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10시 30분 무렵에 인월 지나 팔령재 초입으로 들어섰다.
초소 없는 국경선이다. 백제에서 신라로 들어가는 것이다. 함양제분소로 가는 길이다.
정확한 가공량을 체크하기 위해서 산을 넘어가는 것이다.
이틀째 비가 추적거리고 있다. 많이 온 것은 아니지만 내가 돌아다니는 지역은
뉴스에 나오는 가뭄 지역은 아니다. 여전히 논에 물이 그득하고 밭작물은 싱싱해 보인다.
차 안에서 며칠째 USB 음악 A폴더는 에드 시런이다. 켄드릭 라마라는 랩퍼의 음악과 함께
요즘 가장 자주 듣는 음악이다. 모두 내 아들 나이 정도다.
에드 시런과 켄드릭 라마는 동시대의 젊은 친구들 중에서 명백하게 차별성은 가지고 있다.
천재의 하향평준화 경향은 꼰대로 접어 든 나의 개인적인 의견일 수도 있지만 광고적
치장을 하자면 하향 평준화된 당대의 천재라고 불러도 될 것이다.
여하튼 음악을 찾아서 듣는 연대기를 지난 지 한참이라 우연히 귀에 얻어 걸린 음악 중에서
끝까지 들리는 음악은 검색해서 살펴보는 편이다.
혼자 운전할 때에는 자식 보다 음악과 담배가 낫다.
그 시간의 전부는 아니지만 그 시간이 그래도 생각이라는 것을 할 수 있는 좋은 환경이다.











30분 정도면 수량 체크는 끝이 난다. 굳이 오지 않고 전화로 확인해도 되는 일이다.
그러나 일이 진행되는 동안 ‘비효율적인 성의’는 항상 일과 일이라는 빵 사이에
포개지는 패티 같은 역할을 한다. 단발성이 아니라면 힘듦은 나누는 것이 좋다.
일하시던 분들에게 저렴한 점심을 대접하고 젊은 제분소 사장과 함양 상림 앞 커피점에 앉았다.
함양 상림은 이번 밀가리 일을 하면서 거의 삼십 년 만에 찾았는데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사실 아직 상림 숲을 거닐지는 않았다. 이번 일이 끝나기 전에 한 번은 거닐 생각이다.
늘어 선 식당가와 커피점은 지자체의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나에게 함양은 그냥 안의면 삼일식당을 찾기 위해 지나치는 길목이었다.
어쩌면 나는 젊은 사장을 가늠했을 것이고 또는 토닥였을 것이다.
서른여섯. 나는 서른여섯에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아주 힘든 시기였다는 것 이외에
세부가 기억나지 않거나 기억할 필요 없다. 분명한 것은 그것이 악이건 깡이건 치열했을 것이다.
에드 시런의 공연 모습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 바로 ‘치열함’이라는 지금은 잃어버린 감정이다.
통기타 하나를 들고, 관객이 많건 적건, 카메라 앞에서의 광대 짓이건 그는 치열하고 열정적이다.
음악은 음악으로 말하면 되는 것이다.
커피는 커피로 말하면 되는 것이다.
디자인은 디자인으로 말하면 되는 것이다.
나머지는 장식이다. 평가에서 장식은 걷어내면 된다. 소수의견이다.











함양에 오면 밥을 먹고 이 집에서 보통 커피를 마신다.
기본 커피를 선호하지만 넘어 갈 고개를 염두에 두고 나는 이 집에서 달달한 커피를 주문한다.
제분소 모터가 멈추었다. 내가 아는 모든 제분소와 방앗간의 모터는 이 시기에 몇 번씩
애를 먹인다. 그때가 쉬는 겨를이다.
비는 시원찮게 내렸다. 카메라를 들고 오지 않았기에 아이폰으로 몇 장의 사진을 찍었다.
그것은 딱히 목적을 가진 셔터가 아니라 그냥 약간 뭔가 글을 쓰고 싶다는 간만의 욕구가
느껴지기에 하루를 기록하기 위한 재료 마련 같은 것이었다.
구례와 다르게 이곳에서는 이삼십 대로 보이는 젊은 사람들을 간혹 본다.
그들이 함양 사람들인지 길 위의 사람들인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대략은 알 수 있다.
구례 인구 이만칠천 명 정도, 함양 인구 사만 명 정도. 큰 차이다. 인구와 국경선 문제로
예산도 차이가 많이 난다. 보도블록과 가로수 같은 것에서 그런 차이를 느낀다.
그런 차이는 처음으로 전라도 땅을 밟았던 삼십 년 전에 약간 놀라면서 느꼈던 점이다.
지역이 아닌 지방은 어차피 구걸경제다. 재정자립도 10% 왔다 갔다 하는 고을은 그렇다.
이 씨 왕조 시절로 보자면 어차피 유배지다.
어쨌던 함양에서 드물지 않게 보이는 젊은 사람들의 존재는 약간 부러운 풍경이긴 하다.
젊은 사람이 희박한 마을이 미래를 논하기는 힘들다. 그것은 막연하거나 거의 추하게
젊음을 찬양하고 스스로 그 연대기로 침투하려는 배불뚝이 아저씨들의 가열한 노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집단의 자연스러운 세대 구성을 말하는 것이다.
제 각각의 역할이 있는 마을.
아이가 아이답고 청년이 청년답고 중년이 중년답고 노인이 노인다운 그런 마을.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를 보고 나온 저녁은 유쾌했다.
감독 조지 밀러는 우리 나이로 딱 일흔이다. 그것이 노인다움이다. 점잖은 척 뒷짐 지고
결국은 꼰대 근성을 표현하고야 마는 것이 노인의 전형적 형상이 아니다.
내가 에드 시런을 들을 수 있듯이 에드 시런은 조지 밀러의 영화에 열광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부인할 수 없거나 용서하기 힘든 것은 조지 밀러가 기술로 영화를 만들었다면
결코 그런 에너지를 전달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도대체 칠십 노인의 마음에 남아 있는
열정의 정체를 알 수 없다는 말이다. 매드맥스 감상평 중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영화를 보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월인정원 曰,


