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곡마을 사진이지만 논곡마을 이야기가 아니다.
그래서 '마을'이 아닌 '생각'으로 분류했다.











2010년 10월 15일.
오후 세 시 넘어서 구례 서쪽 끝 논곡마을로 올라갔다.
오라고 한 사람도 없었고 가야할 이유도 없었다.
따라서 발이 저절로 그 마을로 향한 것이니 이것은 참 가을스럽다.











마을 입구에 정자가 있고 큰 나무가 한 그루 있다.
고개를 들어 마을로 오르는 길을 바라보면 언덕 위에 또 다른 큰 나무가 서 있다.
잘 생긴 나무다. 나무 곁으로 다가가고 싶게 생겼다.











처음 논곡마을을 방문한다면 전체 마을의 그림을 그리기 힘들다.
숨어 있는 형국이다. 사방으로 산이 둘러싼 작은 마을은 해가 빨리 넘어간다.
그래서 논곡의 오후 빛은 항상 아주 강렬한 대비를 이루었다.
햇빛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난다.











작년 이맘 때 처음 논곡을 찾았다.
스산하고 황량했다. 좌우정렬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가옥 배치가 마음에 들었다.
몇 되지 않는 인가는 산개散開해 있었고 서로가 서로에게 무심해 보이는 마을이었다.
그것은 스스로 고립을 자초한 마을처럼 보였다.
눈이 가장 늦게 녹는 마을 중 하나다.











신산辛酸하다. 특별히 힘들고 어려울 것 없는데 기분을 표현할 수 있는 적절한
낱말을 찾다보니 '신산하다'는 말이 의미와 좀 어긋나지만 지금 나에겐 어울린다.
좀 촌스럽지만 책이 나오고부터 지금까지 대략 2주일 정도 그러한 듯 하다.
무덤덤하고 대수롭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일종의 책몸살인 듯 하다.
지난 금요일이었으니 '이번 주는 이렇게 공치는군' 이라는 생각을 했고
그날은 햇살이 워낙 맑았다. 그냥 그렇게 드라이브를 하거나 한적한 산책을 하고 싶었다.











논곡리論谷里.
계사면 '논실'이라 불렀는데 한자로 논곡論谷이라고 적었다.
1914년에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본황과, 곡성군 고달면 탑선리 일부를 병합하여
구례읍 논곡리라 하였다. 논곡은 '논실'을 이두식으로 한자화한 이름이다.
'논' 소리 그대로 '論'으로 '곡'은 뜻 옮김하여 '실'을 '谷'으로 한자화한 것이다.
곡성군 고달면 가정 마을에서 섬진강 좌안도로를 따라 2km쯤 하류에 있는 골짜기를 따라
1.5km쯤 들어가면 있다. 국사봉의 북쪽 산자락, 속새금의 남쪽 자락이 이룬 골짜기에 있다.
- 구례군지 2005 -

2003년 통계에 인구 23명, 13가구, 논 2ha, 밭 3ha로 나와 있다.
광의면 순영이 형님 논농사가 10ha가 넘는다.











별 다른 입출구가 없는 논곡마을은 무조건 이 길을 따라 마을로 들어서게 된다.
아주 많지는 않지만 이 마을에도 집집마다 감나무 몇 그루는 있다. 다른 마을에 비해
논곡의 '마당감나무'는 금년에도 포실해 보였다. 의외라고 말할 수 있는 정도였다.
월인정원은 이 마을이 처음이다. 좋다고 한다. 아마도 상대적으로 번잡스러운,
지금 연관을 맺고 있는 마을들에서의 상황과 비교하니 더욱 그럴 것이다.
마치 익명으로 살아가는 것 조차 가능할 것처럼 보이는 마을 분위기다.











