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살구나무와 이웃들 그리고 신입생

마을이장 2007.11.10 17:05 조회 수 : 10044 추천:1034



* 지리산닷컴을 보시는 분들 중에는 도시를 떠나 시골에서
   생활하고자 하는 희망을 가지신 분들도 있을 것이다.
   이 글은 서울을 떠나 지리산 자락에 자리한지 17개월 된 초보 '촌사람'이
   살구나무 한 그루 문제를 처리하면서 17개월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일상에서 느꼈던 '원래 주민들'과 '나'의 생각 차이에 관한 글이자
   먼 곳에서 시골이나 전원을 꿈 꾸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기대치와 현실의
   차이를 '미루어 짐작한' 이야기로 구성했다. 따라서 글쓴이의 주관과 짐작,
  그 이웃들의 경우에 기반한 이 이야기는 '일반성'을 획득하기에는 모자람이 많다.








6월이었다.
꽃이 그러하듯이 열매 또한 어느날 갑자기 그 실체를 보여준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어느 순간 폭발적으로 변신하는데 마치 번데기에서 나비에로의 변화에 비견할 만한
혁명적인 변화를 보여주었다. 그것이 아니라면 보는 이가 주변의 변화를 감지하는 것에
너무 둔한 사람일 것이다. 여하튼 그렇게 6월 어느날 지리산닷컴 사무실로 들어가는 골목 입구에
갑자기 살구 열매가 굴러내려오기 시작했다. 지금 이 순간 특히 후회스러운 것은 왜 그 무렵에
주렁주렁 열린 살구나무 전체를 보기 좋게 카메라로 담지 못했을까 하는 것이다.
이곳에 살면서 아주 명확하게 깨달은 사실은 특히나 식무들의 '그 한순간'은 정말 찰라였다.
그 순간을 놓치면 다시 일 년을 기다려야 하지만 일 년 후의 그 순간이 항상 어제와 같을 수는 없는 것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대부분은 자신의 '그 순간'이 절정이었다고 믿는 것이다.









사무실을 이곳으로 옮겨온지 한 달 가까이 되어서야,
노란 열매를 보고서야 살구나무는 '나에게도' 살구나무가 되었다.
그것이 살구나무라는 사실을 몰랐던 사람은 이 마을에서 아마도 이장 혼자였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어떤 사물의 이름을 알고 있는 것과 그 이름의 실체를 만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이라는 사실이다. 이곳에서는 이 살구나무를 특히나 '떡살구'라고 불렀다.
차지고 달다. 물론 요즘 사서 먹는 과일들의 비정상적인 당도 만큼은 아니다.
그냥 나무에서 시각적으로 '살구나무'인 것으로 판명난 이후 이 나무는
나에게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다. 나무의 열매는 이전에도 따 보았다. 모두 이 마을에서이다.
앵두가 먼저였고 매실이 다음이었다. 그리고 연이어 살구를 만진 것이다.
살구가 느낌이 가장 좋았다. 무엇보다 요즘 흔한 과일도 아니고 시골에서도
이제 드물어진 과실수다.
저 잎을 보라. 얼마나 풍성한가. 그리고 그렇게 큰 나무는 아니지만 나무의 생김도
잘 생겼다. 적당히 휘어진 밑둥치와 뻗어 나간 가지의 모습은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사물을 발견했을 때 자주 사용하는 표현인 "디스 이즈 나무"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나무는 나무답게, 곰은 곰답게, 개는 개답게, 사람은 사람답게.
그렇게 사무실 입구와 골목에는 앵두나무, 대추나무, 살구나무, 감나무들이
참으로 사람의 마음을 기분 좋게 만드는 좋은 벗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문제가 터진 것은 마을의 오폐수관 공사가 시작되면서이다.
몇 년 전에 측량하고 설계했을 것이고 이제 공사를 시작하는 것이다.
공사는 진작부터 알고 있었지만 그 공사로 인해 이 오래된 골목의 길이
조금 확장되고 지적도 그대로 조정된다는 사실을 내가 인지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 설계에 의하면 윗 집에 해당하는 운암댁 대문에서부터 그 아래 지천댁 집의
담벼락 자리까지 포크레인으로 파 내고 관을 묻는 것이다.
살구나무를 들어내어야 하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지천댁의 입을 통해 우연히 들었다.

"살구나무 뽑아 불고 나면 보로꾸 담을 쌓을껴. 그 동안 담도 없었는데
이 참에 해치워야지."
"예? 살구나무를 뽑아요? 어디로 옮겨요?"
"언제... 그냥 뽑는 거이제. 저 윗 마을에 나무하는 사람이 있는데
적당한 값을 쳐주믄 팔고."

며칠 후 '나무하는' 할아버지가 방문했다.
마침 지천댁 마당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던 나는 상황을 관찰했다.

"얼매 쳐 줄라요?"
"장비가 들어와얀께, 이 나무 하나 보고 장비값 넣을랑게...
오만원 드리지요."
"머시여? 오마넌? 관둡시다. 밸 소리를 다 듣겠네."

