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 백조의 발

마을이장 2016.02.04 23:05 조회 수 : 1602

 


 

물론,

은은하게 타오르는 벽난로 장작불을 싫어할 사람은 막 굴뚝을 타고 내려서던

산타클로스와 도둑놈을 제외하고는 없을 것이다. 심지어 나조차 좋아하니까.

나는 그 불꽃을 좋아해서는 안 되는 보직임에도 불구하고 그렇다.

반짝이는 샹들리에, 우아한 주물난로, 빈티지 느낌의 실내, 풍경은 스산한 겨울 강.

설경이라면 물론 완벽한 겨울 실내 풍경의 완성일 것이다. 전원생활 블로그 포스팅에는 최강의 비주얼일 것이다.

사진은 화개 월인정원 작업장이다.

지난 12월, 그리고 설 명절 지나서 진행될 2016년 수업 공간이니 당연히 장작불은 난방을 위해서 피워질 것이다.

사람들은, 특히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여자 사람들은 작업장으로 들어서는 순간 짧은 탄식을 뱉어낸다.

완성된 그림 속으로 진입하는 순간 길었던 운전과 몇 시간 전 도시의 소음과 압박감을 보상받는다.

그렇다. 그들에게 그런 느낌을 선사하는 것이 내가 맡은 임무이자 역할이다.

어쩌면 그것은 정해진 감동이며 예정된 감정이다. 사람은 불을 좋아한다. 동굴DNA 때문이라는 말도 있다.

불은 주변으로 사람들을 모이게 만들고 잠시 인간의 본성을 이타적으로 만들기도 한다.

따뜻해진다. 따뜻하니 옷깃을 풀고 넉넉해진다. 마음이. 그리고 참지 못하는 일부 사람들은 묻는다.

 

- 이런 난로는 얼맙니까?

- 이런 샹들리에는 얼맙니까?

나 / 원래 설치되어 있던 것이라 모릅니다. -,.-

 

이 그림은 호수 위를 유유자적 떠다니는 백조다.

그러나 누군가는 수면 아래에서 백조의 발 노릇을 해야 한다. 뭣 나게 헤엄을 치고 있는 것이다.

처음 이 공간을 살펴보러 왔을 때 난로를 보고 나는 결심을 했다.

“저 난로를 피우는 일은 없어야 한다.”

 

 

 


 

이른바 귀농귀촌한 사람들은 난로에 관심이 많다. 한 번 정도는 설치를 한다.

이때 그들 결정의 5할은 경제다. 나머지 5할은 로망이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귀농귀촌의 이유 중 가장 중요한 것 두 가지는 숯불 바비큐와 난로일지도 모른다. -,.-

많은 경우 화석연료 소비를 줄이는 문제를 거론한다. 석유는 악마가 되고 나무는 천사가 된다.

귀농귀촌은 왼손에 석유통을 들고 오른손에 도끼를 든 채 갈등하는 지킬과 하이드가 상체와 하체를 이루고 있다.

분명한 것은 도끼의 비중이 점점 줄어드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다.

며칠 전에 상추쌈 부부와 밥을 먹는 자리에서 허리가 접어지도록 우스운 소리를 들었다.

상추쌈 출판사 대표가 지금은 일시적으로 제주도로 귀양 간 강원도 곰배령 살던 부부 중 남자에게

구들에 대한 상담 전화를 시도했는데 약간 난감한 목소리로 그걸 꼭 해야겠냐고,

저유가 시절의 행복을 권유하더라는 대목이었다. 그 남자는 지난 십 년 이상 강원도 충분히 고립된

자연 속에서 장작 마련과 집짓기 이종격투기로 단련된 싸나이였는데 말이다.

버튼 한 번 누르면 되는 보일러와 로망으로서 주물난로를 제대로 유지하는데 드는 시간은

비교 자체가 ‘일하는 남자’에 대한 모독이다. 닦고 조이고 기름칠 하자는 구호는

주물난로를 관리하는 ‘일하는 남자’에게는 선택이 아닌 필수이며 일종의 징벌이다.

나는 오미동과 화개 각 하나씩의 주물난로를 전담하는 주물난로의 하인이다.

매일 아침 출근하면 난로를 솔로 청소하고 재를 털어 내고 바닥에 흩어진 재와 먼지를

쓸어 내고 막힌 곳을 뚫고 쏘시개를 장만하고 장작 재고량을 체크한다.

일기예보에 따라 예정에 없던 도끼질을 해야 하는 날도 있다.

그리고 가끔 난로 전체에 기름칠을 한다. 쇠는 물이 닿으면 녹이 쓸기 때문이다.

난로는 가동하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직간접의 노동을 하루 한 시간 이상 필요로 한다.

물론 간혹 난로만을 위해 노동하는 며칠은 제외하고 그렇다.

 

 

 


 

겨울. 오미동이건 화개건 출근하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난로를 피우는 일이다.

