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 봄날 걷다 - 2

마을이장 2008.04.27 15:50 조회 수 : 7989 추천:266



일주일 동안의 기록이랄까.
봄을 찾아 다시 밖으로 나가 봅시다.









4월 23일 수요일.
감나무잎을 담아 보겠다고 나갔는데 날씨가 계속 탁하다.
날씨가 탁하다는 나의 소리와 다르게 손님들은 종종 '아 하늘 맑다!' 라고 말하는데
제 각각 살던 곳의 하늘 경험에 따라 그 기준이 다른 듯 하다.
서울 살기 전에 부산 해운대에서 머물렀는데 바닷가라 바람도 많고 화창한 하늘을
자주 보여주었다. 서울 살면서 항상 '왜 학씰히 맑은 날은 없는가?' 라는 생각을 자주 했다.
이유야 간단한 것이다. 서울이니까.
지리산 자락으로 내려와서 다시 맑은 하늘을 찾았다.
하지만 봄 날 대부분의 하늘은 역시 탁하다. 세월이 갈수록 더욱 그러한 모양이다.
황사는 기본이고, 대기 자체의 가시거리가 멀리 가지 못한다.
가까운 산의 나무잎 질감이 또렷한지를 기준으로 판단한다.
요즘은 구름층이 높은 날이 차라리 가시거리가 좋다.
문척 오산 입구 마을에서 셔터를 누르며 작년 이 무렵의 어느 사진보다 날씨가
탁하다는 생각을 했다.









사성암이 있는 구례의 오산鰲山.
초여름이 오기 전에 오산에 대해서 한번 다루어야겠지.
오산은 한덩어리다. 날씨가 맑다면 이 위치에서 나무 하나씩의 질감이 잡힐 듯 다가온다.
하지만 역시 좀 탁하다. 어쩌면 변해가는 기후와 중국 변방의 사막화와 더불어
이곳의 '완전히 맑은 봄날'은 아주 구경하기 힘든 광경일지도 모르겠다.









이를테면 감나무잎의 절정을 2008년에는 이미 놓쳐버렸다.
최근 몇차례의 비와 탁한 대기로 촬영을 미루고 미루다가 결국 그리되었다.
내 기준으로 가장 찬연한 감나무잎의 시기를 며칠 지나버린 것이다.
이제 연두에서 녹색으로 변해갈 것이다. 쌍계사 지나 의신마을 쪽 신록이
굉장히 장하였는데 이 역시 여전히 방문하지 못하고 있다. 이미 많은 잎이 올라와
연두의 신록은 지났을 것이다. '것이다' 이런 미루어 짐작형 자세가 항상 문제다.









차를 돌려 강으로 나가려는데 멀리 죽연마을 끝자락의 감나무잎이 눈길을 잡았다.
노인은 몸이 불편해 보였다. 종종 걸음으로 감나무밭을 돌보고 있었다.
차 안에서 105mm를 최대한 당겼다. 일상으로 보는 풍경도 파인더 속에서는 달리 보인다.
만약 내가 여행자였다면, 우연히 이런 날씨 속에 빛나는 감나무잎을 보았다면
더 긴 여운에 빠질 수 있었을까? 살아보니 그것이 아니다. 늘상 보는 사람의 뇌리에
맺힌 잔상이 훨씬 강력하다. 그래 어제 본 광경인데 오늘 또 보기 위해 나오는 것이다.
그 그리움은 새로운 아침해가 뜨는 순간 항상 반복되는데 어제의 그 모습이 아니다.
시간을 기록하는 기분이다. 어떤 장면에서 작년의 인상적이었던 대목이 사라지기도 하지만
또 다시 새로운 장면을 만난다. 지리산 원시림 속이 아닌 산 자락 사람의 영역에서
그 이미지는 항상 변한다. 작물이 변하면 풍광도 변한다.
























편의상 맥주보리라 해두자.
바람이 많이 불었다. 이 보리는 낟알을 감싼 가느다란 '털'의 질감이 유난히
부드럽고 길다. 그것은 바람보다 빨리 바람을 전한다.
파인더로 바라보면 그 움직임은 더욱 극대화된다.
몸을 최대한 낮게 하고 연사로 셔터를 누르고 있다.
셔터가 뭔가? 렌즈가 바라보는 세상을 필름에 각인시키는 시간을 조절하는 장치다.
늦은 오후였고 광량도 부족했지만 이른바 ISO를 100으로 두고 포커스의 뚜렷함 보다
바람이 지나가는 길을 최대한 오래 잡아둘 생각으로 셔터를 누른다.









