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 산은 물에 지고 - 피아골에서

마을이장 2010.10.30 01:17 조회 수 : 7838 추천:173





2010년 10월 29일 금요일.
늦게 일어났다. 원래는 새벽 성삼재행 버스를 탈 생각이었다.
눈을 뜨니 아홉 시가 넘었다. 잠시 멍하게 누워 있었다.
몸이 천근이다. 감기다. 놀기 좋지 않은 상태다. 그러나 놀아야 한다.
내가 놀아야 지리산닷컴 주민들이 즐겁다.
이틀 전 수요일에 뱀사골을 다녀오고 연이어 목요일에 피아골을 결행할 계획이었다.
금요일부터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토요일과 일요일은 피아골단풍축제다.
그런 날은 월급쟁이들을 위해 나같은 사람들은 산에서 머리 수를 줄여주는 것이 좋다.











수요일 뱀사골에서 내려 선 직후 바로 몸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꼈다.
남원에서 추어탕을 먹고 바로 구례의 병원으로 날아갔다. 월인정원(마누라)이
추석 이후 계속 감기를 달고 사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병원을 아무리 가라고
해도 도통 말을 듣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100년만에 시범을 보여주기 위해 바로
병원으로 달려갔다. 역시 청진기 한번 몸에 대지 않고, 내 기준으로는 이해는 하지만
용서하기는 힘든 소견을 말하는 의사와 잠시 만났다가 주사 하나 맞고, 3일 분 약을
받아 먹고 나는 사무실로 갔다. 그 날 밤에 바로 뱀사골 사진을 정리해서 이곳에 올리고
잠자리에 눕고 보니 새벽 2시가 넘었다. 목요일 산행은 불가능이었다. 잠시 사망.
금요일. 피아골 직전마을을 벗어나 산행 입구에 선 것은 이미 오전 11시.











오늘의 목적지는 피아골대피소. 직전마을에서 3km 정도.
표준산행으로 보자면 90분 예상이다. 그러나 시작부터 심들었다.
코가 막히니 호흡이 안된다. 힘든 산행길도 아닌데 초반 자갈길부터 헉헉거린다.
원래 계획했던 코스도 아니고 해서 '꼭 가야할 필요는 없다'는 소리를 초반부터 주절거렸다.
해를 좌측 후방으로 등 진 상태였다. 전진하는 방향으로 햇빛이 때린다. 이런 경우에 나는
거의 사진을 찍지 않는다. 풍경 사진은 역광에서만 찍는다.
몇 번 뒤돌아 서서 빛의 상황을 본다. 돌아 올 때 빛의 상황을 가늠해야 한다.
오늘 사진은 무조건 하산 길에 찍을 것이다.
결국 하산할 때 역광을 만나기 위해 산을 오르는 꼴이다. 구계포까지 왔다.
피아골대피소까지 1km 남았다는 소리다. 가자. 여기까지 왔는데 어떻게 다음 주 월요일을
바라고 다시 오겠는가. 그냥 오늘 끝장을 보자.
금년에 완료해서 납품해야 하는 구례사진집의 실질적인 마지막 촬영이다. 11월부터는
편집과 글 작업에 매달리고 인쇄를 넘겨야 한다. 실질적인 제작에 돌입하는 기간이다.
사진집에 소용될 새로운 사진은 오늘 피아골 단풍이 마지막이다.
구계포 다리 앞에서 카메라를 꺼내었다. 몇 장 찍고 다시 집어 넣었다.
돌아올 때 역광이 훨씬 강렬할 것이다. 무조건 오르고 보자.











12시 38분. 대피소가 보인다. 평소보다 느리긴 느렸다.
그러나 도착했으니 일단 마스크를 벗고 국물을 좀 넣고 체력을 보강하자.











100년 만에 사발면을 하나 시켰다. 국물과 준비해 간 주먹밥을 먹었다.
맛을 모르겠다. 일단 먹어야 한다. 바람에 등짝이 시리고 한기가 든다.
커피와 담배 두 대를 피운다.











단풍 상태가 이상하다.
토요일이 피아골단풍축제일인데 이상하다.
인간의 축제에 단풍이 날짜를 맞출 이유는 없지만 이상하다.











대피소를 지키는 분에게 여쭈었다.

"단풍이 아직 내려오지 않은 겁니까, 며칠 전 서리에 끝이 난 겁니까?"
"지난 주에 좋았습니다. 서리가 오고 잎이 떨어지고 끝이 났습니다."

