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새벽, 초록 그리고 반야봉

마을이장 2008.06.15 21:53 조회 수 : 7910 추천:318



바래봉 철쭉 놓친 후 세석 철쭉을 담겠다고 헛소리 했다가 그것도 떠나 보내고...
이래 저래 산행에서 이장은 할 말이 없게 되었다. 1년을 기다려야 한다.
사무실 옮기고 사는 집도 옮기고 밥벌이하고 어쩌구 그렇게 3주일 정도가 후다닥 지나간 것 같다.
시간이 없었다기 보다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탓이다.
인터넷 눈팅으로 산꾼들의 철쭉 사진과 반야봉 비박, 왕시루 능선으로 하산 소식을 접하고 있자니
역시 '나는 산꾼은 아니다'는 半자괴감 같은 것도 생긴다. 하지만 뭐 어쩌겠는가.
그렇게 생겨 먹은 사람인데. 그러나 신기하기도 하다.
지리산 아닌 곳에 사는 사람들이 거의 주말마다 지리산행을 하는 것을 보면.
지리산 자락에 자리잡으면 계절 종주를 매년 하겠다고 다짐했는데, 지리산 자락에 자리한지
2년이 지나도록 종주 한번 하지 않았다.









반야봉으로 가기로 했다.
대략 이런 저런 '매듭' 이라는 절차를 필요로 하는 일들은 끝이 났고 새로운
매듭을 만나기 전에 어딘가는 다녀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이곳은 지리산 마니아 사이트가 아닌 그렇고 그런 생각이 좀 많은 사람들이
주민의 대부분이니 산행은 항상 '평민'을 기준으로 제시한다.
반야봉. 1,732m 해발이다. 높이로 보자면 천왕봉, 중봉, 제석봉, 하봉 다음이다.
이름으로 보자면 천왕봉, 노고단과 함께 지리산에서는 제일 명성이 자자한 봉우리이기도 하다.
여러가지 경로가 있지만 당일 등반으로는 허용된 범주에서는 역시 성삼재에 당도해서
노고단 스쳐 반야봉을 오르고 같은 길로 되돌아 오는 것이 1안이고,
되돌아오지 않고 피아골이나 뱀사골로 내려 서는 것이 2, 3안이 되겠다.
2, 3안은 가을이 좋을 듯 하고 평민들이 15km 이상 주파하면 다음날 출근길에 무리가 있겠다.
성삼재에서 출발해서 되돌아 오는 왕복은 차량을 성삼재에 둘 수 있어 비교적 편한 안이다.
물론 화엄사에서 출발, 악명 높은 코재를 넘어 임걸령과 반야봉 가파른 길을 맛 보는 왕복 10시간
이상의 가학성 코스도 가능하다.
위 지도에서 제시한 코스를 따른다면 왕복이니 대략 14~5km 거리를 걷는 것이다.
구례터미널에서 새벽 4시 성삼재행 첫 버스를 이용하는 것이 가장 일반적이고 아니면
직접 차를 가지고 오시는 방법이 있겠다.
차를 가지고 오시는 경우 성삼재 휴게소 주차창은 새벽에 열지 않지만 왼편 한쪽을 열어두고 있다.
산행을 마치고 오면 주차장 진입했던 문은 닫혀 있고 원 주차장 쪽으로 문이 열려 있어 주차비 주고
아웃하면 된다. 종주도로 갓길에 주차하지 마시라.









13일의 금요일. 눈을 뜬 시간이 새벽 2시 30분.
그 시간에 일어나기 위해 지난 밤에 이장은 스타우트 반병을 단숨에 마셨다.
만취한 상태로 일찍 자겠다고. 성삼재에서 걸음을 시작하면서 흘깃 핸드폰을 보니 3시 50분 경.
뭐 한다고 시간이 그리 흘렀지? 3시에는 성삼재에서 걸음을 시작한다는 것이 목표였는데.
반야봉 아래 노루목에 당도하는 시간을 6시로 설정했었다.
그래야 요즘 일출 시간으로 보자면 천왕봉을 때리면서 떠오른 햇살이 능선 사이를 파고 드는
사진을 잡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직은 어두운 상태라 그냥 앞만 보고 걸어갔다.
무냉기 지나면서 랜턴을 껐다. 노고단 대피소에서 담배 한대 피고 KBS 전망대 쪽으로 바로 이동했다.
이 날은 대피소에서 라면도 하나 끓여 먹지 않았다. 라면 끓이고 커피 때리면 60분은 쉽게 지나간다.
버너 등은 준비하지도 않았고 카메라 이외에는 물과 간식만 준비했다.
KBS쪽 전망대에 섰다. 실제는 사진 보다 어두운 상황이었다. 새벽 4시 30분 정도였다.
멀리 구례의 불빛이 보인다.