해가 더 서산으로 기울면 강쪽의 자운영을 잡지 못할 듯 했다.
이동했다. 구례군 문쳑면 월평마을이다. 작은 자운영밭이지만 마을과
어울려 해마다 보기 좋은 촬영 포인트를 제공했다.








2007년에는 자운영을 스탠딩 상태에서 최대한 멀리 잡았는데 상대적으로
자운영의 면적이 많이 줄어든 2008년에는 최대한 자세를 낮게 한다.
자운영은 이른바 녹비綠肥다. 줄기와 잎을 바로 비료로 사용하는 것이다.
자운영이 심어져 있다는 것은 보리와 밀을 심지 않았다는 소리다.
금년엔 보리와 밀 재배 면적이 넓다. 작년부터의 곡물 가격 급등과 연관이 있을 것이다.








식량.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먹을거리다.
아무리 많이 가진 자者나 적게 가진 자나 최종적으로 하나만 택하라고 한다면
누구나 택할 수밖에 없는 생존 필수 항목이다.
산업사회에서는 이것을 화폐와 교환한다. 국민 전체의 생존권과 직결되는 품목이라
비교적 값싸게 공급한다. 구하기 힘들지 않고 일상에서 치명적인 지출을 요구하는
수준이 아닌 이 식량을 사람들은 일상적으로 '심각한 그 무엇'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16억이다, 더 된다... 인구에 대한 논란이 많은 중국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먹기 시작하고
질 좋은 소고기를 위한 사료를 위해 사람의 식량이 소의 사료로 소비되는 동안
TV에서는 영어와 불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나 보다 훨씬 외국어 능력이 탁월한 흑인들이
굶어 죽어가는 모습을 자주 보여 주었다.









...외신들은 뉴질랜드 한 개밥 제조업체 사장이 기아에 허덕이는 케냐에 개 먹이용
분말로 된 구호식품을 기부하겠다는 제안이 논란을 빚는 가운데 굶주리던 케냐 서민들이
이를 받아들였다고 보도했다.
지난달 뉴질랜드 개먹이 가공회사 ‘마이티 믹스’의 크리스틴 그러먼드 사장은 케냐 빅토리아 호수
근처 루싱아 섬에서 기아 상태에 놓인 아이들을 위해 42t 정도를 제공하겠다고 제의하자,
케냐 정부가 “우리는 개밥을 먹을 정도로 식량난을 겪고 있지 않다”며 거부하면서 양국 사이에
‘개밥 논쟁’이 벌어졌었다.
그러나 정작 루싱아 섬 주민들의 입장은 달랐다. 자식을 굶주림으로 잃어본 주민들은
“굶어 죽느니 개밥이라도 먹겠다.”며 “그 제안을 거절한 케냐 관리들은 자신들의 자존심만 지켰다”며
정부를 성토했다. 그러먼드 사장도 “우리 회사가 개밥을 만든다는 사실 때문에 내 진심이 비난받았지만
제공되는 식품은 사람을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식품의 재료는 소·양·돼지·닭 등 동물의 고기분말과 홍합·마늘·계란 등으로 마이티 믹스사에서
만드는 개 먹이와 같다. 구호단체들은 케냐에서 계속된 가뭄·흉작 등으로 굶주리는 사람들을
250만~350만 명으로 추산해왔다.
현재 전세계 60억 인구 중 20억 명이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다. 북한, 타지키스탄, 예멘, 그리고
아이티를 빼고는 영양부족 인구 비율이 35%를 넘는 나라는 모두 아프리카 국가들이다.
우리와 한 겨레인 북한의 기아율은 36%이며 콩고는 71%, 세계에서 가장 배고픈 나라는
아프리카의 에리트레아로 인구 100명 중 73명이 끼니를 때우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굶주리는 세계> / 창비 中









배가 고프지 않았기에 문척 오봉정사 쪽으로 綠음을 즐기며 천천히 이동했다.
사실 이 날 촬영은 예정하지 않았다. 날씨도 좋지 않았는데 읍내에서 사무실로
오는 길을 점검 차원에서 섬진강변으로 해서 돌아서 오는 것으로 잡았는데
제법 이곳 저곳에서 계속 사진을 찍게 된 것이다.