나는 개인적으로 뭔 전원형의 세련된 집 보다, 정취가 물씬한 잘 지은 한옥보다
이런 집에 마음이 간다. 살림의 흔적이 고스란하고 아무도 '아, 그 집' 이라는
눈길을 주지 않는 집. 내 마음 속의 '디스이즈집'은 그런 것인데 그 장만이 참 쉽지 않다.
며칠 전에 사는 마을의 어느 목조주택이 전세 육천만 원에 임대되었다고 한다.
마당도 거의 없는 달랑 집인데 그렇다. 마을에 그런 일이 생기면 우리 부부는 약간
영향을 받는다. '주인 영감 또 흔들리겠는데.' 1년 만에 그런 일들이 제법 생겼다.
마을로 이사 온 젊은 사무장네는 파주에서 살다왔는데 지금 우리가 사는 마을의
임대주택(물론 이른바 '전원형') 가격은 파주보다 싸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도시 사람들의 구례로의 귀농이나 귀촌은 아마 힘들 것이다.
지난 봄 선거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군의원 후보의 슬로건은 아래와 같았다.
'땅값을 올리겠습니다.' 며칠 후에 바뀌었지만.











소박한 삶을 지향한다는 문구를 간혹 만나는데 지향하지 않아도 이미 소박하다.
그것은 지향해서 되는 문제는 아니다. 그리고 그 슬로건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거의 이미 소박한 사람들이다.
풍족한데 스스로 소박함을 지향하는 사람들을 나는 실견한 적이 없다.
무엇보다 소박함의 기준이 '자산'이냐 '형편'이냐에 따라 많이 다르다.
소박한 사람들이 소박하자고 말하니 설득력이 없다. 만약 나에게 슬로건을
정하라고 하면, "니들, 그렇게... "











임진년 왜란 때 일본군의 이동 경로를 벗어난 곳으로 숨어든 사람들이 정착한 마을이다.
외진 곳에 자리한 마을의 연원을 따져보면 피란지인 경우가 많다. 지난 글의 '토금마을'
또한 피란지였다. 이후로도 숨어살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주로 세대를 구성했다.
논곡의 모든 집들은, 새로 지은 단 한집을 제외하고는 집이 앉은 모양이 그렇게 보인다.
그러나 외부에서 마을로 들어 선 사람들은 숨은 눈들이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아무도 없는 마을이라고 착각하면 안된다.
누군가는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 시골마을은 그렇다.











사람을 부르는 길이다.
작년 가을에 올라가봤는데 이 터널을 지나면 그냥 감나무 산이다.
그러나 사진은 여기서 정지한 상태이니 뭔가 다른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30년 전에는 이 길을 따라 산을 넘어 구례읍 장으로 갔다고 한다.
새벽별 보일 때 출발하면 밝은 아침 장에 도착했다고 한다.
여순때에도 토벌대가 산을 넘어 이곳으로 넘어 온 기록이 있는데 아마도
이 산길을 통해서일 것이다. 어느 마을의 길 앞에서 나는 기록에 남겨진
수십 년, 수백 년 전의 이야기를 유추한다. 그 밤의 다급한 발걸음을 느끼려고
가급이면 노력한다. 외진 마을에 대한 남겨진 기록은 대부분 목숨을 담보로
한 상황이 많았다.











책에서.
마을신문을 만들었고 뭔 일을 했고 어쩌구 저쩌구 일이 많았다.
그러나 그 일들이란 것은 그 글을 만들 당시의 상황이었다.
여전히 마을신문 구독신청 메일을 간혹 받는다. 마음이 불편하다.
페간된 것은 아니지만 나오지 않고 있다. '내 책임' 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마을에서 맡고 있는 역할이 그러하니까 전적으로 실제 내 책임이기도 하지만,
마을신문이 만들어지지 않고 있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왜 만들지?' 라는
질문과 대면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마을사람들은 마을신문을 원할까?











마을신문에 열광(제법 과장이지만)했던 것은 마을사람들이 아니라 도시사람들이다.
미디어 관련한 사람들이 소재로서 좋아했고 로망으로서 귀촌을 생각하는 사람들을
자극하기에 적당한 것이었지 정작 마을사람들에게 마을신문이란 것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물건인 것은 분명하다.
단순히 마을소식과 정보 중심의 소식지라면 훨씬 소박한 프린터물이면 되었을 것이다.
지금의 반회보 차원이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상사마을신문은 사내보가 아니라
사외보 성격이 강했다. 사외보의 발행 목적은 결국 홍보다.











