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 몇몇 대목의 공백과 그 동안 그리고...

마을이장 2010.06.10 00:10 조회 수 : 6653 추천:239





곡우.
달력을 보나마나 4월 20일에 곡우제를 지내니 사진은 그 날이다.
마을사람들은 소리나는 그대로 '고구절' 이라고 한다. 그래서 나도 그냥 '고구'라고 한다.
구례에 자리를 잡고 사는 토박이들은 4월에 봉투가 많이 나간다. 그만큼 행사가 많다는 뜻이다.
2006년에 구례를 내려 온 이후 남악제를 한번도 촬영하지 않았다.
행사의 부분은 촬영을 하기도 했지만 가장 중요한 프로그램인 '남악제'와 '헌공다례'는 촬영하지 않았다.
지리산의 물水과 차茶에 관한 의식이니 가장 오래된 제祭이거나 축제이다.
봄이면 전국 곳곳에서 꽃 축제와 이런저런 축제들이 지천이지만 개인적으로는 남악제라 부르는
이 祭는 이어갈 필요가 있다고 본다. 단, 모든 축제가 팔도음식잔치와 미인대회, 주민가요제를
필수 프로그램으로 끼워 넣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남악제는 그렇게 하지 않고서도 신라시대부터의
고증을 통한 모처럼 '진지한' 축제로 이어간다면 '오히려' 상품성이 있을 것이다.











화엄사 아래에 남악사가 있고 해마다 이곳에서 곡우제를 지낸다.
절기로 보자면 1년 농사의 시작을 알리고 하늘 하잔대로 하겠으니 잘 좀 봐달라는 것이 祭의 본질이다.
향교 어르신들이 부복한 상태에서 절을 올리시고 계시다.
푸른 천막천 때문에 막상 메인스테이지에서의 사진은 건지기 힘들었다.

금년 12월까지 지리산닷컴의 사진으로 구례에 관한 사진집을 만들어야 한다.
느린 여행과 마을 중심의 흥행성 없는, 일종의 구례여행안내서가 될 것이다.
관광이 아닌 여행이라는 표현에 방점을 찍을 예정이다.
그래서 나는 2010년에는 '있어야 할 곳에 있어야' 한다.
제법 우여곡절을 거친 결과 지자체 예산으로 제작해야 하는 관계로 원안은 많이 사라진 기획안이지만
여튼 진행을 하고 있다. 이 사진집에 곡우제의 한 장면은 들어가야 한다는 판단을 했고 그것은 이 곳과 물,
차의 연관 관계와 중요성에 대한 짧은 언급을 예정하고 있다. 학술서는 아니니까.











산에서 곰취가 나온 시절이니 4월 말은 되었을 것이다.
우리집의 일상적인 밥상은 여전히 기본적으로 사진과 같은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곰취무침, 민들레김치, 된장. 여러가지 찬이 차려진 밥상을 대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나
내가 차리는 밥상은 항상 거의 이런 스타일이다.
생각은 항상 실천을 앞지르기 마련인데 봄에 나는 것들을 판매해 보는 일을 금년에도 실천하지 못했다.
성취 목표가 없는 사람의 일상은 항상 눈 앞에 닥친 일들만 보이기 마련이다.
저녁마다 '오늘 뭐 먹지?' 라고 말하지만 매일 저녁 맛 잇는 밥상을 만나니 그 순간이 극락이다.











철쭉과 연산홍이 보이면 꽃 사진의 절정기가 지나갔다는 뜻이다.
개인적으로 철쭉과 연산홍을 거의 찍지 않는다. 뭐랄까, 그 교과서적인 색이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
철쭉이 피면 감잎이 올라오는 것이고 신록 사진에 며칠을 투여해야 한다는 소리다.
우선 순위에서 빠지게 된다. 이틀 연이어 운조루 형님이 '마당으 연산홍이 죽여주게 폈다' 라고
말씀하시니 가보지 않을 도리가 없다. 사진을 찍다가 '일주일에 한 장은 사이트에 올려주겠다'라고 했던
나의 약속이 어느덧 거짓말이 되어 버린 사실을 확인했다.
사진을 찍다가도 예정된 사진집에서 다루어질 운조루 사진은 아무래도 백일홍이 피어 있는
한 여름 장면이 아니겠는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소용되지 않고 발표되지 않을 사진에 대해
내 스스로 애정을 가지기 힘들다.











