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 형, 빛을 잃은 것 같아요

마을이장 2016.07.25 22:15 조회 수 : 1831

 

 

<앞 머리에 사족>

아래 글 이후 검진 결과 별 이상 없다하니

가급이면 관련해서 문자건 뭐건 주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감사합니다. 걱정 끼쳐 송구합니다.

 

 

 

7월 18일 오후.

아직도 공항 관련 현수막이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하지 못했는데

신호 대기 중에 만난 현수막은 내가 부산에 당도했음을 확인해 주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난생 처음 종합건강검진을 받을 것이다.

당일 새벽에 출발할 예정이었지만 병원에서 택배로 수면대장내시경과 관련한 약을

보내오고 통화를 한 결과 그 관장약을 먹은 상태에서 장거리 운전을 하는 일은

매우 다급하고 위급한 상황을 초래할 확률이 99%였다. 하여,

결론적으로 두 차례의 설사약을 복용하고 안정적인 조건에서 변을 투하할 장소를 찾아서

하루 전에 이동을 하는 것이다. 본가 노인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기에 그냥 병원 가까운

모텔에 머무는 것이 마음 편하겠다는 판단을 했다.

송도 바닷가에 모여 있는 모텔 덩어리 구역이 목적지다.

 

 

 

 

 

2월 말에 심한 감기를 앓은 이후 노점상, <호모루덴스> 준비 과정까지 살이 많이 빠졌다.

만나는 사람 대부분이 나의 얼굴을 보고 인사처럼 같은 말을 쏟아내었기에 그 말들 자체가

나에게는 스트레스였다. 내가 봐도 뱃살이 빠졌고 몇 년 만에 내 볼이 패인 것을 보았다.

열에 아홉은 어디 아프냐는 소리 또는 많이 피곤해 보인다는 멘트를 날렸다.

듣다가듣다가 소리 자체의 피곤함은 내 스스로의 문제의식으로 다가오고 읍내 병원에 가서

간략한 피검사를 받았다. 이틀 후 별 이상 없다는 전화만 받았다.

주변에서는 또 ‘얼마짜리 피검사냐?’ 라는 소리들을 했다. 제대로 된 검사를 받으라는 것이다.

또는 표현을 주저주저하는 모양을 보고, “뭐, 말을 해. 암?” 그러면 고개를 끄덕.

38년 동안 쉬지 않고 담배를 피워 왔으니 일반 정서로는 혐의가 상당한 것이고.

제대로 된 검사를 받아 보라는 것이 대체적인 의견이었다. 제대로 된?

털어서 먼지 안 날 몸뚱아리가 있겠는가. 발견이 해결은 아닐 것인데,

뭐가 이상이 있다고 하면 오히려 더 고민스럽지 않은가. 사인을 모르고 죽는 것이 최선인데.

방문자 중 의사 사람이 오면 물었다. 육안으로 내가 아픈 사람으로 보이냐고.

최근에 <호모루덴스>를 방문한 의사에게 또 물었다.

 

“아픈 건 아닌 듯한데…

형, 빛을 잃은 것 같아요. 이전에는 형 보면 빛이 났는데.”

 

다소 문학적이거나 임상적이지 않은 의견 앞에서 나는 순간적으로 맥을 놓았다.

그렇구나. 금년에 그 비슷한 소리를 이미 들었다. 같은 맥락의 소리다.

내 눈에서 기운이 빠져 나갔다는 소리다.

 

 

 

 

 

비싼 숙박지를 구할 이유는 없었다. 똥 싸면 되고 두 차례 관장약은 잠을 힘들게 할 것이다.

그러나 내가 낙점하고 들어간 모텔은 원했던 조건에 적절한 구조가 아니었다.

몇 차례 리모델링의 흔적이 역력한 구조변경의 향기는 화장실, 욕조, 샤워실을 좁은 방

하나에서 조차 분리시켜 두고 있었다. 동선이 좋지 않다.

TV는 시원했고 컴퓨터는 먹통이었다. 뭐 인터넷을 들여다보고 있을 생각은 없었다.

 

팔불출 같은 소리지만 이번 검진은 영후의 권고 또는 실무 진행에 따른 결과물이다.

최근 다녀 간 이후 아빠는 검진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한 모양이고 어느 날 전화를 해서

나의 신상 정보를 털더니 모든 과정을 진행해 버렸다.

나는 단지 병원으로 가서 검진만 받는 역할이었다.

스스로의 몸을 이유로 병원 가는데 극단적으로 인색한 대한민국 남자 일반,

또는 직장생활을 하지 않아서 정기검진의 가능성이 없는, 또는 생애전환기 머시기라는

국민의료보험 검진조차 받지 않은 남자도 이 장면은 거부할 수 없었다.

‘빛을 잃은 것 같다’와 아들로부터 처음으로 구체적 보살핌을 받는 일은 다른 듯 같은 감정이었다.

 

 

 

 

 

6시 전에 마지막 식사를 하고 병원의 당부에 따른 대사에 임하는 미션에 돌입해야 했다.

검진 8~9시간 전, 그리고 3시간 전 두 차례 1.5리터 분량의 관장약과 물을 마셔야 했다.

물론 그 미션 직전에 사진의 색 표시된 통에 채변도 받아야 했다. 성실하게 수행했다.

가장 힘든 일은 3리터의 찝찝한 맛의 약을 마시는 일이었다.

새벽 5시 알람 소리에 두 시간 정도의 옅은 잠에서 깨어 저 약을 들이키는 일은 고역이었다.

결국은 경험자들의 조언과 예언 그대로 마지막엔 변기에 앉아봤자 맑은 물만 나왔다.

검진 이틀 전부터 나는 식사량 자체를 줄여버렸다.

