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여덟 번째 겨울이란 말인가.
하긴 이제 구례를 벗어나면 부산조차 낯설다.
일곱 번째 김장을 한다. 이곳 대부분의 집들은 김장이 끝났다.
언제나 그러하듯 남들 보다는 늦고 내 시계로는 대략 ‘그 즈음’이다.










금년에도 목욕탕에서 김장이다. 고양이발 욕조의 용도는 1년에 한 번 김장용이며
주로는 저 안에 들어가서 선 자세로 작은 창으로 팔을 내밀고 밤공기 속으로
담배 연기를 날려 보낸다. 많지 않은 김장을 하기에는 움직이지 않고 처리하기에
적절한 시설물이다. 금년에도 배추의 양은 적다. 포기 수로는 60개가 넘어가겠지만
일반 시장 배추 사이즈로 환산하면 스무 포기 양 정도가 될 것이다.
몇 년 동안 집으로 손님을 들이지 않았고 밥을 해 먹는 횟수도 저녁밥 한 번이다.
하루 종일 오미동으로 나가 있으니 상사마을에서는 잠만 잔다. 아침은 지난 100년 동안
먹지 않았고 점심은 주로 약속이니 우리 두 식구가 밥을 함께 먹는 것은 저녁 한 끼다.











원래는 문수리 노을언니네 배추를 오십 포기 정도 받기로 했지만 어느 날 아침에
누군가 그 배추를 훔쳐가 버렸다. 해발 800m에서 배추를 훔치는 일이 수지타산이
맞는 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리 되었다. 결국 우리 마당 배추를 사용할 수밖에.
월인정원이 원래 텃밭 배추벌레 담당이었는데 가을부터 지금까지 계속 제빵 수업을
했으니 금년에는 벌레가 자유로운 시절이었다. 따라서 배추의 상태는 대략 난감.
40kg 쌀 포대 다섯 개 들고 갔는데 두 개 절반 채워서 내려왔다. 배추는 생각했던 것
보다는 그래도 배추인 것처럼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여전히 ‘정말 김장을 직접 하세요?’ 라는 질문을 받는다.
그냥 양념이나 치대는 일을 같이 한다고들 생각을 하는 모양이다.
전 과정을 거의 혼자서 한다. 더 이상 묻지 마시라. 양이 적다보니 그냥 혼자 이틀 정도
과정 별로 진행하면 된다. 작년에 펀드로 인해 이천오백 포기 정도의 김장을 진행하고 나니
오륙십 포기 김장은 겉절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장을 7년 정도 진행을 해보니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간잽이’ 기능이다. 기온에 따라 몇 시간을 재워 둘지 정하는 일이
김치의 운명을 결정하는 51%다. 간잽이는 감각이고 중간 중간 배추를 뜯어서 맛을 본다.
그렇게 재워 둘 시간을 가늠한다. 그 다음은 양념이다. 양념은 취향이다.
나는 많은 재료를 넣는 것을 모든 음식에서 선호하지 않는다.
양이 적어서 집에서 믹스기로 마늘이고 뭐고 처리를 하려 했으나 믹스기가 대략 난감이라
그냥 저 통에 썰어 담아 읍내로 나가서 방앗간에서 갈아 버렸다. 소요시간 3분, 비용 2천 원.
고춧가루도 아침에 들고 왔다. 홍순영의 고추다. 무농약 고추고 건조기에서 말렸다.
맨땅에 펀드 텃밭에 심은 고추모종을 형네 것으로 들고 왔다는 것을 이때 생각을 했어야 했는데…











하루 전에 만들어 두었다면 약간 숙성되었을 것인데 뭐 그냥 바로 진행한다.
배추 물 빼는 동안 이 양념들을 준비한다. 들이 붓고 버무리는 일이다. 물론 양을 가늠해야 한다.
욕실에 누워 있는 배추의 양을 흘깃 보면서 고춧가루를 부었다. 대략 여섯 근 정도 부었을 것이다.
순영이 형 곳간지기 진주가 ‘고춧가루 겁나게 매운데…’ 라는 경고를 해서 읍내에서 맵지 않은 고추를
세 근 샀다. 그러니까 1:1 비율로 매운 맛과 약한 맛을 혼합했다. 뻑뻑해질 것에 대비해서
다싯물을 조금 남겨두었다.











