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7시 화엄사.
각황전 뒤로 돌아서 들어서자 카메라 다릿발이 국수다발로 서 있다.
이 사진 찍고 걸어 들어가는데 뭔 대형사건 피의자가 등장할 때 셔터 소리같이
일백 대의 카메라가 일제히 연사 셔터 소리를 낸다.
유병언이 화엄사에 숨어 있다가 발각 난 것인가?
아… 죽었지.
화엄사 홍매는 유명하다.
나는 지난 10년 동안 의도적으로 이 나무의 만개시기에 이곳을 찾지 않았다.
한 번도 보지 않았지만 이런 풍경이라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사진을 찍을 수 없다. 홍매는 만개했고 나는 이런 상황에서
사진을 찍을 수 없으니 이 유명한 홍매를 내가 제대로 담을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일제히 연사 셔터를 눌렀던 조금 전 상황은 이랬다.
스님이 한 분 걸어 간 것이다. 탄성이 흘렀다.
놓쳤다는 탄식도 들렸고 욕도 들렸다. 이런 것.
“아, 저기 사람이 걸리네. ㅅㅂ”
홍매 주변으로 카메라를 들지 않은 여행객이 다가 서면 난리다.
“비키세요!‘
“나가!”
40~60세로 추정되는 대한민국 중년 남자들이 카메라 부대의 80%다.
나라를 구하고 말겠다는 결기가 각황전 마당 전체로 전달된다.
대한민국 중년 남녀 사람들의 분야별 사이비 오타쿠 현상은 한 마디로 목불인견이다.
평생 무엇이건 따라 한 탓에 그 이외의 판단력은 없다.
그들이 스무 살 때에 욕했던 중년들 모습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나무 한 그루는 그렇게 살고 있었다.
오미동 작업장으로 왔다.
마당의 살구나무 한 그루. 그는, 또는 그녀는 호젓하다.
운조루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흘깃 눈길을 주고 운조루로 향하지 이 나무 앞으로
다가서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왜냐하면 나무 뒤로 별로 아름답지 않은
옛 마을회관 벽돌집이 있으니 사진이 되지 않는 것이다.
월인정원과 나의 작업장이다.
화엄사 홍매가 화려한 연예인 이미지였다면
이 살구나무는 마을 안길에 사는 조신한 누이다.
‘이르미협동조합’ 팀이 만든 월인정원의 마당 화덕은 이 나무와 잘 어울린다.
토요일 오후에 지리산닷컴 K형이 말 없이 화덕용 가는 가지 나무를 부려 놓고 갔고
월요일 이 아침에 작업장에 오니 무얼까?가 엔진톱으로 모두 잘라 놓았다.
덕분에 산다.
그리고 살구나무.
주차하다가 차를 뒤로 물리고 사진을 찍고 있다.
오늘이 그날이고 이미 꽃잎이 조금씩 날리고 있으니 내일은 아니다.
운조루 창고가 보이고 약간 낮은 자세의 이곳이 내가 담배를 피는 장소다.
꽃 지면 잎이 마당을 가려주기 때문에 ‘숨어 있다’는 나의 의사는 전달되지만
내가 마당에 있음도 전달된다.
한동댁이 복지관 버스를 기다린다.
화엄사 홍매 뒤에서 ‘그들이’ 그토록 애타게 기다리던 ‘지나가는 스님1’도 있다.
카메라 다리를 세우고 이런 상황을 기다리지 않아도 연출은 완료되었다.
무엇보다 나 혼자다. 차 문은 열어 둔 상태고 가방은 계단에 던져두었다.
흙바닥 텃밭은 운조루 엄니가 며칠 동안 손으로 돌을 골라 낸 땅이다.
당신은 그런 곳에 살지 않냐고?
당신이 사는 곳을 들여다보면 나에게는 없는 다른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혹시… 다른 사진을 찍으면 불안한가?
옥상으로 올라간다.
구질구질해 보이는 작업장 옥상으로 올라가는 외부인은 없다.
구질구질해 보이는 집의 옥상에서 내려다보이는 풍경도 구질구질할 이유는 없다.
월요일. 최근 날씨 중 꽃 사진 찍기에는 일반적으로 최적이다.
오미동이 좋은 것은 전깃줄이 멀기 때문이다.
부감 구도를 좋아한다.
전개도를 좋아하는 취향이랄까.
전체를 보는 것이 좋다. 그래서 접사나 한 송이 꽃을 찍는 경우는 드물다.
물론 오늘도 두어 컷 정도 투명한 살구 꽃잎을 찍었지만 여기 올리는 과정에서 탈락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건 서울에서 찍었는지 구례에서 찍었는지 알 수 없다.
나는 식물학자도 아니고 미감도 그런 쪽을 선호하지 않는다. 사실은 싫어한다.
브뤼겔의 그림을 좋아한다.
모든 것이 균등하고 평등하고 혼란스럽게 널브러진 상태.
분데스리가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의 클롭 감독은 축구의 불안정성을 추구한다.