지난밤의 재를 청소하고 쏘시개를 맨 아래로, 작은 나무를 그 위로 굵은 나무를 그 위로 쌓는

삼 단 정도의 비버 집을 짓고 토치로 불을 붙인다.

연통, 나무 건조 상태, 날씨에 따라 토치를 얼마나 달구게 될지 정해진다.

부탄가스는 화석연료다.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기 위한 연료의 점화는 화석연료로 한다.

부탄가스 잔류 량에 따라 할리우드 액션 영화의 악당처럼 옆으로 총을 누이고 쏘기도 한다.

매일 하다보면 나 같은 몸치와 일치도 요령이 생긴다.

지난 3년 이상 실내 난로를 운영한 남자 사람의 결론은,

장작을 필요로 하는 주물난로는 수렵채취 시절의 생활패턴에 적합한 도구라는 사실이다.

수렵과 채취가 불가능한 계절에 비축한 식량 소비를 최소화 하면서 오로지 난방에만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밥값을 했다는 평가를 받았던 아름다운 시절.

난방은 ‘돈으로 구매’ 하는 것이 가장 편리하다.

‘내가 직접’ 난방의 유지자 또는 프로메테우스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은 숯불갈비 집에

숯 담당 선수가 존재하는 이유를 생각해야 한다.

나와 내 주변 친구들이 제일 싫어하는 손님은 자신의 돈으로 고기를 사 와서 칭찬받을 것이라는

확신으로 숯불 피울 것을 요구하는, 반가워 죽겠다는 표정의 현생인류들이다.

 

 

 


 

사실 오늘 글에 값을 더하려면 통계에 입각한 데이터를 필요로 한다.

그리고 ‘적정기술’ 등의 유행하는 난방 또는 에너지 효율에 관한 이야기도 거론하는 것이 좋다.

그래서 명실공히 귀농귀촌 매뉴얼의 한 꼭지로 소용되는 것이 좋겠지만

나는 역시 공부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이고 각주를 싫어하는 사람이다.

무엇보다 ‘어쩌다보니’ 이렇게 살게 된 사람이라 뭔 論이나 主義를 말할 주변이 없다.

걍 생활하고 눈으로 본 그대로 쓸 수밖에 없다.

힘들게 살지 말고 인터넷으로 잘 마르고 예쁜 장작 주문하면 되지 않느냐는 소리를 실제 듣는다.

맞는 소리다. 마른 장작 1톤을 구매하려면 대략 이십만 원 정도 든다. 운송비는 별도다.

장작회사 소재지에 따라 다르다. 그냥 오만 원 더해서 이십오만 원 정도 든다고 잡자.

간혹 보시던 오미동 주물난로를 하루 8시간 가동한다면 1개월에 1톤 이상 들어간다.

삼십만 원 잡자. 내가 아는 가장 최근 우리 동네 보일러 기름 값은 한 드럼에 13만 원이었다.

오미동 작업장은 한 달에 한 드럼이면 난방이 된다.

시골로 내려 온 이후 기름 값이 가장 비쌌던 겨울은 한 드럼에 27만원까지 올라갔다.

나는 종부세를 내는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인터넷으로 예쁜 장작을 주문하지 않고 산에서 나무를 내린다.

그러려면 산을 가진 친구가 옆에 있어야 하고 예의상 내 나무 작업을 할 때

같이 산에 가서 신음소리라도 내어야 한다. 4륜 트럭을 몰고 산으로 간다.

산에는 사진과 같은 장비들이 있다. 드물지만 내 주변은 그렇다.

장비들은 다시 석유를 달라고 한다. 소형 포클레인, 엔진톱 등이 모두 그렇다.

1톤 트럭에 2톤 싣고 내려오려면 엔진톱에 오일을 두 번 넣는다.

투명한 기름과 녹색 두 가지를 넣어야 한다.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기 위해 나무를 주장할 수 없다.

화석연료가 들어가지 않는 벌목과 치목 방법은 동네 사람들 쪽수가 많아서,

더구나 할 일 없는 젊은 사람들이 득실거려서 우르르 산으로 가서

품앗이를 하는 방법이 있지만 100년 전 이야기라는 사실을 모두 안다.

 

 

 


 

지난번에 이 사진이 나간 이후 사진 속의 엔진톱 사나이가 바로 ‘이장’이라는 설이 돌았다.

아니다. 나는 엔진톱을 단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다. 무엇보다 내 주변 인사들은 나에게 그런 연장을

맡기고 싶어 하지 않고 나는 그들의 그런 생각을 나에게 유리한 그들의 관념이라는 생각을 품고 있다.

1월 1일 오미동 마당에서 엔진톱질을 한 사람은 지리산닷컴 대표다.

과거에 이 고을에 박 과장이라는 부실한 몸을 소유한 인류가 살았는데

그 선수는 장비 다루기를 좋아했고 부상을 자주 당했다. 나는 그런 성격의 인간이 아니다.