지난 밤에 뒷집 어르신 내외를 모시고 읍내에서 식사를 했다.
내일 새벽에 반야봉을 갈 것이라고 말씀드리자 의외로 이전에 자주 갔다는 말씀을 하신다.
이곳에 살면서 지리산 한번 가보지 않았다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기 때문에 의외였다.
임걸령 지나겠다는 말씀을 듣고 물었다.

"지리산엘 가보셨어요?"

내외분이 같이 합창을 하신다.

"너물(나물) 캔다고.
그때는 말(마을) 사람들 동원해설라믄 임걸령, 노루목에서 너물 캐고 해쌋어."

엉뚱하게도 낭만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계형 산행인데 말이다.
'산에서 너물 캐지 않고' 지금 처럼 자식들 다 보내고 주말에 손자들 보는 시절이
당연히 더 행복하실 것이다.
그 시절이 행복하십니까, 지금이 행복하십니까? 차마 묻지 못했다.
산행 끝나고 장에서 고춧가루를 사야겠다는 이야기가 우연히 발설되자 그냥 주겠다고 하신다.
양장피와 탕수육이 목에 걸리시는 모양이다. 이곳에서 2년 정도 살면서 항상 느끼는 점은
뭔가를 주고 받는다는 것이다. 그냥 받거나 그냥 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냥'은 항상 의아스러운 것이며 부담스러운 것이다. 맛나게 드신다.

노고단 고개에 당도했다. KBS 전망대를 지난지 겨우 10분 정도였지만 동편 25km 밖의 봉우리를
치고 올라서려는 해의 기운은 빠른 속도로 서편을 깨우고 있었다.









새벽 5시가 되기 전의 노고단은 사진과는 다르게 시커멓게 보였다.
그 실루엣이 선명했다. 며칠 전에 이웃 블로거가 올린 글 중에 이명박이 말했다는
우스개 소리가 있었다. 물론 당사자는 유머로 한 말은 아니지만.
이 글을 작성하기 위해 검색을 해보았다. 후보자 시절에 노고단을 방문했던 모양이다.
한겨레 기사의 바로 그 '우스개 소리' 부분은 아래와 같다.

<이 당선인이 지난해 8월 대선 후보 신분으로 한나라당 의원들과 함께 지리산 노고단에
올랐을 때 일입니다. 그는 노고단 길에서 확 트인 주변을 둘러보다 이렇게 한마디 했다고 합니다.
“아직 개발이 덜 됐어.” / hani.co.kr>

'틀리다'와 '다르다'는 굉장히 다른 의미를 가진 말인데 우리는 대부분 나와 의견이 다른 경우
'나는 당신과 생각이 틀리다' 라고 표현한다. 이때 사용한 '틀리다'는 '나는 맞고 당신은 틀렸다'는
의미가 강하다. 대부분의 경우 '나는 당신과 생각이 다르다'고 말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아직 개발이 덜 됐어.' 라는 표현 앞에서 나는 '틀리다'와 '다르다'는 표현 모두 적당하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솔직한 나의 심정은 '나는 당신이 두렵다'는 것이다.
나는 진실로 두렵다. 짐짓 그렇게 표현한 것이 아니라 이명박은 진실로 '아직 개발이 덜 됐어' 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고단 고개에서 바라보는 북서편 능선과 하늘이 곱고 다소곳했다.
서북능선 멀리 덕유산 자락이 펼쳐지고 그 산을 내려서면 금강이 흐르고 강을 건너 올라서 한참을
북상하면 서울에 당도할 것이다. 나는 노고단 고개에서 새벽을 맞이하고 있고 서울의 어떤 이들은
광화문에서 충혈된 눈빛으로 촛불 너머 밝아 오는 하늘을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새벽은 갓 잡아 올린 고등어보다 신선했다.

