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 밀가리 시즌2 최종 보고를 드리며

마을이장 2010.08.10 02:47 조회 수 : 6047 추천:171








7월 26일 월요일 정오. 하동 악양면 부계리 정미소.
밀가리 시즌2를 맞이하여 가장 난제인 밀가루를 빻는 일은 부계리에 살고 있는
봄이네 도움을 받아 이곳에서 처리할 작정이다.
우리들이 나눈 밀의 품종은 '금강밀'이다. 단단하다. 이미 봄이네 밀 때문에 한바탕 전쟁을
치룬 정미소 사장님은 손사래를 했지만 밀어붙이는 방법 말고는 없다.
다른 대안이 보이지 않는다. 2009년과 같은 방법으로 하면 비용과 수고가 장난이 아니다.
무엇보다 구례의 정미소들이 작업을 해줄지도 장담할 수 없는 노릇이다.
금년 가을에는 품종이 다른 밀을 뿌리는 방법 말고는 없다.
장기적으로 제분방법 문제는 답이 없는 일이다.










* 사진 by 월인정원

지리산닷컴 K형의 트럭에 20가마니를 실었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밀가루는 600kg 정도이다. 통곡을 제외하면 그렇다.
40kg 스무 가마니를 빻으면 대략 700kg 못되는 밀가루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통곡이 200kg 정도 주문되었고 여러분들이 기부해 주신 양이 100kg정도였다.
운조루가 기부를 약속한 세 가마니를 더하면 대략 총괄 800kg 정도의 총량이 필요하다.
1.2톤 좀 되지 않는 수확량이었지만 도정과 빻는 과정을 거치면 900kg 정도가 가능하다.
그래서 여유분이 100kg 이상 남았지만 주문을 종료했다. 상사마을빵집에서 필요한 양도
있고 배송 실수에도 대비해야 하고 이런 일을 진행하다보면 이래저래 나가는 양이 또
한 가마니 이상은 된다.
쌀도 200kg 이상 주문되었다. 농부로서는 좀 마음 아픈 가격이었지만 이번에 재고를
처리하는 것이 옳을 듯 했다. '3개월 지나면 햅쌀이 나오지 않느냐. 그냥 팔자' 그리 된 일이다.
쌀 역시 70kg 정도 여분이 있었지만 주문을 종료했다. 우리집 역시 운조루쌀을 먹고 있기
때문에 주변 몇몇 집들이 먹을 재고米가 필요했다.
K형과 상사마을 사무장, 부계리 봄이네 광진씨가 가마니를 내리고 있다.
아, 물론 나와 운조루 정수씨도 노가다 중이었다.










* 사진 by 월인정원

사람 좋아보이는 정미소 사장님으로부터 '내일 오라'는, 예상보다 빠른 작업완료
시간을 듣고 정미소를 떠났다. 이동한 인구가 좀 많았다.
구례에서 6명이 악양을 찾았고 봄이네2+1=9명이 점심을 나누었다. 밀가리 팔아 대박난
농부의 지갑을 강제적으로 털어 향어회와 장어구이, 어죽에 가까운 매운탕을 점심으로 나누었다.

이번 일에서 지리산닷컴은 철저하게 운조루 밀을 소개하는 역할로 제한했다.
이는 물론 2009년에 진행해 본 결과, '다시는 해서는 안되는 일' 리스트 영순위에
밀가리장사가 올라있기 때문이다. 일반 농가에서 소량을 이런 방식으로 처리한다면 수매시키는
것 보다는 더 나은 이윤을 남기겠지만 그 밀가루가 저절로 팔리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진행하는 동안 나는 간혹 상황 체크 이외에는 의도적으로 관여하지 않으려는 자세를 유지했다.











7월 27일 화요일. 오전부터 악양으로 전화를 했다. 문제가 발생했다.
결국 정미소 모터 하나를 말아 먹은 모양이다. 밤샘 작업을 하신 모양인데 아침에
모터가 작살났다고 한다. 일단 말없이 기다리는 것이 정답이다.
화요일에 구례로 가지고 와서 포장 작업해서 수요일 오후에 배송하면
택배타이밍으로 최선이었던터라 나 역시 속이 좀 타들어갔다.
오후 6시 즈음에 봄이네 전화를 받았다. 나는 읍내우체국에 있었는데, 지금 오면 된단다.
사무실로 전화했고 다시 K형과 운조루 농부가 하동으로 출발했다.
읍내에서 따로 출발한 내가 부계리에 도착하기 전에 밀가루를 찾은 트럭이 부계리를
빠져나오고 있었다.