여하튼 마당에서 난로 화구 사이즈에 맞게 ‘절단목’ 상태로 만드는 작업을 완료한다.

오미동에서 사용할 것과 화개에서 사용할 것으로 구분한다.

오미동 화구는 짧고 화개 화구는 아주 넓다.

이 과정에서 나의 역할은 조신한 몸가짐으로 대기하다가 선수들이 빠지고 난 다음에

마당을 정리하는 일이다. -,.- 여기서 다시 화석연료를 사용한다.

일이 잘 풀리지 않는 날은 엔진톱날이 상해서 남원까지 가서 수리한다거나 하는 경우도 있다.

 

 

 


 

그 다음 과정은 드디어 내 몫이다. 절단목으로 장작으로 만드는 일이다.

화목보일러라면 절단목 상태로 던져 넣기도 하지만 난로는 ‘쪼갬목’ 상태여야 한다.

나는 대략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도끼질을 한다. 쏘시개 때문에 하루 한 번 정도는 도끼를 잡지만

집중공격의 날은 일주일에 한 번 정도다. 일주일 분량 정도를 도끼질 하는 것이다.

지난 3년 정도 도끼로 애를 먹었다. 겁나게 무겁고 더럽게 날이 망가지고 무엇보다 손잡이가 비뚤어진 도끼였다.

그런 도끼를 보고 한숨을 쉬고 서울로 간 어떤 분이 사진의 도끼를 보내주셨다.

도끼계의 명품이라면서. 나는 그런 거 모른다. 그러나 연장을 바꾼 이후 나의 도끼질이

훨씬 편해졌다는 것은 사실이다. 쩍쩍 나간다.

최대한 다리를 벌린다. 내가 가장 집중하는 것은 부상을 당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잘난 척 하다가는 도끼질 고수고 초보고 간에 사고를 피할 수 없다.

간혹 거대한 옹이를 만나면 도끼를 손에서 놓치기 때문이다.

다리가 풀려도 헛스윙을 하고 도끼날이 내 몸으로 날아오기도 한다.

간혹 주말의 경우 여행 온 중년 남자들이 ‘나도 한 번 해보자’는 체험 농장 버전으로

접근해 오는데 거의 거절한다. 다치면 누가 책임지나?

그런 ‘도시것들’은 도심에서 펀치볼 날리듯이 있는 힘껏 내려치기 때문에 더 위험하다.

도끼질과 옮기기까지 두 시간 정도 하고 나면 나 같은 도서관파 애들은 파김치가 된다.

그런 날 저녁은 보통 삼겹살이다. 두 시간 움직이고 고기를 요구한다.

도끼질 한 날은 심각한 고뇌에 빠진다. 내 몸은 왜 이 모양인가.

 

 

 


 

겨울 동안 내 손은 험한 편이다.

원래 피부가 건성이기도 한데 나무를 만지면 손끝에서 수분이 다 빠져 나가는 모양이다.

이상하다 싶어서 나무 만지는 동생에게 물어보니 그렇단다. 장갑을 당연히 끼지만 대부분 그렇단다.

겨울 동안 손가락 끝은 항상 까칠하고 갈라지고 몇 군데는 가시에 상처를 입은 상태다.

나무를 패는 중에 다가 온 중년 아저씨들이 ‘운동도 하고 돈도 벌고’ 따위 소리를 하는 경우가 있다.

운동과 노동은 다르다.

시골에 사는 사람들 중 의외로 나무 난로를 떼는 이는 적은 편이다.

이유는 지금까지 주절거린 이야기 속에 있다.

무엇보다 이곳에 계속 살던 사람들이 난로를 떼는 경우는 우리 같은 종족과 다르게 ‘일도 아니게’

저렴한 난로와 잡목으로 겨울을 난다.

몸이 저절로 움직이는 사람과 머리가 몸에게 지시를 내리는 사람은 전혀 다른 맥락의 인간이다.

 

 

 


 

지금 관여하는 공간 모두에서 수년 내로 철수를 해야 할 것이다.

내 소유의 공간이 아니기 때문이고 나도 더 늙기 전에 더 이상

이사하지 않아도 될 둥지를 마련하고 싶기 때문이다.

새로운 공간에 자리하게 될 때 여전히 난로를 소유하고 있을 것인지 확신하기 힘들다.

장식이 아닌 가동을 전제로 하는 난로는 점점 늙어가는 나와 대립하게 될 것이다.

좋은 난로는 운영이 편한 난로다. 운영이 편한 난로는 착한 난로다.

이러나저러나 피워진 난로는 나도 좋다.

요즘 오미동 작업장 오후에는 외투를 벗는다.

오후 커피를 진하게 내리고 난로를 찾은 사람들과 둘러 앉아 잡담들을 나눈다.

그들은 나를 찾아 온 것이 아니라 난로를 찾아 온 것인지도 모른다.

 

 

 

 

jirisan@jiri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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