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 세ː믿

마을이장 2015.12.22 00:39 조회 수 : 17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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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9일.

김장을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배추를 심지 않았다.

그것을 관리하는 일 자체가 귀찮았고 묵은 김치가 제법 남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생각보다 김치는 많이 남아 있지 않았고 주변에서 김장을 전해오니

한 해의 마무리 행사 같은 김장을 약간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얼까?&일탈의 배추를 뽑았다. 겨우내 푸른 채소로 먹을 심산으로 오십 개 정도 심은 모양이다.

‘우리들 배추’ 스러운 질겨 보이는 부실한 자태였다. 거대한 배추는 맛이 없다.

다음 날 비가 예보되어 있었기에 오후에 배추를 뽑고 겉잎을 추슬러서 집으로 왔다.

오래간만에 시래기를 장만했다. 잠시 삶고 물기를 최대한 제거하고 한 번 먹을 분량만큼

위생비닐에 넣어서 냉동실로 던져둔다. 반찬 없을 때 하나 씩 꺼내어 먹을 생각이다.

가급이면 버리는 것 없이 모두 소용하는 것. 이런 행위를 마감하고 나면 기분이 개운하다.

그리고 동물에 비해 월등하게 효율적이고 우월한 식물에게 열등감을 느낀다.

그리고 반성도 한다. 인간의 밥상은 너무 풍족하다.

그 욕구를 충족시켜 나가는 과정이 곧 성공한 인생이라고 배웠다.

교육 또는 시험이라는 과정을 거치면서 ‘그들이’ 주입한 것은 결국 그것이다.

많이 차지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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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저녁은 시래기 국을 끓이고 후배가 보내 온 알 밴 가자미를 구웠다.

겨울이면 몇 년 동안 포항에서 알 밴 가자미를 공수한다.

어린 시절 부산에서는 ‘납세미’가 겨울 밥상에 자주 올라왔다.

여전히 납세미와 가자미가 같은 것인지 다른 것인지 알지 못한다.

지난 수십 년을 생각해 보면 바다 고기도 시절과 어로수역 변경에 따라 주연배우가 많이 변했다.

어린 시절에는 명태가 지천이었지만 이제 드물고 대구는 귀물이 되었다.

간혹 또는 자주 나의 밥상은 과거로 회귀하고 그것을 지향한다.

먹어 본 밥상에의 기억과 재현이 이제까지 내 상차림의 주요한 미션이었을 것이다.

요리가 아닌 밥상 차리기는 그래서 나의 이력과 문화에 대한 냄새이거나 유전자다.

후배에게는 답례로 감말랭이를 보냈다. 녀석의 어머님께서 좋아한다고 했다.

그리고 며칠 지나 구례를 방문했고 함께 놀았고 당연히 일터로 돌아갔다.

그리고 며칠 지나서… 녀석은 내가 멀리 있다는 이유로 나에게 아버님의 부고를 주지 않았다.

녀석의 아버님도 가자미를 드셨을 것이다. 감말랭이도 맛 보셨을 것이다.

12월 초입, 동해바다 어느 아주머니의 손으로 가자미는 과매기와 함께 덕장에서 말렸을 것이고

서울로 구례로 떠나갔다. 내 밥상에도, 서울 어느 집 밥상에도.

내년 겨울에도 가자미를 먹는다면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후배의 아버지를 떠 올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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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후는 김장하는 것을 한 번 보고 싶다고 했다.

12월 11일. 다음 날 성남으로 부자가 함께 출동해야 할 행사가 있어 하루 일찍 구례로 왔다.

양이 얼마 되지 않기에 하루 전 절이고 물 빼고 단지 치대기만 하는 과정은 영후에게 맡겼다.

남자건 여자건 가급이면 음식을 할 수 있다면 삶이 훨씬 여러 겹이 될 수 있다.

살림으로 진입하는 일이다. 돈을 버는 일만 자립이 아니다. 밥상을 스스로 차리는 일도 자립이다.

억지로 권하거나 시킨다고 되는 일도 아니다. 그냥 제 스스로 ‘그것이 하고 싶으면’ 되는 일이다.