그 말이 좋았다.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잘 훈련된 축구는 예측 가능하다.
어느 팀의 축구는 스타일이 이러하고 다른 팀은 저러하고.
몇 년 혹독하게 단련한 신생 아이돌 그룹의 칼군무 같은 축구는 매력이 없다.
차라리 로봇을 만들어라.
2년 전 살구나무는 장했다.
지난 해 살구나무는 꽃도 없었고 따라서 열매도 없었다.
나무를 둘러 싼 주변 조건 때문인지 촉각을 세웠다.
그래서 금년 살구나무의 꽃은 나에겐 중요한 문제였다.
문제가 있다면 사비를 들여서라도 의사 부르고 포클레인 부를 생각이었다.
왜냐면 나는 일시적으로 이 마당을 빌렸고 나무에 대한 책임이 있다.
사진으로는 요란한 벌 소리가 들리지 않을 것이다.
나무 한 그루는 그렇게 살고 있다.
* 지리산닷컴에서는 사이트 디자인 자체가 960픽셀이 사진 최대 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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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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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이장
2015.04.04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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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추
2015.04.05 20:17
흑흑 홍매가 불쌍해. 때만되면 나타나는 사이비 오타쿠(정말 적절한 표현이군요)땜에 트라우마가 있겠는데요.나라면 미춰버릴거예요 ㅎㅎ이장님의 사진은 글을 만나 더욱 빛을 발한다는..좋아요 . 좋아요. 우리 두 딸은 화전없이는 봄을 보낼수 없다며 진달래 따러 가자해서 어제 금정산을 올랐지요. 다행히 아직 다 지지않았더라구요. 다행히 예쁜 진달래전?진달래떡을 먹고 뿌듯해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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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이장
2015.04.05 22:13
진달래라... 뒷산에 한 번 가볼까 싶기도 하네요. 워낙 걸음을 하지 않아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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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꿈
2015.04.07 21:36
진해는 비로 인해서 군항제는 이제 시들어 가지만 그 덕에 비처럼 내리는 벚꽃을 보고 있답니다..
가뭄해결에 조금이나마 이번 비가 도움이 되었는지...
군항제로 인해서 진해주민은 오히려 바깥 외출을 자제하고 있는데 내일은 장복산에 올라가보고 싶은 생각이
화엄사 황매의 아름다움을 보면서 드는군요..잘 지내시지요..양양 산골삼남매맘이 어느새 진해서 삼년을 지내고 있네요..
마을에 전봇대가 멀다는 말이 와 닿는군요..하루도 바람 잘날 없는 이곳 경남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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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이장
2015.04.08 00:39
3년인가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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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레지풀
2015.05.09 20:59
좀.... 행복해졌다....
아참, 나 전남에서 살고 있다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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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이장
2015.05.10 09:42
알아요. 망명인지 귀양인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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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화
2015.06.14 04:27
저옥상에올라가보았어요ㅎ재작년패션쇼할때잘보고싶은마음에ㅎㅎ
안구질구질이던데.... -
마을이장
2015.06.14 08:58
늙은 사이트 관리자에게... 뒷북 댓글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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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강
2015.09.29 23:44
나름 사진 찍는(찍었던?) 사람으로서 급공감..합니다 우르르 몰려 결연한 그들을 피해 다니다 보니
내 사진 이름난 명소는 늘 "피크"를 빗겨나곤 합니다
홍매가 유명한 그곳..홍매 다 지고 간당 거리는 지고 있는 이파리 두어장이라던지 ㅎ
십년동안 쬐멘한 렌즈하나로 버티고 있는 내게 대포같은 렌즈가 주는 위압감이라니...
죄송합니다 뒷북2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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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이장
2015.09.30 00:39
삼백년만인데 뒷북은 이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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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강
2015.10.02 14:28
훗.너른 이해 감사드립니다..이왕 뒷북인데 뒷북3 가도 될라나요^^
벙어리컴으로 살아야하는지라(구질 구질한 이유들...) 링크된 음악을 들을 수 없었는데 오늘 처음 들었어요
뭐지,뭐지 가물가물 미치게 만드는 저 노래..라지만 실상 모르는 노래일 수도 있어요
근대 완전 순정파이신듯 게시물마다 같은 노래 ㅎㅎ
이곳을 알게된진 며칠 안되지만 혼자 문턱 닳도록 들락거려도 인기척 없더니...바뀐 사진 보니 덜렁 반갑네요 ..똥차라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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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이장
2015.10.04 22:45
서버를 잠식하는 파일 용량 때문에 음악은 모두 같습니다. 간혹 음악을 바꿀 때도 물론 모든 포스팅의 음악이 같이 바뀌는 절약정신이 살아있습니다.
지금 노래는 최근 어느 영화의 OST이니 '뭐지 뭐지'는 아닐 듯 합니다.
질 좋은 갈비살을 보고 환호를 지르는 그런 마음이겠지요. 꾳 앞에서 녀자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