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 어느 책의 에필로그

마을이장 2015.07.21 22:04 조회 수 : 2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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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5월 25일 월요일. 나는 다시 중앙고속도 위에 있었다.
동명휴게소에서 국수를 한 그릇 먹었다. 전남 구례에서 출발해서
여전히 통행료를 징수하는 88농로를 지나 대구를 기점으로 북으로 방향을 전환하면
기나긴 운전의 피로와 긴장감에서 제법 벗어난다.
이제 무조건 북쪽을 바라고 오르면 되는 것이다.
사실 더 가까운 길은 구례에서 바로 북쪽으로 방향을 잡고
판교에서 서울외곽순환도로를 타고 춘천으로 들어가는 길이지만
나는 단 한 번도 그 길을 이용한 적이 없다.
88농로라는 초대형 악재에도 불구하고 나는 중앙고속도로,
북부경북의 약간 나른하고 한적한 풍경을 선택했다.
석가탄신일이었지만 도로는 한적했다.
몇 번째 길이지? 입소일 한 번, 첫 휴가 한 번, 부대개방 행사 때 한 번. 그러면 네 번짼가.
여하튼 오늘이 마지막이 될 것이다.
다음 날, 5월 26일이면 영후가 나온다. 21개월이 흘렀다는 소리다.
한 주 전에 이른바 말출을 나왔었다. 따라서 아이를 본다는 설렘은 약하다.
설렘보다는 앞으로의 인생 여정에 대한 생각이 더 많았다.
2013년 8월 27일 오후 2시경 감정 상태로 보자면 도저히 오지 않을 것 같았던
2015년 5월 26일이 눈앞에 닥쳐 있었다. 그것은 정말 닥쳐와 있었다.
나는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알지도 못했다.
또는 그 무엇도 준비할 필요가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몇 개월 놀다가 복학한다는 일반적 시나리오가 아니기 때문이다.
영후는 바로 세상으로 나가야 한다.
분명한 것은 일단 그냥 좋고 안심이 된다는 사실이다.

 

좋게 보면 각별한 것이고 싸늘하게 보면 유별난 것이다.
아이가 제대하는 날, 500km를 운전해서 올라가는 아빠는 그리 흔하지는 않을 것이다.
직장이 없어서, 시간이 많아서 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각별하건 유별나건 그 모든 지적을 인정한다. 말출 나온 영후에게 의견을 물었다.
내가 데리러 가는 것이 좋겠냐고. 주로 책이지만 짐도 제법 될 것이다.

“책의 마무리를 위해서 아무래도 그게…”

녀석은 이미 편집에 들어가 있었다.
입대하고 1년 정도 지났을 때 이 책을 만드는 결정을 내렸다.
원래 나는 염두에 두었으나 꼭 해야 한다는 생각은 없었다.
여전히 납품 시기를 넘긴 몇 권의 책 계약이 나를 압박하는 상태였다.
더구나 이 일은 시작하면 마감이 너무 또렷한 작업이었다. 마감은 항상 고통을 수반한다.
사실은 아이의 군대 생활을 그나마 생산적으로 강제할 수 있는 미끼로서 던져 둔 말이었다.
다만 입대 이후 정기적으로 ‘세상에 관한 목차’를 정하고 순차적으로
종이 편지를 보낼 것이라는 결심은 확고했다. 그것은 일종의 ‘강의’였다.
영후는 대학을 가지 않았고 군에 있는 그 허망한 시간 동안 나는 이를테면
대학에서의 인문학 교양강의에 해당하는 내용들을 교수(敎授)하고 싶었다.
그것은 등록금을 지출하지 않은 ‘나 같은 아빠가’ 할 수 있는 일종의 의무교육이라고 생각했다.
또는 가족공동체가 형성된 최초부터 농경사회까지는 모든 아비가 자식에게 행했던 행위이기도 하다.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에서 교육은 교육기관과 직업인으로서 교육자들이 전담했다.
부모는 주로 돈을 벌고 부양하는 것으로 자신의 역할을 제한 당했다.
시스템이 그리 몰아간 것이기에 당한 것이 맞다.
부모는 자식 교육 상태를 체크하는 사람이 아니라 교육의 주체 중 한 명이다.

목표했던 양을 모두 보내지는 못했지만(군대라는 곳이 그래도 휴양시설은 아니기에)
일종의 커리큘럼 화 된 책을 순차적으로 보냈다. 그런 날은 물론 긴 <강의편지>가 동봉되었다.
답장으로 오는 편지를 보자면 실제 읽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격주 또는 한 달 간격의 종이뭉치 소포는 자체로 흐르는 시간의 퇴적층이었다.
군바리들이 달력에서 오늘을 하나씩 지워 나가듯 나는 그렇게 책과 글의 목차를
하나씩 지워나가면서 아들의 무사귀환을 기다렸다.
그리고 나 역시 점점 마감의 압박에 시달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제대하기 전에 끝내지 않으면 ‘영후에게’로 시작하는 편지를 작성할 가능성은 없다.
결국 나에게도 이 일은 제법 족쇄가 되었다.

