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 / 꽃, 2016 – la retirada

마을이장 2016.04.04 23:10 조회 수 : 2213

 

최근에 이장이 노점을 펼쳤다는 소문이 돌았다.

헛소문이다. 그것은 이장의 꿈 이야기일 뿐이다.

오늘은 지난 밤 꿈 이야기를 몇 장의 사진과 함께 내려둔다.

 

 

 

 

 


 

3월 29일 화요일.

경남 하동군 화개로72, <호모루덴스>는 4월 1일 오픈 베타를 앞두고 분주했다.

오후에 간판이 아닌 며칠 용도의 현수막을 두 장 내걸었다. 조명도 완비되었다.

이곳은 내가 ‘주인’으로 오인받고 있는 PUB 스타일의 공간인데, “뭐 하는 곳이지?” 라는

정체성 모호함을 지향하는 공간이다. 나는 이곳에서 몇 가지 기획을 할 것이고 잘 봐줘야

얼굴마담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나는 그 시간을 2017년 12월 31일까지로 생각하고 있다.

이날 오후부터 이른바 ‘쌍계사십리벚꽃길’의 꽃이 터지기 시작했다.

4명의 인력이 십일 정도를 예정으로 이 마당에서 노점을 펼칠 것이다.

 

 

 

 

 

 

 

오픈 베타를 하루 앞 둔 오후 <호모루덴스>는 마무리 청소와 비품 정리로 분주했다.

지하층에 있다가 호출을 받고 올라갔다. 기타를 든 손님이 찾아왔다.

노래 부르기를 청했고 그녀는 세 곡을 불렀다. 명함을 받고 차를 한 잔 나누고 그녀는 떠났다.

나는 그녀의 노래를 듣다가 엉뚱하게 영화 <동사서독東邪西毒>의 장면들이 생각났다.

네이버 영화 소개 글을 읽고 약간 스산한 마음이 일었던 경우는 드문데 아래 대목 때문이다.

 

도화림에서 온 시력을 점점 잃어가는 영락한 검객이 어느 날 구양봉을 찾아와

살인청부일을 하겠다고 자청한다.

그는 눈이 완전히 멀기 전에 복사꽃이 피는 것을 보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갈 돈이 필요했다.

 

 

 

 

 

 

 

4월 1일 금요일. <화개벚꽃축제>의 시작이다.

지리산 자락에 10년째 살고 있지만 벚꽃 축제 기간에 이 거리에 서 있기는 처음이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이 시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구례에서 화개까지 나는 평소에

15분 정도 운전을 해서 내려온다. 그러나 이 기간에는 2시간을 예정해야 한다.

더 빠를 수도 있고 더 걸릴 수도 있다. 그러나 장사를 하는 사람들은 이 기간 동안의

벌이로 1년을 먹고 산다. 그 시즌이 시작된 것이다.

 

 

 

 

 

 

 

사람의 일이란 알 수 없는 것이다. 이 계절에 특히 그런 평범한 말을 실감한다.

내가 왜 이 거리에서 소시지와 닭꼬지와 머시멜로와 피대기 오징어와 컵딸기와

생강젤리와 산마늘과 표고버섯을 디스플레이한 테이블을 놓고 나를 포함한 네 사람의

어처구니 없는 인력들과 서 있는 것일까?

 

 

 

 

 

 

 

구름이 제법 깔린 하늘이었다. 거의 하루 종일 아래층 주방에서 노점으로 나가 있는

인력들에게 재료를 다듬어 공수하고 마침 오픈하는 <호모루덴스> 스태프들을 포함한

8~9명 정도의 식사를 준비하는 것이 나의 역할이었다.

내가 잠시 한숨을 돌리는 시간은 점심 설거지를 끝낸 오후 3시 무렵이었다.

그때 땅 위로 올라와서 잠시 꽃을 보고, 차량 행렬을 보고, 사람들을 보고, 판매 상황을 보았다.

이후로 3일 동안 내가 사진을 찍은 시간은 이런 오후 시간과 저녁 설거지를 끝낸 늦은 8시 이후였다.

 

 

 

 

 

 

 

오후에는 공무원 K형과 다른 지인이 방문했다.

공무원 K형이 가진 클래식 카메라를 <호모루덴스>에 인테리어 소품으로

두기를 부탁 아닌 강요를 했다. 롤라이플렉스와 축음기가 왔다.

