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 10주년

마을이장 2016.05.30 18:09 조회 수 : 2464

 

 

서울에서 구례로 옮긴지 만 10년이 된다.

10주년이니까 뭐 좀 주절거린다.

 

 

 

2006년 5월 30일 해질 무렵에 이삿짐 차가 연신내를 출발했다.

다음 날 아침에 구례읍 목적지에서 만나기로 했다.

마지막으로 컴퓨터를 철수하기 전에 개인 사이트에 몇 자 남겼다.

 

오늘 떠납니다.

몇몇 친구들은 아시고 계시지만 시흥의 김경민 뿐만 아니라 대다수 사람들을 속였습니다.

그냥 그렇게 갑자기 떠나고 싶었습니다.

 

한두 명을 제외하고는(같은 동네에 사는) 서울을 언제 떠난다는 말을 하지 않고 이삿짐을 꾸렸다.

이별이네 뭐네 말들이 번거로울 수 있기 때문에 그리 했을 것이다.

다시 그 시간으로 돌아가도 그리 할 것이다.

 

6월 9일에 사무실 입구에 간판이라고 하기에는 좀 거시기 하지만 여튼 달았다.

뭔 정보 차원의 사인물이 아닌 찾아오는 사람들을 위한 문패 정도라 생각하고 달았었다.

본질적으로는 하나의 깃발 같은 의식이었다.

당시 읍내 사무실은 공무원 K형의 작업장이었다. 흔쾌히 공간을 내어 주셨다.

 

여전히 간혹 강연 뒤 또는 처음 만나는 분들은 질문을 한다.

왜 서울을 떠났냐고. 세월이 좀 지나고 생각해 보니 참 간명한 대답이 있더라.

지금 사는 곳이 만족스러운데 떠나는 사람은 없다.

오랜 시간 동안 ‘도시에서 실패해서 내려왔다.’를 정해 놓은 대답으로 했었다.

실제 그러하기도 했고. 결국 불편해서 떠나는 것이다.

 

 

 

 

 

구례로 와서 바로 <지리산닷컴>을 오픈하지는 않았다.

지리산닷컴 K형(공무원 K형과 혼동하시는 분들이 있다)은 당분간 쉬라고 했다.

이를테면 당시로서 마흔 몇 해 도시 생활에 대한 휴식을 권한 것이다.

나 역시 당장 지리산 자락에서 뭔가를 가동할 생각은 없었다.

우선 운전면허증을 획득하는데 주력했고 그리고 차를 끌고 구례 곳곳을 돌아다녔다.

일백칠십 몇 개의 자연부락이 있는데 가급이면 모두 들어가 보려고 했다.

첫 해라 당연히 손님 많았고 많이 돌아다녔고 사진도 많이 찍었다.

먹고 사는 일은 그때도 빠듯했다. 서울 시절보다 상대적으로 돈벌이 일 적게 하고

많이 노니까 당연한 결과다.

시시각각 만나는 이곳의 풍광은 그런 시간을 버틸 수 있는 큰 힘이었을 것이다.

지금은 많이 무심해졌지만 그때는 그랬다.

영후 생일 날 만복대 산행 모습인데 그 날 만복대는 참 아릿했다.

금년 가을에는 오래간만에 만복대 한 번 가야겠다.

 

 

 

 

 

 

 

 

 

구례로 이사하고 대략 1년이 지났을 때 구례읍에서 오미동으로 사무실을 옮겼다.

이곳을 오래 보신 분들은 아시는, 여전히 저 컨테이너 하우스의 안부를 묻는 분들도

있는 바로 그 컨테이너 사무실이 도착하는 장면이다.

집은 이후로도 1년 더 구례읍에 있었지만 사무실이 이른바 ‘면 단위 시골’에 자리하면서

의도했건 하지 않았건 지리산닷컴의 주요한 공간적 스토리 접점은 결정이 된 것이다.

그리고 2007년 8월 1일. 지리산닷컴 테스트 버전이라는 명목으로 짧은 이야기를 올리기 시작했다.

가급이면 일주일에 5회 정도 이곳의 풍광을 담은 사진과 짧은 글을 회원(주민)들에게

아침 편지 형식의 메일로 보낸다는 것이 최초의 구상이었다. 그것은 사실 회원 배가 운동을

위한 일차적인 구상의 하나였을 뿐인데 지난 9년 동안 별로 변한 것이 없다.

막상 운영을 하다 보니 인위적인 머릿수 불리기에는 소질도 의지도 없었다.