거래는 그렇게 파토가 나버렸다.
나무하는 사람이 가고 나서 열받아 있는 지천댁에게 물었다.

"엄니 이제 어쩔꺼요?"
"뭘 어쨔. 그냥 뽑아부러야제."
"저 나무가 몇 년 되었는데요?"
"긍께 저거 아부지 살아 있을 때... 큰 딸 낳고 거시기 보자... 한 삼십 사년 되얐구만."

나무 나이 서른 네 해. 청년이다.
순간적으로 '이건 아니다'는 생각이 충동적으로 들었다.

"저 나무 사무실에서 살께요."
"오잉? 나야 그라믄 좋제. 자네가 산다믄 뭐 그냥 파 가."
"아뇨, 나무 장사보다는 좀 더 쳐 드릴께요. 그렇게 하는 것으로 합시다."

공사가 시작될 무렵에 나무는 지리산닷컴 형의 농장 '산에사네'로 옮겨 가기로 했다.
그렇게 정리되는데는 지천댁의 동의와 지리산닷컴 형의 '나의 마음에 대한 배려'가
도움으로 작용한 것이었다. 땅 한 평 없는 이장이 나무를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일은 갑자기 터졌다.
2007년 11월 5일. 월요일이었고 지리산닷컴 형은 하필 장기 출타를 시작한 날이었다.
오전에 추수가 끝난 이 골목의 두 집 상황을 체크한 공사팀이 골목으로
포크레인을 진입시켰다.









아침부터 나는 마음이 안절부절이었다.
장거리 이동 중인 형에게 전화를 해서 방안을 강구한 것이
'며칠은 사무실 앞에 임시로 심는다. 다음 주에 산으로 옮긴다' 였다.
마침 오전에 다른 일로 방문한 옆 마을 한옥 펜션 주인장이 상황을 보았다.
이른 점심을 같이 하는데 '내가 그 나무 살까요' 하는 것이다.
그래 나무에 대해서 정말 파리 똥집 보다 더 적은 지식을 가진 나는 흔쾌히 동의했다.
지리산닷컴 형의 농장은 해발 700m이다. 파리 똥집 보다 나무에 대해 적은 지식을 가진 이장이지만
해발 고도가 그렇게 달라지면 살구나무가 쉽게 적응을 할 수 있는 것인지 진작부터 걱정스럽긴 했던 것이다.
형에게 전화해서 동의를 얻고 나무값과 장비값까지 해서 갑자기 나무의 주인장은 바뀌게 된 것이다.
점심을 기분 좋게 끝내었다. 다행이야. 나무에겐 이것이 최선의 결과다.









점심 시간 지나 바로 골목에서는 포크레인질이 시작되었다.
포크레인 기사님에게 당부를 했다. 살구나무를 옮겨갈 사람이 트럭을 가지고 곧 당도할 것이다.
잠시 기다려 달라. 트럭이 도착했고 나무의 새로운 주인장과 나무를 잘 아시는 어르신이 함께 오셔서
일을 지휘했다. 주변 잡목을 전기톱으로 정리했다. 그리고 나무의 주변을 파 내고
골목쪽으로 뿌리째 기울여내고 줄을 걸어 트럭으로 포크레인이 들어 올리는 공정이다.
잘 모르지만 이런 나무를 옮기기 위해서는 사전 작업이 필요하다고 들었는데 시간이 없었다.
그냥 바로 정리하고 포크레인질 하고 들어올리는 수밖에.
사실 지천댁이 좀 원망스럽기도 했다.
자신의 손으로 심은 서른 살 넘은 나무를 어찌 그렇게 쉽게 포기할 수 있었는지 야속한 생각이 들었다.
지리산편지에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여우주연으로서의 지천댁이니 더욱 그러했다.

서울을 떠나 전라남도 구례 땅에 자리 잡고, 처음에는 읍내에 있다가
이제 시골 마을에서 하루의 대부분 시간을 보내고 경험하고 있는 나에게 개인적으로 이웃 아주머니와
할머니들은 실제 큰 힘이자 동지들이다. 간혹 주변에서는 '이웃과의 조화' 문제를 우려하기도 했는데
이상하게 나는 그런 문제는 없었다. 아마도 성격과 방침 탓일 것이다.
물론 아주 짧은 기간이었다. 하지만 나의 언행에서 어떤 지점은 분명히 과도한 '친절'과 '감수'를
자청한 장면이 있었다. 이것은 방침의 일종인데 성격과 결부된 것이기도 하다.
내 나름으로 마을에 사무실이 자리하면서 정한 몇 가지 원칙이 있었다.

1. 그 마을 주민이 되어야 한다.
2. 가능하면 마찰을 일으키지 않는다.
3. 노인들이 절대 다수이니 예절을 철저하게 지킨다.
4. 약간의 불편과 손해는 감수한다.
5. 이야기는 하되 주장은 하지 않는다.

따지고 보면 꼭 시골이라 필요한 원칙이 아니다. 어느 곳에 살건 필요한 것인데,
'이곳은 시골이다' 라는 괜한 위치적 특이성을 부각시키는 것 자체가 초보 촌사람인 신입생의 어색함이다.









