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가을에 지리산을 간다면 - 만복대

마을이장 2007.10.30 18:05 조회 수 : 8367 추천:376



가을 산행을 한다면 어디가 좋을까?
더구나 가족들과 함께 해야 하기에 부담스럽지 않을 만한 산행을 원한다면 어디가 좋을까?
지리산에서 그런 곳을 찾는다면 주저 없이 만복대萬福臺를 권한다.









전국 어디에서 출발하건 일단 목표 지점은 전라북도 남원이다.
남원으로 올라오는 길이라면 구례를 지나 밤재를 넘어서면 '육모정(六-亭)' 또는 '지리산'이란 이정표를 보고
우회전하면 된다. 이정표에서 대략 10분 이내에 육모정에 도착한다. 남원 북쪽에서 내려오는 길이라면
남원을 관통해서 역시 '지리산' 또는 '육모정' 이정표를 보고 들어오면 된다. 역시 남원에서 10분 정도 차를
달리면 육모정 입구에 도착한다. 만복대 산행의 가장 큰 문제점은 대중교통이 없다는 점이다.
남원에서 육모정까지 운행하는 버스는 있지만 육모정은 737번 지리산 종단도로의 초입이다.
육모정에서 만복대 산행의 출발점인 정령치 휴게소까지는 16km에 달하는 거리다. 걷기엔 부담스럽다.
산행도 아닌 종주 도로를 걷는 것은 뭐…….
결국 만복대 산행은 차를 가지고 정령치 휴게소까지 도착하는 것이 가장 정답이고 아니면 불행하게도
남원에서 택시를 타고 정령치까지 올라야 한다. 대략 요금은 2만 원 정도지만 5천 원 정도 더 줘야한다.
만복대 산행을 위한 착륙지점은 여하튼 지리산 정령치 휴게소이다. 사진은 육모정 입구에 해당한다.
이를테면 지리산을 오르는 북서 사면의 시작인 것이다. 국립공원 입장료 폐지 이후 이쪽 진출입로에서는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 이 방면으로는 큰 절집도 없어 문화재 관람료 등의 요상한 돈을 필요로 하지도 않는다.









육모정이란 이름은 별 다른 뜻을 가지고 있진 않다. 단지 육각형 정자란 것이다.
따라서 대한민국에 육모정은 여기저기 많이 있다. 그런데 남원 육모정이 나름으로 유명한 것은
그 육모정 건너편에 춘향이의 묘가 있기 때문이다. 성춘향成春香.
실존 인물인지 아닌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남원 시에서는 번듯하게 '춘향묘'라는 거대한 표지 석을
세워 놓았다. 그 이유는 뻔한 것이다. 대도시를 제외한 마을에서 관광 수입은 주민들의 주요한
생계 수단이다. 민선 자치단체장이 출현한 이후 설화와 전설, 고전 소설 등의 등장인물은 이른바
캐릭터 상품이 되거나 테마 관광의 주인공으로 재탄생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지자체 사이에
홍길동이나 심청이의 출생지를 두고 머리 터지는 싸움이 벌어지기도 하는 것이다.
발상은 인정하지만 추진 방식, 관련한 상품, 그리고 이벤트의 질은 그리 탁월한 것 같지 않다.
상품성으로 보자면 변강쇠와 옹녀 이야기가 훨씬 탁월하지 않은가? 보통 변강쇠전 하면 베드신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성춘향의 계급 상승을 논하는 비현실적인 러브스토리보다 민중적이고
비장하기까지 한 스토리를 가진 것이 바로 변강쇠전이다. 뭐 변강쇠와 옹녀가 지리산으로 숨어들어
살았기 때문에 하는 소리는 아니다.









