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 체제 밑에서 농민은 생산자로서의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 정체성을 잃어가고 있다.

농민은 이제 강력한 권력을 가진 세계적인 기업들이 지역의 유력 지주들과 고리대금업자들을

통해서 판매하는 값비싼 종자와 화학물질을 구입해야 하는 소비자일 뿐이다.“

- 반다나 시바(Vandana Shiva) -

 

2009년에 밀가리 장사를 처음 시작하는 글에서 인용한 글이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났고 ‘농민=소비자’ 라는 등식은 경험적으로 더욱 또렷하다.

자본 입장에서 농사(農事, frming) 또는 농부는 소규모 농자재 소비자 집단이다.

내가 직접 알고 지내는 이곳의 농부들은 대부분 ‘농사를 짓는 농부들’이다.

그들은 농사를 농업으로, 스스로의 행위를 확장·발전시키지 못하고 있다.

농사는 행위고 그 결과물을 상품으로 전환할 수 있을 때 농업(農業, agriculture)으로 지칭할 수 있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내가 알고 있는 농부들은 수매 또는 알음알음 판매하고 있을 뿐이다.

농사는 그래서 2차 산업 또는 바이오산업의 단순 소비자 역할을 지속하고 있는 것이다.

농사와 농업의 분기점이 꼭 규모의 문제는 아니다. 농 행위에서 납품까지의 완결성이 기준이다.

지난 3년 정도의 시간 동안 서서히 하향곡선을 그리기 시작한 나의 의욕은

뛰어봤자 부처님 손바닥 안이라는 결론과 나의 ‘자가발전’이 부처님에 의해 계속 활용당하고

있다는 찝찝한 기분 속에 있다는 사실이다. 부처님은 물론 자본주의 시장경제다.

 

 

 

 

j150802001.jpg

 

플랫폼(platform). 승강장이다. 승객들이 타고 내린다. 우리는 승객이다.

IT 영역에서 대표적인 플랫폼은 애플,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트위트 같은 것들이다.

대한민국적 상황에서 카톡 또한 하나의 플랫폼이다.

자기만의 강점을 가진 플랫폼을 가진 기업이 현재 득세하고 있다. 인텔, 노키아, 델 등의

몰락은 플랫폼의 부재에 있다. 앱스토어를 가진 애플과 단지 아이팟이나 아이폰만 생산하는

회사로서 애플을 상상해 보라.

정보통신기술(ICT)의 발달은 기존 플랫폼을 위협하거나 무너뜨리고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10년 전에는, “하나만 택하라면 TV를 선택할래, 인터넷을 선택할래?” 라고 물었지만

이제는 “하나만 선택하라면 PC를 선택할래, 아이폰을 선택할래?” 로 변한 것이다.

기억의 정확성이 떨어지지만 스티브 잡스는 아이폰을 발표하면서,

“애플은 이제 컴퓨터 만드는 회사가 아니라 이동통신회사다.” 라고 선언했다.

그것은 분명 분기점이었다. 컴퓨터만 계속 만들어서 팔았다면 잡스의 신화는 과거지사였을 것이다.

시장은 진즉에 국경이 없는 상태이고 제품의 수명은 단축되었다. 더구나 다품종 소량생산이라는

화두는 이미 10년이 넘었다. 융복합 이야기도 이제 새롭지 않다. 이런 다양한 요구는

결국 플랫폼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활성화된다. 플랫폼에는 교통수단뿐만 아니라

오뎅과 떡볶이도 팔고 잡지도 팔고 옷 가게도 있고 소문도 있고 생각도 있다.

그러나 플랫폼의 가장 경이로운 매력은 돈을 들이지 않아도 마케팅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사람이 몰릴 수밖에 없다. 최근의 카카오택시 상황을 보라. 카테고리 플랫폼의 위력이다.

카카오피자와 카카오치킨, 카카오오입까지 등장하게 될 것이다.

멋진 번호의 대리운전 명함으로 이 강력한 플랫폼을 이길 가능성은 없다.

여기까지는 모두 아는 이야기다.