나무는 이제 골목쪽으로 기울어졌다.
가지에 손상이 많았다. 굵기가 그렇게 두꺼운 나무는 아니지만 살구나무 지름이 30cm 정도면 큰 편이라고 했다.
우지끈 가지 부러지는 소리가 들린다.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저렇게 큰 가지들이 부러져도 괜찮은 것인지.
이전 이장의 개인 사이트에 이 살구나무에 대한 글이 있다. 그 날 나의 마음은 아래와 같았던 모양이다.

<...골목으로 뻗어 있는 아주 큰 살구나무 꼭대기에 대나무 작대기를 넣어 흔들었다.
한번 후려칠 때 마다 길 바닥으로 살구가 쏟아져 내렸다. 경사로를 따라 굴러가는 살구들을
포획하기 위해 대나무 작대기를 골목 어귀에 장벽처럼 막아 두었다.
살구나무를 흔들기 조금 전 까지 나는 분명히 일러스트와 포토샵을 오가며 맥박수를 높이고 있었다.
백개 정도 되는 살구를 포획해서 살구나무 주인 할머니와 이웃 할머니들에게 조금씩 나누어 드렸다.
그리고 그 순간이 내 평생에 처음으로 살구를 직접 따 본 경험이었다는 경이로운 행복감이 느껴졌다.
좁은 사무실에 오후 내내 살구향이 지천이다...>

평생을 도시에서만 마흔 다섯 해를 보낸 남자의 이런 묘사는
남들이 보면 참 우스운 이야기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골 영감이 신도림역 아침 출근 시간에
1호선에서 2호선으로 환승하는 대모험을 하는 것에 버금가는 경험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래 살구나무의 이사 과정에서 발생하는 큰 가지의 우직끈 소리는 뭔 전원생활의 로망을 품고 시골로
내려 온 케이스는 아니지만 분명 묵직한 통증을 가슴으로 전달했다.
나무가 쓰러질 때 땅바닥으로부터 진동이 느껴졌다.









나무가지가 부러지고 작은 뿌리를 잘라내는 동안 나는 분명히 이번 살구나무건에 대해서 후회하고 있었다.
<괜한 관여를 한 것이다. 내가 뭘 안다고, 내가 뭔 환경주의자도 아니고,
평소에 그렇게 살아 온 것도 아닌 주제에, 순간적인 감상주의가 명백했다.>
옮기려면 어쩔 수 없고, 옮겨 심고 나무가 살아 남는 것에 전혀 문제가 없다는 '제거' 작업을
파인더로 보는 내내 마음은 불편했다.
<살구나무를 살렸다는 글 만들려고 이렇게 사진 찍고 쇼를 하는 것 아닌가.
도시에서 온 자연을 사랑하는 지식인 같고 폼 나는 일 설정쇼하나>
명백하게 그런 지점도 있었다. 그리고 마음이 불편했다.
외면했다면, 아침에 포크레인 들어 온 것 보고 사무실 창문 닫고 음악 볼륨 높이고 몇 시간만 있다가
사무실 밖으로 나왔다면 마을에는 아무 일도 없는 것이다.
자연이다, 생태다... 도시에서는 책에서 읽은 글들을 보고, 또는 간혹 여행 길에 만나는 돌담과 흙길의
소담함에 마음을 두었지만 막상 시골에서 돌담과 흙마당은 애물단지다.
그들에게 돌담은 매년 보수해야 하는 귀찮고 낙후한 어쩔 수 없는 담벼락이며,
흙마당은 고추 하나 내어 말리지 못하는 질척거리는 면적에 불과하다. 철이면 철마다 건조시켜야 할
작물이 어디 한두가진가? 모순이다. 도시 사람들은 자연건조 태양초를 유기농이다 뭐다 원하지만
막상 그들이 원하는 자연광 건조를 쉽게 하기 위해서는 시멘트 마당이 적격이다.
시멘트 마당이 없었다면 도시에서 먹는 고추의 구할은 건조기에서 말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돌담과 자연건조 태양초는 공존하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지천댁은 '보로꾸' 담을 원하고 도시 사람들은 '자연건조 태양초'를 원한다.