737번 도로는 지리산 육모정을 통해 달궁계곡까지 이어져 861번과 729번 지방도로로 이어지는 길인데
아주 험한 길이다. 차 좋고 길 좋아 쉽게 오르지만 한번씩 대형 사고가 생기는 도로이니 운전에 각별한
조심을 해야 한다. 여하튼 굽이굽이 이어진 지리산 종단 도로를 따라 천천히 오르다 보면 공기는 확연하게
달라진다. 대부분 그냥 지나치는데 정령치를 2km 정도 남겨 두고 왼쪽으로 휘어지는 길목에 '선유폭포'
안내판이 보인다. 곡선 주로이니 바로 세우지 마시고 조금 더 올라가서 갓길 주차하셔야만 한다.
안내판에서 10m만 걸어 들어가면 바로 폭포가 나온다. 몇 걸음이면 구경할 수 있는 폭포이니
오르는 길에 10분만 쉰다고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









이날은 가을이고 근자에 비가 드물었던 관계로 물의 양은 많지 않았다. 역시 폭포 구경은 여름이 좋다.
겨울의 얼어붙은 모습도 장관이겠지만 겨울에는 이 도로 자체가 진입 통제된다.
걸어 올라올 수밖에. 대부분의 폭포는 선녀들과 연관을 맺고 있는데 선유폭포도 그렇다.
선녀 수가 지금의 변호사 수 보다 많아 전국 각지의 폭포를 목욕탕으로 정한 것인지 몇몇 선녀들이
일은 하지 않고 전국 폭포를 돌아다닌 것인지는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









정령치 휴게소.
해발 1,172m에 자리하고 있는 휴게소이다. 개인적으로는 두 번쯤 있었던 인생의 전환점 무렵에
이 휴게소에서 달궁계곡 쪽을 내려다보았다. 사람들은 제 각각 제 인생의 장소를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을 것인데 나에겐 정령치가 그런 장소 중 하나이다. 지난 5월에도 정령치 휴게소 입구에서 냉각기
계통이 다 날아가는 일종의 사고를 한바탕 겪었다. 정령치 휴게소의 상황은 좋지 않다.
휴게소 입장에서 사업적으로 그렇다. 장사가 되지 않는다. 사람들이 찾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가장 큰 원인은 남원에서 이곳까지 운행하는 대중교통이 없기 때문이다. 남원 시가 버스 회사에
지원을 약속하고 운행을 종용하지만 그래도 타산이 맞지 않는다고 한다. 과연 그럴까? 해봤나?
버스를 운행한다는 것은 투어코스에 대한 기반이 준비되어야 한다. 오늘 오를 만복대 산행 코스 같은
경우도 아주 탁월한 상품이다. 그 다음으로 이곳이 썰렁한 원인을 찾자면 아마 기후일 것이다.
육모정에서 이곳까지 오르는 16km 종단도로는 굴곡과 경사가 심한 전형적인 산지형 도로이다.
그리고 이 길은 지리산의 북서사면이다. 음지에 해당한다. 가장 먼저 눈이 오고 가장 늦게 눈이 녹는
도로이다. 상대적인 문제지만 구례 천은사 방면의 진입로보다 훨씬 적은 통행량이기 때문에 절박하지 않아
그런지 제설 작업도 그만큼 느리다. 11월 중순경에 첫 눈이 오고 나면 다음 해 3월 말까지 이 도로 사용은
힘들다. 연중 4개월을 사용할 수 없는 도로인 것이다. 제법 심각한 핸디캡이다.
그러나 이 역시 돈이 된다면, 즉 이쪽 방면 겨울 산행 코스로 사람들이 몰리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이다.
여하튼 지금 정령치 휴게소는 민간이 운영하는데 대략 5~6년 정도 운영하신 분이라 한다. 그전에는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직영했다. 6명 정도 상주했는데 물 사정이 좋지 않은 정령치에서 일상생활을
하는 것도 힘들고 게다가 겨울 난방비는 많은 예산을 필요로 했던 모양이다.
금년 초에 국립공원 사이트에서 정령치 휴게소를 운영할 업자를 모집하는 팝업을 보았다. 잠시 고민했다.
온라인 뱅킹으로 통장 잔고를 확인해 보았다. 몇 천 원 있었다. 포기했다.
여하튼 금년 말까지 지금의 운영자 시간은 종료된다. 기간을 연장할 생각이 없다고 한다.
적당한 후임자도 나서지 않고 있다. 별 이변이 없다면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다시 맡을 것이다.
고민을 좀 해보면 답이 나올 것 같은데 어쩌면 나 혼자만의 정서일지도 모른다. 왜냐면 나에겐
기가 막힌 곳이지만 다른 사람들 눈엔 그냥 그렇고 그런 흔한 풍광일 수도 있다. 그리고 사실 사람이
몰리지 않아 이곳이 좋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계속 이렇게 전국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서
가장 고독한 휴게소로 남아 있는 것도 좋을 것이다. 시간당 주차료는 천 원이다.