 

19일 아침에 시작된 검사는 오후 1시 30분경에 끝났다. 그 전에 끝이 났겠지만 나의 기억은

오전 11시 40분경, 엉덩이를 가릴 천이 없는 옷을 입고 다소 에로틱하거나 아크로바틱한

정지화면 자세에서 ‘약 들어갑니다이’ 라는 소리를 듣고 바로 필름이 끊겨버렸다.

두 시간 정도가 내 인생에서 통째로 사라졌다. 완벽하게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그들이 두 시간 동안 나의 아래 위에서 무슨 짓을 했는지 당연히 알지 못한다.

약간 멍하거나 휘청거리면서 병원 문을 나섰다. 검진 이후 바로 운전은 힘들 것이라는

몇 사람의 경험담은 나에게도 유효했다. 차는 병원 주차장에 세워 두고 검진 동안 기다리던

영후와 함께 택시를 타고 자갈치 시장으로 나왔다.

약간의 바람을 쐬고 싶었고 아들과 이 나른함을 조금 나누고 싶었거나.

 

 

 

 

 

바뀐 자갈치 시장에 어리둥절하다가 정신을 차리고 걸어서 남포동으로 들어갔다.

18번 완당집이 보였다. 아직도 있구나.

가봤냐?

아니.

들어가자.

죽 먹어라 그랬지만 뭐 별 이상 없을 음식이다.

남포동은 오래간만이다. 가늠하지 못하겠다. 10년은 잠시 잠깐이기 때문에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겠다. 원래 있던 가게와 그런 가게들 자리에 들어 선 낯선 가게들 사이를 걸었다.

커피를 마시고 잠시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다시 조금 걸었다.

고갈비 골목은 서너 집이 남아 있을 뿐이었고 영후는 그런 거리의 존재 자체를 몰랐다.

여전히 남아 있는 몇몇 맛집들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는 일은 나름 재미있는 일이다.

음식은 기억을 동반하기에.

 

 

 

 

 

동광동과 중앙동까지 일별했다. 어느 골목 사이를 빠져 나왔는데 <중앙모밀>이 보였다.

어, 이 집도 아직 있네. 메밀국수 여러 장 쌓아 놓고 많이 먹었었지. 들어갔다.

냄비우동과 메밀을 시켜서 또 먹었다. 의사가 보식으로 권한 음식은 아니지만 언제 다시

이 골목을 온다는 보장도 없고 내 부모들 손에 이끌려 들어서던 음식점에 아들과 같이

앉을 기회도 항상적이지 않다.

우리는 어쩌면 우리가 인식하는 것 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것이다.

이 사이트가 생겨서 지금까지 흘러 온 시간만큼 그 누군가는 같이 나이를 먹어왔다.

아주 길게 나의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17년이 되었다.

그때 영후는 나와 서울과 부산으로 떨어진 상태의 한 해를 보내었고 <이구>와 <아나>라는

이구아나 두 마리를 키우던 이야기를 하던 시절도 있었다. 세월은 그리 흘렀다.

스물 중반 무렵에 목에 핏대를 세우고 교수들과 육두문자 섞어가며 싸우던 나는 그 교수들

나이보다 조금 많은 나이가 되었고 한 번씩 당시 그들의 기분을 생각한다.

그들은 참 못난 중년들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들에 대한 나의 평가는 변하지 않았다.

그리고… 어쩌면 나는 낯선 젊은 사람들이 이미 불편하다. 젊음이 나에게 자극과 영감을

주는 경우는 세월이 갈수록 드물었다.

나는 스스로의 빛을 잃었다. 이제 나는 어둠이 되어 빛을 밝혀 주는 것이 역할이다.

말은 진작부터 피곤했고 최근에는 글도 피곤하다. 어찌하면 더 짙은 어둠이 될 수 있는가.

어둠이 탁하기만 하겠나. 그 어둠 속 어딘가에 나의 자리가 있을 것이다.

부러지듯 무엇인가를 결정하고 전변하는 일은 피곤한 노릇이고 그런 연대기라는 사실을

받아 안고 그에 맞게 숨 쉬는 방안을 지향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나의 지금은 너무 거추장스럽다.

 

 

 

 

 

하루 전 머문 모델 방에서 냉장고를 발견하기는 쉽지 않았다. 벽에 붙어 있었다.

병원 검진 데스크로 가서 도착을 알렸을 때 안내자가 나에게 제일 먼저 확인한 것은,

 

“혹시 채변은 하셨나요?”

 

아뿔싸!

채변은 했으나 하루 전 저녁에 안내문 그대로 냉장고 속에, 파란통에 지퍼비닐 그대로

고이 모셔 두고 아침에는 잊어 먹고 병원으로 올라왔던 것이다. 생수 두 병과 캔커피 두 개 사이,

색 위치 정도에…

문제는 저 파란통에 내 이름과 생년월일이 적혀 있다는 사실이다.

세월이 흘러 이 바닥 어느 짤방에 <권**63****.jpg>로 떠돌아다닌다면 어찌할 것인가.

그에 앞 서 청소하시는 아주머니가 저 통을 발견하면 다행이나 방을 빌린 불륜커플들이

저 파란통을 발견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복용은 하지 않겠지.

찾아야 할 포켓몬은 아니다. 이것은 증강현실이 아니다.

치매에 관한 문진검사는 없었다.

 

일주일이라고 했으니 화요일 오후에는 결과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검진 사실을 알고 있는 주변 친구들이 떨리냐고 묻는다.

그렇다고 답한다. 그리고 별 일 없을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말한다.

사실 우리의 그 많았던 하루하루는 부지불식간에 목숨을 건 모험의 순간순간이 아니었나.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다시 읽고 싶다. 채변통도 찾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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