그렇게 몇 번 휘 저어 주고 목욕탕으로 다시 들어가서 갓을 다듬고 씻는다.
배추 양념 속으로 투입될 것이다. 전라도는 갓을 속으로 많이 넣는다. 부산에서는
청각이다 굴이다 뭐다 넣기도 했지만 내가 김장을 시작한 이후로 그런 것은 사라졌다.











갓과 손가락 세 마디 정도로 썰어 둔 쪽파를 양념 통으로 투입했다.
이제 허리 빠지게 이 모든 것을 버무리면 된다. 그런데 이 과정이 물리적으로는 제일 힘들다.
나는 고무장갑을 선호하지 않는다. 맨손을 철사장 단련한다는 기분으로 양념 속으로 담근다.











호흡이 약간 빠듯해진다. 콧김을 내 뿜으며 양념을 버무리는데 얼굴이 화끈하다.
고추의 매운 맛이 올라온다. 손이 뜨거워진다. 음… 진주가 한 말이 농담이 아니었군.
고춧가루의 위력을 잠시 느낀다. 다 된 듯한데. 배추 양과 양념 양을 가늠한다.
작년에는 펀드 김장하고 남은 양념에 더해서 내 양념을 더 만들었던 탓에 양념이 많이 남았다.
적당히 남는 것은 각종 찌개용으로 사용하면 좋지만 너무 많이 남는 경우는 좀 난감하다.











김치를 담을 통과 버무릴 대야를 준비한다. 곧 장모님이 내려오실 것이라 두 개를
셋팅하고 배추에 소금을 치기 시작한 시간으로부터 딱 24시간 정도 지났다.
담배 한 대 핀다. 실질적으로 게임은 끝이 난 것이다. 이제 그냥 버무리면 되는 일이다.
이 이후 과정에 참여해서 옷소매에 양념 절반 바르면서 ‘김장했다’고 주장하면 안 된다.
이제 잠시라도 양념 속 갓이나 쪽파 숨이 좀 죽을 시간도 벌게 다른 짓을 하자.











혼자 치대고 끝을 내려고 했으나 장모님이 같이 치대자고 하시니 수육을 장만하기로 했다.
오전에 읍내 나간 길에 목살을 한 덩어리 샀다. 보통은 다리 살로 수육을 하지만 아무래도
목살이 더 맛있다. 삼겹살이 더 맛있고. 다만 더 비쌀 뿐이다. 적은 양이니.











갓 다듬은 거친 잎을 넣고 같이 삶는다. 나는 고기를 삶을 때 항상 두 번 삶는다.
한 번은 일단 끓여서 핏물만 빼는 기분으로 처리한다. 갓 보라색 물이 나와서 컬러가 좋았다.











일단 삶은 물 가차 없이 버린다. 그리고 절반으로 자른다. 음~
이 상태에서 편으로 썰어 구워도 바로 굽는 것 보다 훨씬 기름이 적고 담백하다.
그러나 오늘은 수육이다.











다시 수육을 본격적으로 삶는다. 내 방식의 수육에서는 항상 커피가루와 술이 들어간다.
내가 소주를 구입하는 유일한 경우다. 가급이면 물은 넣지 않는다. 양이 많을 때는 넣지만.
소주가 없을 때 나는 집에 보이는 술은 손에 잡히는 대로 투입한다.
그랜피딕, 발렌타인, 조니워커, 레미마틴, 헤네시, 진도홍주, 와인, 돌배주, 솔잎주…
이런 사실을 안 주당들이 굉장한 분노를 표출하기도 했지만 나에게 소주나 헤네시 꼬냑이나
많이 마시면 개가 되는 독한 물이라는 사실만 유효하다. 그러나 수육을 삶을 때에는 가급이면
마트에서 소주를 두어 병 구입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주변에 보이는 야채 부산물들을 투입한다. 땡초는 꼭 넣는다. 냄새를 잡기도 하지만
개운한 느낌을 전달한다. 내 수육의 특징은 색깔이 짙고 국물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는 점이다. 한 시간 정도 삶을 것이다. 오늘은 적은 양이니 40분 정도면 될 것이다.











오후 다섯 시 조금 넘어 양념을 바르기 시작했다. 여섯 시에 저녁밥을 먹을 것이란 소리다.
김치에 소금을 치기 시작하던 25시간 전의 개시 시간 결정도 완료 시간을 염두에 둔 것이다.
점심을 먹으며 마무리 할 것인지 저녁을 먹으면 마침표를 찍을 것인지 결정을 하는 것이 좋다.
김장은 최소 이틀을 필요로 하는 행사라 그런 프로세스에 관한 경험적 시간배치가 중요하다.
양이 많았다면 점심으로 결정했을 것이다. 뒷설거지도 많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한 시간 정도 치대고 김장은 끝이 났다.
준비한 김치 통에 차곡차곡 담아 나간다. 김치를 치대며 장모와 나는
빵에 미쳐 집 나간 마누라이거나 딸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같은 시간, 오미동에서 2박 3일 동안 멋모르고 수업을 신청한 전국의 몇몇 인사들이
삼십 가지 정도의 빵을 만드느라 새벽까지 제 돈 내고 혹사당하고 있을 것이다.


