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 간만에 오미동

마을이장 2015.03.25 23:13 조회 수 : 3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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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5일 오미동 새벽 기온은 영하 4도. 출근길 차 유리는 얼어 있었다.
최근 며칠간 아침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면서 더 이상 때지 않아도 될 것 같던 난로에
나무를 던져 넣었다. 연통 청소는 아무래도 4월 첫 주에 해야 할 것 같다.
지난 11월 1일에 첫 불을 넣었으니 꼬박 5개월을 나무를 팼다.
기름보일러 가동하지 않았으니 돈은 아꼈지만 몸은 고달프다.
연통도 청소를 해야 할 때가 되었는지 불을 지필 때는 연기가 제법 실내로 찬다.
불붙이고 문 열어 두고 밖으로 나왔다. 오늘 아침은 작정한 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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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으로 올라갔다. 작업장 앞 살구나무를 금년에는 주의 깊게 보고 있다.
지난해에는 꽃이 거의 피지 않았고 따라서 열매도 없었다.
열매를 탐하는 것이 아니라 나무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금년 꽃을 보고 나무를 아는 사람을 불러서 치료를 해야 할 상황인지를 판단해야 한다.
이틀 전부터 팝콘이 터지기 시작했는데 아침 기온이 낮아서 꽃은 자꾸 움츠려 든다.
꽃 필 무렵 영하의 기온은 그 해 꽃의 때깔을 시원찮게 만든다.
그러면 열매의 결과도 보이는 것이다.
여하튼 조짐으로 봐서는 작년은 확실히 해거리였다.
이틀 정도 지나면 폭발적으로 터질 것 같다.
이번 주말 월인정원 워크숍 하는 사람들 눈요기 하겠다.
시골에 살아보니 나는 살구꽃이 제일 좋더라.
이제 바깥 화덕 나무를 패야 하는군. 젠장.
운조루 엄니 장거리 가시는 모양이다. 복장으로 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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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조루 입구 산수유도 잔뜩 움츠린 색이다.
일교차가 크면 꽃잎 색은 오래 데친 나물처럼 윤기를 잃는다.
아침 색이 쌀쌀하다. 오늘 아침은 아주 짧게 마을 한 바퀴 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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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간만에 오미동 들판 모습이다. 이제 더 이상 펀드도 없고 뭣도 없다.
나에게 이 들판은 적어도 금년에는 일로서의 의미는 없다.
남녘 들판의 겨울과 봄은 밀이 지킨다.
운조루 류정수 농부는 이번에도 금강밀을 파종했다.
들판에 대한 연관성이나 책임성이 없어지면 바라보는 일도 줄어든다.
나에게 구례는 더 이상 풍경이 아닌 생활 현장이라 바라보는 눈길이 처음보다 빠듯하다.
금년으로 도시를 떠난 지 10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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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간만에 운조루 옆 골목으로 들어섰다.
겨울이 지나고 꽃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운조루를 찾는 차량과 사람이 많았다.
이번 주말은 가장 끔찍할 것이다. 19번 국도에 차는 멈출 것이고 오미동은 주차할 곳을
찾는 것조차 힘들 것이다. 그러면 나는 오미동을 최대한 피한다.
언제나처럼 방문자의 5%는 ‘이 마을에 빈 집 없어요?’를 시작할 것이고
방문자의 5%는 ‘한옥 이리 지으면 안 돼!’를 강의할 것이고
방문자의 5%는 ‘여기가 소설 토지의 그 고택이야!’ 라는 엉뚱한 정보를 흘릴 것이며
방문자의 5%는 택지 한옥 지구로 가서 ‘여기가 운조루야!’ 라고 주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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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을 돌아서 운조루 뒤안길로 걸어간다. 이전보다 더 짧다.
숲을 다듬은 모양이다. 하루 한 번 산책하는 것도 좋을 텐데 일 년에 몇 번 한다.
사는 곳에 그렇게 무심하게 다가오고 어느 날 무엇인가 사라지고 나면 생각이 난다.
사람이 난 자리는 그렇게 다가오지 않는데 나무 하나 풀 하나 난 자리는 확연하다.
구례 10년 째, 오미동 9년 째. 여전히 나는 부유하고 있고 정착은 미지다.
이제 나를 두고, 마을을 두고, 사는 일을 두고 변화가 달갑지 않다.
그래서 심심해진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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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조루로 들어섰다.
앵두나무도 날씨에 겁을 먹고 있다. 이 역시 금요일 오후면 절정이겠다.
번와 작업 이후 내려놓은 기와를 보면 나는 항상 장어구이 접시로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문간방 홍수 형이 들어오라고 성화지만 ‘싫어욧!’ 날려 주고 안채로 걸음을 옮긴다.
글 쓰는 작업 진척이 시원찮아서 운조루 행랑채에서 작업하는 방안도 생각을 했지만
이미 여행객들이 몰려드는 시절이라 더 산만할 것 같아서 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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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편 동백나무는 예쁘다. 조금 더 기다려야 효수당할 것 같다.
동백은 진행이 더디니 보름은 족히 기다려야 할 것이다.
금년에는 잠자는 상사마을 동백 숲에도 한 번은 가 봐야겠다.
숲이 얼마나 줄었는지, 새들은 여전히 조잘거리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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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독대 그늘진다고 지난겨울에 엄니는 목련 가지를 많이 잘랐다.
설 지나 떡국 끓여 놓고 오라고 하시 길래 가서 본 목련이 섭섭했다.
당분간 사진 찍을 일 없겠다 싶었는데 형해를 드러내기 전의 목련이 예쁘다.
이 또한 이번 주말이 절정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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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채 돌아서 사당 쪽 흘깃 보고 다시 나와서 앵두를 잠시 잡고 퇴청했다.
마을 한 바퀴 이십 분 정도. 아침 기온 탓에 움츠린 풀과 꽃, 간만에 들어 본 카메라의 묵직함.
무엇으로 찍고,
어디에 올리고,
그 모든 흐름과 변화가 너무 빨라 오늘이 어제 되는 일이 너무 쉬워서 기록의 수명도 짧다.
나는 그것이 못마땅하다. 시절과 내가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시절을 따라갈 생각도 없다.
지리산닷컴 개편을 앞두고 이런저런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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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 앞으로 돌아왔다.
<산에사네> 앞에 노을 형수가 심어 놓은 꽃들을 잠시 들여다본다.
가꾼다. 나에게 없는 유전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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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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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로 돌아오니 대평댁이 내 차를 본 탓인지 바로 들어오신다.
주머니에서 귤을 주섬주섬 내어 놓으신다. 서울에서 수술 하시고 지난 토요일에 오셨다.
토요일 행사 때문에 이동 중인데 픽업 요청을 하셔서 나갈 수 없었다.
돈? 뭔데요?
구례구역에서 오미동까지 택시를 타니 일만 이천 원을 달라 하더라고.
한참 옥신각신 했지만 어차피 말리기는 힘들 것이다.
비비빅이나 사다 드려야겠다. 그러면 다시 이 일만 이천 원을 되돌려 주기 위한
톰과 제리의 돌려막기는 끝없는 리플레이에 돌입할 것이다.
여기는 오미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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