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 당촌댁의 선거

마을이장 2016.04.14 17:42 조회 수 : 1612

 

 

이 이야기는 허구다.

 


 

선거 날.

장모님이 이웃 분들 중 가까운 두 여인에게 식사를 대접하고 싶다고 하셔서

화개로 내려갔다. 호모루덴스 옆에 피자와 돈가스 집이 생겼다. 양호하다.

정오에 김 기사 노릇하기로 약속을 하였고 나를 제외한 4명의 여인이 차에 올랐다.

약간의 화장품 냄새와 많은 땀 냄새가 풍겼다. 청용(우리 부부가 그녀를 부르는 은어)은

오전까지 고춧대를 박고 있었다. 고춧대와 돈가스는 살짝 언밸런스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큰 문제는 없다. 출발부터 차 안의 화제는 선거였다.

아무래도 당촌댁이 화제를 이끌었다.

 

“어째 투표들은 했소?”

 

당촌과 청용은 투표를 했다.

청용은 7시 무렵에 했다고 한다. 당촌은 청용에게 ‘밥은?’ 이라는 질문을 던졌고

청용은 ‘밥 앉쳐노코’ 라고 답했다. 당촌이 확신에 찬 멘트를 날렸다.

 

“밥이란 거이 해서 바로 묵어야제 식었다 묵으면 맛이 없으븐게…

투표 보담은 식구들 밥이 더 중하제.”

 

‘투표보다 밥이 중요하다.’ 멋있는 말이다. 그러나 논란의 여지는 있다.

왜냐면 선거라는 것은 결국 중단기적으로 ‘밥’과 연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투표가 밥 맥여줘!’ 라는 표현보다 훨씬 품위와 설득력을 가진 표현이었다.

다음으로 누구 찍었냐는 질문이 이어졌다. 청용은 *번을 찍었다고 했다.

 

 

 

 

 

“저그 아부지가 *번은 해 묵었슨게 이번 참은 *번 찍어라고 하더마.”

 

통상 선거에서 ‘저거 아부지’는 청와대 여인보다 강력한 통제력을 가진다.

비슷한 표현으로 이전에 지정댁으로부터 ‘저거 아부지 살았을 때 부텀 우리는…’ 라는

표현이 있다. 이때 ‘저거 아부지’는 일종의 유훈통치적 성격을 부여받는다.

당촌은 *번을 찍었다고 한다.

 

“운이 있어얀당께. 원래 내 맴은 *번이라고 갔는디 투표장서 손꾸락이 *번으로 가더란 말씨.

내 창씨가 미쳤는갑서. *번 그 사람 운이 고까지여. 묵은 놈이 물 쓴다고 하자녀.”

 

‘묵은 놈이 물 쓴다.’ 처음 듣는 표현이다.

무엇보다 역사적이고 현실적이고 지역적이고 문학적인 표현이다.

이문구 싸다구를 왕복 세 번 정도 쳐 바르는 표현인데 시골에서 엄니들은 입만 열면

그런 정도 문학을 한다.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반까지 괄호 열고 미술평론가 인 척 할 때 자주 사용하던,

‘산 인간, 실생활’적 표현의 정수다. 이것은 명백하게 자연주의를 넘어 선 리얼리즘이다.

물론 그 말의 뜻과 맛을 알아먹을 때에 그렇다.

자정 넘어 선거 결과는 당촌의 ‘운運’ 운운에도 불구하고 *번이 새로 물을 쓸 놈으로

결판 났지만 변수는 항상 존재한다. 물론 변수는 변수고 상수는 상수다.

 

 

 

 

 

이야기 중에 차는 섬강을 따라 뻗어 내린 19번을 달렸고 당촌은 그 와중에도

길 옆 풍경을 보고 멘트를 남겼다.

 

“꼬사리 끊기 좋겠다.”

 

그녀의 눈에는 시속 70km로 움직이는 차창 밖 벚나무 사이로 보이는 그것들이

단박에 스캔되는 것이다.

 

“아이가, 두릅이 삘 올라왔네.”

 

몇 해 전 여름 새벽에 빤스만 입고 자고 있는 나를 내려다보며 ‘컴퓨터 수리’를 요구했던

청용은 언제나처럼 과묵했고 화개를 가 봤느냐는 질문에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녀가 아는 것은 살고 있는 마을과 농사, 저거 아부지와 아이들 밖에 없다.