 

 

 

 

j150802003.jpg

 

많은 지자체 단위에서 이른바 SNS교육이 하나의 트렌드다.

민간에서 시작했건 지자체에서 시작했건 바라보는 방향은 같다.

개별 농가 또는 단위의 농산물을 브랜드화 하고 스토리텔링 구축해서 잘 팔아보자는 이야기다.

농사에 ICT를 결합하지 않으면 우리에게 미래는 없다는 관점이다.

여기에 전국적으로 진행되는 협동조합, 사회적기업, ‘마을 만들기 프로젝트’ 류, 꾸러미 사업,

몇몇 농사 관련 펀드 등이 컨텐츠로 결합하면서 내 페이스북 타임라인의 분위기로 보자면

대한민국 농업의 미래는 얼핏 따뜻해 보인다.

전국적으로 얼마나 많은 수의 강사들이 브랜드화와 스토리텔링, 농산물 판매에서 디자인의 중요성,

마케팅기법을 강의하고 있을까? 지난 10년 동안. 그리고 앞으로 몇 년 더. 새로운 <상록수>의 시절이다.

내 눈에 이 현상은 「농업 유지를 위한 환각 시장」으로 보인다.

천 개의 샘플 중 하나의 샘플이 성공은 할 것이나 우리의 역할은 결국 플랫폼 위의 소비자들이다.

<6시내고향>을 제외하고 아직 인근에서 SNS 기반으로 ‘겁나게 성공한 농부’를 만나지 못했다.

지난 몇 년간 내가 본 겁나게 성공한 농부는 지자체의 상당한 지원이나 보조를 기반으로 시설농사를

짓는 농부들이었다. 그들은 직접 브랜드화, 디자인화, 마케팅 전문화를 이루지 않았다.

보조와 지원으로 그 기능을 구입했다. 고전적인 방법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경우와 비교할 수 없는 성공을 거둔 사람을 안다.

우리들이 이 모든 현상에 열광하면 할수록 무조건 엄청난 성공을 이룰 수밖에 없는 한 사람.

저커버그라는 유대인 사람이다. 플랫폼의 설계자다. ICT플랫폼의 최대 수혜자는 항상 설계자였다.

대기업이 모든 작은 것들을 잡아먹듯 플랫폼 역시 거대한 몇 개로 소비자들이 몰려든다.

나는 한국 농업 문제의 해결을 위해 ICT 개념을 더해야 한다는 명제에는 당연히 동의하지만

기존의 플랫폼 위에서는 그 플랫폼의 위대함을 찬양하는 소비자 역할 이외에는 별 먹잘 것 없을 것이다.

스타 한 명을 기준으로 설정하는 놀이는 개천에서 사법고시 장원급제한 레퍼토리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j150802002.jpg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을 위한 SNS 놀이가 아닌,

기존의 플랫폼을 통해서 농산물을 판매하는 것이 암묵적인 목적이라면 지금까지 방식 즉,

교육 중심의 관점으로는 힘들다. 공부했으니 이제 세상으로 나가서 실현하라는 이야기와 다르지 않다.

여전히 텃밭 이야기 또는 귀농귀촌 스토리로서의 농사가 아닌, 전업적 농부가 일하는 중간에 사진 찍고

저녁에 블로그나 페이스북에 농사이야기를 올린다는 아름다운 상상은 현실적이지 않다.

간혹 그럴 수는 있지만 나처럼 16년 동안 그럴 수는 없다.

그것은 내가 아주 가끔 텃밭을 가꿀 수는 있지만 10년 동안 농사지을 가능성과 비슷한 확률이다.

여전히 나에게는 사이트를 만들어 달라는 의뢰가 들어온다.

구례에서의 요구는 농산물 판매 또는 펜션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지난 9년 동안 내가 막상 제작한 사이트는 농부 홍순영과 고택 쌍산재를 제외하고는 없다.

전부 설득해서 돌려 세운다. 만들어봤자 가동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례로 보자면 자신을 출력할 플랫폼을 구하고자 하는 요청이었다.