어찌되었건 저 컨테이너 사무실과 오미동과의 만남은 참으로 행복한 일이었다.

1991년 5월 어느 날, 짭새들한테 잡힐지도 모른다는 강박을 지고 다니던 그 시절,

19번 국도를 스쳐지나가다가 차창 너머로 본 어느 마을, ‘이 마을에 살고 싶다’고

중얼거렸던 그 마을에 자리했다는 자체로… 이런 것이 운명인지도 모른다.

 

 

 

 

 

간혹 뒷산에 올라갔다. 그때는 지리산을 자주 가야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그런데 나는 산행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다.

어쩌면 지리산닷컴에서 가장 없는 이야기가 지리산 이야기일 것이다.

지리적 좌표를 무시할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나의 천성으로 인해 지리산닷컴에서

지리산은 점점 희박해졌다. ‘지리산 자락의 마을과 사람들’로 집중할 수밖에 없었던

가장 결정적인 이유가 ‘지리산닷컴 이장은 산행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라는 사실은

좀 모양 빠지는 일이긴 하다.

그래도 그때는 이곳에 산 모습 올리려고 의무방어전이라도 했는데 지난 몇 년 간

나는 산행을 한 적이 없다. 그냥 산 아래 산다.

초기에 지리산닷컴에서 글쓰기는 쉽지 않았다. 1인칭 문장을 제거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오랫동안 개인 사이트에서 글쓰기 하던 버릇을 지우기 어려웠다. 개인 사이트보다

감정을 배재하는 훈련도 해야 했고 객관적 근거 같은 것을 기반으로 글을 쓰기 위해

나름 검색이라는 ‘하지 않던 짓’도 습관적으로 했다. 여전히 1인칭 느낌이 강하지만

그래도 2007년 출발 당시에 비하면 많이 바뀐 편이다.

 

 

 

 

 

 

 

 

 

2008년부터 지리산닷컴의 전형성이랄 수 있는 글과 사진들이 자리하기 시작했다.

1년 정도의 시간 동안 나는 내 몸에 맞는 옷을 찾기 위해 이 옷 저 옷을 입어봤던 것 같다.

그러나 역시 의도적인 기획이나 방향 설정으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오미동과 상사마을, 두 마을과 내가 구체적으로 결합하면서 지리산닷컴의 정체성 아닌

정체성도 점점 모습을 갖추어 갔다. 그것은 참으로 간단한 이유였다.

겉돌아서는 아무 일도 되지 않는 것이다. 두 마을로 ‘진입’ 하기 위한 나의 시도는

진정성이 있었다. 그때 나의 시골살이 목표는 ‘주민이 되자’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전입신고로 완료되는 주민 말고 진정으로 받아들여지는 마을 주민.

그때는 그랬다. 그것이 내 인생에서 성공의 측도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10년이 지나면 실제 마을의 실제 이장을 하겠다는 것이 나의 정치적 로망이기도 했던 시절이다.

그러니까 그때는… 마을의 모든 모습이 예뻐 보이던 시절이었다.

 

 

 

 

 

어느 마을에 자리한 지 2년째 되는 해에는 풍광을 잡아내는데 심한 의욕을 가진다.

첫 해로부터 사 계절을 지나는 동안은 얼결에 당하는 것이다. 그래서 다음 해를 기다리게 된다.

이제 어느 시기에 어디에서 사진을 찍어야 하는지 대략 아는 것이다.

그래서 나에게 구례군 산동면은 하나의 발견이다. 2008년과 2010년 사이에 가장 많은

사진을 찍은 곳은 1읍 7개 면 중에서 산동면이다. 만 2년이 지났고 나의 감각은 극도로

예민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을 것이다. 조짐이 보이면 차를 몰고 ‘그곳으로’ 갔다.

사는 곳을 바꾸었을 때 누릴 수 있는 새로운 사춘기에 해당한다.

 

 

 

 

 

 

 

 

 

2009년은 본격적으로 마을로 뛰어 들었던 시절이다.

오미, 상사 두 마을 공통적으로 <녹색농촌체험마을>과 <행복마을> 예산이 2억, 5억씩

투자, 집행되기 시작한 해다. 마을에는 신축 한옥이 증가하기 시작하고 ‘변해야 산다’는

다소 막연한 슬로건이 대세로 자리하던 시절이다.

주장하기 보다는 마을에서 나에게 요구되는 일들을 ‘잘 수행하기 위해’ 노력하던 시절이다.