우리가 오늘 오를 곳은 만복대이다.
1,433m라는 만만치 않은 높이지만 우리는 정령치 휴게소 1,172m에서 출발한다.
산행지도를 보면 아시겠지만 광대한 지리산 전체 등산로 중 서북능선 코스의 일부분이다.
지리산은 큰 산이라 계절마다 시간마다 제 각각의 절경을 자랑하는 장소들이 있다.
만복대의 절정기는 바로 가을이다. 억새 능선을 걸어가는 것이다.
흔히들 2박 3일의 지리산 종주를 끝내고 나면 지리산을 제법 많이 둘러본 것이라 생각할 수 있는데
지리산에는 대략 50여 개의 산행 코스가 있다. 이장의 지리산 경험은? 형편없다.
20년 이상 전이었던 종주 2회, 노고단 여러 번, 반야봉 2회, 뱀사골 코스 한 번, 피아골 코스 한 번…….
더 없다. 그런데 왜 당신이 지리산닷컴 이장이냐? 지리산닷컴 이장은 민선이 아니다. 임명직이다.
더구나 오늘 소개할 만복대는 대략 7회 정도 방문한 경험이 있는 산행 코스다. 산행 거리는 2.2km이다.
산행 시 소요시간은 대략 1km 이동을 30분으로 잡는다. 그래서 넉넉잡고 70분이면 일반적으로
충분히 만복대 정상에 도착한다. 하지만 더 느려도 뭔 문제겠는가? 산을 즐기기 위해 왔고 자신의 몸에
맞게 이동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여하튼……. 일반적으로는 정령치 휴게소에서 만복대를 넘어
성삼재 휴게소까지 등반한다. 성삼재에서 만복대로의 진행보다 만복대에서 성삼재로의 진행이 더
바람직하다. 성삼재 휴게소에서는 구례까지 운행하는 버스가 있다.
이런 경우는 결국 누군가 정령치까지 데려다 주거나 택시로 정령치까지 이동해야 한다는 뜻이다.
만복대에서 성삼재 휴게소까지는 대략 6km이다.









정령치 주차장 앞 도로 건너편에 만복대 산행 입구가 있다. 계단 길을 따라 오르면 된다.
모든 산행은 처음이 가장 힘들다. 산행에서 계단 길은 제일 고통스럽다. 하지만 길지 않다.
계단 길을 오르다가 살짝 왼편으로 굽어진 잡초 소로를 따라 내려가면 등산로가 확연하게 눈에 보인다.









당분간 사진과 같은 숲길을 따라 오른다. 20분 정도의 경사로이고 적당하게 땀이 날 것이다.
어찌 보면 이 20분이 만복대 산행에서 가장 힘든 코스이다. 그만큼 만복대 산행은 평이한 편이다.
몇 년 전에 이 20분을 견디지 못해 정령치 휴게소로 하산한 20대와 30대 후반의 남자 두 명이 있었다.
이곳을 보고 있을 것이다. 몸 상태는 좀 좋아졌는지 아니면 계속 자판기 커피와 담배, 알코올을 주입해서
몸이 아닌 몸뚱이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지 보고 싶기도 하다.
이 오르막의 나무들은 참나무류가 주종이고 간간히 자그마한 노송도 보인다.
초행인 사람들은 이 즈음에서 물어 온다.