이제 나무는 트럭으로 옮겨졌다.
가장 힘든 과정이 끝이 났다. 손상이 많았지만 나는 빨리 과정이 끝나기를 원했다.
서른 해 넘게 땅 속에 있던 뿌리가 드러났고 흙은 황토색이었다.
나무의 무게는 상당했다. 트럭 뒷바퀴가 제법 내려 앉을 정도였다.
이제 나무는 나무의 원래 자신의 자리를 떠날 것이다.
그것은 돈 벌러 서울로 떠난, 사람이라는 생명체의 스스로를 위한 결단이 아니다.
나무를 심은 것도, 나무를 뽑은 것도 나무가 결정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지리산편지 테스트 시기에 농약에 관한 이웃 아주머니들과 이장의 실랑이를 기억하시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예상했던 장면이었다. 평생을 이곳에서 태어나 자라고 살아온 '전문농부' 의 눈에 도시에서 온 어설픈 남자의
장난 같은 텃밭 놀이가 어떻게 보였겠는가.
왜 농약을 하지 않는지 그녀들도 잘 안다. 그리고 그 생각들이 말 그대로 '생각에 불과하다'는 확고한 믿음이
있는 분들이다. '뭔 말인지 알어. 한번 혀봐.' 이것이 그녀들이 나를 바라보는 기본 시선일 것이다.
나는 그 '차이'를 인정하고 완강하게 저항하거나 부정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나의 텃밭은 생계형 텃밭이 아니다.
어느 정도 머물다보니 농약 조차 그녀들 기준으로는 '작물들이 짠혀셔' 약을 주고 주사를 처방하는 일인 것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녀들은 작물들을 사랑해서 화학비료와 농약을 정기적으로, 습관적으로 뿌려준다.
요즘 시골에서 대규모 농장이나 젊은 사람들이 운영하는 농작물이 아니라면 대부분의 작물은 농부와 도시로
나간 그 자식들이 먹을 것들이다. 콩은 콩 자체와 된장과 간장으로 진화하고 들깨는 들기름과 가루로,
참깨는 참기름과 참깨로, 양파, 마늘, 파, 배추, 무우, 감, 오미자, 산수유, 보리, 밀 모두 같다.
그녀들과 그녀들의 자식과 손자들 입으로 들어가는 것인데 그러하다.
유기농 단지는 지정되지만 완전한 유기농은 힘들다. 이장이 지금 키우고 있는 배추와 무우 텃밭은 대략
10평 정도된다. 이 면적이면 손으로 벌레 잡고 달팽이를 잡을 수 있다. 하지만 정말 1년 먹고 살 만한,
자식들까지 먹고 살 식량 생산이 가능한 면적을 손으로 벌레 잡고 달팽이 잡는 것은 불가능이다.
왜냐하면 그녀들은 자신만을 노동력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 뿌리고 남은 농약을 이른 새벽에 두어번
이장의 텃밭에 뿌린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것을 뭔 인생 철학에 손상 간 것 처럼 시비 걸 생각은 전혀 없는 것이다.
그녀들 방식으로 나를 도운 것이다. 물론 어쩌면 귀농이 아닌 좀 이상한 방식으로 시골에 자리 잡으려는
경우이기에 이 문제가 절박하지 않은 탓도 있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나의 생각을 '이야기' 할 수는 있지만
'주장' 하지는 않겠다는 것 또한 내가 그녀들의 이런 방식의 염려를 염두에 둔 것이기도 하다.
다시 한번, 그녀들도 안다. 그래 해그름에 간혹 나에게 말하는 것이다.
"고추 따서 가. 끝물이라 요즘은 약 안한께 걱정말어."
솔직하게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농약 텃밭이 아니라 이런 일상의 신뢰와 배려다.









나무가 오미동을 떠난다.
골목 빠져 나오는 트럭 앞 뒤 봐주고 급하게 셔터를 눌렀다.
괜한 일을 했다는 후회 때문에 마음이 흔들렸는지 사진도 흔들렸다.
멀어지는 나무의 '몰골'이 더욱 더 나의 이런 마음에 부채질을 했다.

전원 또는 귀농을 꿈꾸는 사람들은 많다. 그들은 왜 탈 도시를 꿈꾸는 것일까.
상상을 해 본다.
그런 집의 가장은 도시 아파트 제일 작은방을 꿈공장 아지트로 꾸미고 책장에는 소로의 윌든Weldon과
니어링부부의 책들이 필수로 진열되어 있고 전원생활과 진정한 삶의 방향에 대해 토로한 이름난 책들이
즐비할 것이다. 귀농까페에 회원으로 가입하고 생태주택 실습 워크샵에 적지 않은 회비를 내고 참가하는
열성파도 있을 것이다.
아직 마누라를 설득하지 못 한 사람은 끝 없는 설득과 닥달을 계속하고 있을 것이다.
한 사람은 '아이들 교육' 때문에 도시를 떠날 수 없다고 주장하고, 다른 한 사람도 '아이들 교육' 때문에
도시에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하기도 할 것이다. 같은 이유로 다른 길을 꿈꾼다. 행복을 꿈꾸지만 행복의 모습과
구현 과정은 천차만별이 아닌 딱 두 갈래뿐이다. 원래 정답 없는 영역이라 설득은 쉽지 않다.
막상 부부가 같은 생각이라 하더라도 결행의 순간은 정말 쉽지 않다.
이때 가장 큰 걸림돌은 바로 '불안'이다. 먹고 사는 불안이다. 당연한 불안이다.
<자연 속에서, 눈치 보지 않고, 텃밭이나 가꾸면서 여생을 보내려면 얼마를 저축해야 할까?>
라고 생각하는 경우는 열에 아홉은 도시를 떠날 수 없을 것이다.









