴에서 주관하는 우리밀 행사가 없다.

단지 밀가루를 판매할 뿐이다. 그러나 월인정원이 주관하는 햇밀축제는 계속된다.

628일 토요일이 될 것이다. 그 날 나는 마당 화덕에 불이나 넣어야 할 것이다.

자세한 기획이 나오면 다음 주 즈음에 밀 이야기 두 번째 이야기 중에 알려드릴 것이다.

 

 

 

 

 

 

 

 


 

 

6월 6일은 망종이었다.

망종芒種. 보리 환갑날이다. 아홉 번째 절기.

망종 전후로 보리와 밀을 벤다. 수염 난 곡식을 베는 시절이다.

지금 이곳 농사일은 전쟁터다. 기후가 변해서 금년은 모든 것이 빠르다.

밀도 베고 모심기는 기본인데 매실이 빨라 매실 수확도 동시에 진행 중이다.

 

 

 

 

 

 

 

 


 

 

오늘은 전부 방출한다.

아침에 순영이 형네 갔다가 넘어 오는 길에 아차 싶어서 호밀밭으로 들어갔다.

호밀을 제법 뿌려두었다. 6월 말이나 되어야 벨 것이라는 생각에 방심했는데

호밀 역시 조금 이르게 수확할 수도 있겠다.

 

 

 

 

 

 

 

 


 

 

키가 큰 호밀은 일제히 한 방향으로 쓰러지고 있었다. 색깔은 생각보다 많이 나왔고

키는 생각보다 자라지 않았다. 2m정도 자란다. 해는 숨었고 호밀밭에 파수꾼은 보이지 않았다.

 

 

 

 

 

 

 

 


 

 

그림으로 보자면 호밀밭이 밀밭보다 예쁘다. 서쪽으로 해가 넘어갈 때에 한 번 와야겠다.

내가 알고 있는 밭 아래로 밭이 더 있다고 하길래 내려가 보았다.

 

 

 

 

 

 

 

 


 

 

아하, 숨겨 놓은 듯 분지로 내려앉은 땅에 호밀밭이 하나 더 있다.

바람은 길을 남겼고 그 방향은 농부의 집 쪽이었다.

 

 

 

 

 

 

 

 


 

 

잠시 머물렀다. 일상적으로 내가 살고 있는 곳이 지리산 자락이라는 사실을 잊고 산다.

지리산이나 섬진강 같은 지명은 이제 나에게 특별하지는 않다. 그냥 우리 동네다.

8년 전, 이곳에 처음 도착했을 때에는 참 뻔질나게도 돌아다녔다.

그때는 이 풍경이 나의 살림이 될 것이라는 염두를 두지 않았다.

 

 

 

 

 

 

 

 


 

 

구례 또는 지리산 자락으로의 귀촌자들은 다른 척박한, 또는 특별한 풍광이 없는 마을에

정착한 사람들보다 현실적인 전투력이 떨어진다. 정확하게는 그것에 별 관심이 없다.

무엇인가 일을 벌이기보다는 일을 피해서 내려 온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런 곳에서 아무래도 좀 요란스럽게 살았던 것 같다.

 

 

 

 

 

 

 

 


 

 

앉은뱅이밀은 건조가 끝이 났으니 아마도 다음 주 초반에 가공을 하러 출발할 것이다.

그 무렵에 두 번째 글을 올리고 우리밀 두 종류와 호밀에 대한 선주문을 받을 생각이다.

오늘 글은 일종의 바람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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