그렇군. 단풍의 진행은 끝인 난 것이다. 이전으로 보자면 지금 대피소 주변은
화려한 색의 향연이 벌어지는 것이 맞다. 뱀사골에서 느꼈던 것을 피아골에서 확인한다.
많은 사람들이 금년 단풍이 예년에 없이 화려할 것이라고 말했었다.
나 역시 그럴 것이란 생각을 했지만 하늘은 절정을 앞두고 인간界의 생각과
다른 결정을 내렸다.











1시 27분. 50분 정도 머물렀던 모양이다.
이제 내려가자. 카메라를 목에 걸었다. 토요일과 일요일을 피해서
다음 주 월요일에 이곳을 다시 찾아오더라도 피아골단풍의 백미를 건질 가능성은 없다.
지금부터 내려가는 3km에서 결판을 보아야 한다.
왜 항상 산을 즐기지 못하고 사진 결판을 봐야하는 것일까? 나는. 젠장.











이제 내려서는 길 오른편으로 대부분은 역광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계곡은 왼편이다. 계곡 건너편은 직사광을 받고 있다.
하산 길 동안 계속 그럴 것이다. 여러분들은 이곳의 풍경 사진에서 이렇게
평면적인 풍경 사진을 자주 보지는 못했을 것이다. 저 숲 속에서 지금 사진을
찍고 있는 나의 자리를 바라보면 환상적인 빛을 연출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저 곳으로 건너갈 수는 없다.











水.
물을 보았다.
계곡의 물에 산이 앉아 있었다.
서늘한 눈매를 가진 여인과 같았다.











햇빛은 건너편 계곡을 때리고
그 빛은 바닥의 계곡 물 위로 반사된다.











직사광이 아닌 반사광 상태에서만 물 위에 물감을 풀 수 있다.
반사광은 차분하고 싸늘하기까지 하다. 반사역광 위치에서만 물의 그림은 명확하다.
보는 것 보다 사진으로 잡은 한 컷이 더 선명하다. 일렁이는 어느 순간이
멈춘 상태라 그런 모양이다. 카메라 설정을 조정한다. 많이 어둡게 찍기로 했다.











물은 이어진다.
물을 따라 내려가야겠다.











저 오그라든 나뭇잎과 바위를 제대로 잡고 싶었다.
몇 번 설정을 달리했지만 마음에 차게 표현하지 못한다.











잎은 일찍 땅으로 내려앉았다.











바위와 나무가지 사이로 짙은 색을 보았다.
다시 계곡으로 내려선다.




































































































































산은 물에 내려앉고.
물은 산을 담고.
물은 산을 비추고.
산은 물을 본다.
산, 물을 바라보다.
물, 산을 바라보다.
또 뭐가 있을까...











아,
산은 물에 지고 있구나.
오늘 사진의 제목을 그리해야겠다.











구계포 다리를 사람들이 건넌다.










사람이 산과 물 사이를 가른다.











계곡의 해는 이미 산을 나누고











어쩌면 산과 물은 사람들이 퇴장하기를 기다리는 듯 하다.











산과 물은 지난 여름에 사람들이 한 일을 알고 있을 것이다.











오전과 다르게











구계포다리 주변은 불 타오르고 있었다.
같은 장소지만 빛의 상황에 따라 풍경은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이 느낌을 원했다.











구계포다리에서 삼홍소까지 500m 정도 구간에서
심장을 면도칼로 베는 듯 한 역광을 만났다.
의도적으로 어둡게 찍었다. 역광이 도드라지도록 배경을 먹墨으로 찍었다.
일생에 만난 가장 아름다운 빛 중 하나였을 것이다.
나에게는 이미 과거가 되었고 다시 그런 빛을 만날 기대는 하지 않겠다.
다른 곳에서 다른 빛을 만날 것이다.
피아골은 피아골이었다.
아래로 수십 장 내려둔다.










































































































































































































































































































































저 다리를 건너면 곧 표고막에 당도할 것이다.
그러면 1km를 걸어내려가서 직전마을이다. 사람의 마을이다.
산을 오를 때 전화를 받았다. 뱀사골에서도 그랬고 피아골을 오를 때에도
농부의 전화를 받았다. 며칠 전의 첫 서리.

"형님. 서리 피해 들었지요? 시방 **형이 젤루 피해가 심허요.
좀 도와주쇼. 형님 아는 사람들 많자녀."
"알겠습니다. 내일 아침에 농장으로 촬영하러 가겠습니다."

지리산닷컴이 가진 힘은 거의 없는데 도움을 청하는 소리는 점점 늘어난다.
모두 외면할 수도,
모두 들어줄 수도 없다.
오늘은 단풍이지만 토요일 아침에는 감 밭에 서 있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만난 물이다.











물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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