"계속 전망은 보이지 않고 이런가요?"
"산이 그렇지 뭐 별 거 있나……."









이 이정표가 보이면 오르막은 대략 끝이 난다. 물론 중간 중간 짧은 오르막과 나무뿌리를 잡고
올라야 하는 장면도 두어 번 등장하지만 긴 오르막은 여기서 끝이 난다. 좀 쉬고 싶은 생각이 나고
물도 마시고 싶을 즈음이다. 몇 십 걸음 더 진행하다 보면 '여기서 잠시 멈추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지점이 나온다. 고개는 자연스럽게 왼편의 벼랑 쪽으로 돌아가게 되고 아래와 같은 모습을 만나게 된다.









달궁계곡 쪽으로 이어지는 737번 도로가 얼핏 보이고 산은 느닷없이 나타난다.
이 느닷없음이 일순간 쾌감을 안겨주는 것이다. 조금 전까지의 가쁜 호흡의 이유는 바로
이 느닷없음에 있다. 물론 좋은 날씨를 만나야 한다. 만복대 산행에서 나는 개인적으로 이른 새벽이나
아침을 고집하지는 않는다. 짧은 등산이지만 지리산 종주 코스의 축소판 같은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길이다. 왼편으로 구겨진 듯한 산의 주름과 오른편으로 시원하게 펼쳐진 남원과 구례 쪽의
풍광을 조망하려면 산이 깨어나기를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억새는 역광이 좋다.
물병을 처음으로 열고 한 모금 천천히 목젖으로 흘려보낸다.
시야를 가리는 나뭇가지는 약간의 장애이기도 하고 앞으로 전개될 모습을 숨기는 반쯤 닫힌
극장의 커튼이기도 하다. 평지 같은 산길을 2분 정도 더 올라가면 이제까지 올라온 길의 완전한 시야를
확보할 수 있다.









큰고리봉 너머 멀리 운봉 들판이 보인다. 산행을 한 날은 시계가 제법 좋은 편이었다.
왼편으로 남원, 오른편으로 장수가 이어진다. 저 먼 산 능선들을 넘고 넘어가면 덕유산 자락을 만날 것이다.
사람의 흔적이 아주 멀리, 한 점처럼 보일 때 그곳을 떠나 왔다는 느낌을 받는다. 짧은 시간이지만
그곳과 떨어져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즐긴다. 물론 시각적으로 보이는 모습이니 돌아갈 것이란 안도감을
예비하고 있다. 일상적으로 '떠나고 싶다!'고 아무리 떠들어도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돌아갈 수 없다면 떠나오지 못 할 것이다. 대부분은.









왼편으로는 지리산의 능선들이 펼쳐진다.
아래쪽 도로가 끝나는 지점의 깊숙한 함몰 지점 속으로 들어가면 달궁계곡이다.
전설이 있다. 학계에서 인정할 만한 물증이 아니라면 전설이다. 그래서 역사로 인정받지 못한다.
하지만 모든 역사가 사실은 아니다. 문제를 제기하는 입장에서는 오류와 편견을 뒤집을 증거 또는 힘을
가지지 못했을 뿐이다. 그래서 달궁계곡의 전설은 미지의 역사이다.
때는 지금으로부터 이천 년 전이다. 삼한시대였다.
온조왕의 신흥 백제 세력과 변한과 진한에 쫓기는 부족이 있었다. 마한의 효왕은 마지막 은신처이자
세력 회복을 위한 시간을 벌기 위해 지리산으로 백성을 이끌고 들어왔고 성을 쌓았다.
지금의 달궁마을 주차장 바로 아래에 궁터가 남아 있다. 반야봉을 좌우에 두고 정령과 황령에 성을 쌓았다.
정 장군과 황 장군이 이 일을 진행해서 지금의 정령과 황령이라는 이름이 생겼다.
달궁계곡은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 달궁마을에 있는 계곡이다. 반야봉(1,751m), 노고단(1,507m),
만복대(1,437m), 고리봉(1,305m), 덕두봉(1,150m) 등이 성벽처럼 계곡을 둘러싸고 있다.
천혜의 방어벽이다. 하지만 절대적인 고독의 피란 도성이었을 것이다.