홍보의 목적은 수익 창출이다. 시골마을에서 수익창출이란 방문객을 극대화하고
농산물이나 가공식품을 판매하는 것이다. 신문이나 사이트는 일상적으로 이 판매를
원활하게 만들기 위한 '신뢰'를 구축하기 위한 작업이다.
판매에는 관심 없는 척 하면서 결국 판매하는 것이 목적인 것이다.
물론 마을신문을 구독하는 도시 사람들도 그런 정도의 구도와 진행 방향은 알고 있을 것이다.
어차피 쌀은 구입하는 것인데 이미 아는, 익숙한 마을의 쌀을 구입하거나
이 배추파동 시절에 익숙한 마을에서 절임배추를 구입할 수도 있을 것이다.
속이지 않는다면 나쁠 것은 없는 일이다.











별 문제 없을 수도 있지만 나의 마음을 흔들리게 만든 것은 결국,
내 마음과 다르게 변화 중인 마을의 이행과정을 내 손으로 홍보해야 하는 어색함이다.
그것을 포괄적으로 나와 마을의 갈등이라고 지적한다면 뭐 간명하게 수용하겠다.
전혀 표현되지 않는 상황에서, 그 어느 누구도 나에게 '마을신문 왜 만들지 않나?' 냐는
질문도 없는 상황에서 나의 초심은, 나의 자발성은 희박해졌다.
마을신문이 만들어지고 마을은 더 즐겁고 행복해졌는가?
실질적인 그런 효과를 느낀 적은 없다. 오히려 마을신문의 내용으로 인한 작은 소란이
마을 안에서 두 차례 정도 있었다. '없던 일이 생긴' 것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존중받는 고마운 일상이지만 몇몇 주민들은 '나, 즉 외지사람 자체'를
불편해 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것은 적응 실패, 성공의 판가름이 아니라 어차피 이 마을 저 마을 시골마을의
보편적인 정서에 대해 과연 내가 지속적으로 양보하는 태도를 가질 수 있을까라는
회의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나도 이제 3년 이상 살아봤다는 것이지.
어떻게 전개되고 어떻게 평가될 것인지 가늠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별 다른 방침 없이 잠시 pause하고 있다. 어차피 장기적으로 내 생각없이
마을을 꾸미고 홍보하는 환경미화반장 노릇을 계속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다.











며칠 전에 이곳에서 잠시 언급했다. 이곳에서 거짓을 말한 적은 없지만 진실을
모두 말한 것은 아니다. 물론 그럴 수는 없다. 그러나 이를테면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까지는 아니라도 거시기 정도의 효과는 있다.
어느 농민이 무농약으로 쌀을 재배했다고 알릴 수는 있지만 어느 농민이 정말 농약을
많이 뿌렸다고 말하지는 못한다. 좁은 동네라 이른바 제대로 된 언론의 기능을 작동한다면
같은 지역에서 살아가는 것은 심히 팍팍해진다. 이미 원만한 사람이라는 평판은 힘들다.











'지리산 자락에 정착한 어느 디자이너의 행복한 귀촌일기'
책의 부제다. 여기서 핵심 키워드는 '지리산', '디자이너', '귀촌'일 것이다.
제목과 부제에 대해 나는 '동의'라는 수동적인 방식을 택했다.
출판의 목적은 '생계형' 이라고 진작에 밝혔고 나는 나를 팔아야 한다.
그것을 적절하게 몇 줄 문장으로 뽑아내는 것은 출판사 또는 편집자의 몫이다.
차마 내 손으로 할 수 없는 일을 대신하게 하는 것이다.
책에 나온 fact에 기반하면 나는 당분간 별다른 변동 없이 조용하게 마을과 화합해서
행복하게 잘 살아가는 것이 옳다.











마을신문과 밀가루 장사의 최대 수혜자는 누구인가?
고민할 필요도 없이 그 사람은 바로 나다. 시골에 내려와서 '나름대로 뜬' 케이스다.
그것이 나에게 경제적인 혜택을 주지는 않았지만 그것으로 인한 몇몇 매체에서의 소개와
소문으로 지리산닷컴의 발언은 조금 더 힘을 얻게 되었다. 실제 지리산닷컴이라는 사이트의
홍보는 나의 항상적인 고민이기도 하다. 이것은 부인할 수 없는 객관적인 사실이다.
어떤 이야기를 사람들이 좋아하고 어떤 사진을 좋아한다는 것을 기획하고 조직하는 일은
차라리 본능적인 영역의 일이다. 나는 그것을 어느 정도 즐겼고 그것으로 인한 혜택을
거부하지 않았다. 둠벙 하나 파 두면 개구리가 뛰어든다는 속설을 교본으로 삼았다.