이것은 거룩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누군가는 해야 할 필수적인 일이다.

거룩함은 필수항목이 아니다.

2년여 전부터 양념을 줄이고 싶었는데 그게 잘 되지 않는다. 양념 과잉이다.

어린 시절 우리집 김치는 핏기가 없었다. 고춧가루를 그렇게 많이 투입하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대한민국 김치는 충분한 빨갱이 상태가 대부분이다.

어차피 대부분 김치찌개 용도로 소용될 것인데 사실 많은 고춧가루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러나 적은 양념으로 맛있게 만들어 내는 일은 그만큼 경험을 필요로 한다.

내년에는 획기적으로 고춧가루 양을 줄이는 내공을 길러야겠다.

배추는 적절하게 절여졌다. 사실 김장의 51%는 배추 절이기다.

염도, 기온, 시간을 가늠하는 일이다. 지금 맛과 나중 맛까지를 염두에 두어야 하는 일이다.

또는, 지금 맛에 치중할 것인지 나중 맛에 치중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일이기도 하다.

내년에는 배추를 심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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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6일 해질 무렵. 구례에서 화개로 내려가는데 눈발이 어지러이 날렸다.

차 안의 볼륨을 높였고 과속했다. 눈발이 나에게로 더 쏟아지라고.

그리고 그것은 어쩌면 12월스러운 풍경이었다.

나는 책이 많이 팔리기를 욕망하고 그 욕망의 구차스러움을 불편해한다.

그게 세상에 꼭 필요한 일이거나 소리는 아닐 것이라 그러하다.

책을 내고 4주가 지났는데 판매지수가 약간 올라갔다. 이상하다.

통상 이 장사는 초반 3주일 장사다. 어떤 커뮤니티에 간만에 들어갔다.

내 책 선물하기 릴레이를 하고 있었다. 그렇군. 이유는 있기 마련이다.

연락을 했다. 그만해라. 내가 너거들 한테 해 준 것 없는데 너거들 그러는 거 불편하다.

성남에서의 책 관련 행사장에서 사인회를 하는데 어느 분은 열 권 가까운 책을 들고 오신다.

당연히 지리산닷컴 주민이다. 역시 마음이 불편하다.

누군가의 희생으로 책을 팔고 있다는 사실을 목격하는 일이 불편하다.

5주가 지나고 판매지수가 하락하기 시작했다. 내가 소문내고 팔 수 있는 임계점을 지났다는 소리다.

11월 말에 개인 사이트에서 주절거린 소리가 있다.

 

나무 베어서 만드는 책이라는 것을 네 번째 만들었다. 매번 소문을 내었다.

아마도 앞으로도 몇 권은 더 낼 것이다. 남아 있는 계약이 몇 건 더 있다.

내가 책을 내는 이유는 간단하다. 화폐와 교환하는 것이 목적이다. 다른 이유는 없다.

이른바 ‘작가들’도 그러한지 모르겠는데 나는 스스로 작가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이 업종이 면허증을 필요로 하는 일이 아니라 그런 것인지 종종 초면의 사람들은

나에게 ‘작가님’ 이라는 호칭을 한다.

글을 쓰고 책을 내긴 했는데, 사진을 찍고 사진집도 내긴 했는데,

‘작가’ 라는 타이틀을 정서적으로나 현실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그것으로

밥을 먹고 있다는 실감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작가’가 되고자 한 적도 없다.

그 직종은 욕망할 만한 직업이 아니다. 그래서 초면의 누군가를 만나서 스스로를 소개해야

할 대목에서 나는 여전히 ‘웹디자이넙니다’ 또는 ‘이것저것 디자인하는 사람입니다’ 라고 말한다.

지난 16년간 나를 먹여 살린 일은 그 일들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리 나오는 모양이다.

나보다 더 노골적이고 적극적으로 ‘내 책’을 선전하고 사재기 하고 계신 분들이 있다.

메일이나 문자로 진심 가득한 ‘비공개 독후감’을 보내 주시는 분들도 있다.

어찌 반응해야 하는 것인지 어색해진다. 그리고 미안해진다.