네 사람이 같은 풍경을 보고 있었다. 제 각각 올라온 두쌍이었다.
한 쌍은 나직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은 충분히 광경을 즐기고 있었다.
한 쌍은 불만이 가득했다. 노고단에서 일출을 볼 생각이었던 모양이다.
그들은 북서쪽 하늘을 보고 해가 뜨지 않는다고 원망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아직 해는 뜨지 않았다는 사실과 조금 더 기다리면 해가 뜰 것이고,
천왕봉 쪽을 바라보라고 말해주려다가 그만 두었다. 해가 천왕봉을 넘어서면
사방이 이미 환한 빛일 것인데 그들이 원하는 일출은 동해로 가야할 것 같았다.
무엇보다 그들에게 사진의 광경은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하는 것 같았다.
같은 풍경을 바라보는데 마음에 담는 방식은 천차만별이다.









반야봉般若峰.
지금 가야할 봉우리다. 단연 우뚝하고 명확한 모습이다.
하나의 큰 덩어리감이 반야봉에 대한 개인적인 느낌인데 사진으로는 아직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다. 어쩌면 앞으로도 그럴지 모르겠다. 저 곡선은 디자인적인 가공을 더한다면
매력적인 라인을 제공할 것이다. 회화로 보자면 당연히 묵직한 단색이 정답일 것이다.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유영국의 산그림 스타일이 적당할 것 같기도 하다.
여튼 오늘 반야봉을 찾는다면 세번째가 될 것이다.
개운조사開雲祖師는 정말 반야봉 아래에서 여전히 도를 닦고 있을까?
기록으로 1790년生이니 200년은 확실하게 넘은 분인데...
시간이 조금씩 지체된다. 빠른 걸음으로 노고단 허리로 입장했다.









숲 속을 빠른 속도로 이동했다.
먹고 사는 일에 쫓겨 서두르는 것이 사람들의 일인데 원하는 시간에 사진 한 장 잡겠다고
서두르는 삶이라니. 하지만 6시 전에 노루목에 당도하기란 불가능하다. 이미 5시를 지났다.
사무실을 방문한 분들은 가시는 길에 진심이건 습관적 표현이건 '바쁘신데 시간 내 주셔서...'라는
말씀을 하신다. 그러면 나는 대부분 '바쁘지 않습니다.' 라고 대답한다. 바쁘지 않다는 것은
어쩌면 부끄러움이고 쪽팔림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초를, 분을, 시간을 다투는 일을 가능하면
만들지 않을 심산인 것은 분명하다. 그래도 결국 어느 매듭에서는 항상 시간에 쫓긴다.
그 횟수를 줄이자는 것이다. 삶의 긴장감이 많이 느슨해진 것은 분명하다.
팽팽한 긴장감으로 매일을 영위하는 생활을 다시 해야한다면 과연 버티어 낼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아마도 그리 살아야 할 상황이 온다면 또 그리 살겠지만.









결국 직사광이 처음으로 능선을 때린다. 이제 겨우 돼지령을 지났을 뿐이다.
노루목에 당도하면 능선을 경계로 빛은 명과 암으로 나누어질 것이다.
어쩌면 반야봉 산행에서 내가 건질 수 있는 최선의 사진은 노고단 고개였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동편에서 진입하는 수평의 햇살은 산을 단층적으로 구분했고 초록은 점점 명확해지고 있었다.
배는 고프지 않았다. 몸 상태도 좋은 편이었다. 카메라는 집어 넣었다. 조금 더 진행하면
임걸령 초입에 당도할 것이다. 그러면 가파른 언덕길을 올라야 할 것이고 목에 건 카메라는
보물에서 애물로 전락할 것이다. 수통에 물을 채워야 한다.









