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 나라 새벽 기온이 영하 10도 아래로 내려가는 일은 흔치않다.

아무리 와이파이가 잘 터져도 이곳은 지리산 자락이다. 겨울이면 서쪽 사면 산기슭의

집들은 수돗물이 나오지 않거나 얕게 묻은 관이 얼거나 터지기도 한다.

이곳으로 겨울여행을 다녀 본 사람들은 외딴 곳의 식당이 문을 열지 않아서 투덜거린

경험이 있을 것이다. 언 수도를 달래서 장사를 해야 할 만큼 방문객이 많지 않은데

굳이 하루 서너 명의 손님을 보고 식당문을 열지는 않는다.

일주일 전 한파 시기에 잠자는 집의 보일러 관은 낡아서 물이 흘렀고 난방 효율은

20% 정도였다. 얼음장을 면한 수준의 방바닥이었다. 전기난로와 전기장판이 없었다면

아주 힘들거나 서러운 며칠 밤이었을 것이다.

사오 일을 계속되는 한파에 나는 오미동과 화개 작업장을 드나들며 수도가 얼었는지,

난방기 계통은 이상이 없는지를 체크해야 했다. 관리는 공간 세 점을 이어가면 대략 17km.

19번 국도를 따라, 오른편으로 얼어붙은 섬진강을 흘깃 보면서 ‘사진을 찍을까’ 라는

잠시 생각은 브레이크 밟고, 비상등 켜고 차를 세울 만큼의 열망은 아니기에 그냥 지나친다.

우스운 것은 밤이면 페이스북에서 이곳 페친들이 올린 섬진강 사진을 감상한다는 점이지만.

1월 27일 수요일 화개는 날씨가 어느 정도 화를 푼 다음이었다. 화개천은 이틀 전에 훨씬

많이 얼어 있었다. 금년에는 오리 떼가 자주 보인다. 내가 밖으로 나가 담배를 피우는 순간

녀석들은 상류로 자리를 옮겨간다. ‘저건 맛있을까?’ 그런 생각을 한다.

 

 

 


 

난로에 불을 피웠다. 화개 공간의 한계로 이곳에서 장작을 팰 수는 없다.

오미동에서 팬 장작을 자동차 트렁크에 싣고 내려온다. 40kg 조곡 포대 2개가 운반량이다.

그 정도면 풀타임 하루 정도 난로를 피울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은(1. 27) 화개에 몇 시간 머물면서

노트북으로 몇 장 기획안을 작업할 생각이다. 거의 한 달여 동안 비교적 한가한 시간을 보냈다.

내가 주로 한 일들은 앞 서 이야기한 세 곳의 거점을 돌아가면서 청소를 하거나 손님을 맞이한 일이었다.

청소도, 손님도 없을 경우에는 멍하게 잠시 앉아 있다가 곧 일어서서 나무를 이곳에서 저곳으로

옮긴다거나 하는 자폐적 행동 양태를 보이곤 했을 것이다.

작업장에서 나를 본 사람들의 목격담으로는 그러하다. 왜 그렇게 계속 움직이냐고.

아무 것도 하기 싫다고 주장하고, 다른 이들에게도 제발 일 좀 벌이지 말라고 타박을 하지만

나라는 사람의 본성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는 나를 견디기 힘든 것이다.

화개는 너른 공간이라 전체 공기를 데우는 시간이 많이 걸린다.

노트북을 불 가까운 쪽으로 옮기고 작업할 마련을 해 두었지만 막상 점심 손님을 부르고 커피 마시고

남자들 특유의 돈 안 되는 이런저런 거대한 구상에 잔소리를 하다 보니 두어 시간은 뚝딱 흘러간다.

남자들의 그런 대화에는 대략 10억 대 판돈이 오가고 말에는 일 푼도 값이 매겨지지 않는다.

손님 보내고 뭔 기획안이거나 계약서 같은 것을 좀 토닥여 메일로 보내고

저물어 가는 19번과 강을 따라 다시 경상도에서 전라도로 귀국하는 퇴근 길.