상사마을에서 마을신문을 만들었고 두 마을과 구례를 대상으로 한 매체들의 취재 요청에

성실하게 현지 코디네이터로 역할을 하려고 했다. 내가 마을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은

그런 것이라는 생각으로 가득했던 시절이다. 긍께, ‘마을의 소득 증대’를 위해 노력한 시기다.

외지 사람들이 마을을 방문하고 마을의 농산물을 구매하게 만드는 것.

2009년에 처음으로 운조루 농지에 무화학농 방식으로 재배한 밀을 가루로 가공해서 판매했다.

지리산닷컴에서 무엇인가를 주도적으로 진행하고 판매한 첫 케이스였다.

지향했던 그림은 정면도였고 설정한 스토리는 솔직함이었다.

문 밖을 나서면 이야기는 넘쳐났다.

 

 

 

 

 

처음 만나는 마을은 항상 경이로웠다. 그래서 사진을 찍고 이곳에 소개했다.

발 닿는 마을 마다 마음이 닿았고 그 마을에 살고 싶었다.

통상 대외적으로 알려져 있는 모습 이외에, 이를테면 ‘도시 사람들이 좋아할’ 진짜 이곳의

모습은 지천으로 늘려 있었다. 지방정부와 도시 소비자의 엇박자는 이런 시각의 차이였다.

지금도 그 시각 차이는 여전하다.

카메라를 완전히 몸에 붙이고 다니던 시절이다. 이곳의 풍광에서 무엇이 진짜인지

찾아다니던 시절이다. 그만큼 눈에 불을 켜고 있었고 매일 매일이 새롭기도 했다.

2009년과 2010년이 사진을 가장 많이 찍은 해다.

 

 

 

 

 

 

 

 

 

2010년은 2009년의 연장선이었다. 마을 사업은 계속 집행 중이었고 자연스럽게

나의 관심사도 그 범주에 있었다. 2009년 무렵부터 구례로의 이른바 귀농귀촌자들이

갑작스럽게 증가하기 시작했다. 눈에 보이게 처음 보는 사람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 이전까지 구례가 좋았던 것은 ‘외지 것들’이 모여서 회의를 할 여건이 되지 않았던 점이다.

그러나 2009년부터 뭔가 회의 형식의 모임이 생기기 시작했다.

사람 만나기를 조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제주 <올레길>을 따라 한 <지리산 둘레길>이 계획되고 만인보 행사의 출발지는 상사마을이었다.

두 마을은 모두 사무장이라는 기능이 필요했고 상사마을로 박 과장이 이사 왔다.

이를테면 1차적 귀촌 이후 소개에 의한 재생산 케이스의 귀촌이 진행되기 시작한 것이다.

지리산닷컴은 비례해서 분주했다. 지난 3년 정도의 시간 동안 관여한 이런저런 일들에

대한 결과물들이 만들어졌다. 내 개인적인 첫 책과 구례군의 예산으로 만든 책이 모두

2010년에 만들어졌다. 그 해 가을에 이른바 ‘김종옥의 손’ 파동과 전설적인 구매 행렬이

이어졌고 사람들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뭔가 돈 안 되는 일’에의 기획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2010년에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인 일은 두 마을로부터 비롯된 여러 가지 사건들이나

내 책 등이 아니라 경북 봉화에서 권헌조 옹을 만난 일이다.

무엇에 이끌리듯, 객관적으로 갈 수 없는 조건과 일정이었음에도 결국은 내 스스로 그곳으로

가서 그 어르신과 그 집을 만난 것은 말로 설명하기 힘든 인연이었을 것이다.

2010년은 이래저래 정말 많은 일들이 일어났던 해였다.

<큰산아래이야기> 메뉴가 굉장히 풍성했던 한 해였고 나 역시 그런 이야기를 평생 쓸 수 있을

것이라는 착각 또는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사람의 생산력으로 보자면 그 해에 나는 굉장히 많은 에너지를 쏟아 부었다.

후유증은 필연적이다.

 

 

 

 

 

 

 

 

 

2011년은 마을과 연관해서 스토리를 이어가던 지리산닷컴 입장에서 조금씩 회의감을

가지기 시작하던 시기였다. 물론 2010년경부터 그 회의감은 들기 시작했다.

지리산닷컴은 아침편지에서 ‘행복하십니까’라는 물음표 없는 말을 주로 ‘도시사람들’에게

던지는데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는 그 기준을 달리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밖으로는 ‘돈이 모두가 아니다’를 말하고 마을로는 돈을 수집하는 일에 주력한 자가당착을

깨달았다. 예산이 투입되기 시작하면서 두 마을은 모두 시끄러워졌고 없던 분란이 생겼다.