지리산의 개산開山 시점을 통상은 바로 이 마한의 피란 도성 달궁의 건설 무렵으로 잡는다.
역사로 인정받는다면 말이다. 달궁계곡이라는 이름은 月宮이라는 약간은 문학적인 유례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 달궁계곡의 지명 한자는 達宮溪谷이다. 옛날에 이곳에 달공사達空寺라는 절집이
있었다고 한다. 그 절집 이름에서 유래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정씨와 황씨 이야기도 타당하지 않다. 이천 년 전이라면 성씨가 등장하기 전이다.
증명하지 못하면 역사학계에서는 무시당한다. 새로운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에 대단히 인색할 수밖에
없는 것이 역사학인 듯하다. 1928년 7월 지리산에는 큰 물난리가 났다. 심원계곡에서 쏟아져 내린 물이
달궁계곡을 덮쳤다. 그때 물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 위에 궁터와 질그릇, 청동제 장신구, 놋쇠가마 등이
땅 위로 드러났다. 일본인 순사부장이 잽싸게 수습해 갔다고 한다.
뭔 대규모 발굴 작업이 벌어질 만한 또 다른 유물이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하지 않는다면 달궁계곡은
여전히 이곳의 전설로 존재할 것이다. 만복대를 오르는 길에 멀리 깊은 심연 속의 먼 달궁을 바라보며
이천 년 전의 한 부족을 상상한다.
그들은 여전히 구리를 다루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전라북도 너른 들판에 새롭게 등장한 세력은
쇠를 다루고 있었다. 석기, 청동기, 철기 등의 변천사는 살인 수단의 발달사이다. 마한의 마지막 남은
작은 부족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쫓기고 쫓겨 지리산으로 들어섰다.
그들은 방비를 했지만 그들을 산으로 쫓아 낸 세력의 입장에서는 山이란 감옥으로 감금시킨 것이다.
내가 지금 스쳐 지나고 있는 산죽竹으로 이어진 소로를 따라 이천 년 전 어느 날 쇠락한 부족의
마지막 왕이 멀리 자신의 옛 영지를 바라보기 위해 올랐을 것이다.
산죽은 짙은 초록이고 피는 붉다.









마한의 비운을 뒤로 하고 산을 오른다.
서북 방면과 남서 방면 전망은 아득하게 사람의 마을 모습이다. 하지만 동쪽 방면으로는
사람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멀리 높은 봉우리가 반야봉이다. 지리산의 주봉은 천왕봉이지만
산의 생김으로 보아 구례 방면으로 노고단을 중심으로 지리산의 앞면이고 천왕봉을 중심으로
함양과 산청 방면의 모습을 산의 뒷면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런 기준에서 이 산을 잘 아는 사람들은
높이의 문제가 아닌 의미와 형상에서 반야봉을 주봉으로 삼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그런 해석이
마음에 든다. 높은 것이 최고라는 등식이 아닌 해석은 신선하기까지 하다.
반야봉은 다음 조만간 따로 한번 다룰 것이다. 바라보면 풍성하다. 반야봉 뒤로 종주코스 능선들이
이어진다. 앞 선 글에서 돌아갈 것이니 떠나온다고 말했는데, 간혹 산 속에 있다보면
돌아가지 않을 여행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사진을 비교해 보자.
먼저 보이는 사진은 얼마 전 10월 22일이다. 아래 사진은 2006년 10월 14일이다.
거의 같은 지점에서 찍은 사진이다. 금년 사진이 작년 같은 시기보다 8일 정도 뒤 늦게 찍은 것인데
단풍의 진행 정도가 작년 보다 못하다. 빛의 영향도 있겠지만 다른 사진을 대조해 봐도 그렇다.
대부분의 사진은 몇 년간 포커스 지점이 같았다. 늦게 까지 이어진 더위와 역시 늦게 까지 계속된 비
때문일 것이다. 아마 단풍이 그렇게 탁월한 가을이 될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이 역시 알 수 없다.
작년 가을, 우리는 짙은 단풍 숲으로 진입하지 않았다.