평민들에게 임걸령은 역시 힘들다.
언젠가부터 언덕길을 싸우듯이 오르지 않겠다는 판단을 했다.
그러면 체력은 쉽게 바닥나고 하산길에 다리는 후들거린다. 몇 걸음 후에 멈추고 다시 몇 걸음.
노고단 허리를 돌아 들어 온 이후 노루목까지 단 한 사람도 만나지 못했다.
아직 어둑한 숲 길 옆에서 들리는 나무 가지 소리에 자연스럽게 고개가 돌아간다.
숨은 턱까지 차 오르고 물을 마신다. 임걸령 샘물이 유난한 것인지 가파른 임걸령이
물 맛을 그렇게 만드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물은 달디 달다.
6시 45분이다. 예정보다 45분 늦었다. 산은 명암이 확연해졌다. 반야봉 정상에서
이런 명암 상태를 맞이하려 했는데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약간 느슨해진다. 바위에서 좀 더 쉬기로 한다.
산행길의 70%는 지루한 편이다. 반복되는 숲 길과 반복되는 다리 움직임.
날씨가 전혀 아닌 상황에서는 이도 저도 아닌 악전고투를 감수해야 한다.
주로 고통스럽고 지루하다가 어떤 장면과 마주할 때 그 모든 고통과 지루함은 사라진다.
돌아와서는 고통과 지루함 보다 그 어떤 장면이 오랜 시간 여운으로 남는다.
2006년 8월 1일과 12월 23일에 반야봉을 올랐다. 두 번의 반야봉행은 모두 고통스러웠다.
8월 산행은 입고 있던 티셔츠를 염전으로 만들었다.
12월 산행은 보조 장비 없는 겨울 산행이 얼마나 많은 체력 소모를 요구하는지 알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 선 두번의 반야봉 산행은 인상적이었다.
여름에는 운해를, 겨울에는 설경을 보았다. 그리고 어쩌면 그 짧은 고통이 기억 속의 풍경에
코팅 역할을 하였는지도 모른다. 최근 날씨와 비교하자면 하늘이 대단히 맑은 편이다.
가시거리도 아주 좋은 편이다. 숲 속의 나무가 얼마나 도드라지는지를 보고 맑은 정도를 판단한다.









노루목.
노루가 지나다녔던 길이라 그렇게 불렀을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가장 은근할 듯 하다. 길은 좁지만 세갈래로 나누어진다.
앞의 사진에서 이장이 앉은 바위의 머리 부분이 노루가 머리를 쳐든 모양이라 그리 불렀다는
이야기도 있다. 김명수님이 지은 <지리산(돌베개)>에서는 문순태의 소설 철쭉제에서,
산에서 세 갈래 길을 흔히 노루목이라 부른다고도 기록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2008년 지금
이 시점에서 노루목에서 석달하고도 열흘을 기다려도 노루를 만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종주로 길목이고 이곳에서 다리쉼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지리산의 한 마디에 해당한다.
사진의 뒷 모습 젊은이. 대학 시절에 종주하고 10여년 만에 종주를 다시 시작한다고 했다.
좋은 날에 종주를 시작했으니 많은 생각을 얻어갈 수 있을 것이다.









진행방향에서 왼편으로 좁은 길이 있다.
종주길에 반야봉을 들릴 확률은 비교적 희박하다.
종주길에 나선 대부분의 사람들은 초행이거나 이른바 산꾼은 아니다.
그들은 종착역에 대한 조바심과 길에 대한 걱정이 많은 사람들이다.
따라서 1,400m에서 1,700m 단위로 올라갔다가 돌아와서 종주를 이어가는 것을 부담스럽게 생각한다.
노루목에서 반야봉까지는 1km인데 경사가 심한 편이니 오르는데 40분 정도 잡는 것이 좋다.
정상에서 머물고 내려오는데 소요되는 시간을 대략 합산하면 90분이면 적당할 것이다.
지리산을 자주 찾는 마니아층이 아니라면 반야봉만을 목적으로 방문할 가능성은 그렇게 높지 않다.

신갈나무, 분비나무, 구상나무가 주종을 이룬다.
노루목에서 반야봉을 오르는 초입을 들어서면 산의 표정이 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한동안 빽빽한 숲 속을 지나야 한다. 그러다가 경사가 급해지고 바위가 많아지면서
진달래와 철쭉 등의 낮은 관목 지대가 나오고 시야는 갑자기 트인다.
비좁은 숲 사이로 햇살이 파고 든다.