강은 조금 더 풀려 있고 저녁 반찬 구상에 읍내로 들릴 것인지

그냥 역시 있는 김치나 된장으로 한 끼니를 해결할지 궁리를 하는 퇴근길인 것이다.

 

 

 


 

나는 탁상달력을 선호하고 지난 4년 여 시간 동안 매일, 같은 마을에 사는 동생 핸드기 얼굴을

강제적으로 주입당하고 있다. 금년 달력은 매일 음력을 표기해 두어서 제삿날 체크 하기가 편하다.

살다보니 디자이너의 최종 귀착점은 단지 편리다. 감각이나 간지는 별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것은 돈 받고 하는 일에 종종 동원되는 선택사항인 것이고

일상적으로는 ‘달력이라는 정보’가 가장 중요하다.

금년에는 가급이면 매일 내가 먹는 것과 만난 사람의 명단을 탁상달력에 거칠게 기록해 두고 있다.

낙서 같은 이 정보를 파일로 정리하면 내가 누구를 만나고 무엇을 먹고 살고 있는지 통계를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2016년에는 핸드기를 서른여섯 번 만났고 무얼까?를 팔십 번 만났고

처음 보는 손님이 이백 명 정도 왔었고 옥산식당에서 짬뽕을 몇 그릇 먹었다는 통계가 나오는 것이다.

월 별 통계를 내어서 연간 통계를 한꺼번에 산출하는 고통에서 벗어날 생각이다.

1월 31일 일요일 밤에는 2016년 1월에 만난 사람들과 먹은 음식들을 집계할 것이다.

그리고 2월부터는 보다 체계적이고 본격적으로 그 일들을 기록할 생각이다.

그게 뭐냐? 그게 나다.

나는 거창한 철학이나 글, 노래, 춤으로 설명되기도 하겠지만 일상의 이런 사소하거나

잡다한 통계로 보다 더 비설명적으로, 덜 구라적으로, 이른바 객관적으로 설명될 것이다.

 

나는 언젠가부터 사이트건 페이스북이건 먹방을 하지 않으려 한다.

언젠가부터 내가 먹는 것을, 내가 간 식당을 자랑하는 일이 불편했다.

먹방 쿡방이 난무하는 시절에 어차피 먹자고 하는 짓 아니냐고?

그 소리도 ‘부자 되세요’ 만큼 허망하다. 무엇보다 그 대단하고 화려하고,

그 무엇보다 풍성해 미쳐버릴 것 같은 식탁 사진은 나를 살짝 돌아버리게 한다.

우리 일상의 밥상은 그렇게 화려하지 않다. 나만 그런 것인가.

<냉장고를 부탁해> 라는 프로그램을 보았을 때 살짝 놀랐다.

내가 생각했던 책이 있는데 구상한 책 제목이 그것이었기 때문이다. 내용은 전혀 다른 것이다.

각기 다른 소득의 십여 가구 냉장고를 털어서 식재료 상황과 소득, 계급, 정치의식 따위를 설문하고

비감정적으로 기록하는 아이템이었다. 5만불 이상, 3만불 정도, 2만불 가구, 1만불 가구, 3천불 가구,

6인 가구, 4인 가구, 커플 가구, 1인 가구, 남자만, 여자만, 독거노인, 소년소녀 가장 가구.

활짝 열어 두고 촬영한 이른바 ‘서민’의 냉장고는 그림이 될 것 같았다.

그 자체로 책 표지로 바로 사용 하면 되는 것이니까.

팔리지는 않을 책이나 유의미한 통계 또는 분석일 것이라는 작업 개시 자극적 요소는 스스로 있었다.

2015년 세계 GDP 순위에서 대한민국은 11위를 기록했다.

GNP는 짐작하건데 3만불을 넘었다고 발표할 것이다.

3만불이 넘는 나라에서 혁명을 논하는 것은 부장님 개그보다 더 심한 개그다.