지난 주 일요일에는 어느 잡지와 인터뷰가 있었다. 책 때문이 아니라 예정되었던
인터뷰였는데 하필 책이 나온 것이다. 무거운 담론을 주로 다루는 계간지였고 대중적이지
않은 잡지라는 판단에 응했다. 두어 차례 원고 청탁을 거절한 미안함에 대한 방어적인
성격이 있기도 했다. 같은 꼭지의 이전 인터뷰 기사를 보니 수록양은 충분한 듯 해서
긴 시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작정하고 두 가지 이야기를 했다.
- 이미 이 좁은 동네에서 하나의 작은 권력이 된 것 같다.
- 유명해지고 싶다. 생계형으로.
설명을 하자면 긴 글 하나는 되겠지만 구구한 설명이 필요할 것 같지는 않다.
내 안의 구차함을 드러내는 방식이다.











많지 않지만, 어쩌면 나는 이런 '나의 대화법'이 가능한 매체하고만 거래를 했다.
너무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그냥 슬쩍 보여주는. 그런 정도까지가 마지노선이었다.
모순이었다. 보다 더 노골적으로 구차스러워져야 목적한 바를 이룰 수 있을 것인데
그 문턱에서는 막상 발을 들여놓지 못한다.
어제 오늘 대부분의 백성들이 알고 있는 프로그램 담당자들의 전화를 받았다.
아마도 출판사를 통해서 나의 연락처를 확보했을 것이다. 하나의 프로그램은 내가 출연한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심하게 우스웠다. 다른 하나의 프로그램은 전혀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 제작 과정과 이후 여파를 생각하면 역시 머리가 어지러웠다.











결국 두 가지 제의 모두 거절하면서 3쇄 정도의 책을 팔아 먹을 수 있는 기회를 지금
발로 차고 있다는 확신은 들었다. 네임파워도 없는 필자가 홍보에도 비협조적이다.
3쇄면 어디보자 인세가... 이십사만키로 메르세데스 아방떼가 이 겨울을 버틸 수 있어야는데...
2주일째 나는 온라인서점으로 들어가서 '오늘의 판매지수와 순위'를 확인하는
새로운 놀이를 하고 있다. '엇! 백 위 안이잖아', '에이 씨 이백 위 밖으로 나갔네. 게임 끝이네'.
사무실에는 나 혼자이지만 뒤통수가 시려서 한번씩 돌아본다.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다.











나 역시 결국 쌓으려는 것이다.
돈이건 이름이건 그것을 쌓아서 밥을 지으려는 것이다.
'저 쓰러져가는 집에서 살 수 있나?'
'바라보면 문학이지만 당신은 문장과 문장 사이에서 잘 살 수 있나?'
'니가 진짜로 원하는게 뭐야?'











적막강산같은 논곡에서 나의 지금 상황과 앞 날을 생각한다.
논곡은 적막하다. 우리는 그 적막함을 찾아 왔다. 편하기 때문이다.
나는 점점 번다해지고 있다. 여러가지 불편한 일들이 점점 많이 생긴다.
그러나 사람들이 찾아 줄 때가 좋은 시절이라는 것을 부인하기 힘들다.
시골에 앉아 기능 팔아서 밥 먹고 사는 사람이 정작 사람들이 나를 찾지 않을
때가 오면 제법 답답한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다.











누군들 폼 나게 살고 싶지 않겠는가.
마을의 어떤 후배가 스스로 하는 일이 그다지 폼 나는 일이 아닌 것에 대해
한 잔 술에 한 말이 있었다.
'이렇게 사는게 쉬운 줄 아요? 나 사는거 가꼬 비웃지 마쇼. 열심히 사요.'
구차스러움을 참고 그렇게 살아 가는 것. 그것이 대단한 것 아닌가.
구차스러움은 내 비치기 싫고 밥은 먹고 싶고. 위선이다.