"좀 있으라니깐! 사진 한 장 박아야는데."
"모터 작살나고 그라고 있을 분위기 아니라니깐."
"내년에 또 보자고 인사했나?"
"아, 그런 분위기 아니라니깐!"
"그럼 내년에 골치 아픈데..."

해는 서산을 넘었고 19번 국도를 따라 올라왔다.
일단 운조루 사랑채에 밀가루를 던져 놓고 포장은 수요일을 기약할 수밖에.











7월 28일 오전 9시경부터 포장 작업을 시작했다.
운조루 엄니, 농부, 아주머니 두 분이 진행했다. 나는 전자저울만 전해주고 나왔다.
남아 있다보면 이런저런 간섭을 하게 될 것이다. 젊은 시어머니같은 행색이 되는 것이다.
오후에 다시 운조루 누마루를 찾았다. 박스 포장을 하기 전에 간단한 제품설명을 넣어야
할 것 같아서 한 장 출력물을 만들었다. 눈으로 보기에 남은 밀가루를 가늠해보니
과연 오늘 포장 완료하고 배송할 수 있을지 의심스러운 상황이었다.
박스에 넣을 때 나는 비닐이 달랑 한 겹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작년에도 포장작업을 하신 아주머니들이라 알아서 하실 것으로 생각했는데 비닐 한 장이었다.
그것은 명백하게 방심이거나 귀찮다는 마음의 표현이었다. 한 장 포장보다 두 장 포장은
귀찮고 시간도 더 걸린다. 소리가 목구멍까지 나왔는데 안으로 집어넣었다.
배송사고가 날 것이다. 일부 비닐은 터질 것이다. 지리산닷컴 주민들이 대부분인 주문자들은
이런 문제에 대해 심각한 문제제기를 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해는 할 것이나 실망을 할 것이다.
신뢰도에서 작은 금crack이 갈 것이다. 그리고 2011년에도 밀가루를 판매한다면
그때 2010년의 실수에 대한 표현이 될 것이다. 몇 초 동안 이런 예상그림을 생각하고
그냥 아무런 지적도 하지 않았다. 결국 수업료를 지불하게 될 것이다.











먹는 것을 사고 파는 문제다. 바구미 벌레는 용서할 수 있다. 진공포장도 아니고 첨가제도 없는
밀가루에 벌레가 생기지 않는다면 그것이 이상한 일이다. 그러나 후반작업에 속하는,
포장하고 배송하고 주문정보를 확인하는 일을 게을리하는 일은, 칠십 명이 넘는 주문자의
택배용지를 손으로 작성하는 일은 지루하고 귀찮은 일이다. 최종적으로 택배박스에 용지를
부착하는 순간까지 주문정보를 세번 네번 확인하는 일이 번거롭고 괴롭다면 물건을 팔지
말아야 한다. 2009년에는 배송사고가 두 건 있었다. 박스 모퉁이가 파손된 경우와
배송 자체를 하지 않은 한 건이 있었다. 2010년은 이미 표현된 건과 표현하시지 않은 건을
유추하면 10여건은 될 것이라 추정한다.
밀가루가 터진 경우, 내용물이 바뀐 경우, 보내지 않은 경우, 주문 보다 많이 배송한 경우 등.
밀가루가 터지면 내 속도 터질 것이고 농부는 그에 대한 책임을 감수해야 한다.
'다시 보내 주면' 되는 일이기도 하고 그 보다 근원적인 문제점이 나타난 일이기도 하다.
'직거래'는 수매보다 많은 이윤을 보장할 수 있다. 물론 팔린다는 전제에서 그렇다.
보다 많은 이윤은 보다 많은 책임을 요구한다.











4년째 살아보니 농촌은 이런 지점에서 취약하다.
'모든 일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일이' 허술하다.
'시골은 그렇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고 경험했다. 그래서 그것을 하나의 현실로
받아들였느냐? 나는 전혀 그렇지 않다. 시간이 갈 수록 이런 상황 앞에서는 더 화가 난다.
지방자치정부는 '관내 업체들'을 먹여살려야 할 어느 정도의 책임이 있다.
관청과 자주 연관을 맺는 분야는 건설, 광고간판, 인쇄 등등의 일들이다.
로테이션을 시킨다. 500만원 이상의 사업은 입찰을 통해서 진행한다.
공정해 보이지만 사실은 잡음을 제거하기 위한 또 다른 면피행정이기도 하다.
이런 관행 속에서 만들어지는 대부분의 일들은 그 완성도가 '개판'이다.
그리고 이런 관행처럼 되어버린 일처리 능력은 반복되다보니 '그러려니' 상황이 된다.