“저런 정신으로 빵을 만들어야 해!”


약간 무서웠다.











역시 이번 밀가리 시즌이 끝나기 전에 함양 읍내를 한 번은 걸어 볼 생각이다.
왜냐하면 이 네거리에서 좌 베스킨, 우 던킨, 포커스 밖으로 롯데리아 있기 때문이다.
시골사람들에게 프랜차이즈의 존재 유무는 선진국과 후진국을 가름하는 기준이기 때문이다.


“우와! 던킨 있다아~!”


백제국에서 신라국으로 스티커를 붙이러 갔던 날,
차 안의 모두 합쳐 이백 살 두 쌍의 부부는 놀라운 탄성이자 탄식을 뱉었다.
이정현이 당선 되고 순천에 버거킹이 입점했을 때 나는 ‘이것은 선거 결과’ 라는 분석을 내렸다.
심지어 구례는 읍내가 보통 이 층인데 함양은 삼 층이다. 올려다보기 어지러운 마천루다.
이른바 팔팔고속도로라고 주장하는 팔팔농로를 건설할 당시가 함양의 전성기였을 것이다.
읍내는 퇴색한 전성기의 분위기를 고수하고 있다. 나는 여전히 함양이 무엇을 주요한 상품으로
먹고 사는지 알지 못한다. 6월에는 도로 변에 양파 산성이 쌓여 있었다.
양파와 마늘 값이 비교적 좋았고 정부는 바로 양파와 마늘 수입을 결정했다.
부당함 앞에서 나는 분노 보다 시니컬해진다. 예단은 단 한 번도 빗나가지 않았고
단지 확인될 뿐이었다. 나는 점점 비뚤어져 간다.
남은 여생을 진행할 만 한 프로젝트에 관한 구상은 수백 가지 늘려 있지만
진행할 전투력 또는 진정성이 없다. 벌였던 일의 목적은 ‘세상을 망하게’ 하려고 했던 일들이었다.
그런데 그런 일들을 카피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카피하라고 했으니 그것은 문제가 없다.
그런데 타인은 ‘세상을 흥하게’ 하려고 그 일들을 수행하는 것 같다.
나는 기존 시장을 망치고 싶은데 타인들은 기존 시장에서 칭찬 받는 일에 몰두하는 것 같다.
몇 가지 일들에서, 지난 몇 년간, 무엇보다 우리가 사는 환경을 결정하는 정치와 경제에서
결단코 아무런 희망을 발견할 수 없다.
시장을 붕괴시키는 방법,
조세저항을 광범위하게 조직하는 방법,
이런 것이 나의 운전 중 머릿속 생각의 대부분이다.
함양에는 베스킨라빈스와 던킨도너츠와 롯데리아가 있다. 조금 더 비뚤어질 이유가 생겼다.











커피 마시고 다시 왔던 길을 넘어간다.
이제 팔령재 넘어 함양에서 인월을 바라고 차 안의 볼륨을 높인다.
마지막 호밀을 운반하고 돌아오는 길에 이 고개를 넘을 때 김민기의 <두리번 거린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김민기 노래, 특히 이런 가사의 대부분을 이십 대 때 썼다는 게 믿어져요?
이십 대 때 사유의 깊이가 이 정도란 게 가능해요?”


옆에 있던 3류브로커가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형님, 어차피 천재는 이십 대요. 늙어서가 문제지만…”


그렇다.
어차피 이십 대도 아닌데 밀가리 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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