자운영. 이로운 식물이다. 시각적으로 화려함과 아득함을 제공하고
사람의 필요에 의한 녹비로 생을 마감하니 더욱 그러하다.
어쩌면 해가 갈 수록 자운영을 보기 힘들어질 것이다. 물론 식량이 주권이라는
용어와 함께 계속 등장한다면 그럴 것이다.
사무실 옆 대평댁은 '밀가리' 가격이 턱없이 올랐다고 불평하면서 여전히
파3 밀가루7의 습관적인 레시피를 고수하고 있다. 이전에는 파를 지금 사람들처럼
그렇게 많이 넣어서 전을 만든다면 어른들로부터 꾸중을 들었을 것이다.









최초 인류의 엥겔지수는 100%였을 것이다.
인류사는 바로 이 엥겔지수를 줄여온 시간의 기록일 것이다.
몇 년 전에 '너거집 엥겔지수는 몇이냐?' 는 질문에 '120%요.' 라는 소리를 했었는데
월지출 중 먹을거리에 대한 지출이 그렇게 높지 않은 것이 도시생활자들의
생활 패턴일 것이다. '요즘 밥 못 먹는 사람 있냐!' 라는 소리를 자주 접하지만
밥 못 먹는 사람들도 제법 있을 것이다. 문제는 그들이 밥에 대한 지출을 할 여력이
없는 것이 아니라 엥겔지수 이외의 영역에 너무 많은 소비가 이루어지는
현대 삶의 패턴 때문일 것이다. 이것은 삶의 태도 또는 삶의 방식, 철학을 바꾸는 것으로
어느 정도 조절 가능하다. 빈곤의 옆 마을 용어는 '상대적' 이란 것이고
'상대적=자존심' 이라는 등식은 일반적이고 습관적이다.









4월 24일 목요일 오후.
지리산 문수골 해발 800m 골짜기로 올라갔다.
산 아래에서 바라 보던 것 보다 신록은 이곳까지 풍성했고 조팝나무는
산 아래와 달이 지금 만개해 있었다. 지천으로 심어져 있는 산마늘을 탐내었지만
2년을 더 기다리라고 한다. 산마늘잎 쌈이 그렇게 비싼 모양이다.
쌈을 한 장에 얼마라는 식으로 판매한다는 자체가 놀라움이다.









산 아래 마을에도 고라니는 흔히 돌아다니지만 이곳은 역시 멧돼지왕국이다.
자세히 살펴보면 주변이 온통 녀석들이 파 헤친 흔적으로 황폐화될 지경이다.
녀석들도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이지만 개체수가 너무 많은 것은 분명하다.
문제는 항상 '조화'인데 그것은 이미 자연적으로 이루어지기에는 인간으로 인한
결핍 항목이 너무 많고,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조절' 인데 이 조차 쉽지 않다.
그러나 언제 정당방위로 인한 멧돼지 고기 시음에 관한 글이 있어얄 것인데,
돼지들이 너무 빠르니 상황을 연출하기가 쉽지 않다.









문수골을 다녀 온 후 꼬박 하루 정도 뭔 기획안을 만든다고 간만에
시간 싸움을 요하는 작업이 끝나갈 즈음인 금요일 정오 지나 손님들이 당도했다.
8시간 정도 일을 했으니 8일은 쉬어야 한다. 취재를 겸해서 방문한 사람들과
늦은 점심을 먹고 오래간만에 연곡사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연곡사 초입의 계곡을 조금 올아서자 아주 장한 녹음이 펼쳐진다.
계곡이 넓기도 하지만 연곡사의 그 계단논 방식의 차밭은 역시 장관인 것이다.









차를 자주 세웠다.









제법 탁한 대기였지만 녹음은 녹음이었고 마을은 평화로워 보였다.
반응은 두 가지로 갈라진다. "아 아름답다." 또는 "벌레 많겠다."









연곡사는 오래간만인데 절집은 거의 찍지 않았다.
어차피 금요일 나의 미션이 촬영은 아니었지만 이후에 한번은 다룰 연곡사에서
절집 자체의 모습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오랫 동안 포크레인이 상주해 있었는데
이제 정비가 끝난 모양이다. 연곡사를 좋아했던 이유는 그 낡음에 있었는데
간만에 찾은 연곡사는 입구 계단에서부터 허물어진 부분에 대한 보수 공사를 한 것이다.
아, 화엄사처럼 몰상식하게 새 돌로 보수한 것이 아니니 처음 찾는 분들은
여전히 호젓한 연곡사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대웅전 지나 부도탑으로의 가벼운 산책길 초입의 이 포인트에서 항상 장독을 찍었다.
이전 보다 장독 전경이 좀 좁아 보이는 것으로 보아 몇 년 사이에 또 나무가 자란 모양이다.