살고 있는 마을은 주민공청회에서 지리산둘레길을 거부했다.
내가 참석해 본 마을회의 분위기로 봐서는 아마 가장 일치단결한 분위기였다.
비교적 무관심하거나 의견이 여러 길로 갈리는 것이 마을회의 분위긴데 그 날은 그랬다.
거부 의견과 분위기는 열기가 뜨거웠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였다.
젊은 층에서 일부 찬성의견도 있었지만 반대의 큰 목소리 앞에서 맥을 추지 못했다.











나는?
나는 원래 지리산둘레길을 유치할 뿐만 아니라 우리마을이 거점마을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심지어 마을회관 앞 나무 주변으로 쉴 수 있는 데크 설계안까지
준비되어 있는 상태였다. 그래서 마을공청회의 분위기와 결과는 좀 당황스러웠다.
회의가 끝나고 하루 이틀 정도 나는 '도대체 이 거부의 열기는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라는 생각을 간혹 했다. 이후로도 지리산 둘레의 마을들이 방문객을 유치하고 그 결과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기획안은 이른바 '지리산둘레길' 보다 강력한 것은 없을 것이다.











쓰레기 투척, 사생활 침해 등이 가장 큰 이유였다.
하지만 나는 그것은 표면적인 이유라고 생각했다. 평균적으로 빈곤한 마을은 아니다.
굳이 둘레길을 찾는 사람들의 주머니에서 돈이 나오지 않아도 되는 마을이다.
'그거 몇 푼된다고' 라는 소리도 나왔었다.
지금까지 오픈된 지리산둘레길은 주로 남원과 함양이다. 지리산의 북쪽 사면이다.
겨울이 길고 농경지가 부족한 지형이다. 역사적으로 척박했다.











사는 마을은 70년대 중반까지 지금의 마을회관 자리에 서당이 존재했다.
해주 오씨와 영천 이씨가 주를 이루는 집성촌 마을이다. 오씨와 이씨는 혼인으로 인척을
이룬 집안이 많고 대부분이 형님이고 아제고 숙모다. 이런 요소들은 마을의 오랜 폐쇄성과
보수성을 어느 정도 설명해준다. 기본적으로 이런 정서가 강한 마을이다.
그런 기반에서 몇 년 사이에 외지에서 들어 온 인구가 빠르게 증가한 마을이다.
그들이 마을로 들어서는데 대해서도 마을의 실세들을 중심으로 격론이 있었다고 한다.
젊은 이장이 처음으로 일을 맡게 되면서 마을은 가장 격심한 변화를 받아들여야 했다.
내가 마을로 들어오기 2~3년 전의 이야기다.
그 과정에서 지난 몇 년간 '녹색농촌체험마을', '행복마을' 등의 예산이 투입되었고
빠르게 외형과 내용을 바꾸어나갔다. 그 길목에 나라는 사람도 우연히 마을로 이사를 오고.
마을 입장에서는 별 희안한 놈들이 많이 들어와서 살게 된 것이다. 그것도 갑자기.











개인적인 판단으로 마을은 이제 포화상태다.
서류상으로 주민 수는 200명을 넘어섰다. 마을 가운데 논 위에 집을 짓지 않는다면
더 이상 집을 지을 수 있는 땅은 손가락을 헤아릴 정도다. 시골마을이 점점 여백이 없어진다.
여백이 없어지면 사람들의 정서도 각박해진다. 들어오기 위해 나름으로 작업했던 사람들과
기존의 주민들이 가진 공통적인 이해는 '더 이상 사람이 들어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라는 것이다.
그리고 마을에는 중심을 관통하는 주류 세력이 실종된 상태다.
전통적인 개념의 유지들은 노화되었고 그 힘을 잃었다. 무엇보다 그들의 생각은 다음 세대
마을 젊은이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 같은 집안이지만 세대간 갈등이 오히려 중심 화두다.
30년 전에는 있을 수 없는 불복종이 흔하다. 노인들은 실망하고 간혹 분노한다.
그러나 자신들의 이상을 실현할 동력은 없다.