트럭으로 나무를 옮기고 보내는 것으로 이별을 대신하려 했다.
다음날 새로운 자리에 심어진 살구나무를 촬영하는 정도로 '살구나무프로젝트'를 끝내려고 했는데
떠나는 나무를 보는 순간 급하게 시동을 걸고 살구나무 뒤를 쫓았다. 트럭은 아주 천천히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첫째는 무게 때문이고 둘째는 전깃줄 때문이다.
운조루 앞에서 나무는 전깃줄에 걸렸고 그대로 밀고 나가면 전깃줄을 끊어 먹을 수도 있을 만큼 팽팽하게 당겨졌다.
마음자리가 뒤숭숭해서 그런 것인지 나무가 전깃줄에 매달려 오미동을 떠나고 싶어하지 않는 자신의 완강한 저항을
표현하는 듯 했다. 그 동안 포토샵에서 무수히 많은 전깃줄을 제거했는데 현실에서 내가 제거할 수 있는 전깃줄은
단 하나도 없었다. 아슬아슬하게 넘어섰다. 그리고 꼭대기 가지가 또 부러졌다.
트럭이 전진할 수록 나무의 외양은 점점 줄어 들어갔다. 살구나무는 주변의 나무가지와 서로 손을 맞잡고
놓아 주질 않는 것이다. 트럭이 전진할 수록 뒤 따르는 나의 눈에는 도로로 쏟아지는 살구나무의 잎과
작은 가지들이 어지럽게 날렸다. 이미 부러진 살구나무의 마디들은 내 차 바퀴에 깔렸고 그 '빠직' 하는 파열음은
바퀴를 통해 내 발바닥으로 전달되었다.
'빠직'과 '노루'는 동의어가 아니지만 나는 살구나무의 뒤를 따라가며 6월 어느 날의 노루 새끼가 생각났다.


2007.6.21

사무실에서 상사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용두마을 입구에서 하사마을 쪽으로 우회전한다.
점심 무렵에 지나치는데 어떤 젊은 아낙이 도로변 밭에 서서 애타게 도움을 요청한다.
스쳐 지나가다가 이게 단순한 히치하이킹은 아니란 생각이 들어 차를 후진했다.

"아저씨, 사슴 좀 구해주세요."

이게 뭔 말인가?
도로변 아래로 하사 들판은 무지하게 넓다. 수로는 마을 위쪽에 위치한 도로를 끼고 이어져 있다.
수로 속에 아주 어린 사슴(노루로 판명)이 빠져 있었다. 머리 끝에서 발 끝까지 40cm나 될까. 아주 어린놈이다.
지난 밤이나 새벽에 먹이 구하러 내려온 어미를 따라 왔다가 변을 당한 모양이다. 다 큰 놈들도 한번 빠지면 빠져나가지 못하는 수로다.
마침 얼마 전에 환경다큐멘터리에서 이 장면을 만난 적이 있다. 어미는 날이 밝아와서야 어쩔 수 없는 상황을 뒤로 하고 산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젊은 아주머니는 얼굴이 상기되어 안타까워 하고 있는 중이었다.

"제가 지금 임신 중이라 그냥 가지 못하겠네요. 좀 구해 주세요."

나 역시 난감한 상황이지만 일단 차를 세운 이상 멋있는 척 해야하지 않는가. 아주머니 장화를 빌려 신고 수로로 들어갔다.
사람이 다가가자 어린 사슴은 마치 새 처럼 '짹짹' 거렸다. 도망치려고 발버둥쳤다. 익숙하지 않은 내 손으로 잡았다.
짹짹거리며 수로 더 깊은 곳으로 도망가려 한다. 뭉클한 느낌이 와서 순간적으로 나 역시 몸서리를 쳤다.
다시 작정하고 녀석을 단단히 잡아 올렸다. 밭고랑에 내렸다. 녀석은 꼼짝도 하지 못했다.
가쁘게 호흡하고 몸을 떨고 있다. 어쩔 수 없다. 대책 없을 땐 **형에게 전화한다. 내용을 이야기하고 어떤 단체건 데리러 와 달라고
SOS를 타전했다. 수로의 물은 차갑다. 심하게 떨고 있는 녀석을 위해 운전석 내 허리를 받치고 있는 담요를 들고 나왔다.
담요로 감싸 안았다. 팔딱거리는 아주 약한 몸짓과 체온, 뭉클한 생명의 비린내가 확 끼쳐왔다.
10여분 후에 환경단체 사람들이 도착했다. 자리를 떠났다. 도로에 내려 놓은 녀석이 이미 나를 따라 다니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제발.
살아라.









'지리산行'은 갑작스러운 결정이었다.
2005년 4월 경에 결정하고 2006년 5월에 옮겼으니 신속, 정확했다고 볼 수 있다.
'도시에 살 수 없어' 옮긴 것이라기 보다 '도시보다 좋아서' 옮겼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도시는 도시 자체로 매력적인 곳이다. 여전히 삼청동 길과 정독도서관 길, 가회동 방면과 혜화동 길들,
덕수궁 길, 부암동 언덕 길이 좋다. 그것은 명백하게 600년 된 고도古都가 가진 매력이자 미학이다.
뭔 사업 실패와 연이은 부도로 인한 갑작스런 도피가 아닌 다음에야 우리의 지리산행은 분명히 일반적이지 않다.
그러나 이 일반적이지 않은 결단과 스피드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 확신하고 권하는 '탈 도시'의 비결은 간단하다.

