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 안부

마을이장 2016.08.23 11:56 조회 수 : 1829

 

 

여름은 여전히 벗을 수 없는 두터운 코트처럼 밤공기 사이로 빼곡하다.

한참 잠을 잔 것 같은데 눈을 뜨면 새벽 3~4시 사이인 경우가 많다.

그러면 잠시 아이폰을 들고 이것저것 살펴보다가 다시 잠이 든다.

안압이 높다는 말과 아이폰 사이에는 함수가 있을 것이다.

하루 12시간 정도 화개에 머문다.

지난 몇 개월 동안 습관처럼 그런 일상이 이어지고 있다.

이전처럼 중간에 구례읍을 다녀오거나 하는 일도 거의 없어졌다.

오미동 작업장을 철수하고 난 뒤로 어쩌면 내가 중간 이동을 해야 할 거점은 사라졌다.

하루하루가 바쁘고 그 일들은 놀랍도록 지루하다. 이런 소리 하지 말아야 하는데…

어느 주민이 월간 <노력>을 신청하는 메일에서 가볍게 타박하셨다.

 

 

먹고사는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 마음도 지치신 것 같고...

닷컴에 글을 올려야 한다는 부담감도 크신 것 같습니다...

영후 때문에 흐뭇은 했습니다만 닷컴 독자들 걱정을 생각했다면

결과가 나온 다음에 올리셨으면 좋았을 것 같아요

또 존재 자체가 민폐다~라는 자존감 없는 글은 이장님을 응원하는 많은 사람들을

마음 아프게 하는 겁니다.

 

 

거두절미하고 가운데 토막은 그랬다. 월인정원도 두어 번 말했다.

지친다, 힘들다 소리에 대한 읽는 사람의 피로감이 있다고.

알고 있다. 그러나 잘 고쳐지지 않는다.

나도 푸념은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금년 여름 참 힘들었다. 호호호.

건강진단 결과지와 무관하게 나는 여전히 만성피로적 현상을 겪고 있고

보는 사람들은 살이 더 빠졌고 피곤해 보인다는 걱정 섞인 안부를 묻는다.

 

 

 

 

 

안부.

세월이 갈수록 안부의 농도와 진정성은 짙어지는 듯하다.

읽고 나서 마음이 내려앉아서 컴퓨터 옆에 조그맣게 프린트해서 붙여 둔 편지가 있다.

 

 

이장님

마음 속 여러 말

오래 전하지 못하였습니다.

저는

다사다난했습니다.

다른 세상으로 세 사람이 떠났습니다.

연표에 쓰는 굵은 획의 글자는 그러합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듯

어느 날 문득

예기치 않은 일들이 성큼 다가와

일상이 '기적'이었다고

깨우칩니다.

얼마나 더 많은 풍상을 지나야…

라는 생각은 접었습니다.

어제 바람 오늘 비속에서

나 숭하지 아니하게 늙어가고 있는가

나라는 사람을 응시하곤 합니다.

 

 

목소리 들은 지 몇 년이 훌쩍 지났으나 월간지 신청하는 메일 속에 슬쩍 끼워진

몇 줄 글에 마음이 파르르 떨려 전화기를 들었다가 그냥 내렸다.

한 번도 부음을 전해오지 않았다. 그 흔한 문자조차.

속내와 입장은 이렇게 전해지고 당신의 견결함이란 일상적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몇 년간 안부를 묻지 않았구나.

이제 더 자주 안부를 물어야 할 연대기이거나

말없이 미루어 짐작해서 그렇게 몇 년을 쉽게 밀어 보내거나

해야

겠다.

안부.

 

 

 

 

<호모루덴스> 쉬는 날, 화요일.

아침에 화개로 와서 커피 한 잔 들고 우체통을 열어본다.

 

 

누난데

날씨가 무척 덥지?

건강검진한다더니 결과는 어떠니?

너무 고단해 보이더라.

몸 조심해라.

까페를 오픈한다더니

잘 되고 있니?

장사할 체질들은 아닌데...

너무 용 쓰지 말고,

자형도 구멍가게 하고 있지만,

시간싸움인것 같더라.

가늘고 길게

견디는게 비결인것 같던데...

엄마는 여전한것 같고

오빠네도 애쓰며 지내는것 같더라.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너무 소원하게 지내고 있는것 같아서...

그냥 똑똑!! 노크해본다.

캐나다에서…

 

 

캐나다.

누이.

16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몇 번 더 볼 수 있을까.

막내스러운 몇 줄 답장을 보냈다.

2017년에는 캐나다로 한 번 가겠다고.

나는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루덴스 저녁 폐점 전에 하동읍에서 오신 분이

"우리 멀리서 왔는데" 라고 말씀을 하셔서 연장해서 음료 주문을 받은

에피소드도 있었지만 이번 여름 동안 먼 곳에서 오신 손님들이 몇 분 계셨다.

텍사스와 뉴저지가 가장 먼 곳이었던 같다.

그 중 브라질에서 미국으로 옮기신 분이 그랬다.

 

"이장님, 이제 많이 가까워졌는데 한 번 오세요.“

 

2011년 7월, 지리산닷컴의 첫 오프라인 행사에 오신 주민분이다.

6년. 만 5년. 사는 곳이 달라졌고 바람이, 어찌어찌 인맥이 전하는 소리를 통해

그녀와 가족의 소식을 들었었다. 귀밑으로 흰 머리카락이 보였다.

그리고 우리는 계속 산다.

 

며칠 전 아침의 메신저. 뜻밖이다.

매체와 페이스북을 통해서 근황은 알고 있지만. 지나시는 길에 얼굴 한 번 보자신다.

누님이라고 불렀다. 2006년 2월에 부암동 만두집에서 밥 먹고 연신내 투독하우스에서

커피 마신 것이 마지막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구례로 당신은 텍사스로.

만나서 우리가 10년 만에 얼굴을 본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10년, 참 쉽다.

그리고 우리는 계속 산다.

 

그리고,

서울

시흥

부천

안산

대구

칠곡

괴산

청주

거창

부산

.

.

.

.

.

찾아주신,

고전적 표현, 벗들.

여름.

많은 얼굴들이 스쳐간 이 여름.

애 쓰셨소.

우리.

 

 

 

 

 

 물론 밀가루는 계속 판매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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