外道 / 소라똥 당신

마을이장 2016.06.24 00:08 조회 수 : 2052

 

 

무작정 길을 나선다는 것은 나로서는 불가능한 미션이다.

 

 

 

나는 붙박이를 지향하지는 않지만 그런 편이고 잔소리들이 있었다.

제발 어디 좀 다녀 오라고.

다섯 장의 빤스를 챙겼다.

읽지도 않을 책을 한 권 챙겼다. 여행자는 그리해야 할 것 같았다.

카메라는 가방에 들어 있었으니 원래 들고 다니던 짐이다.

집을 나선지 스무 시간이 지나서야 나는 구례를 벗어났다.

내가 용무 없이 구례를 벗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할 필요가 있었다.

방향은 북동쪽으로 잡았다. 동해거나 북부 경북이거나 그 모두이거나.

팔팔고속도로 지리산휴게소에서 마음을 정하고 내비게이션을 찍었다.

죽도시장. 포항으로 일단 향할 것이다.

 

 

 

 

 

죽도시장에 도착했으나 나는 딱히 할 일은 없었다. 단지 죽도시장을 보고 싶었을 뿐이다.

2009년 12월 17일, 죽도시장을 찾았었다. 어느 잡지사에서 진행한 일종의 먹는 여행이었다.

그때는 아버지와 아들이 여행하는 아이템이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음식에 관한 자신의 추억을 들려주고 어쩌고.

그러나 오늘 나는 거의 없었던 사례의 나홀로 여행이다.

해마다 겨울이면 어느 후배님이건 이곳의 가자미를 구례로 보내주곤 했다.

혼자인 나는 카메라조차 들지 않았다. 빈 몸으로 시장을 어슬렁거렸다. 배가 고팠다.

칼국수 또는 칼제비 가게가 드문드문한 좁은 통로에서 아무 집이나 들어섰다.

전형적인 시장 칼국수. 그리고 오래 머물 이유가 없었다. 뭔가 사고 싶은 식재료들이

보였지만 나는 오늘 돌아가지 않을 것이기에 죽도시장의 그 엄청난 해산물들은 그림의 떡이었다.

 

 

 

 

 

구룡포로 방향을 잡았다.

그것 역시 의식적 결정이 아니라 내 몸이 기억하는 길 일 뿐이었다.

신라나 백제나 백성들은 축하하고 싸움하고 그렇게 사는구나.

백성들은 오늘도 열심히 ‘오늘의 검색어’를 뼈다귀 삼아 놀고 있을 것이다.

 

 

 

 

 

구룡포 항구로 들어서기 전에 좌회전해서 삼정 바다로 향했다.

숙소를 정하지 않았기에 삼정해변에 적당한 숙소가 보인다면 머물 생각이었다.

삼정 바다 지나 석병리 어디 쯤에선가 차를 멈추었다.

별 이변이 없다면 나는 다음 날 아침 삼정바다와 석병리 바다 사이에서 카메라를 들고 있을 것이다.

 

 

 

 

 

2009년 12월 17일. 이 방에 머물렀었다.

그게 벌써 7년 전이란 소린가? 젠장.

구룡포읍으로 들어서서 항구에서 담배 한 대 피며 눈앞에 보이는 호텔에 전화를 했다.

바닷가 방은 일만 원 더 달라고 했다. 나는 바다가 궁금하지도 않았다.

창문을 열고 내려다보니 7년 전 그 저녁인 듯, 구룡포읍 골목은 전혀 변한 것이 없어 보였다.

 

 

 

 

 

가방 내려두고 카메라만 들고 구룡포 읍으로 내려섰다.

세 번짼가? 2012년에도 이곳을 왔었다. 그리고 모든 포구의 뒷골목은 비슷하다.

포구의 맛집 대부분은 해변에 있지 않다. 골목 하나 안쪽에 존재한다.

포구 안쪽 골목에서는 항상 바다가 느껴진다. 그것은 어떤 불안정성 같은 것인데

사람은 그 불안정성을 즐긴다. 일탈의 빌미가 되기도 하고 탈출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철규분식. 2009년 그날 취재팀들은 찐빵에 열광했었다.

<수요미식회>에 나왔다는 소리를 들었다. 끝장이 났겠구나 생각했는데 입구는 의외로 한산하다.

그러나 그때나 지금이나 철규분식은 여전히 철규분식이다.

 

 

 

 

 

읍내 한 바퀴 돌고 항구로 나왔다. 빛은 적절하지 않았고 나는 딱히 명작을 남기겠다는

의지가 없었다. 단지 사진을 간혹 찍는 일 이외에 나는 이곳에서 할 일이 없었다.