'저 인간도 개판인데 나도 개판으로 하자.' 악순환이다.
대한민국에서 제일 멋진 것은 언제나 서울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당연한가?
시골에서는 농사 말고는 대충해도 되는가?
농촌 인구의 평균연령을 생각하면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이른바 386세대가 사회의 주도층으로 성장했지만
그들이 청춘기에 주장하고 외쳤던, 비판했던 현상들이 사라졌나?
변화와 발전이 연령의 문제라면 혁명은 얼마나 쉬운 것인가.
비닐 한 장만으로 포장을 처리하고 바로 박스로 담은 일은 포괄적으로는 위에서 주절거린
지역의 인식수준의 결과물이다. 그것은 뼈 아프지만 부인해서는 안되는 사실이다.
생각하지도 못했다면 안일함이고 알면서도 그리했다면 불성실이다.
따라서 오히려 여러분들은 좀 더 솔직하고 준엄하게 지리산닷컴과 농부를 꾸짖고
비판 또는 비난했어야 옳았다. 외형적 화려함이나 세련이 아닌 '마음이 부족한' 일처리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이런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지리산닷컴에서 이후에 무엇을 소개하고 판매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여러분들이 구입한 것은 밀가루라는 외형의 신뢰가 아니었던가.











결국 배송은 수요일 오후가 아닌 목요일 오전에 이루어졌다.
정확하게는 목요일 오후에 구례읍내에서 전국으로 옮겨졌다.
만약 금요일에 들어가지 못한 밀가루는 토요일에 전해졌을 것이다.
물건을 받을 사람이 금요일  밤에 휴가를 떠났다면?
7월 31일은 대한민국이 절정의 휴가 인파로 도시가 한산해지는 시기가 아닌가.

지리산닷컴은 7월 마지막 주와 8월 첫 주를 쉬겠다고 공지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동하는 시기가 오면 지리산 또한 번잡해진다.
이곳 사람들이 손님으로 몸살을 치루는 시즌이 된 것이다.
친구, 가족들, 친구의 소개로 방문하는 사람, 가족의 소개로 방문하는 사람,
소문 듣고 방문하는 사람, 여튼 방문하는 사람. 그들은 365일 중 대부분의
시간을 밥벌이에 집중하는 사람들이고 충분히 쉴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믿을 만한 잠 자리와 만족할 수 있는 먹을 것, 이왕이면 현지사람들의
친절하고 정성을 다한 서비스를 기대한다. 1년에 한번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시기가 되면 나는 위장 휴가를 떠난다.
2주일 동안 지리산편지도 쉬면서 뭐 했느냐? 그냥 일을 했을 뿐이다.
사무실 문 닫고 창문 닫고 에어컨 켜고 일을 하는 것.
그리고 남은 미션이 있었다. 여러분들이 기부해 주신 밀가루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일을 대행하기로 하지 않았는가.
독거노인들의 주소 파악 역시 예정보다 늦어졌다. 8월 첫 주에 완료하려고 했던
계획이 지연되었다. 지난 일요일(8.8)이 말복이었다.
오미동에서의 금년 말복 음식은 지리산닷컴에서 대접했다.
말복이라... 여름이 가나. 미션은 완료하지 못했는데.











8월 9일 월요일 점심 지나서 가가호호 방문에 나섰다.
다른 방법이 없다. 이 역시 택배로 보내는 방법도 있지만 서류에 있는 그대로 노인들이 살고 계신지
확인할 수 없다. 구례에 고아원이나 양로원 등의 시설이 있다면 좀 더 손쉽게 '기부밀가루'를
기부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시설은 없다.
무엇보다 '구체적으로 소용되는' 것을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정확한 전달.
운조루 정수씨 차에 기부양 보다 더 많은 밀가루와 통곡을 담아서 마산면을 돌았다.
24가구를 방문해야 했다. 마을회관을 찾거나, 사람들이 모여 있는 유산각에 차를 세우고
명단의 노인분들을 찾아야 했다. 24가구 중 3가구에 밀가루를 전달하지 못했다.
'서울에 있다'가 한 분,
'그런 사람은 우리마을에 없다'가 한 분,
'그 양반 작년에 돌아가셨다'가 한 분.
나머지 분들은 직접 전달하거나 가까이 사는 할머니에게 전달했거나 이장님을 만나
해당 마을의 독거노인을 확인하고 일괄전달하거나 했다.