다시 몇 해 전 그녀는 월인정원에게 부탁을 했다. 장에 나가서 젤루 화려하고 비싼 양산을

사달라고. 이만 원 이상의 물건은 없었기에 커다란 꽃이 아롱 새겨진 양산을 사다주었을 때

그녀는 활짝 웃었다.

 

“어제는 말 사람들이 화개로 녹차 뜯으러 가더마.”

“일당이 얼맙니까?”

“오마넌.”

“하이고 너무 작다.”

“그래도 그 일이 젤 수월혀. 나무 심는 거 보다는.”

 

마을 논을 묘목밭으로 임대 내어 준 경우 철쭉 따위 묘목을 심는 일과 비교한 것이다.

 

“앞 사람 따라 댕길라믄 허리가 끊어질랑게… 기술 배워야 혀.

젊어서 해야제 우리는 이제 틀렸고. 늙으믄 걷는 거 하고 묵는 거 밖에 못해.”

 

오늘의 접대 메뉴는 피자와 돈까스다. 그녀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메뉴다. 익숙하지 않음은

불편을 야기하지만 일부러 그냥 그렇게 메뉴를 정했다. 뭐랄까… 좀 다른 음식 앞에서

좀 다른 이야기를 할 수도 있다거나 대접한다는 느낌을 전할 수 있다거나.

내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식사를 끝내고 호모루덴스로 건너 온 그녀들은 약간의 갈등 끝에

화개동천을 바라보는 창 쪽으로 자리를 잡았다. 달달하고 보드라운 커피 종류를 넣었다.

건너편을 바라보는 그녀들이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나는 모른다.

뭐 대략 눈에 보이는 나무와 나물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다시 그녀들을 태우고 마을에 내려드리고 우리는 오후 투표를 하러 갔다.

원래 나는 이번부터 선거를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나는 정치에 아주 관심이 많은 사람이고

그런 사람이 선거를 하지 않았다는 결정을 내린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투표장 앞에 도착하고 보니 ‘나는 왜 투표를 거부하는가!’ 라는 성명서를 준비하지

않은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 무료하게 있던 면 직원 핸드기 형이 반갑게 맞이하길래 그냥

별 생각 없이 다시 선거라는 것을 했다.

영화 <헝거게임>에서 독재자로 나오는 도날드 서덜랜드(Donald Sutherland)는 말한다.

대략 이런 내용이다. 작은 희망이라는 여지를 인민들에게 남겨 두어야 한다고.

완전히 틀어막으면 폭발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약간 저항하고 약간 성취하게 하는 것이 통치의 기술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선거는 ‘난亂’을 방지하기 위해 그들이 개돼지들에게 던져 준 뼈다귀다.

똥이 집권을 하건 오줌이 집권을 하건 오바이트가 집권을 하건 변하지 않는 사실은

‘어차피 그들이 집권 한다’는 현재까지 인류사의 양적 질적 진리다.

다른 싸움 방법을 찾아야 한다.

저녁에는 자연스럽게 개표방송이건 인터넷이건 상황을 보게 되고 내가 사람과 비례로

나누어 투표한 두 정당은 각각 0.6%와 0.8%의 정당득표율을 기록했다.

당촌댁의 종이쪼가리는 이번에는 실패했고 나의 종이쪼가리는 이번에도 실패했다.

그러나 사실은 이 제도 하에서 우리는 항상 실패했었다.

나의 주소지는 대한민국 흑인 구역 전라도 땅이고 이래저래 전라도 사람들은 또 다시

다른 동네 사람들의 소리를 듣게 생겼다.

전라도에 살면서 가장 좋았던 점 하나는 일상적으로 정치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부산과 서울에 살던 시절에는 정말 정치 이야기가 흔했다.

전라도 땅에 살면서 가장 싫었던 점 하나는 선거가 끝이 난 후의 거대한 침묵이었다.

나는 몇 번의 그 침묵 앞에서 짧지만 아주 깊은 슬픔을 느꼈다.

나는 이제 선거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여전히 정치에 아주 많은 관심을 가질 것이다.

나는 亂을 준비할 것이다.

나는 흑인이다.

 

 

 

 

 

 

jirisan@jiri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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