괜한 일을 만들어서 타인들을 불편하게 만든다는 자책은 당연히 든다.

다시 또 책이 나오고 스스로 얼굴에 갑옷을 두르고 소문을 내야 하는 일에 대한

회의감도 당연히 생긴다. 이번에는 제법 집요하게 스스로 소문을 내었기에

그 후유증이 이전 책 보다는 더 심할 듯하다.

무조건 감사하고 미안하다. 그냥 그 말이 하고 싶었다.

BBC 채널을 간혹 본다. 물론 다큐멘터리를 좋아하니 그렇다.

조금 전에 늑대 가족을 기록하던 촬영 감독 이야기의 마지막 멘트가 좋았다.

 

북극에서의 내 마지막 밤이다.

막을 수 없는 겨울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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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9일 밤부터 21일까지 대부분의 시간을 화개 월인정원 작업장에 있었다.

주로 밥을 했고 설거지를 했다. 나까지 열네 사람 분량의 밥과 설거지를 하는 일은

제법 따분하고 육체적으로 약간 힘든 일이다.

사람들은 화개 공간에 대해서 이런저런 말들을 하거나 물어오거나 묻지 않고 판단을 한다.

사사로운 대목이 많은 공간이라 나는 속 시원하게 답변하지 못한다.

그러나 답할 수 있는 몇 가지 이야기에 대해서는 답을 하는 것이 좋겠다.

 

1. 이런 건물 지으려면 돈이 얼마나 듭니까?

   제 건물이 아닙니다.

2. 그렇다면 임대료는?

   역시 사사로운 대목이라 말하기 곤란합니다.

3. 벽난로 얼마예요?

   원래 설치되어 있던 것이라 모릅니다.

4. 샹들리에도 있고 인테리어 비용 많이 들었겠어요!

   여러분들이 상상하시는 정도로 들지 않았습니다.

   주변의 피눈물 나는 노가다에 원자재 값을 더하면 됩니다.

5. 화개에서 커피도 팝니까?

   아닙니다. 월인정원의 수업 공간입니다. 영업장이 아니라는 말씀.

   따라서 불쑥 방문해서 커피도 빵도 팔지 않는다고 화난 얼굴 하지 맙시다.

 

이미지로 보기에 제법 화려해 보이니 그에 걸 맞는 뭔가 일을 꾸밀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거나 합리적 추론이다. 더구나 그 공간에 ‘그 여자 남편’이 결부되어 있으니 공작적

관점으로 바라볼 수도 있다. 전혀 구상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화개 공간과 연결해서

뭔가 일을 꾸미는 일은 현재로서는 생각하지 않고 있다.

그냥 집사, 문지기, 김 기사 정도가 나의 역할이다. 12월 수업이 끝이 났고 1월은 방학을

한다고 하니 모르겠다. 1월 유지비용을 빌미로 비자금 확보를 위해 나 혼자 뭔 기획을 할지 말지는.

지난 2년 동안의 맥박수로 보자면 아무 일도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 저 난로에

나무를 공급하는 일은 내가 해야 하기 때문에 내가 저 공간에서 그윽하게 글을 쓰고 있다거나

할 가능성은 많이 낮다고 보면 정확하다.

그리고 화개는 마을이 아니다. 십리벚꽃 길 상가로다. 지난 10여 년 동안 우리가

머물렀던 마을의 정서와 스토리가 존재하지 않는 거리다.

불황에 잔뜩 화가 난 상인들이 얼마든지 불친절할 수 있다는 의지가 가득한 얼굴로

지나가는 차들을 노려보고 앉아 있는 그런 곳이다.

그것은 벚꽃 잎이 날리는 것과는 전혀 무관한 사람이 사는 영역의 일이다.

몇 개 월 화개를 오가며 받은 인상은 그러하다.

정리하자면 상사마을 집, 오미동 작업장, 화개 공간.

세 공간을 오가고 있지만 나는 여전히 재산세를 내는 사람이 아니다.

‘많이 가진 사람’으로 보여지는 시선을 그냥 즐기고 있다. 나쁜 소문은 아니니까.