젊은이들은 변화하는 세상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기존의 마을 어르신들이 마을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는 불만을 표출한다. 그러나 그 세력 관계를 완전히 역전시킬 만큼 그들 역시 일치단결되어
있지도 못하다. 그들 역시 여러가지 먹고 사는 이해관계에 따라 일관된 입장을 가지지 못한다.
사안에 따라 의견은 갈라진다. 몇 번의 실패를 겪고 나면 마을 일의 중심에서 점점 멀어진다.
'나 먹고 살기도 바쁜디' 마을 일에 중심을 둘 수는 없다. 결국 젊은층 역시 동력을 하나로 만들지
못하기는 노인들과 한가지다. 그래서 마을은 상황을 주도할 세력이 실종된 것이다.











새로이 마을에 자리한 '외지껏들'은 원래 마을을 어떻게 하고 하는 문제에 큰 관심은 없었다.
평생을 도시에서 박투하면서 살아왔고 이제 노후를 좀 편안하게 즐기고 싶은 것이다.
가능하면 안정된 이 상황이 흔들릴만한 변화는 원하지 않는다.
'나는 관여하지 않는다. 기본적인 의무와 예의는 차린다. 고로 나의 사생활을 존중해다오.'

이런 정도의 구도가 살고 있는 마을의 만화경일 것이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하면 마을은 한 마디로 '개판'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그런 것은 아니다.
마을은 일상적으로 평화롭고 안정적이며 이렇게 해부하듯이 언어로 재단하지 않는다면
'암시랑토 안혀'가 정확한 풍경이다.
이런 상황인데 전해 들은 이야기에 의하면 군에서는 마을을 지리산둘레길 거점마을로 지정하고
몇 억의 예산을 배정했다고 한다. 엇박자다.











부정적이건 긍정적이건 마을을 지탱하고 이끌어 가는 중심 어젠다agenda가 없다.
암묵적인 합의점은 '나를 귀찮게 하지 마!' 정도일 것이다. 나는 그 지점이 실망스럽다.
개인적인 정서를 이야기하라면 나 역시 지리산둘레길 같은 것이 내가 사는 마을을
관통하는 것은 싫다. 그러나 지난 수 년간의 마을의 변화와 이행경로를 살펴보면서
개인의 정서와 다르게 '이 마을은 거점마을로 되는 것이 맞다'는 의견을 가지기로 '결정'했었다.











통상 둘레길 여행자들의 숙박비용에 비하면 좀 비싼 마을민박 가격을 조정하는 문제,
또는 저렴한 게스트하우스를 새로이 건립하는 방안. 정보센터 기능의 IT room 정도를
마을 중심부 또는 입구에 마련해서 숙박하는 여행자들이 그 날 밤에 바로 자신의 블로그에
사진과 글을 올릴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 도보여행자와 느린 삶을 주제로 한
작은도서관, 음악감상실. 사라진 구판장 자리와 정자나무를 중심으로 오픈마켓을 열고
나물과 채소 이외의 특색 있는 아이템들을 판매할 수 있도록 기획하는 것. 그 판매자들은
꼭 마을주민들이 아니어도 된다. 인사동 쌈지길의 백분의 일 축소판 같은 것.
이 모든 아이템을 둘레길스럽고 친환경적으로 디자인하는 문제. 그에 따른 강력한 CIP 전략.
이 모든 것을 마을신문과 마을사이트를 통해 방문객들에게 홍보하고 교육시키는 방안.

마을 안길이 지리산둘레길로 지정될 것을 예상하고 나름으로 구상한 안들이다.
내 머리 속에는 이 구상안들에 의해 몇 가지 건축물이 지어졌다가 허물어졌고
수십 개의 카피와 사인물들이 스쳐지나갔다. 그리고 마을사람들은 이런 것을 원하지 않는다.











이제까지 구례에서 지리산닷컴이 한 일의 대부분은 차선을 위한 수동적인 대응이었다.
원래 이런저런 일들을 예정한 것이 아니었기에 살다보니 만들게 된 몇 가지 일들이 있다.
나는 지리산닷컴이 수동적이 아닌 능동적으로 태도를 바꾸었을 때 예상 가능한 그림들을
상상했고 그 일들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역시 전력투구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기존의 마을에서 그런 생각들을 펼치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것을 필요로 한다.
여론을 주도할 책임성과 수긍하지 못하면 인정하게라도 만들 만큼의 힘이 있어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그런 힘은 없다. 무엇보다 변화를 원치 않는 마을을 붙잡고 그런 소리를
하는 것은 보기에도 아름답지 않다. 한 발 물러선다. 어쩌면 열 걸음 물러선다.
한 몸 자족하면서 살 것인지 일을 벌일 것인지 판단해야 한다.