부도탑을 돌아오는 20분 정도의 산 길에서 숲이 참 좋았다.
며칠만 더 일찍 연두가 좀 더 남아 있는 아침에 이 숲을 걸었다면...
욕심이지.









지난 2월의 노고단 이후 산을 오른지 너무 오래되었다.
짧은 숲 속 길에서 지리산으로 들어야겠다는 욕구가 생겼다.
연곡사 부도탑 주변이 이러한데 뱀사골과 피아골, 심원계곡 쪽의 신록은 더 활홀할 것이다.
다음 주에 가능할까? 다음 주부터 일을 좀 해야 할 것 같은 예감인데 일정을 한번 조절해봐야겠다.









석가탄신일이 언제지? 작년에는 쌍계사에서 음악회를 보며 밤을 보냈는데
금년에는 화엄사로 가야겠다.









연곡사는 항상 이 소담한 정원인 듯 아닌 듯 한 꾸밈이 좋았다.
비교적 몇 년 전의 분위기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문화재관람료 2,000원.
취재차, 놀이차 방문한 객들은 떠났다.
낮은 덥고 아침 저녁으로 차가운 날씨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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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밥상 위로 광풍이 지나갔다.
이장집 밥상에는 무슨 일이 있었나?









인근 마을 산에서 많은 것을 얻는다.
정말 산에 들에 지천으로 널려 있는 그것들이 무엇인지 알기만 한다면 이 봄에 자연마트는 풍성함
그 자체이다. 취가 보이고 고사리가 보이고 두릅이 보인다.
평생을 도시에서 살았던 사람들에게 이것은 하나의 경이다. 농장에서 일군 것들이 아니라
산에서 자연 채취한 것들이다. 읍내에 사는 것과 산 가까이 사는 것은 이렇듯 큰 차이가 있다.
일상과 생각이 바뀐다. 많은 시간을 나물 채취에 투자한다. 마을 사람들이 알려준 그대로 따라하다가
그 맛을 보고 환장한다. 그리고 이제는 독자적인 노선을 따라 뒷산으로 올라가 이것들을 캐어 온다.
그것은 뭐랄까… 지식의 엄청난 확장이다.
무엇이 식용이고, 그것이 알고 보니 도시에서 비싼 돈 주고 사서 먹던 그것이고,
더구나 그 맛과는 비교할 수 없는 향과 품위를 지닌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당연히
지식의 엄청난 확장이다. 곧 이것들은 먹을 수 없는 상태로 성장할 것이고 부지런히 품을 팔아야
비축할 수 있다. 금년은 많은 채집이 힘들겠지만 내년에는 보다 본격적으로 채집하고 저장해 둘 생각이다.
이것은 식량이다. 식량을 직접 마련한다는 것은 월급을 받는 것과는 좀 다른 느낌이다.
그 가능성과 가짓수를 늘려 나가는 삶을 지향할 것이다.
의료보험 민영화에 대비하는 가난한 자들의 방편은 이런 것에 있을 것이다.
시골 생활 초보자는 습득해야 할 지식이 너무 많다.









역시 양념을 최소화한 방식으로 살짝 데쳐서 오늘 채취한 것들을
오늘 먹어준다. 요즘 저 현미에 푹 빠져 있다. 원래 개인적으로 백미만 선호했는데
저 현미는 특별하다. 반찬이 없어도 밥 한 그릇 비울 수 있는 곡식의 단맛이다.
지난 장에서 산 오징어 남은 놈을 넣고 지천댁밭의 파를 듬북 넣고 파전을 장만한다.
파꽃이 올라오니 일주일 안에 파 500개 정도를 소비해야 한다.
이 모든 재료들의 향과 풍미가 사람이 키운 것들과는 전혀 다른 차원이다.
손님들이 오면 가능하면 저녁은 집에서 먹는 것으로 한다.
이유는 이런 것들을 맛보여 주고 싶기 때문이다. 소박한 밥상이지만
어쩌면 평생을 도시에서 산다면, 수입이 변변치 않다면 먹을 수 없는 밥상이기 때문이다.
이곳 자연마트에서는 모든 것이 공짜다. 서울 시절 두릅 한번 먹어보겠다고
마트에서 만원이라는 가격표를 내려다보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는데...
도대체 자연산 나무두릅도 먹어보지 못하고 죽는 인생이 인생인가!









밥상의 출발은 이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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