만복대를 오르는 중간 즈음에 거북바위가 나온다. 전망이 아주 탁월한 쉼터에 해당한다.
그렇게 힘들지 않게 올라온 사람들이라면 이곳에서 처음 다리쉼을 한다. 동서로 탁 트인 상반된 전경을
제공한다. 멀리 남원이 보인다. 가시거리가 완전히 확보되는 날이라면 남원시가 잡힐 듯이 다가오지만
최근에 그런 날은 거의 없는 듯하다. 아마도 해가 거듭될수록 그럴 것이다. 처음에는 이 서쪽 방면
사람의 동네 쪽으로 눈이 많이 갔는데 요즘은 그렇지 않다.









오분의 삼 정도 올라왔다. 이제 더 이상 힘든 길도 없다.
조금 멀리 만복대 정상이 보인다. 만복대 특유의 억새들도 보인다. 하지만 그 양은 점점 줄어간다.
억새 사이로 굽이굽이 섬진강 모습이 가장 탁월한 왕시루봉에도 점점 억새가 줄어간다고 한다.
식생이 변한다. 아열대성 과수들이 이제 남해안 전체에서 가능하다고 한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여전히 만복대는 아름답다.









억새가 아직 이르다기보다 정령치 주차장 아저씨 이야기로는 최근 심한 바람에
억새 잎이 빨리 떨어졌다고 한다. 그래서 멀리서 보아도 확연했던 억새밭이 점점 희미했던 것이다.
거의 매년 이 산을 오르지만 오를 때마다 풍광이 변한다. 문제는 그 변화가 눈에 띄게 빠르다는 것이다.
사람의 일이 아닌 영역에서 빠른 변화는 좋지 않은 듯하다.









아! 이 길을 다시 걷는다.









이 길을 처음 걸었을 때는 늦은 여름이었다. 꿈결 같은 길이었다.









짧아서 아쉽고 아쉬워서 사무치는 길이다.
금년 겨울과 내년 봄에 이 길을 걷는다면 사계절을 모두 걸어 보는 것이다.
이 길을 정말 사랑한다.









만복대 정상이 조금 더 가까워졌다.
사방으로 복을 내려주는 봉우리라 하여 지어진 이름 만복대萬福臺.
그 생김새는 초가지붕을 닮았다. 복스럽게 생겼다. 뾰족하지 않은 봉우리에서는 동서남북으로
전망이 탁월하고 그 맛도 모두 다르다.









동쪽 능선 아래로 분지 같은 완만한 계곡이 아주 천천히 이어진다.
온갖 잡목과 풀과 야생화와 억새들이 층을 이루고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 능선 길에서 좌우를 바라보며 하루 종일 앉아 있어도 좋을 것이다.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평일이다. 청복淸福이란 이런 것 아닌가.
'산수간에 집을 짓고'(서유구 지음/안대회 엮어옮김/돌베개/2005)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옛날에 몇 사람이 상제上帝에게 하소연하여 편안히 살기를 꾀하려고 하였다.
그 중 한 사람이 "저는 벼슬을 호사스럽게 하여 정승 판서의 귀한 자리를 얻고 싶습니다."라고 하니
상제가 "좋다. 그렇게 해주마."라고 허락하였다. 두 번째 사람이 "부자가 되어 수만 금金의 재산을
소유하고 싶습니다."라고 하니 상제가 "좋다. 네게도 그렇게 해주마."라고 대답하였다.
세 번째 사람은 "문장과 아름다운 시로 한 세상을 빛내고 싶습니다."라고 하자 상제는 한참 있다가
"조금 어렵지만 그래도 그렇게 해주마."라고 답을 하였다.
드디어 마지막으로 한 사람이 나와 이렇게 말했다.
"글은 이름 석자 쓸 줄 알고 재산은 의식衣食을 갖추고 살 만합니다. 다른 소원은 없고 오로지
임원林園에서 교양을 갖추며 달리 세상에 구하는 것 없이 한 평생을 마치고 싶을 뿐입니다."
그러자 상제는 이맛살을 찌푸리면서 이렇게 답했다.
"이 혼탁한 세상에서 청복淸福을 누리는 것은 가당치도 않다. 너는 함부로 그런 것을 달라고 하지 말라.
그 다음 소원을 말하면 들어주겠다."