저 계단이 마지막 고비인 듯 하지만 잡힐 것 같은 반야봉 완만한 정상은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
계단을 올라서서 뒤돌아 본다.









반야봉 길에서 나는 항상 산 속에 있다는 완벽한 소속감을 느낀다.
정적을 깨고 문자메시지 음이 울린다. 출신 고등학교 이름으로 대리운전콜센터를 어떤 녀석이
개업한 모양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문자가 온다. 최근 문자메시지의 절반은 대학과 고등학교
동문회에서 보내오는 것이다. 부음이 절반이고 모임이 나머지를 차지한다. 나에게 오는 부음과
모임 공지는 모두 삭제당한다. 간혹 아는 이름의 부음을 접할 때도 있다. '***본인 사망' 이라는
문자 앞에서 잠시 생각이 멈추지만 그의 죽음도 핸드폰에서 삭제 당한다. 그리고 채 하루가 지나지
않아 나는 누가 세상을 떠났는지도 기억하지 못한다. 사람들에게 나 역시 그런 존재일 것이다.
한 목숨은 시스템이라는 본문에 달린 수만 개의 댓글 중 하나일 것이다.
댓글이 아닌 본문 같은 인생을 살아 볼 일이다.









반야봉般若峰 해발 1,732m.
불교적 의미로 보면 지리산의 주봉이 된다.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과 전라남도 구례군 산동면이 반야봉을 나누고 있다.
지리산의 봉우리들 중 가장 모성적인 이미지의 봉우리에 해당한다.
지리산 자체가 모성적인 이미지가 강하긴 하다.
춘향이도 반야봉과 연관이 있다. 월매가 남원 땅에서 지리산 반야봉을 바라보면 치성을 들인 결과
춘향을 내려주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야기는 이야기일 뿐이다.
반야봉은 지리산 어느 곳에서건 한 눈에 들어오는 하나의 큰 덩어리다.
반야낙조를 이른바 지리 10경의 하나로 말하지만 합법적으로 그것을 조망할 수는 없다.
심야 등반은 물론 통제되고 있고 낙조 시간에 반야봉에 머문 다음 가까운 대피소로 이동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그렇다면 현실적으로 비박이 답인데...
반야봉은 정상이 두 덩어리로 나누어져 있는데 금지선을 넘어 심원 쪽으로 좀 더 접근하면 주변으로
비박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해발 1,732m에서 침낭 하나 깔고 요즘 같은 계절에 낙조를 보고
별을 본다면 그 또한 잊을 수 없는 밤이긴 할 것이다.
해병대 머리 스타일의 소나무는 바람의 모습이고 가끔 새들이 낮게 지나갔다.









반야봉 정상에서 한 여인이 치성을 드리고 있다.
저 여인은 필시 빵이 잘 발효될 것과 빵을 굽는 중에 가스가 떨어지는 일이 없기를 기원하고 있을 것이다.









사발면 조차 사양한 이번 산행의 주식은 통밀 머핀이다.
산에서는 달콤한 음식이 순간적인 에너지를 불어 넣어준다.
물론 당일 산행이고 계절이 좋아서 가능한 간식이다.
2006년 12월 반야봉 산행에서 몸은 허기지고 지쳐 있는 상태였다.
발 밑의 눈은 발목을 잡는 듯 사람을 한 없이 다운시켰고 그냥 주저 앉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그때 내 코는 명백하게 김치를 넣고 끓이는 라면 냄새를 맡았다.
바로 옆 숲 속에서 두어 사람 정도가 두런거리는 소리도 들렸다.
살해하고 김치라면을 강탈하는 기획안을 순식간에 상상했지만 의지와 무관하게 체력이 바닥이었다.
무엇보다 며칠 후 신문의 헤드라인이 좀 문제 있을 듯 싶기도 했다.
'반야봉에서 남자 시신 1구 발견! 라면 냄비에 코를 쳐박고 익사한 듯'









반야봉 정상에는 삼십만 마리의 벌레와 한 마리의 새가 주변을 얼쩡거렸다.
녀석은 계속 우리 주변 나무가지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무시하고 머핀과 쥐포, 견과류로 아침 식사를 계속했다.
새는 새의 길이 있는 것이고 사람은 사람의 길이 있는 것이다.