 

 

 

 

 

 

 

구룡포 <근대문화역사거리>를 처음 찾았다. 별 볼 것 없을 것이란 생각에 그 동안 찾지 않았다.

별 볼 것은 없었다. 카메라 포커스가 당겨진다는 것이 그 증거다. 제거할 것이 많다는 소리다.

도시재생사업이라는 등의 타이들로 얄팍한 거리는 많이 만들어지고 있다.

 

 

 

 

 

 

 

금요일. 구룡포 항구에서 불금의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포항과 울산의 주요한 자금원들이 붕괴하는 낌새를 보이고 수만 명의 실업자들이

이 인근에 살고 있을 것이다. 항구는 월급날을 앙망하고 있지만 월급쟁이들은 사라지고

있는 중이다. 분명 몇 백 개의 횟집은 구십구 퍼센트 한산했다. 월급쟁이들 중 일부는 마지막

자금을 투여해서 이 항구에 다른 횟집을 개업하고 미래의 횟집 사장들을 기다릴 것이다.

혼자 여행하는 포유류가 밥을 먹기 힘들었다. 1인분은 대부분 사절이었다.

몇 집 문턱을 들락거리다가 겨우 오징어 물회 한 그릇을 구걸해서 먹었다.

 

 

 

 

 

 

 

여행지에서 맛있는 커피를 만나는 일은 큰 기쁨이다.

이번에도 만나지는 못했다. 그러나 아쉬움은 달랠 수 있는 수준이었다.

<호모루덴스> 웬수 같은 직원과 알바는 기어코 CEO를 쫓아내고 지금 쯤

치킨을 먹거나 일찍 문 닫고 놀러 갈 궁리를 하고 있을 시간이다.

돌아가면 CCTV를 돌려봐야겠다.

어린 친구가 최근에 개업한 가게인 듯한데 잘 되면 좋겠다.

 

 

 

 

 

 

 

2009년 12월 18일 새벽에 이 등대에서 바다를 보았다.

그 겨울의 바다는 엄청나게 추웠고 바다는 차가운 숨을 토해내며 물비늘을 곧추세우고 있었다.

그 비늘은 팔뚝에 돋아 난 소름처럼 싸늘했고 새벽 공기는 송곳 끝처럼 날카로웠다.

하지만 오늘의 바다는 평온하고 온화했다. 새벽 5시 알람을 듣지 못했다. 한 시간을 더 잤다.

전날 밤 검색한 일출 시간은 5시였다.

 

 

 

 

 

 

 

나는 내가 왜 떠나왔는지 알지 못했다.

그래서 내가 왜 길을 떠났는지에 대해서 주로 생각했다.

포괄적 ‘도피’겠지만 왜 도피해야 하는지 딱히 이유를 찾지 못했다.

그렇게 한 번 하면 뭐가 좀 기분이 다를까?

 

 

 

 

 

 

 

바다와 잇댄 마을은 옹색했고 나의 이유는 더 옹색했다.

그럼에도 깃들어 사는 이유는 ‘이유’가 아니라 거의 운명일 것이다.

 

 

 

 

 

 

 

구룡포중학교 앞을 지나 삼정바다 쪽으로 천천히 나아갔다.

 

 

 

 

 

 

 

바다라기보다는 호수에 가까웠다. 지리산 자락으로 거처를 옮긴 이후

아주 간혹 바다를 찾았지만 오늘의 바다는 지나치게 고요하다.

30분 전에는 내가 원했던 색이었을까?

분명한 것은 삼십 분 전이나 쥬라기나 돌아오지는 않을 것이다.

 

 

 

 

 

 

 

전진과 후진을 거듭하며 삼정과 석병 바다를 집요하게 살폈지만 내가 원하는

그림을 포착하지 못했다. 오늘은 그런 날이다. 사실 원하는 그림은 없다. 성립 불가능하다.

항상 생각하지 못했던 장면이 벼락처럼 다가왔었다.

 

 

 

 

 

 

 

하루 더 머물러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아침에 남하해서 감포 바다를 촬영하는 방안도

생각을 했지만 나는 제법 게으른 상태였다. 제법 오래 전부터.

그리고 어쩌면 나는 전혀 게으르지 않은 것인지 모른다는 의심도 간혹 한다.

 

 

 

 

 

 

 

나는 게으름에 대한 강박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효율에 대한 스스로의 질책과 지난 시절과의 비교 평가를 통한

스스로에 대한 채점 결과는 항상 ‘한심하다’는 것으로 결론 났다. 그리고 또 간혹,

어쩌면 나는 한심하지 않은 놈일지도 모른다는 위로를 한다.