오후 2시경부터였다. 대부분의 마을에서 어르신들은 남녀로 나누어진
마을유산각 또는 노인정에 모여계셨다. 특히 할머니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여름 산타클로스 놀이는 솔직히 입에서 단내가 났다. 그리고 느낀 점도,
생각할 지점도 많았다. 사진을 남기지는 않았다. 차마 카메라를 들이대지는 못하겠더라.
떡을 주신 유산각, 닭튀김을 주신 유산각...
이미 돌아가신 분의 마을에서는 밀가루 4kg을 내려놓았다.
돌아가신 분이 주시는 것이라고 생각하시라 말씀드렸다. 이 여름에 간만에 노인정에서
수제비나 한번 끓여 드시라고.
'나도 혼자 사는데!'를 주장하시는 어느 마을 유산각에도 4kg을 과외로 드렸다.
'한 봉다리만 더 주면 안되까?' 말씀하시는 어느 마을 여자노인정에도 4kg을 드렸다.
독거노인 명단에는 없지만 앞을 못 보는 할머니도 있다는 말씀을 믿고 그리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오늘(화요일) 토지면의 24가구를 더 방문해야 한다.
그렇게 해도 여러분들과 운조루 약속분량의 기부밀가루를 완전히 소비하지는 못할 것이다.
몇십kg이 남을 것인데 다른 면으로 확대하기는 분량이 적다.
일단 저온저장고에서 보관을 할 것이고 8월이 가기 전에 남은 분량을 소비할
적절한 단체 또는 이벤트를 준비할 것이다. 여러분들이 주신 분량은 정확하게 소비할 생각이다.
그러나 밀가루 이야기의 일단락을 개인적으로는 오늘 '직접택배'의 시작 이야기 보고로
정리하고 싶었다. 다시 이 시즌을 여러분들께 보고드리는 시간을 지연하면서 계속
끌고 가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결국 이 말씀을 드려야겠다.
논란이 될 수 있는 생각이다.
왜 1+1 기부방식의 밀가루 시즌2를 진행했는가?

어느 유명한 도시의 시장을 지내는 사람의 장인은 작고한 유명한 조각가다.
5~6년 전에 그의 추모사이트 제작을 의뢰받았다. 영구적인 유작展 같은 사이트다.
개인사이트로서는 작업비용도 넉넉했다. 당연히 작업을 수락했다.
고인의 스케치북 등 중요한 자료를 넘겨받았다. 오래된 사진들을 스캔받다가
익숙한 얼굴을 보았다. 평소 나의 생각과 정반대편의 생각에서 정치를 하는 분이었다.
사위라고 했다. 계약금은 받았고 작업은 진행중이었다.
잠시 모니터를 보고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의 기능이 이렇게 소용되는 문제에 대해 생각했다.
모든 밥벌이는 숭고하지 않다. 힘든 문제였다. 그리고 목구멍은 포도청이었다.
사이트는 잘 만들어졌고 주문자들도 만족했다.
그리고 간혹 정신적으로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기능을 하는 사이트가 되었다.
내 노동의 결과는 어떻게 소용되어야 하는가?

좋은 생각으로 정성으로 키워 낸 유기농산물을 보다 더 좋은 조건으로
일괄 처리하는 방법이 있다. 기획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귀농, 귀촌이라는 삶의 전환을 결정하게 만든 사회적 요소의 총합이란게 있을 것이다.
나는 그것이 기존 시스템에 대한 긍정으로 인한 결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기존 사회시스템으로는 나의 삶과 내 아이의 삶이 인간다운 조건을 확보할 수 없다는
판단이 대부분의 귀농, 귀촌 그리고 원론적 유기농운동을 가능하게한 출발점이었다.
나는 가능하다면 하나의 잣대로 모든 현상과 본질을 해석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세상에 대한 '나의 입장'이자 '태도'가 될 것이다. 답답한 인간이 되는 것이다.
하여 나는,
이쁘고 좋은 생각으로 도시를 떠나 땅의 힘을 믿고 농사를 지은 '윤리적 행위'의 결과물을,
가진 자들의 식탁을 꾸미는 일과 돈으로 교환하는 경우의 수를 줄이고 싶었다.
윤리적 소비란 개념이 존재한다면 윤리적 공급이란 개념도 성립할 것이다.
2011년도 밀가리파동은 진행될 것이다. 농부는 파종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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