 

영후도 뜻밖의 미션을 만나서 쉽지 않았을 것이다.
초기에는 우편으로 보냈지만 부대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중반 이후는 면회 또는 휴가를 나올 때
작은 글씨로 빼곡한 십 수장의 종이를 들고 나왔다. 휴가의 이틀 정도는 항상 키보드를 두들겨야 했었다.
그림과 글의 내용을 확인하는 것이 우리 부자의 만남에서 우선순위 업무였다.
강의의 주체가 아빠이니 내 글이 주를 차지하는 책이지만 인세를 절반으로 나누는 계약서를 작성했다.
그리고 그것을 출판사에서 영후에게 우편으로 보내고 내용을 확인받는 따위의 과정을 거쳤다.
그 역시 세상살이에 관한 일종의 교육이자 훈련이었다.
물고기를 그냥 주는 것이 아니라 낚시하는 법을 가르쳐 준다는 둥의 고상한 이유가 아니라
‘돈을 받고 파는 물건’을 만드는 자의 자세와 태도를 압박하는 것이었다.
퀄리티가 되지 않으면 팔 수 없다는 실전이었다. 나는 항상 훈련보다 실전을 선호했다.
그림과 글에 대한 클레임과 컴플레인은 당연히 발생했다.
2015년 7월 21일 지금, 나는 마지막 원고를 쓰고 있고 영후는 마지막 그림을 남겨 놓고 있다.
어처구니없거나 우스꽝스럽지만 제대하고 여섯 주가 지나서 영후는 다시 근무하던 부대가 있는 동네로
카메라를 들고 다녀왔다. 딱 한 장의 그림이 필요한데 군바리의 서러운 느낌이 살아나지 않았다.
출판사는 조심스러운 척 ‘현장 재투입’을 제안했고 나는 말렸고 영후는 수용했다.
사창리에 도착한 영후의 전화를 받았다. 기분이 어떠냐고 물었다.

“화가 나네.”
“그 느낌을 그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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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을 그대로 내뱉는 것에 대한 갈등이 있었다.
나의 소리들이 아들에게 현실적인 도움이 될 가능성은 희박하기에 그렇다.
글이란 것은 붙박이 가구다. 불과 51%의 확신으로 떠들었는데
읽는 사람들에겐 나의 확신으로 전달된다. 그래서 글에 대한 책임이란 족쇄가 채워진다.
솔직히 비판과 비난에 대해서 당당하게 맞설 자신이 없다.
편지를 쓰는 동안 나는 항상 ‘이렇게 말해도 되나?’ 라는 내 안의 거센 파도를 넘어서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결국 하나의 일관된 입장으로 글을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권영후가 이제껏 보아 온 아빠이기 때문이다.
기획되고 연출된 다른 아빠를 보여줄 수는 없었다. 그리고 권하고 싶다.
군대 간 아들에게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라고. 가장 솔직하게.
아직 영후의 제대 이후 모습에 대한 단상은 없다.
영후 역시 제대 이후 두 달 동안은 이 책의 정리와 마무리에 나름 매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완전히 탈고하는 날 우리 부자는 어쩌면 제대라는 것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할지 모르겠다.
바뀐 현실은 공중전화가 아닌 핸드폰으로 전화한다는 것,
군대에 있을 때 보다 통화량이 훨씬 줄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어쩌면 아무런 일도, 일말의 애틋함도 없었던 사람이었던 것처럼 그렇게
제 각각의 하루를 보내고 있다. 물론 이리 될 것이라는 것은 예정되어 있었다.

군대 안에서의 사건사고들에 마음이 휘둘리지는 않았다.
영후와 통화를 하면서 부대 안에 별 다른 분위기가 있는지 물어보면 특별한 변화는 없었다.
또는 관심이 없어 보였다. 이미 ‘아군만 조심하면’ 된다는 농담 아닌 농담은 현실이 되었기에
부대에서 취하는 조치는 온통 국방이 아니라 ‘사고 방지’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래서 가급이면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듯했다.
영후가 입대하고 6개월 정도 지났을 때 두통과 마비 증상이 온 적이 있다.
부대 파견 상황이라 외박은 되지 않았기에 영후 엄마가 춘천을 두 번 올라갔다.
몇 시간 면회였다. 그때 중대장과의 면담에서 영후가 관심병사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살짝 심쿵했다. 이유가 뭐지? 전화로 이야기하지 않은 사고가 있었나?
입대하기 직전에 같은 증상이 한 번 있었다. 나는 부모로서 나름 진단을 했다.
군대 가기 정말 싫었고, 이등병 생활 말년이 제법 견디기 힘들다는 마음의 소리였을 것이다.
선임과의 충돌이 있었다. 마편. 그러니까 <마음의 편지>라는,
이전으로 보자면 소원수리서에 해당하는 것을 작성할 때 적개심을 가감 없이 드러낸 모양이다.
요주의 대상이다. 이후 통화에서 그 문제를 영후에게 직접 거론하지는 않았다.
정기휴가가 얼마 남지 않았다, 항상 긴장하고 눈 계단 이동할 때 다치지 않도록 하라,
따위의 말들을 주절거렸다. 그리고 아주 간혹 생각했다.
만약에, 만약에 말이다.
내 아들이 사건의 중심에 등장한다면 가해자를 택하겠나 피해자를 택하겠나.
답은 항상 살아남는 쪽이면 좋겠다는 우문우답이었다.