 

 

 

 

 

 

 

이전에는 바닷가에 살고 싶었다. 지금은 이런 풍광 앞에서 날씨를 생각한다.

바람과 집채 같은 파도를 상상한다. 살기 팍팍하겠다. 그런 생각을 한다.

생존 환경이 아닌 풍경으로 사는 곳을 바라보면 효율이 떨어진다.

나는 최근 가장 많은 시간을 이른바 <쌍계사십리벚꽃길>에 머물고 있고 아무런

풍경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호모루덴스>로 들어서는 손님들은 ‘와’ 라고

반응하며 창가에 주로 앉는다. 나는 나의 환경이 다시 풍경으로 보이기를 기다리는 중이다.

효율을 생각하는 것은 나와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나답게 노는 것은 무엇일까.

 

 

 

 

 

 

 

골목과 사람을 훔쳐본다. 그들은 일상을 살고 누군가는 들여다본다.

내 삶의 많은 대목도 노출되어 있다. 결과적으로는 그 노출을 팔아서 일정하게 먹고 산다.

그래서 대부분의 경우 ‘그들은 나를 알고 나는 그들을 모른다’.

 

 

 

 

 

 

 

더 많은 노출이 예정된 일을 준비하면서 나는 어쩌면 브레이크 타임이 필요했는지 모른다.

기획이 어쩌구 프로젝트가 어쩌고 하지만 결국 나와 주변이 해야 할 일은 먹을 것을 파는 일이다.

을의 자세로 서비스 업종에 임해야 하는 일이다.

 

 

 

 

 

 

 

더 밝아지면 어차피 사진은 별 볼 일 없다.

구룡포로 돌아가야겠다.

 

 

 

 

 

 

 

수캐는 정신없이 못자리를 가로 질렀고 인가에서는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수컷들은 왜 저 모양인가.

 

 

 

 

 

 

 

구룡포 읍으로 돌아와서 아침을 먹지 못했다. 원래 아침을 먹지는 않지만

객지고 바닷가라 복국을 생각했지만 역시 1인분을 팔지 않았다.

혼자 여행하는 사람은 밥 먹기 힘든 현실이다. 읍내 골목을 돌아다니다가 내가 잡은 것은

삶은 소라를 포장한 팩이었다. 사실은 문어숙회로 알고 집었는데 소라였다.

아주머니의 표정은 약간 애절했다. 그대로 들고 모텔로 돌아와서 혼자 꾸역꾸역 한 팩을

모두 비웠다. 모텔에서 음식물을 남기기도 좀 난감했고.

그리고 두어 시간 지나서 서서히 눈이 흐려지고 몸이 나른해지기 시작했다.

 

모리국수. 이른바 맛집에서 먹지는 못했다. 1인분을 팔지 않았다.

구룡포 시장 안의 분식집에서 먹었다. 엉뚱하게 삶은 소라로 끼니를 때운 관계로 뭔가

배를 채워야 했다. 오후 2시 30분 무렵이었고 국수를 속으로 몰아 넣으며 계속

명백한 마비 증상이 느껴졌다. 소라가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3류와 화개 상황 문자를 주고 받다가 잡학다식한 그의 문자가 왔다.

 

“헉… 소라똥 식중독이면 병원가야함요.”

 

 

 

 

 

그리하여 꿋꿋하게 다량의 모리국수를 흡입하고 천천히 비틀거리는 다리를 추슬러

토요일이지만 문을 연 구룡포 읍내 병원으로 자발적으로 기어들어갔다.

 

나 / 소라 먹었습니다.

의사 / 아, 소라 똥.

 

일종의 해독 작업이다. 결국 쉰넷의 조선족 남자는 지리산을 떠나와서

동해 구룡포 바닷가에서 쓸쓸히 병원에 누운 것이다.

그의 볼을 타고 굵은 물줄기가 흘러내렸다.

 

 

 

 

 

1시간 후. 위기의 남자는 다시 싱싱한 상태가 되어 철규분식에서 찐빵 다섯 개

이천 원어치를 사 가지고 모텔로 돌아와서 당을 보충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리모컨

놀이가 시작될 것이다. 소라똥은 찐빵이 직빵이다. 동의보감에 그리 기록되어 있다.

 

 

 

 

 

오후에 호미곶을 찾았다. 토요일이라 역시 사람이 좀 있었고 셔터 한 번 누르지 않았다.

바다는 오후에도 여전히 밋밋했다. 돌아오는 길에 석병리 즈음 바닷가에서 유턴을 반복했다.