대략 휴식을 끝내고 주변 사진을 좀 찍었다. 반야봉은 360도 전망을 보장하지만
역시 빛이 너무 많은 생태였다. 구름은 전무했다. 말 그대로 맑은 하늘이었다.
아침 8시가 되지 않았다. 가자. 일찍 내려가서 장국밥이나 한 그릇 먹어야겠다.









철 지난 철쭉이 몇 남아 있었지만 떨어지기 일보직전이었고 산은 온통 초록 일색이었다.
8월까지 적어도 2주일에 한번 정도의 산행은 해야 지리산닷컴이 가동될 것인데
이제 소금 티셔츠 만들기 좋은 계절이 시작되고 있다.
가능하면 짧은 산행을 오늘 처럼 이른 새벽에 출발하는 방식으로 진행하는 수밖에 없을 듯 했다.
서울 사람들 출근하는 시간에 나도 1,732m에서 출근을 시작한다.
하산길에 하나 둘씩 사람들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아마도 구례에서 새벽 4시 성삼재행 버스를
탔던 사람들일 것이다. 노루목에서 단체 산행팀을 만났다. 단체 산행의 장점은 서로에게 힘을
줄 수 있는 것이고 단점은 시끄럽다는 것이다.
요즘 산에서는 마주치는 사람들과의 인사가 드물다. 나 역시 거의 하지 않는다.
상대방이 먼저 인사를 하면 대꾸는 하지만 먼저 하지는 않는다.
금요일 아침 종주능선에서는 인사한다고 입을 쉴 수 없을 지경이다.
거의 휴식 없이 노고단 산장을 바라고 빠르게 걸어 내려갔다.
이른 기상 탓에 하품이 나오기 시작했다.









10시 좀 넘어 노고단 산장에 도착했다.
담배 두 개비를 연이어 피웠다. 햇살은 좋았고 산장에 머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취사도구를 준비했다면 만찬이라도 벌일 수 있는 분위기였다.
그것도 좋은 방법이겠다. 산행 말고 그냥 평일 노고단 대피소에서 음식 잔뜩 준비해서
오찬을 즐기는 것. 한번 해 봐야지.
엉덩이는 바닥에 발목은 나무 의자에 걸친 상태에서 다리를 풀어 주었다.
이날 나무가 유난히 도드라졌다. 성삼재까지의 하산 길은 지루할 것이다.
11시 좀 못되어서 차의 시동을 걸 수 있었다.
일단 집으로 가서 샤워 좀 하고 코끼리 한 마리라도 잡아 먹을 것 같은
텅 빈 속을 채울 심산이다.









점심 시간 지난 장터 국밥집은 한산했다.

"엄니 너무 많이 담지는 마쇼!"
"알어."

내장만 들어간 장터 국밥. 동네 사람들은 똥국이라고 부른다.
새우젓 좀 올리고 허기진 배 속으로 집어 넣는다.
이 집 고추는 매운 편이다. 이마에 땀이 송송해진다. 아린 혀는 뜨거운 국물을 또 부른다.
식도를 타고 넘어 간 국물은 쫄깃한 내장을 달라고 아우성친다. 내장을 씹어 넘겨주고
아삭한 양파를 통째로 된장에 찍어 씹어 삼킨다. 입은 쉼 없고 눈은 국밥집 건너 생선전
아주머니들에게, 귀는 옆 자리 영감들의 대화를 녹음하느라 모두 바쁘다.
잠이 온다. 수면이 부족하다. 아직 대낮이다. 6월 13일 금요일 새벽 2시 30분에 일어나
반야봉을 다녀왔고 지금은 똥국집에서 국밥을 먹고 있다.
장에서 가장 굵은 놈으로 갈치를 네마리 샀다. 만원이란다.
집에는 뒷집에서 놓아 둔 듯한 고춧가루가 놓여 있었다.
뒷집과 우리집은 오늘 저녁찬이 같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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