"존재적 결단 차원에서 도시를 떠나지 말자. 긴 여행을 떠나듯이 그냥 그렇게 떠나자."

욕하시는 소리가 들린다. 웃기는 소리하고 자빠졌다고. 누군들 그렇게 떠나고 싶지 않은 놈 어디 있냐고.
이장은 물려 받은 유산이 있거나 뭔가 숨겨 놓은 금괴가 있지 않고서야, 이슬 먹고 사냐고, 소나무 재선충이
극성인데 조만간 따 먹을 솔잎 바닥나면 두고 보자고... 이 모든 예상 비난의 근원은 역시 '불안' 에 있다.
이장이 가진 가장 강력한 자산은 '불안 퇴치술' 또는 '불안 외면술' 이다.
이것은 일종의 자가 발전적 최면술의 일종이며 원할 때 귀머거리가 될 수 있는 기능을 훈련해야 가능하다.
앞 선 예상 비난에도 불구하고 욕 얻어 먹을 평소의 생각을 하나 더 권고한다면,
'도대체 언제까지, 얼마나 더 대비해야 당신의 불안을 잠 재울 수 있는가?' 이다.
대한민국에서 대학원 나온 사람이 미국 가서 접시 닦는 '초특급 성실성'을 발휘한다면,
서울에서 시골로 옮겨와도 살 수 있다. LA에서는 되는 일이 대한민국 시골에서는 안될 이유가 있나?
그 대단한 '체면' 때문이 아닌가? 서울에서 B등급 수준의 경제와 지위를 누렸다면 시골에서는 부동산 가격과
기타 등등한 주변 환경을 비교했을 때 A등급 수준으로 격상(?) 되어야 한다는 '도농 불평등 트레이드trade說 '을
은연중에 품고 있는 것 아닌가?









풍성했던 6월의 살구나무와 비교하면 지금의 몰골은 만신창이다. 들판은 비워졌고 나무도 비워졌다.
따지고 보면 '지천댁 방식'이 이곳 사람들 방식이고 그녀들로서는 당연한 것이기도 하다.
나는 여전히 이곳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완전한 이곳 사람이 되는 것은 농약과 화학 비료를 인정하고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게 되는 날은 아닐 것이다.
살구나무를 옮기게 만드는 이 난리통을 조장하는 사람도 '우리마을 사람'이다 라는 존중을 받는 그 날이 길일이다.
과정이 필요할 것이고 사례는 더 자주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이것은 전혀 심각하지 않은 일상이 되어야 하고
나 역시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그녀들이 살아왔던 더 많은 이야기들을 통째로 하나의 잣대로 규정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 따지고 보면 나는 나의 생각을 확립할 교육과 문화적 헤택을 받았던 것이지 태어날 때부터
그런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이곳에 농약과 화학비료와 그 흔한 나무 몇 그루 자르는 일과, 돌담 버리고 '보로꾸'
담의 편리함을 선택하게 한 생각의 근원은 도시로 대변되는 후반기 철기문화권의 주류 세력에게 있다.
그래서 '답답한 시골 사람들' 이나 '생각 없는 시골 사람들' 이란 손 쉬운 지적은 문제의 약한 고리를 향한
비겁한 비난에 불과하다. 그것은 마치 군사정권 시절에 호스티스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고 시대적 상황이
그녀들의 삶을 조롱하는 영화만 가능하게 했다는 식의 변명과 다른 것이 없다.









트럭은 가급이면 전깃줄 없는 길을 따라 이동했다.
흐린 날이라 그런지 오후 4시도 되지 않았는데 해는 한 시간은 더 빨리 서산을 넘어가는 듯 했다.

일상적으로 나와 이웃들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룰이 존재한다.
이렇듯 자주, 친근하게 등장하는 이웃들이지만 이곳 아주머니, 엄니, 할머니들은 지리산닷컴 사무실 문턱을
넘어서지 않으신다. 용건이 있다면 가장 가까운 지천댁이나 운암댁, 대구댁, 대평댁은 각자의 방식으로
밖에서 나를 부르고 대꾸를 기다린다. 이제 창문이나 현관문 두드리는 소리와 박자, 강도만으로
누가 나를 찾는지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녀들은 절대 지리산닷컴의 현관 경계선을 넘지 않는다.
차 한잔 마시자는 나의 제안은 항상 거절 당한다.

'뭣허게 컴터 일 헌다고 바쁜데.'
'발에 흙이 많아서.'
'불편할껀디 뭐하러.'
' 나 커피 못 마셔.'

나의 초청을 거절하는 그녀들의 이유는 다양하다. 그리고 불쑥 창문을 두드리고 나의 인기척을 확인하면
밖에서 창문을 열고 감자나 옥수수 접시를 넣어 주고 간다. 어제는 떡 접시만 각기 다른 3명의 그녀들이
넣어주고 갔다. 그녀들에게는 한가로이 앉아 커피를 나누며 방담을 나누는 문화가 없다. 그것은 사치다.
시간 낭비이며 그 시간에 '깨나 털겠다.' 는 것이 살아 온 이력이 남긴 유전적 문신이다.
그리고 그녀들은 누구에게나 친절한 것은 아니다.