그럼에도 ‘그 예산을 나는 잘 사용할 수 있다’는 착각들은 언제나 유효했다.

그것을 뿌리치는 결단이 필요했다. 그 결단이 아니면 한낱 시골에서 잘 나가는 기획자로

자리하고 말 것 같았다.

세 권의 책을 계약했다. 그 세 권은 5년이 지난 지금까지 나오지 못하고 있다.

<연곡분교 이야기>와 <지리산둘레길 이야기>는 그 중 두 권인데 그 책들은 2011년에

최초 시작은 했다. 그러나 별 이변이 없는 한 그 책들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나의 회의는 광범위 했고 나는 더 이상 상록수의 그 선생도, 여행자의 시각도 아니었다.

지리산닷컴은 더 이상 말랑말랑한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

2011년에는 지리산닷컴 최초의 오프라인 기획이 있었다. 햇밀을 핑계로 한 기획이었다.

7월 9일은 200mm가 넘는 비가 구례에 쏟아진 날이었다.

그 날 참석자 중 한 팀이 지금의 무얼까?와 일탈이니 인연은 인연인 모양이다.

지리산닷컴 컨테이너 사무실은 세 번째 이동을 했다.

마을이 아닌 지리산닷컴 독자적인 프로젝트를 진행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불필요하거나 불편한 허명이나 관심이 발생하던 시기였다.

‘알려야 한다’는 판단에서 진행한 몇 가지 일들로 ‘노출’되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긍정적인 평가뿐만 아니라 부정적인 이야기들도 들리기 시작했다.

단지 이야기를 전했을 뿐인데 작은 마을에서 일종의 ‘완장’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문제는 그것을 활용할 것인지 버릴 것인지를 결정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생겨 먹은 대로’ 굴러갈 뿐이다.

어쩌면 의도란 불가하거나 무망한 것이다.

시선은 풍경에서 생활로 집중점을 이동했다.

 

 

 

 

 

 

 

 

 

2012년. 연곡분교는 유치원이 사라졌다. 1학년은 2명. 전교생 6명 상태였다.

2011년 나의 게으름 또는 지연은 뼈아픈 결정이었다. 2009년에 처음 연곡분교를

만난 이후 해 마다 기록은 했지만 ‘사태 해결’을 위한 구체적인 노력은 없었다.

2012년은 연곡분교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밖으로 타전해야 했다.

그리고 <맨땅에 펀드>를 출범시켰다. 누구 눈치 보지 않고 뭔가를 진행하기 위한

자금을 필요로 했고 그것을 위해 경제 개념 없는 투자자 100명이 필요했다.

2012년은 또한 지리산닷컴 직영이라고 볼 수 있는 카페&게스트하우스 <산에사네>가

만들어졌다. 2011년 잠시 멈칫 했던 고민들이 한꺼번에 쏟아져서 진행이 되었다.

그 해 연말의 <김장전투>까지 쉼 없이 달린 한 해였다.

뭔가 발언하기 위해 TV를 제외한 대부분의 매체들에게 요청한 인터뷰에 응했다.

그만큼 많이 노출되었고 그만큼 더 피곤해졌다.

2010년 정도의 에너지 또는 그것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쏟아 부은 한 해였다.

 

 

 

 

 

두 가지 프로젝트(연곡분교와 펀드)에 집중하다 보니 대부분의 사진은 그렇게 집중되었다.

펀드 배추밭은 인상적이었다. 우리가 한 일에 우리가 감동하는 것은 좀 닭살스럽지만

제법 요란하고 내용 있게 보낸 한 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몹시 지쳤다.

10월이 되었을 때, 문수골 해발 800m 배추 속이 찰 무렵 즈음에 약간은 탈진하고

약간은 무중력 상태에 진입했다. 이때 이미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2013년이 되었다.

연곡분교는 갑작스럽게 전입생이 증가했고 교사는 세 분으로, 유치원도 부활했다.

급식도 부활했다. 모든 것이 마치 영화처럼 회복되었다. 그리고 회복된 속도만큼의

문제점들이 발생했고 나는 역시 내가 관여한 일에 대해서 회의하기 시작했다.

그 즈음에 연곡분교에 대한 책을 쓰지 않겠다고 편집자에게 통보했다.