 

 

 

 

 

 

 

<호모루덴스>에 대한 소개는 조만간 한 번 더 하겠다. 이제 지리산닷컴에서 간혹

등장할 공간이기 때문에 그렇다. 이즈음에서 한 번 더 명확히 하자.

<호모루덴스>는 지리산닷컴 이장 소유가 아니다. 그럴 리가 있겠는가.

호모루덴스가 뭔가? ‘노는 놈’ 아닌가. 나는 이 공간에서 노는 방식과 노는 언어에

몇 가지 기획을 더하는 역할을 맡았을 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번 노점 계획에 대해서 ‘스스로 노점상 놀이’를 하는 상황극으로 받아 들였다.

지역 유기농산물이 아닌 소시지를 판매한다는 일종의 의외성이 웃음을 유발한 모양이다.

금요일 오전부터 많은 차량과 사람들이 화개골을 휩쓸고 지나갔다.

그러니까 몇 주일 전에 화개장터에서 장사를 하는 후배가 그런 말을 했다.

 

“행님, 꽃 철 되면 입던 빤스를 내다 팔아도 팔림니더.”

 

우리는 격론 끝에 먹던 소시지가 아닌, 새 소시지를 주력상품으로 결정했다.

 

 

 

 

 

 

 

이미 수요일과 목요일 두 번의 오후 테스트 가동에서 우리는 입던 빤스건 새 빤스건

거의 팔리지 않을 것 같은 충분한 예감을 했다. 정신승리적 분석이 우세한 이틀이 지나갔다.

금요일 점심 무렵이 되었을 때 나 뿐만 아니라 ‘우리 팀’은 이번 노점의 완패를 확신할 수 있었다.

며칠 뒤에 들은 이야기지만 이번 시즌처럼 많은 차량과 사람이 지나 간 벚꽃 시즌도 드물었고

이번 시즌처럼 사람들이 지갑을 열지 않은 시즌도 없었다고 한다.

 

 

 

 

 

 

 

화개 밤 벚꽃은 처음이다. 그 동안 이 시즌에 이곳으로 내려 올 생각도 하지 않았다.

‘우리 팀’은 살아 온 이력을 바탕으로 이미 ‘마이너스의 손’이 입증된 인력들이다.

마이너스의 손이 여럿 모였으니 완전한 드림팀이다.

수요일과 목요일의 시험 가동에서 생긴 불안감은 현실로 전환되었고 나는 금요일 늦은

밤이 되었을 때 이미 마음을 비워내고 있었다. 난 포기가 굉장히 빠른 사람이다.

그러나 ‘처분 방안’에 관한 대책을 마련하는 것 까지 포기하지는 않는다.

머릿속에서 대략의 철수 로드맵이 마련되었을 때 무려 4월 11일까지 지속하기로 한

노점상 생활을 4월 3일에 종료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늦은 10시가 되도록 차량은 계속 이어졌다.

이번 시즌 꽃 사진은 이제까지의 내 꽃 사진과는 전혀 다른 맥락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 시간 동안 최대한 사람을 피했는데 이번에는 사람의 무리와 누추한 삶의 순간들을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지점에 내가 서 있으니 나의 셔터 프레임은 정해진 것이다.

 

 

 

 

 

 

 

믿거나 말거나 1991년에 나는 3일 동안 비디오대여점을 열었다. 딱 3일 동안.

어떤 일로 인해 나는 3일 만에 그 일을 때려치웠다. 비디오테이프의 비닐도 뜯지 않은 상태였다.

몇 천만 원의 돈을 날려 먹는 결정이었는데 나는 그냥 그렇게 해버렸다.

시작도 하기 전에. 그날 이후 정한 하나의 원칙이 있는데,

<나는 이런 일을 해서는 안 되는 사람이다>로 시작된,

<앞으로 나는 돈을 벌기 위해 물리적인 투자를 하지 않겠다>는 원칙이었다.

실제 그 원칙은 25년 동안 지켜졌다. 그래서 나는 예나 지금이나 ‘데이터만 넘긴다’는

밥벌이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디자인, 글, 사진과 같은 일이 그렇다. 인쇄물의 경우

나는 가급이면 선 결재를 원칙으로 한다. 인쇄물은 제작비용이 들어가는 일이기 때문이다.