세월호를 탄 아이들의 대부분이 살아서 나오지 못했다.
임 병장 사건이 터졌다.
윤 일병 사건이 터졌다.
2014년 봄과 여름, 대한민국은 참담했다.
다른 일로 통화나 메일을 나누다가 가까운 이들은 말미에 영후의 안부를 물었다.
그리고 내 마음 속의 걱정에 대해서도 염려해주었다. 고마운 일이다.
사실 타인의 자식이 지금 무엇을 하는지 염두에 두는 일이 그리 쉬운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일상으로 나와 관련된 주요 사안이 아니면 대개는 망각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군대 안에서의 그 참람한 사건들은 ‘아, 그 사람 아들이 아직 군대 있지?’ 라는
되새김질을 시켰을 것이다.
2014년 봄 그 일련의 사건사고들에서 절대다수의 부모들은 제 새끼와 자신을 대입했다.
그 일들은 웬만한 사건이 아니었다.
우리는 여전히 그 일들의 감정 선 속에서 일상을 영위하고 있다.
그러다가 문득 뉴스와 SNS를 통해서 다시 그 일들을 만난다.
나는 지금도 그 순간 가슴이 시리다.
임병장은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뉴스를 보면서 내가 죽은 아이들의 부모라면 임병장의 사형을 원할까?
윤일병 사건의 가해자들은 1심에서 살인죄를 적용받지 않았다.
내가 윤일병의 부모라면 가해자들의 사형을 원할까?
세월호가 서해 바다에 누운지 1년이 훨씬 지났지만
특별조사위원회는 단 한 번도 가동되지 않았고 304명의 유가족들은
초인적인 참을성을 유지하고 있다.
내가 서해 바다를 떠도는 아이의 부모라면 아직까지 법을 지키고 있었을까?
대한민국은 우리에게 참 가혹한 질문을 던지곤 한다. 그리고 이미 국가는 없다.
영후는 출발부터 B급 관심병사였다.
부모가 이혼했거나 경제적으로 힘든 가정 출신 아이는 이미 그렇다.

영후가 제대하면 큰 소리로 “우리 아들 나왔다아~!” 하고 외칠 줄 알았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 아니 그럴 수 없었다.
지인들의 아들들이 철책으로, 고성 바닷가로 입대했다.
그 아버지들이 나와 같은 증상을 보이는 마음을 페이스북에 올리고 있다.
90일 병이라고 다독였다. 훈련소 수료식 다녀오면 50%, 신병위로휴가 나오면
완치되는 병이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겪어보니 나 역시 그러하더라고.
그러나 다른 이의 아들 사진을 보면서 내 마음에도 다시 살짝 발병 조짐이 보이곤 한다.
여전히 누군가의 아들들은 입영통지서를 받아 들 것이고 그 아비는 그 날이 다가올수록
저녁 담배 연기를 멀리 날려 보낼 것이다.
당신 아들은 안녕하시냐고? 영후는 제대했다. 그러나 안녕하지 못하다.
누군가의 아들들이 ‘국방의 의무’ 라는 거룩한 사명으로 입대를 계속 하는 한
내 아들은 안녕하지 못하다.
군대는 전쟁을 하기 위해 젊은 아이들을 집결시켜 둔 곳이고
전쟁을 예정한 국가가 있는 한 내 아들은, 그리고 내 가족들은 안녕하지 못하다.

나는 권영후의 아빠다.
그리고 나는 사형 선고 받은 임병장의 아버지다.
그리고 나에게는 윤일병이라는 아들이 있었다.
그리고 나에겐 아직 진도 앞바다에서 나오지 못한 아들딸이 있다.
그 모든 아버지의 이름으로 외친다.

“전쟁을 반대한다! 세상의 모든 군대를 해체하라!”

 

 

 

* 책은 9월 초 무렵에 나올 듯하다.

 

jirisan@koro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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