귀농자 또는 전원으로의 이전을 단행한 사람들 중 일부는(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가급이면 마을과
물리적인 거리와 마음의 거리를 멀리하는 경향이 있는 듯 하다. 일견 이해는 된다.
사람에 지친 경험으로부터 그러할 것이고 외지인의 방어적 경계심에서 그러할 것이고,
무엇보다 조용하게 살고 싶어 내려와서 그렇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시골은 태생적으로, 구조적으로
다른 방식의 번잡스러움과 간섭이 많은 곳이다.
말이 나의 입술을 빠져 나가기도 전인데 내가 하려했던 말은 이미 마을 입구에 도착해 있다.
도시는 익명을 보장하지만 이곳은 익명이 존재할 수 없다. 마을에 외지 사람이 등장하면 금새 그의 등장은
마을로 소리 없이 전해진다. 이를테면 '요즘 젊은 것들은 어른 앞에서 담배를 펴쌌더만' 이라는 불특정 다수를
향한 불만이 '그 컨테이너 박스있자녀? 아 그 즐믄놈이 길 가상에 따악하니 서서 담배를 펴쌌네'와 같은
구체적 대상을 향한 비난으로 진화한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귀찮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마을과 담을 쌓는 경우이다.
그러면 마을의 '그녀들'은 친절을 주머니 깊숙한 곳으로 집어 넣어버린다.
프라이버시를 존중하는 방식과 문화가 다른 것이다.
도시에서 온 사람들은 프라이버시를 침범 당했다고 생각하고 이곳의 그녀들은 자신이 무시당했다고 생각한다.
간혹 무리한 '신고식'을 요구하는 마을 이장도 있었던 모양이다. 이런 경우는 앞 서 주절거린 내용과 무관하게
첫 인상에서 마음을 상하게 되는 모양이니 별개의 문제다. 지리산닷컴 이장만 주민들에게 '10명 추천하고
자신의 블로그에서 광고해 주셈' 하는 요구를 하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먼저 인사하면 모든 문제는 해결된다.'
이장이 터득한 시골 생활 처세술의 최강 비법이다.
분명한 것은 마을 주민들은 젋은 사람들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그들도 마을에 젊은 활력을 되살리고 싶어한다.

살구나무는 이제 새로운 보금자리에 도착했다.
사진에 보이는 덩쿨에 감긴, 죽은 감나무 자리에 살구나무를 심을 작정이다.
천년 된 약수터 앞을 지키는 것이 살구나무의 새로운 역할이다. 뽑고 이동하는 중에는 마음이 어두웠는데
나무의 새로운 보금자리에 도착하니 마음이 좀 풀린다.









거름과 기존 흙을 포크레인으로 혼합하고 있다.
나는 여전히 살구나무가 과연 내년 봄에 몇 남지 않은 가지 끝에서
연두색 새 잎을 보여줄 것인지 확신할 수 없다.
사람으로 생각해보라. 얼마나 많은 부분을 절단 당하면서 여기까지 온 것인가.
하지만 이런 우려는 역시 출발 전이나 지금 이 순간이나 나 혼자만의 것인 듯 하다.

"암시랑토 안혀. 산다니깐. 아 나무가 그리 허약한게 아녀."
"큰 가지가 너무 많이 부러졌는데 괜찮을까요?"
"고생은 좀 혔는디 나무 모양은 한 3년 지나면 나올 것이구만."


지자체는 인구 유입을 위해, 각종 테마마을 건립에 주력하고 있다.
유무상의 지원책도 많다. 지리산닷컴의 공간적 위치는 전라남도 구례 땅이다.
32,000 명 정도의 작은 군이다. 65세 이상 고령 인구가 35% 정도이다. 10년 후에는 자연감소로 인해
30,000 명 이하로 인구 수는 줄어들 것이다.
지자체는, 지역구 의원들은 선거구 유지와 기득권 유지를 위해 가급이면 '군' 이라는 행정단위를 유지하고
싶어 한다. 인구유입 정책은 필연적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지금과 같은 정책의 인구유입을 별로 반기지 않는다.
농사 이외의 생업 수단이 자영업일 수밖에 없는 현실적 조건에서는 젊은층의 전입 보다는 전원에서 노후 생활을
즐기려는 '형편 되는' 노인들의 실버타운형 마을이 될 가능성이 더 높다. 그런 테마마을은 대부분 새로운 택지가
형성되고 그 새로운 택지에 기존의 마을 사람들이 들어갈 여력도 이유도 없다.
결국 같은 마을 내에서 두 개의 문화권이 존재하게 될 것이다. 전통 촌락의 붕괴는 인구 격감으로 인한 것 뿐만
아니라 이런 소통의 단절로 인해 마을의 의미를 상실하는 경우로도 발생할 것이다.
서류상으로는 '인구가 증가 하는' 놀라운 현상 속에서 말이다.
커뮤니티와 문화가 단절된 상태에서 사람의 교체로 마을이 유지된다면 나는 그것을 '저강도 점령' 이라 부르겠다.
그것은 기존 마을 전체에 대한 무시와 같은 것이다. 친절해질 수 없다.
살구나무는 한 동안 새로운 땅과 하나 되기 위한 고통을 겪을 것이다.