‘노점상’은 그런 25년 동안의 원칙을 깬 일이었다. 노점상 며칠 전에 몇 번의 제품 촬영으로

몇 백만 원의 돈을 받았고 노점상 자금을 마련한 것이다. 하루 일당 50만 원의 일을 해서

번 돈으로 소시지 하나 팔면 1,500원 남는 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그건 분명히 약간 이상한 결정이긴 했다.

 

 

 

 

 

 

 

금요일 밤은 그렇게 저물어 갔다.

 

 

 

 

 

 

 

4월 2일 토요일.

나는 하루 종일 지하 층 월인정원 작업장에서 위아래 인력들의 점심과 저녁을 만들었고

50kg의 딸기 꼭지를 따서 아이스커피 테이크아웃 잔에 담는 일을 했다. 중간 중간 지상에서의

요청이 있을 경우 머시멜로 7개를 꼬지에 끼우는 작업도 했다. 나머지 물품의 제작 주문은

아주 간혹 내려왔을 뿐이다.

하루 종일 화개천 건너편 벚꽃축제 메인 행사장 스피커는 <내 나이가 어때서>와

<안동역에서>를 집중적으로 불러재꼈다. <안동역에서>는 자꾸 듣다보니 흥얼거리게 되었다.

그러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가스레인지 건너편으로 꽃띠가 선연했고 해가 저물 무렵이었다.

지상으로 올라가보자.

 

 

 

 

 

 

 

차창에 반사된 꽃잎은 실체보다 황홀한 허상이었다.

사진을 찍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사람과 인공물이 많아도 작정하면 찍을 장면은 많구나.

피할 일이 아니다. 다만 상황이 있을 뿐이다.

 

 

 

 

 

 

 

‘우리 팀’에게 ‘내일까지만 하자’는 제안 아닌 통보를 했다.

모두 같은 생각이었다. 우리는 이 거리와 가장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어쩌면 꽃을 즐기지 시작했을 것이다.

 

 

 

 

 

 

 

차량 행렬은 밤을 이어갔다.

이 밤이 아니면 이곳을 올 수 없는 사람들.

 

 

 

 

 

 

 

우리 노점 위로 섹소폰 연주자가 MR까지 대동하고 계속 연주를 했다.

노상 노래방이다. 며칠 전의 여 가수가 생각났다.

 

 

 

 

 

 

 

더 위로 올라갈 엄두는 나지 않았다.

단지 이번 시즌 나의 꽃구경은 노점 반경 30m 안이다.

 

 

 

 

 

 

 

4월 3일 일요일.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 곱게 내렸다. 그래서 꽃잎도 곱게 차곡차곡 쌓였다.

역시 오후에 지상으로 올라와 보니 내 차는 다른 차가 되어 있었다.

 

 

 

 

 

 

 

토요일보다 걷는 사람은 줄었지만 역시 줄을 잇고 있었고 차량은 꼬리에 꼬리를 밟고 있었다.

벚꽃 구경의 백미는 우중낙화다.

 

 

 

 

 

 

 

이상하게 벚꽃 절정 다음 날은 꼭 비가 왔던 것 같다.

그것은 그림의 완성이다. 이미 잎은 꽃을 찢듯이 밀어 내고 꽃의 종말을 확인사살한다.

 

 

 

 

 

 

 

바람 없는 비가 내렸기에 꽃잎은 그 자리로 쏟아졌다.

 

 

 

 

 

 

 

도로 옆 어느 한 지점에서 여러 번의 셔터를 눌렀다.

 

 

 

 

 

 

 

카메라 파인더는 선택이다.

그것은 파인더 밖의 세상에 대한 외면이다.

 

 

 

 

 

 

 

그래서 ‘무엇을 볼 것인가’ 라는 사진을 찍는 행위는

‘무엇을 보지 않을 것인가’와 같은 말이기도 하다.

 

 

 

 

 

 

 

비가 오면 색은 짙어진다.

마르기 전의 수채화가 원래 더 볼만 하다.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물론 이 길 끝, 500m 전진하면 남과 북으로 길을 선택할 수 있지만 그 500m를

전진하는데 1시간은 걸릴 것이다. 브레이크 등은 붉은 색이라 설득력 있다.

 

 

 

 

 

 

 

자정 가까운 시간에 구례로 돌아오면서 차 안에서 덩덕개가 말했다.

 

“형님, 엔딩 곡은 이걸로 하시죠. 아프로탱곤데…

제목이 파장(罷場 / la retirada) 이요. 허허헐…”

 

 

 

 

 

 

 

꿈에서 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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