분배의 불평등, 빈부 격차를 말하지만 3만불이라는 숫자가 가지는 상징성은

혁명을 불가능하게 만들 충분한 힘이 있다. 사람들은 혁명보다 화려한 먹방을

자신이 누리기를 더 강하게 열망하고 그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최근에 저녁이면 보는 미드가 있다. 대략 시즌5까지 완결된 10년 지난 드라마이고

60편 중 26편 정도 보았다. 이틀 전 밤에 밀수와 마약을 주업으로 하는 그리스 노인이

항만노조위원장이 화가 나서 찾아오자(물론 구린 연결 관계이고) 더 많은 수수료를

약속하면서 달래서 돌려보내며 그런 멘트를 날렸다. 대략 이런 대사다.

 

“좋은 차도 사고 좋은 옷도 좀 사 입어. 너나 나나 그러려고 이 짓 하는 거 아냐?”

 

 

 


 

1월 5일 – 백김치와 김, 간장

1월 6일 – 떡국(노을 언니), 백김치, 김장김치, 텃밭배추와 쌈장

1월 10일 – 텃밭배추(처리하기), 파장, 오징어 불고기

1월 11일 – 소고기국, 김, 간장, 프라이, 김치

1월 12일 – 붉은 무, 쌈장, 토하젓, 계란찜, 김치, 남은 국

1월 15일 – 된장 돼지불고기, 계란찜, 붉은 무, 쌈장

1월 17일 – 말린 서대(개천이 준 것), 된장찌개, 마른오징어 볶음, 김치

1월 18일 – 계란말이, 김치볶음, 강된장(스딸), 김, 간장

1월 20일 – 돼지고기 순두부찌개, 붉은무(정말 소비가 힘들군), 쌈장, 김치

1월 21일 – 어제 남은 찌개, 김치볶음, 김, 간장, 토하젓

1월 23일 – 남은 돼지고기로 김치찌개, 붉은무(정말 제발 좀 없어져라), 쌈장, 김, 간장

1월 25일 – 콩나물 된장찌개, 김치볶음, 김, 간장, 마른 오징어볶음

1월 26일 – 떡국(일탈 것), 김치

1월 27일 – 오코노미야끼(송이 상 남은 재료), 생선찌개, 김치

 

지난 1월 대략적 나의 저녁 밥상은 이러했다.

빠진 날은 외식이었을 것이고 아니면 별 생각 없이 사진을 찍지 않은 것이다.

나는 이 짓을 앞으로 1년 동안 할 생각이다. 내 몸은 내가 먹은 것의 모든 것이기 때문이다.

내 몸에서는 무슨 맛이 날까. 구정 지내고 오면 본격적으로 시작할 것이다.

밥상도 바꿀 생각이다. 가능하면 개다리 소반으로. 이왕 찍는 거 비주얼이 그렇다.

아이폰으로 찍었는데 설 이후로는 카메라로 찍을 생각이다.

50mm 단렌즈로 같은 위치 같은 조명에서 찍을 것이다.

그렇게 1년 저녁 밥상을 기록하고 가급이면 텃밭을 100년 만에 가꿀 생각이다.

밥상을 채우기 위해서 그것이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인데 결정은 하지 못했다.

내 정신력으로 텃밭은 정말 힘든 미션이기 때문이다.

지리산닷컴 사이트 개편 디자인과 변경 메뉴를 무얼까?에게 전달해 놓은 상태다.

아마도 구정 지나면 지리산닷컴 모습이 바뀌어 있을 것 같은데 별 다른 것은 없다.

<바탕화면 내려받기> 메뉴를 날릴 것이고 오늘 예고편으로 나가고 있는

바로 이 <밥상이야기> 메뉴가 추가될 것이다.

무엇인가 거창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힘든 내가 생각해 낸

지리산닷컴 활성화를 위한 특단의 조치다. 무섭지~

시작은 미미하지만 그 끝은 창대해질, 가늠할 수 없는 폭발력을 가진 수소폭탄끕 프로젝트다.

이 밥상 프로젝트는 주민여러분들의 밥상 이야기도 올라와야만 완성이 된다.

그래서 우리가 도대체 무엇을 먹고 서식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그러니까…

소심한 혁명의 시작이다.

 

* 김종옥 형님 사이트 오픈 기념 설장터는 한 번 더 광고한다.

  며칠 전의 지리산편지를 나는 받지 못했다. 메일 발송 에러가 난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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