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 두 개의 한 그루 나무

마을이장 2015.03.30 18:33 조회 수 : 4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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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7시 화엄사.
각황전 뒤로 돌아서 들어서자 카메라 다릿발이 국수다발로 서 있다.
이 사진 찍고 걸어 들어가는데 뭔 대형사건 피의자가 등장할 때 셔터 소리같이
일백 대의 카메라가 일제히 연사 셔터 소리를 낸다.
유병언이 화엄사에 숨어 있다가 발각 난 것인가?
아… 죽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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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사 홍매는 유명하다.
나는 지난 10년 동안 의도적으로 이 나무의 만개시기에 이곳을 찾지 않았다.
한 번도 보지 않았지만 이런 풍경이라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사진을 찍을 수 없다. 홍매는 만개했고 나는 이런 상황에서
사진을 찍을 수 없으니 이 유명한 홍매를 내가 제대로 담을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일제히 연사 셔터를 눌렀던 조금 전 상황은 이랬다.
스님이 한 분 걸어 간 것이다. 탄성이 흘렀다.
놓쳤다는 탄식도 들렸고 욕도 들렸다. 이런 것.
“아, 저기 사람이 걸리네. ㅅ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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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매 주변으로 카메라를 들지 않은 여행객이 다가 서면 난리다.

“비키세요!‘
“나가!”

40~60세로 추정되는 대한민국 중년 남자들이 카메라 부대의 80%다.
나라를 구하고 말겠다는 결기가 각황전 마당 전체로 전달된다.
대한민국 중년 남녀 사람들의 분야별 사이비 오타쿠 현상은 한 마디로 목불인견이다.
평생 무엇이건 따라 한 탓에 그 이외의 판단력은 없다.

그들이 스무 살 때에 욕했던 중년들 모습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나무 한 그루는 그렇게 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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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미동 작업장으로 왔다.
마당의 살구나무 한 그루. 그는, 또는 그녀는 호젓하다.
운조루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흘깃 눈길을 주고 운조루로 향하지 이 나무 앞으로
다가서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왜냐하면 나무 뒤로 별로 아름답지 않은
옛 마을회관 벽돌집이 있으니 사진이 되지 않는 것이다.
월인정원과 나의 작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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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사 홍매가 화려한 연예인 이미지였다면
이 살구나무는 마을 안길에 사는 조신한 누이다.
‘이르미협동조합’ 팀이 만든 월인정원의 마당 화덕은 이 나무와 잘 어울린다.
토요일 오후에 지리산닷컴 K형이 말 없이 화덕용 가는 가지 나무를 부려 놓고 갔고
월요일 이 아침에 작업장에 오니 무얼까?가 엔진톱으로 모두 잘라 놓았다.
덕분에 산다.
그리고 살구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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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하다가 차를 뒤로 물리고 사진을 찍고 있다.
오늘이 그날이고 이미 꽃잎이 조금씩 날리고 있으니 내일은 아니다.
운조루 창고가 보이고 약간 낮은 자세의 이곳이 내가 담배를 피는 장소다.
꽃 지면 잎이 마당을 가려주기 때문에 ‘숨어 있다’는 나의 의사는 전달되지만
내가 마당에 있음도 전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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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댁이 복지관 버스를 기다린다.
화엄사 홍매 뒤에서 ‘그들이’ 그토록 애타게 기다리던 ‘지나가는 스님1’도 있다.
카메라 다리를 세우고 이런 상황을 기다리지 않아도 연출은 완료되었다.
무엇보다 나 혼자다. 차 문은 열어 둔 상태고 가방은 계단에 던져두었다.
흙바닥 텃밭은 운조루 엄니가 며칠 동안 손으로 돌을 골라 낸 땅이다.
당신은 그런 곳에 살지 않냐고?
당신이 사는 곳을 들여다보면 나에게는 없는 다른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혹시… 다른 사진을 찍으면 불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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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으로 올라간다.
구질구질해 보이는 작업장 옥상으로 올라가는 외부인은 없다.
구질구질해 보이는 집의 옥상에서 내려다보이는 풍경도 구질구질할 이유는 없다.
월요일. 최근 날씨 중 꽃 사진 찍기에는 일반적으로 최적이다.
오미동이 좋은 것은 전깃줄이 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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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감 구도를 좋아한다.
전개도를 좋아하는 취향이랄까.
전체를 보는 것이 좋다. 그래서 접사나 한 송이 꽃을 찍는 경우는 드물다.
물론 오늘도 두어 컷 정도 투명한 살구 꽃잎을 찍었지만 여기 올리는 과정에서 탈락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건 서울에서 찍었는지 구례에서 찍었는지 알 수 없다.
나는 식물학자도 아니고 미감도 그런 쪽을 선호하지 않는다. 사실은 싫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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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뤼겔의 그림을 좋아한다.
모든 것이 균등하고 평등하고 혼란스럽게 널브러진 상태.
분데스리가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의 클롭 감독은 축구의 불안정성을 추구한다.
그 말이 좋았다.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잘 훈련된 축구는 예측 가능하다.
어느 팀의 축구는 스타일이 이러하고 다른 팀은 저러하고.
몇 년 혹독하게 단련한 신생 아이돌 그룹의 칼군무 같은 축구는 매력이 없다.
차라리 로봇을 만들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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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살구나무는 장했다.
지난 해 살구나무는 꽃도 없었고 따라서 열매도 없었다.
나무를 둘러 싼 주변 조건 때문인지 촉각을 세웠다.
그래서 금년 살구나무의 꽃은 나에겐 중요한 문제였다.
문제가 있다면 사비를 들여서라도 의사 부르고 포클레인 부를 생각이었다.
왜냐면 나는 일시적으로 이 마당을 빌렸고 나무에 대한 책임이 있다.
사진으로는 요란한 벌 소리가 들리지 않을 것이다.
나무 한 그루는 그렇게 살고 있다.



* 지리산닷컴에서는 사이트 디자인 자체가 960픽셀이 사진 최대 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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