능선길이 끝나고 다시 오르막이 시작될 무렵 시야는 잠시 가려진다.
반야봉이 낮아진 것은 우리가 좀 더 높이 올라섰단 의미일 것이다.
나의 위치에 따라 지리산 주능선의 모습은 변한다.









이제 정상을 앞 둔 마지막 고비다. 하지만 고비라 하기엔 너무 예쁘장하다.
서쪽 사면 쪽으로 단풍이 제법이다.









만복대는 지리산의 팔대八臺 중 하나이다.
대臺. 뷰 포인트View Point다. 타이핑이 힘들어 한자는 생략하겠다.
청신대는 남원군 산내면 상왕부락에 있다. 금대는 함양군 마천면 가흥부락에 있다.
다음으로 상무주가 있고 벽송사는 절터이기도 하고 칠선계곡에 있다.
함양군 휴천면 세동 부락에 마적대가 있고, 함양 마천면 군자리에 문수대가 있다.
뱀사골 뒤의 산내면 와우리에 연화대가 있고 묘향대는 구례 산동의 반야봉 밑에 있다.
이곳은 반야봉과 개운조사 이야기를 다룰 겨울 무렵에 좀 거론하도록 하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만복대다. 이렇게 팔대八臺다. 도 닦기 좋은 자리다.
사표를 생각하시는 분들은 염두에 두시기를.

마지막 호흡을 추스르고 만복대에 도착했다.









남서쪽으로 멀리 시암재 휴게소의 주차장이 아주 작게 보인다. 그 너머 너머 너머로 날아가면
광주 무등산에 닿을 것이다. 산은 이어지고 인적은 보이질 않는데 그 골과 골 사이 사람 사는 마을에선
산이 아득하더라.

길을 따라 내려가면 성삼재 휴게소까지 이어지는 6km 정도의 길이 이어진다.
대략 2백m 정도 내려 갈 때 까지는 완만한 구릉형의 평화로운 목장 풍경이다.
이후로는 낮은 잡목 사이로 시야를 확보하기 힘든 완만한 내리막길이 이어진다.
지금까지 보아왔던 다양한 표정의 산행과는 다르게 좀 지루한 편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저 길을 따라 올라오는, 즉 성삼재 주차장에서부터 올라오는 코스 보다
정령치 휴게소에서 만복대를 올라 성삼재로 내려가는 이런 순서를 권하는 것이다.









반야봉은 계속 만복대와 마주한다.
이날따라 반야봉이 선연했다. 마치 반야봉을 보기 위해 만복대를 오른 듯 했다.
산은 대략 골산骨山과 육산肉山으로 나뉘는데 골산의 대표주자는 설악산이고
육산의 대표주자는 지리산이다. 골산은 말 그대로 바위가 두드러진 산이고 육산은 흙이 두터운 산이다.
마을마다 오일 장이 서는데 그 장날은 산의 모양을 보고 결정한다고 한다.
육산은 3일과 8일장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참고적으로 화개 장은 무조건 주말이다. 조영남의 노래 이후
그리 정한 모양이다.
험할 것 같은 지리산은 사람을 편안하게 해준다. 육산이라 그렇다.
육산인 지리산은 살집이 두툼하고 산이 먹을 것이 많다. 가장 넓은 산이기도 하다.
먹을 것 많고 구경할 것 많고 넓다보니 숨어 살기 좋은 곳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은자들은
지리산으로 숨어들었다. 그래서 이 산에는 신선들이 많다. 지금도 있다.
내려갈 땐 축지법으로 가야지.