역시 우리 배추는 14시간을 소금물에 잠수해 있어도 대가리를 숙이지 않는다.
이 배추의 장점은 물기가 적고, 따라서 소금 간에 쉽게 농락당하지 않고,
시간이 지나도 김치 국물이 흥건해지지 않으며, 이빨로 잘 끊어지지 않고,
봄이 되어도 아삭하다는 점이다. 나는 시장에서 구입한 배추는 맛이 없다.











수육을 건져 내고 기름을 잠시 뺀다. 역시 블랙이 시크하다.
척 보면 잘 삶아졌다.











우선 먹을 김치는 뜯어서 남은 양념에 버무린다. 조금 넉넉하게 버무렸다.











백미를 선호하지만 이런 날은 집에 들어와 있는 몇 가지를 혼합한다.
아마도 당분간은 몇 가지를 섞어서 밥을 할 것이다. 소비를 해야 하니.
무얼까?도 팩토리 옆의 마을 논 2~3백 평도에 모를 심었기에 그 두 사람이 먹고 남을
쌀을 수확했다. 박 과장도 홍성에서 쌀농사를 지어서 보내왔다.
두 동생들의 쌀을 당분간 먹을 것이다. 순영이 형 붉은 쌀은 오래 불려야 한다.
세 시간 정도 불리는 것이 좋다. 수수는 그냥 백미와 함께 30분 정도만 불려도 된다.
장모가 진밥을 좋아하시기에 이 날은 내 취향과 별개로 약간 푹 익은 밥을 했다.











이 방식의 수육은 가급이면 얇게 썰어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식은 수육을 좋아한다.
아마도 나는 결국 음식 관련한 책을 한 권은 쓸 것이다. 언제가 될지, 어떤 내용일지
정하진 않았지만 레시피 책도 아니고 맛집 책도 아니다.
음식과 관련한 가벼운 인문학적인 이야기일 가능성이 높다. 음식에 기댄 사람이야기.











먹자. 이틀 동안 수고한 그대, 즐길 권리가 있다.
겨울 초입, 곳간에 쌀은 풍족하고 메주도 띄웠고 김장을 한 날이다.
일은 여전히 가을을 갈무리하고 있지만 바람은 북풍이다.
겨울은 따뜻하고 배가 불러야 서럽지 않을 것이다.
직접 김장을 하는 이유,
도시도 아닌 시골에서 스스로 절기의 마감을 느끼고
내 일상과 살림의 옷매무새를 단정히 하는 일이다.
이제 내가 담은 김치 맛을 볼 시간이다.
중간에 맛을 보지 않았냐고? 아니요.
중간에 음식 맛을 보는 것은 자신의 결정을 의심하는 일이다.
나는 음식 맛을 중간에 보지 않는다.
그냥 확신하는 것이다.
맛을 봐야 아나? 과정에서 이미 요리사는 알 수 있지 않은가? 음식하는 사람이라면.

"드시죠 장모님."











때로는 중간에 음식 맛을 확인해야 할 필요가 있다.
가령, ‘고춧가루 겁나게 매운데…’ 라는 말을 들었다거나 하는 날은.
허겁지겁 몇 점 집어 먹고 나니 체온이 올라간다.
이것은… 우리 집 김장 역사상 가장 매운 김장이다.
이 고춧가루는 그러니까 청양고춧가루였다.











“너무 많이 드시지 마세요. 밤에 물을 얼마나 마시려고요.”
“어… 디기 맵네. 그래도 맛있다.”













그래서 형이 불타는 붉은 얼굴이었구나.
식당에서도 땡초만 찾더니.











냉장고에 한 통, 모두해서 일곱 통의 김치와 맨 위 작은 양념 통이 남았다.
작년 김장이 한 통 남아 있으니 다음 해까지 두 사람 묵은지로는 충분할 것이다.
좀 맵긴 하지만 내년 우리 집 김치찌개는 맛있을 것이다.
김장 끝. 겨울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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