근본적으로는 점점 반성장론에 가깝게 다가가는 스스로를 느끼면서 이 모든 구상과
공상이 '도대체 뭔 소용인가' 라는 화두를 오히려 더 가깝게 붙잡는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이 더 행복해지는거야?
왜 그런 것 까지 생각해야 하지?
밥은 먹고 다니냐?











낮에 마을로 들어오는데 엄니들이 공공근로 갔다가 가을볕 아래 힘들게 걷는 중이다.
차를 세웠다. 다섯 엄니를 태웠다. 또 공치사가 시작되고 마을에 오래 살아라는 말씀들을 하신다.
'토지에 땅 사서 이사간담서' 라는, 나와 관련된 지난 여름부터의 헛소문을 지산댁 엄니가
말씀하시길래 마침 뒷좌석에 지금 살고 있는 집 주인인 당촌댁도 있었던터라 이번에는
정확하게 정정보도를 해야했다. '그거 헛소문입니다. 제가 땅 사고 집 지을 돈 없습니다.'
'하이고 그라믄 여그서 정붙이고 쭈욱 살어'라는 말씀들이 오갔다.
관심이 없어도 돌아다니는 말은 모두 알 수밖에 없는 시골마을.
시골마을에서는 '말이 나오면' 그 말의 발생 자체가 중요한 것이지 진실여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결국 이런 것이 아닐까. 그 '사진박구'가 뭔가 마음이 싱숭생숭하다는 것을 알아버린 것이다.
그래서 정보의 정확성은 떨어지지만 나의 상태에 대한 마을에서의 '말言의 발생'은 자체로는
분명히 '낌새'에 대한 풍문에 해당하고 역시 이곳에서는 무관심과 익명이 불가능한 것이다.











골목을 내려설 때 정말 예쁜 감을 만났다. 금년에 본 감 중에서 단연 미스코리아 진이었다.

남효온南孝溫(1454~1492)의 '지리산일과智異山日課' 라는 글을 좋아했다.
지리산을 여행한 옛 사람들의 책에 등장하는 대목이다.

<...2일(무진). 빈발암을 떠나 영신암을 지났다
서쪽 산 정상을 거쳐 숲 속 30여리 길을 걸어서 의신암에 다다랐다.
이 암자의 서쪽은 온통 대나무 숲이었다. 감나무가 대나무 숲 중간중간에 섞여 있었는데,
햇빛이 홍시에 부서지고 있었다. 방앗간과 뒷간도 대숲 사이에 있었는데,
근래에 본 그 어떤 아름다운 풍경도 이에 비할 것이 없었다.>

남효온의 문장을 부러워했지만 사실은 남효온이 만난 상황을 부러워했을 것이다.
그가 누린 지리산은, 그 날의 쌍계사 계곡은 어떤 풍경이었을까. 그러나,
지금 내가 누리는 이 호사들에 만족하자. 그 어떤 생각이나 의도를 뛰어 넘어
그냥 이 자체에 감사하는 것.
500년 전에 남효온이 하동 의신마을에서 만난 홍시가 지금 내 앞에 있다.
그 홍시는 여전히 햇빛에 부서지고 있었다.











가능하면 의도하지 말 것.
가능하면 이곳의 생각을 먼저 받자올 것.
그것이 내 생각과 좀 다르더라도 가능하면 발설하지 말 것.
점점,
없는 듯 살아갈 것.











그러나 지리산닷컴에서 이렇게 쫑알거리겠지.
소문은 지가 내면서...







<이뤈 젠장!>
일전에 용두의 고선생님에게서 '강, 시멘트' 뭐 이런 이야기를 얼핏 들었는데...
구례군 문척면 죽마리입니다. 예쁜 마을이지요. 섬진강 따라 뚝방길이 이어집니다.

http://blog.naver.com/hanee3289/60116996609

4대강 사업이라네요.
아 놔, 다음 주는 단풍놀이 집중 기간인데. ㅅ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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