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 이른 아침 걷다 - 토금마을에서

마을이장 2010.10.15 03:01 조회 수 : 6797 추천:169





2010년 10월 14일.
벌써 목요일이다. 그러면 안되는데 목요일이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어학사전에서 '후회'라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역시 후회란 것을 하고 있지만 뭐 역시 그리 짙은 농도는 아니다.
스스로 상투적이지만 이번 주는 '또 그리 되어버렸다.'
수요일 밤에는 책을 펼치자마자 역시 수면제 역할을 했고
최근으로서는 드물게 10시 무렵에 잠이 들었다.
그리고 목요일 새벽 4시경에 잠이 깨었다. 깜깜하다.
변기 물을 한번 내리고 다시 누웠지만 한 시간 정도 뒤척인 듯 하다.
봄날 미명未明은 푸른색인데 가을의 미명은 회색이다.
후반전이 그런 모양이다. 그냥 일어났다. 예정에 없었던 산행을 하기에는
몸이 썩은 상태인지라 사무실로 가는 수밖에.
오래간만의 새벽 시동에 차는 시름시름 앓는 소리가 난다.
얼마 전에 32만 원을 먹였는데 역시 차도 나이는 속일 수 없는 모양이다.
타이밍벨트와 몇 가지를 교체했다. 뭘 고쳐달라고 하면 잘 고쳐주지 않는
정진카 사장님은 고뇌 끝에 그렇게 진단을 내렸다.

"이 차 팔면 30만 원 나올란가?"
"..."
"왜 말을 안하요?"
"..."
"고칩시다. 별 수 없도 없는데.
근데 이 차 타이밍벨트 내가 다시 교체할 것이란 생각은 안했는데."

10만km 가까이 뛰었다. 4년.
주로 구례 안에서 돌아다녔으니 제법 싸돌아 다닌 모양이다.
그 날 오후에 바로 광주로 가야했기에 차를 찾아 '돈은 내일!' 이라고
소리하고 다시 길을 떠났다. 만성기관지천식 환자같았던 차는 가벼운 감기
환자같은 상태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혼자 실실 웃었다.
카센터 사장님이 떠나는 나의 뒷통수에 날린 소리가 걸작이었다.

"앞만 보고 가부쇼!"

통상 카센터에서는 물어보지 않으면 말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고쳐달란 것만 고쳐준다. 묻는 것만 살펴봐준다.
따라서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니라 단지 말을 하지 않았을 뿐이다.
지리산닷컴에서 나 역시 그렇다.
거짓을 말한 적은 없지만 말하지 않은 진실도 많다.
때로 그것은 상대방에 따라 거짓말에 버금가는 효과를 발휘하기도 한다.
그러나 앞으로도 모든 진실을 말하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댓글은 삭제하면 되지만 타인이 돈을 주고 산 책의 글씨를 삭제할 재주는 없다.
했던 소리에 대한 후회를 이제 간혹 겪게 될 것이란 예정을 한다.
지난 며칠 간 이곳에 새로이 가입한 주민의 수가 수백 명을 넘어선다.
30% 정도의 사람들이 '자기소개'에 해당하는 간략한 멘트를 남긴다.
대부분이 귀농과 귀촌에 관심이 많았던 분들이다.
앞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소리란 것은 과연 어떤 것이 가능할까?
그냥 원래 놀던 그대로 노는 수밖에 없다.

캄캄한 사무실에서 새벽 메일과 댓글 정도 확인하고 다시 시동을 걸었다.
문척면 토금마을로 향했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지나치기만 했고
걸어보지 않은 마을을 이 가을에는 방문하고 싶다.
7시 무렵이었다. 안개가 짙었다. 토금고개 중앙에서 좌우를 두고 잠시 고민하다가
안개가 더 짙은 동쪽으로 난 길을 택했다. 인가는 드물 것이다.
원래 예정은 반대편이었지만 안개 속의 아침 산책은 주민들의 고전적인
신고정신을 강화할 우려가 있었다.
그리고 안개 속으로 걸어들어갔고 보석같은 산책길을 얻었다.
감나무와 고사리밭, 꽃들. 아침 이슬, 짙은 안개, 깊은 호흡.
길은 외길이었고 굽이를 돌면 다음 굽이의 자태가 그곳으로 향하도록 유혹하고 있었다.
낮은 산에서 강을 내려다 볼 것이란 예감에 끝없이 빨려 들어갈 것 같은 길이었다.
안개는 결말을 숨기고 있었고 나는 어느 지점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이 길은 그냥 미지로 남겨두자.

아래로 사진 40장 내려둔다.










































































































































































































































































































































































버스가 토금고개를 오르고 있었다.
첫차일 것이다. 하루가 시작된 것이다.
해는 안개를 밀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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