뭔가 건질 수 있을 것 같은 바다로 보였다. 일단 내려섰다.

 

 

 

 

 

 

 

내가 해가 질 무렵까지 이곳에서 그림을 기다릴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이리저리 앵글을 조여 보다가 그냥 몇 번 누르고 사진은 포기했다.

 

 

 

 

 

 

 

바다는 역시 겨울이 맛이다. 동해는 특히 그렇다.

 

 

 

 

 

 

 

소나무 몇 그루가 보였다.

가까이 몇 걸음 걸었다.

이리저리 가늠을 하다가 몇 장 찍어보자고 나를 타일렀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사진은 이 장면이다.

<고현정 소나무>가 아니라 <소라똥 중년 포유류 소나무>다.

 

토요일 저녁도 1인분 사람은 힘들었다.

결국 구룡포 골목을 정처 없이 떠돌다가 바다에서 먹기 적절한 메뉴인 뼈다귀 해장국을 먹었다.

젠장.

 

 

 

 

 

일요일 아침. 다시 철규분식으로 갔다. 이 집 냄비국수는 맛있다.

어쩌면 이번 방황 중 가장 맛있었던 음식은 철규분식 냄비국수였다. 삼천 원.

그리고 짐을 챙겨서 시동을 걸었다.

원래는 안동으로 가서 간만에 병산서원을 둘러 볼 생각이었으나 지난 밤 잠이 늦었다.

안동에 대한 정보를 검색하다가 새벽 3시가 되었고 그래서 안동을 가지 못했다.

대구로 갈 것이다. 몇몇 식당들을 검색해 두었다. <호모루덴스> 메뉴를 염두에 둔

업무성 식당 방문이다. 혼밥에 지친 탓에 대구의 몇몇 묵은 친구들에게 기별을 넣었다.

구룡포 안녕.

 

 

 

 

 

늦은 점심부터 프랜차이즈 스시집, 이태리 또는 스페인 스타일의 레스토랑,

함박스테이크 전문점을 방문했다. 모두 먹었다.

모두 철저하게 블로그 검색 결과에 따른 방문이었다. 믿을 것이 못 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트렌드이자 젊은 사람들의 핫플레이스들이었다.

장사가 가장 잘 되는 집은 냉동치킨을 튀겨서 샐러드로 만든 스시집이었다.

남자 사람과 둘이 갔는데 커플 메뉴를 시킬 뻔 한 위기가 있었다.

아란치니, 뇨끼, 감바스 같이 흔하지 않은 요리를 하는 식당에서 번호표를 받아 대기했다.

나를 포함해서 4명이었고 대략 190살 정도의 합산 나이였고 60년 된 설렁탕 집도 아닌데

줄을 서는 것은 쉽지 않은 경험이었다.

대구는 대구였다. 더웠다. 동성로는 인파와 더위로 욱신거렸고 나는 집을 나온 지 4일째

저녁을 맞이하고 있었다. 맛있는 커피점에서 며칠 만에 제대로 된 커피를 마셨다.

집을 나선 시간에 비례해서 피곤했다. 대구의 모텔은 다른 동네의 호텔보다 깔끔했고

이해할 수 없이 싼 가격이었다. 시골의 숙박지는 도시에 비해 아무런 경쟁력이 없다는

사실을 백 년 만에 알게 되었다.

대구에서 목적의식적으로 먹었던 음식이 <호모루덴스>의 메뉴를 결정하는데 어떤

도움이 될는지 알 수 없다. 여전히. 분명한 것은 참고하거나 따라할 것은 별로 없다는 사실이다.

몇 년간 도시에서 그렇고 그런 식당에서 밥을 먹어보지 않은 탓에 체크는 했지만

먹는 것은 일상적으로 우리들이 먹는 식재료를 따라 올 식당은 없었다.

문제는 내가 일상적으로 먹는 것으로 <호모루덴스> 메뉴를 운영하면 도대체 식재료

단가가 답이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러나 나는 포괄적인 방향을 ‘우리가 먹는 것과 같이’로 정했다.

 

 

 

 

 

화요일 아침. 5일 만에 화개에 들어섰다.

책들이 도착해 있었다. 일일이 이곳에서 인사를 드리지는 않겠다.

출판사에서 보내 온 책들은 새책일 것이나 개인들의 기증도 이번에는 새책이 많다.

또 민폐를 끼친다. 존재 자체가 민폐다.

6월 25일 오픈을 계획했으나 나의 가출과 준비 부족으로 7월 8일경으로 미루었다.

어차피 장마가 시작이다. 곧 소식을 전하겠다.

습도가 높다. 건강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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