정상에서 남쪽으로 바라본다.
멀리 노고단으로 오르는 나무 계단길이 빛나고 있다. 흘러내려 차일봉이 봉곳하고
녹색 기운이 남아 있는 산의 등뼈는 완만하다. 어느 해 초겨울, 저 등뼈는 너무 쓸쓸했었다.
그날 함께 산을 바라보던 사람은 지금 내 곁에 없다.









한동안 머물면서 사진을 찍었다.
딱 한 사람이 거의 동시에 성삼재 방면에서 정상으로 올라왔다. 그에겐 우리가 방해꾼이었을 것이다.
남서쪽 바로 아래 산수유로 이름난 구례군 산동면 월계마을이 펼쳐진다.
금년 봄에는 저 아래 월계마을 산수유 꽃 속에서 이곳 만복대 눈 쌓인 모습을 경이로운 마음으로
올려다보았는데……. 이러한 모습이었다.












이제 내려가야 한다.
성삼재 방면으로 내려가는 길도 강하게 유혹하지만 차는 정령치 휴게소에 있다.
산은 첩첩이고 마음은 아쉽다.
사람은 왜 돌아가야 할까…….









산을 내려와야 하는 가장 강력한 이유는 먹기 위해서다.
초근목피로 연명하기엔 이미 먹은 음식이 너무 많아 그 그리움으로 일찍 죽을 것이다.
산행의 마무리는 허기진 배를 맛난 음식으로 채우는 것이다. 돌아오는 길을 구례읍내로 잡는다면
평화식당을 권한다. 뭔가 근기 있고 뜨거운 국물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가을과 초봄, 겨울이라면 더욱 그렇다. 평화식당. 2대째 40년 세월을 육회비빔밥만 만들어 팔고 있다.
가격은 오천 원. 전화번호 나간다. 061-782-2034.
지리산닷컴의 맛지도가 완성되기 전에는 이 정도 정보로 찾아가 보자. 뭐 쉽다.
구례읍내에 도착해서 지역 주민으로 의심되는 사람들에게 제일교회 맞은편 평화식당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어보면 되는 것이다.









육회비빔밥. 말 그대로 소고기를 익히지 않고 생으로 올려서 나온다.
물론 못 드시는 분들을 위해 익혀서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역시 생이 제 맛이다.
처음 이 집 비빔밥을 먹어보면 그냥 그저 그럴 수도 있다. 무기교란 이런 것이기 때문이다.
“뭐가 특별해!” 하고 항의하실 분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역시 좋은 음식은 돌아서면
생각이 나는 것이다.
이 집 육회비빔밥의 특징은 고추장에 있다. 누룽지가루와 찹쌀가루를 섞어 만드는 고추장은
한달에 두세 번 담근다. 투박한 맛이다. 그리고 어쩌면 비빔밥 보다 더 입맛을 당기는 저 국물.
돌새우를 우려낸 것이라는데 도대체 국물에 무슨 짓을 한 것이야!
주전자 째로 옆에 두고 자꾸 마시게 된다. 비빔밥 그릇을 통째로 불 위에 올려 데우기 때문에
그릇이 뜨겁다. 냅킨으로 그릇을 잡고 비벼 먹는다. 뜨거운 국물을 훌훌 마시면서.
그러면 만복대가 눈앞에 다시 나타나고 어쩌면 돌아가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은
새로운 힘을 얻는다.

다음 주 긴 이야기는 단풍산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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