이제 마지막 단계다. 나무는 다시 포크레인에 들려 뿌리를 내릴 흙 속으로
안착될 것이다. 그 자리를 잡는 것이 쉽지 않다. 나무도 앞면과 뒷면이 있다고 한다.
앞면을 기준으로 방향이 정해지고 땅의 상황을 조정해서 뿌리를 안착시키는 작업이
수 십분 동안 진행되었다. 그 과정에서 다시 잔 뿌리와 가지들이 손상을 입는다.
이제 마지막이다. 조금만 더 힘내라.

당연한 소리지만 이곳과 도시는 별 다를 것이 없다.
사람 사는 곳이 그런 것 아닌가. 어느 곳에 살건 밥벌이는 해야는 것이고 밥벌이는 고단한 일이다.
이곳의 '그녀들' 자식들은 대부분 도시에서 살고 있다. 그녀들은 안다. 내가 왜 나무를 옮기는지.
그녀들은 이곳에서 총론과 각론을 두루 구사하면서 이해하고 생활하고 있고, 나는 일단은 새로운
각론을 조합해서 총론을 만들어가야 한다.









다음 날 아침.
안녕을 확인하기 위해 나는 살구나무에게 먼저 출근했다. 어제 오후 내가 떠난 다음에
다시 최종적으로 나무는 '다듬어지는' 고통을 감수했다. 포기할 수밖에 없는 가지는 잘라내는 것이
옳다고 하니 파리 똥집 보다 적은 나무에 대한 지식을 가진 이장은 다만 시각적인 상처 앞에서
감상에 몸을 맡기는 것 뿐이다.
겨울이 코 앞이다.









나는 여전히 살구나무가 내 년 봄에 새로운 가지를 활짝 펼쳐 줄 것인지 확신하지 못한다.
어쩌면 최악의 경우 살구나무는 죽을 것이다. 장년의 나무지만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만약 이 나무가 죽는다고 해도 나로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 마음 한 켠에서 '역시 부질없는 짓이었어.' 라는
먹물의 자괴감으로 담배 연기나 허공으로 날릴지도 모를 일이다.
나무를 돌보는 새로운 주인장의 마음과 미약한 나의 마음을 겨울을 지내는 동안 보탤 것이다.
그래봤자 오가는 길에 나무에 손 한번 대고 쓰다듬는 것이 고작일 것이다.
그 새끼 노루는 산으로 갔을까, 아니면 너무 어려서 시설로 옮겨졌을까, 아니면 이미 죽었을까.
아직 그 비릿한 냄새와 내 손으로 전해 온 녀석의 연약했지만 또렷했던 뭉클한 존재감을 기억한다.
다행이 머리가 아닌 손으로 기억한다.









지리산닷컴 앞의 상징 같았던 이 대추나무는 이제 없다.
역시 이번 공사로 나무의 시간은 끝이 났다. 살구나무 미션을 끝낸 다음 날, 일하다가 담배 피러
나오니 한 시간여 만에 대추나무가 사라진 것이다.

"어차피 새 꽃이 펴서 죽을 나무였어."

멍한 표정의 나에게 대추나무 주인인 운암댁이 말을 보태었다.
<압니다. 그러나 이왕 죽을 대추나무였지만 작별 인사도 못했네요. 미리 말씀이라도 해 주시지...>
지난 추석 아버님 제삿상에 올린 대추는 이 나무에서 딴 것이었다.
나의 소리는 허공으로 나오지 못했다.

사진은 9월 추석 전이었다.
운암댁이 사다리에 올라 대추를 따고 지천댁, 대평댁, 대구댁이 대추를 줍고 받았다.
나는 햇살 아래에서 낄낄거리며 흰소리를 던지며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있었다.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의 마지막 장면은 좋았던 시절의 이병헌과 송강호 등이
서로 마주보면 침뱉기 놀이를 하는, 햇볕 좋은 날의 스틸 사진이었다.
이 장면이 나와 내 이웃 그녀들이 누릴 화양연화花樣年華는 아닐 것이다.
나와 그녀들의 화양연화는 좀 더 많은 갈등과 생각의 차이를 확인한 다음일 것이다.
세상의 모든 차이가 결별을 뜻 하거나 단절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어떤 경우에는 그 차이가 화해의 디딤돌이 되고 이해의 노둣돌이 되기도 한다.
어쩌면 내년 봄에 대구댁은 텃밭에 농약을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나의 꼬드김에 넘어 오는 중이다.

"대구댁, 태평농법이라고 있거등. 이게 일 안하고 날로 먹는 농사라니깐!"
"그기 먼데? 나도 해보까?"





* 역시 교정을 보지 못했습니다. 며칠 내로...
* 단풍본색丹楓本色 - 피아골 2'는 자료 조사 중이라 다음 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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