공동 플랫폼으로 직접 진입할 여력이 되지 않아서 개인 플랫폼을 만들어 달라는 것인데

경험이 짧고 얕아 그런 것인지 내가 본 유형은 두 가지로 정리된다.

하나는 농산물은 가졌지만 말을 할 수 없고 다른 하나는 말은 할 수 있지만 농산물이 기존 시장에서 미달인 경우다.

두 가지를 모두 가졌거나 가질 수 있는 자본을 가진 경우가 시장으로 진입할 수 있을 것이다.

해결책은 뭔가? 뻔하다. 그 결함은 제외하고 제 각각 가진 장점들을 하나의 플랫폼으로

집결하는 방법 이외에는 없다. 플랫폼의 사이즈가 그것을 보장하지 않는다. 몸에 맞는 공동 플랫폼을 만들어야 한다.

연초에 <헌거게임>이라는 구상을 얼핏 발설하고 곧 철회했는데 이를테면 <헌거게임>은 그런 플랫폼에 관한 구상이었다.

농업 기반의 생산, 가공, 유통, 이야기, 생각, 공연, 도박, 사기, 열정, 재미, 감동… 따위를 버무려 넣고

커다란 양푼에 비빔밥을 만드는 생각이었다.

이행 단계로서 지리산닷컴의 로드맵은 그 길이거나 도사연한 소리를 주절거리는 사이트 또는

지역 언론으로 성격 강화 이외에는 없다. 그 문턱에서 명백하게 주저앉거나 주저하고 있거나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이렇게 주절거리는 것은 사이트 이미지에 좋지 않다는 충고를 간혹 듣곤 하지만 뭐…

같이 늙어가는 마당에.

 

 

 

jirisan@jirisan.com

공지 지리산닷컴 사진사용에 관해 마을이장 2013.05.24 20374
291 생각 / 응원 [28] file 마을이장 2017.03.17 1424
290 外道 / 남도 서쪽 바다 [33] 마을이장 2017.02.15 2180
289 생각 / 또 보내다 [22] 마을이장 2017.02.07 1999
288 그곳 / 눈 [42] 마을이장 2017.01.21 2321
287 월간 <노력> - 003 / 최광두-작업 중 이야기 [12] 마을이장 2017.01.13 1424
286 월간 <노력> - 002 / 최광두-단장(斷腸) [18] 마을이장 2017.01.06 1417
285 월간 <노력> - 001/ 최광두-말씀을 받다 [21] 마을이장 2016.12.25 2128
284 外道 / 남도 몇 걸음 [21] 마을이장 2016.11.24 1793
283 그곳 / 게으른 가을 풍경 몇 컷 [43] 마을이장 2016.11.14 2187
282 外道 / 누군가는 싸우고 있다 [27] 마을이장 2016.10.09 8743
281 그곳 / 섬진강에서 어느 밤과 낮 [20] 마을이장 2016.08.29 2454
280 생각 / 안부 [23] 마을이장 2016.08.23 1837
279 그곳 / 노고단 음력 7월 5일 밤하늘 [22] 마을이장 2016.08.08 1928
278 老力 / 제 부모님은 보잘 것 없는 분들이셨습니다 - 구독신청 [26] 마을이장 2016.07.27 2535
277 생각 / 형, 빛을 잃은 것 같아요 [39] 마을이장 2016.07.25 1815
276 그곳 / 노고단 7월 23일 아침 - 공무원 K형 [10] 마을이장 2016.07.23 1399
275 老力 / 월간 <노력老力> 기획안 발표 [50] 마을이장 2016.07.10 1996
274 그곳 / 노고단 7월 7일 아침 - 공무원 K형 [19] 마을이장 2016.07.07 1757
273 外道 / 소라똥 당신 [28] 마을이장 2016.06.24 2081
272 장터 / 햇밀, 호객呼客을 위한 호객胡客 [40] 마을이장 2016.06.14 3088
Copyright© 2007. All Rights reserved www.jirisan.com 4dr@naver.com | 지리산닷컴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