굳이 손사래를 치며 “나 없는 놈이야!” 라고 악다구니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사실 절대적 기준으로 보자면 코끼리와 범고래, 하이에나에게 미안할 지경으로

너무 많이 소유하고 있다. 등기 상의 소유만 소유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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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1일 월요일. 한바탕 청소를 하다가 의자에 앉았다.

청소는 주방의 음식물 쓰레기를 시작으로 박스와 스티로폼, 비닐류를 정리하고

책상 위를 쓸어내리고 바닥을 닦는 순으로 진행한다. 마흔 평정도 공간이다 보니

쉬어가면서 한다. 보통 이틀 정도 한다. 물론 하루에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청소만으로

하루를 소진할 수 없기에 다른 일을 하다보면 그렇게 된다.

나는 청소를 한다. 고로 존재한다.

나는 주로 청소를 하면서 생각하고 결정한다. 청소라는 행위는 나에게 일종의 禪zen이다.

 

헤아려 보니 2015년에는 <큰산아래이야기>에 15편의 글을 썼다.

원래 지난 8년 정도의 시간 동안 이곳에는 1주일에 한 편 정도의 긴 글을 쓰는 것이 목표였다.

그것을 지켰다면 2015년에는 산술적으로 48편의 긴 글이 존재해야 하는 것이 맞다.

그나마 15편의 글 중에서도 뭔가를 팔기 위한 목적으로 쓴 글이 8편이다.

결과론적으로 양으로 보자면 가동률 30% 정도, 순도로 보자면 다시 절반 정도로 떨어진다.

그러나 해 마다 몇 차례 뭔가를 판매할 수밖에 없는 것이 지리산닷컴의 처지거나 입장이니

약간의 정상참작을 보태면 100점 만점에 20점 정도의 성적표라고 자평한다.

20점 또는 20%. 얼핏 생각해보면 지난 16년 동안 처리해 왔던 일의 강도, 그리고 양과 비교하면

20이라는 숫자는 비교적 객관적 기록지라는 생각이다.

양으로 모든 것을 평가할 수 없지만 양은 곧 의욕의 부피에 비례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무엇보다 양질전환의 법칙에 대한 나의 믿음은 경험적으로 여전히 굳건하다.

2012년에 62편, 2013년에 72편의 긴 글이 있었다. 그 2년은 목표한 실적을 초과했다.

과하면 무리가 발생하고 생각해 보면 2010년에 두 권의 책을 털어내면서부터 2013년까지

도합 4권의 책을 만들었으니 상환하기 힘든 외채까지 끌어들여서 스스로를 가동했다고 본다.

그리고 방전되었을 것이고 이 상태는 과연 회복되는 것인지 갱년기&고착화인지 판가름하기 힘들다.

10여일 남은 2015년 달력을 오른편에 두고 해 넘기지 않아야 하는 밥벌이 일 좀 하다가

이런 산수를 하고 있다.

누군가는 “왜 그렇게 스스로를 갉아 먹냐?” 라며 타박하고

누군가는 “요즘 왜 글 자주 올리지 않습니까?” 라며 물어온다.

그리고 나는 20점짜리 성적표를 내려다보면서 왜 내 마음에 사태의 심각성에 대한

각성의 불길이 일어나지 않는 것인지 매일 생각한다. 서랍 속에는 진작부터 사표가

준비되어 있지만 대책 없이 회사를 박차고 나가서 딱히 창업할 계획도 없는 탓에

그냥 책상만 유지하면서 창밖만 바라보는 만년 과장 모습이다.

그 과장의 책상에 업무용 컴퓨터가 없듯이 사실 나 역시 업무용 카메라도 고장 난

상태인데 수리를 맡기지 않고 있다. 모바일 전성기 시절에 지리산닷컴에서 큰 사진을

올리는 행위의 효용성을 생각하는 것이다.

세밑이다. [세ː믿]. 지리산편지를 발송하기 위한 충전금을 딱 일만 원 더 넣었다.

남은 충전금에 더하면 두 번 정도 더 편지를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소소한 일들과 잡생각들을 주절거렸다. 세밑 인사이기도 하다.

 

 

 

 

jirisan@jiri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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