그리고 지리산닷컴 컨테이너 사무실은 그 해 초에 사라졌다. 오미동 옛 마을회관으로

나의 작업 공간을 옮겼다. 회관 살구나무는 내 방 앞의 나무가 되었다.

<맨땅에 펀드>는 1억으로 투자금을 불려서 홍길동 놀이에 매진하는 형국이었다.

그러나 첫 해에 비해 나는 신선한 마음을 상실한 상태였다. 그 액수는 사실 우리의

살림살이와는 거의 무관한 것이었고 첫 해의 히트가 두 번째 해를 추동한 혐의가 짙었다.

그러나 <몸뻬 패션쇼>는 지리산닷컴이 벌인 일 중에 가장 잘 한 일일 것이다.

마을 전체가 사심 없이 웃었던 날은 그날이 유일했다.

그리고 나는 영후의 입대를 전후로 시름시름 아프기 시작했다. 마음이. 그리고 몸도.

 

 

 

 

 

가을로 넘어가면서 개인적으로는 이미 임계점에 도달한 상태였다.

내가 가진 에너지와 추진력에 회의감이 들었고 나의 증상이 쉽게 사라질 것이 아니라는

예감을 했다. 어쩌면 그것은 2010년부터 축적된 피로감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보다 더 큰 기획에 관해서 끊임없이 생각했다.

그것이 충격요법의 필연적 수순이다.

 

 

 

 

 

<젠zen·장場>이라는 온오프라인 장터를 2014년 프로젝트로 머리를 굴렸다.

그것은 사실 지역공판장 건설을 위한 전초전이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그라민 뱅크>

스타일의 일종의 소농은행을 설립하는 것이 최종적인 귀착점이었다.

그러나 2013년 12월 거의 마지막 날에 내린 결정은 2014년 지리산닷컴은 쉰다는 결정이었다.

멈추지 않았다면 사고가 났을 것이다. 그 생각은 변함이 없다.

2014년의 기억은 좋지 않다. 뭐 하나 이룬 것 없고 쉬지도 않았고 제대로 일을 한 것도

없는 무기력한 한 해였다. 다음을 준비한 것도 아니다.

멈추고 보니 다시 시동을 거는 일이 쉽지 않았다.

2015년에 지리산닷컴을 다시 가동할 것인지 여부를 갈등했다.

어쩌면 이대로 조용히 사라지기 좋은 계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포괄적으로 사람이 무엇인가를 한다는 것은 우주의 시간으로 봐도 지구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1995년은 개인적으로 아주 힘든 해였다. 내 시야에서 깃발이 사라진 해였다.

서른세 살에 ‘나는 무엇을 하지?’ 라는 의문 앞에 서서 많이 힘들어했다.

그로부터 이십 년이 지난 2015년에 나는 많이 힘들었다. 같은 질문 앞에 서 있었다.

쉰셋이었다. 갱년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리산닷컴은 실질적으로 가동되지 않았다. 단지 연명해 있었다.

그러나 인생은 존재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는다. 존재 자체가 운동이다.

전혀 계획에 없었던 화개를 들락거려야 했다.

단지 한 권의 책을 만들었고 김민기의 <두리번거린다>를 계속 들었다.

사람이 의지가 없을 때는 상황에 휘둘리게 된다.

 

 

 

 

 

 

 

 

 

그리고 2016년 5월 30일 오늘 또는 지금 늦은 밤 10시 43분.

나는 7주 전까지 예정에 없었던, 6주 전에 결정한 화개 십리벚꽃길 <호모루덴스>에

앉아서 키보드를 두들기고 있다.

타의에 의해 만들어진 상황을 자의로 이끌어 가야 한다는 각성을 촉구하고 있다.

그렇게 하려고 노력 중인 것은 분명하다. 어느 누구도 삶으로부터 도망갈 수 없다.

지난 5월 19일, 춘천에서 강연 자리에서도 ‘그 질문’은 나를 향했다.

그래서 행복하냐고 물었다.

무수히 많은 행복의 순간이 있었겠지만 그 순간은 이미 지나갔고 나는 항상

‘지금 당장’ 행복해지기를 갈망한다.

밤이 깊어가고 어제 오후부터 감기가 몸에 들어왔고 나는 긴 시간 모니터 앞에 앉아 있고

오늘은 더 이상의 행복을 꿈꾸지 않을 것이다.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 더 행복해지면 좋겠다.

지난 10년 동안은 그런 오늘의 반복이었다.

좀 더 가보자.

 

 

 

 

 

jirisan@jiri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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