5월 8일 어버이날이다. 오미동에서 점심상을 마련했다.
사진 분위로 보아서 마을사람들이 패싸움 벌인 뒤 마음을 진정시키고 있는 듯 한 분위기도 풍기지만
그것은 아니고, 식사를 하시기 전에 지난 1년간 마을에서 수고하신 분과 가장 연세가 많으신 어르신에
대한 표창과 금일봉 전달식을 하고 있는 중이다. 하루 전부터 찍사대기령이 내려진 상태였지만 막상
평생을 같이 살아 오신 분들끼리 표창을 하고 금일봉을 전달하려니 쑥스러운신게다.
한참 동안 '받아라!', '못 받는다!' 실랑이가 오갔다. 그 장면이 재미있지만 사진으로 올리면
내가 마을에서 존재하는 대인관계에 약간의 문제가 발생하는 관계로 역시 이 정도 엄숙한 사진으로 정리.
그 동안의 정말 재미 있는 사진들 확 올려버리고 야반도주하는 방안을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잠을 자는 마을인 상사마을에는 '녹차공장' 이라고 부르는 작은 시설물이 있다.
80년대 중반부터 마을에는 집중적으로 녹차밭이 조성되었고 그 당시로서는 제법 쏠쏠하게 돈이
되었던 것이다. 지금 마을청년회의 마흔 왔다갔다 세대들은 그 혜택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몇 년 전부터는 너도 알고 나도 알듯이 녹차 분야는 완전 꽝이다. 수요에 비해 생산량 자체가
워낙에 많은 것도 문제지만 기존의 음료 시장에서 녹차의 점유율을 높이는 문제는 요원하기도 하다.
녹차는 여전히 마시기 번거롭고 뭔가 알아야 제 맛을 알 수 있는 것이라는 대중적인 인식이 깔려 있어
시장 개척은 커녕 몇 년 전의 농약녹차파동의 후유증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오충석. 마흔셋. 총각. '산정제다'를 운영하고 있다
제다의 경험이 오래되지 않아 스스로 공부중이라고 주장해서 나에게 타박을 듣곤한다.
금년에 처음으로 자체 포장제를 제작했다고 이야기해서 보자고 했다. 그리고 나에게 정말 뒤지게 욕을
들어먹었다. '일곱 빛깔 무지개 땡땡이 컬러가 녹차랑 맞다고 생각해?' 그러나 나는 당시에 도저히
오충석의 녹차 패키지를 손 볼 시간적인 여력이 없었다. '그 현란함'을 잠재우는 정도의 의견을 포장공장
디자이너(도대체 디자이너의 기준은 무엇일까...)에게 좀 강하게 주문하고 나는 내 일을 하고 오충석은
오충석의 일을 해야했다. 4월이 되면 우전(곡우 전에 따는 차잎으로 만든 차가 우전차다.)을 준비해야 하고
대략 3개월 정도의 녹차 시즌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 시기에는 오직 茶만 생각해야 한다.
6월 2일 서울하고도 강남 코엑스에서 진행되는 Tea World에 참가한다고 하니 리플릿을 만들어 주기로 했다.
포장제는 손을 볼 여력이 없었지만 뭔가 최소한의 장식은 해서 마을청년을 한양길로 보내야 하지 않겠나.
5월 초 어느 날을 잡아 오충석을 촬영했다.

"티 뭐? 티스테이션? 타이어 페스티벌인가?"











가로 14cm, 세로 20cm의 비교적 작은 리플릿이다.
사진을 가공하고 디자인을 잡다가 그냥 우발적으로 '오충석의 차'라는 글을 내렸다.
공장 이름 '산정제다'는 이상하게 재미가 없었고 그놈에 '공부 중'이라는 오충석의 이야기에
벼락을 내리는 기분도 조금 가미된 거시기였다.

"봐, 명인같아 보이잖아. 이렇게 한다이."
"형님, 나 명인 아닌디..."

오충석의 차 중 금년 황차(반발효차)는 정말 맛이 좋다.
뭐랄까... 맛이 어렵지 않다. 심오하지 않다. 누구나 마셔도 좋다고 평할 만한 맛이다.
본인도 만족스러운 맛인지 금년에는 별로 뒤로 물러서는 자세를 보이지 않았다.
명함과 리플릿의 구색을 위해 메일주소를 하나 만들어야 했다.

"메일 있나?"
"있는디.. 그 거시기메일인디."
"다음? 네이버?"
"네이버."

들어가서 가입여부 확인하니 없다.

"봐, 네이버에 가입한 적 없는데."
"했는디..."
"아 했는데 어떻게 지금 다시 가입이 되나!"
"아님 말고. 괌을 질러샀쏘."

태어나서 한번도 지리산닷컴을 본 적도 없지만 내가 지리산닷컴을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만 알고 있는
오충석의 녹차를 이 자리에서 소개한다.
우전녹차 / 50g 2봉지, 100,000원.
우전황차 / 1박스(100g)에 100,000원.
세작황차 / 1박스(100g)에  50,000원.

선물용으로 충분한 맛과 좀 문제가 있지만 나름대로 완결형의 패키지를 가지고 있다.
주문은 오충석이 또 네이버에서 로그인할 가능성이 낮은 관계로 핸드폰이 좋다.
010-9682-2778 그래도 혹시 sto6811@naver.com
아니면 마을회관으로 주문하셔도 된다. 상사마을회관 061-782-4048

티월드 행사를 끝내고 내려와서 식사를 함께 했다. 나름으로 대박이 터진 모양이다.

"형님, 완전 힛트쳤잖아. 가지고 간거 다 팔았어!"
"그래, 몇 봉 가지고 갔는데?"
"서른 개."
"이런 확! 장사 잘한다. 아니 코엑스에 부스 차리면서 어떻게 백 개도 안가지고 가나?"
"작년에 한나도 못 팔아서..."

녹차 시즌이 끝나면 그는 다시 레미콘트럭을 몰 것이다. 낮 퇴계 밤 퇴계도 아닌 것이.
그나저나 생각해 보면 나 역시 녹차를 단 한번도 돈을 주고 사 먹은 적이 없다.
녹차의 활성화를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나같은 사람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후가 되고 잠이 올 무렵이면 오충석의 작업장으로 내려가서 황차를 마시고 온다.











지방선거를 2주일 정도 남겨 두고 나는 오미동 사무실의 컴퓨터와 의자를 차에 담고 도망을 쳤다.
일의 가짓수는 줄어들지 않는데 그냥 찾아오는 손님과 수시로 찾아 오는 손님, 우연히 찾아 오는 손님 등,
도무지 작업의 집중성이 없었다. 효율 엉망인 상태의 며칠이 이어졌고 결국 내 사무실에서 내가 도망나왔다.
선거라도 끝이 나면 다시 돌아갈 생각으로 집으로 옮겼다.
창문을 열어 두어야 할 날씨지만 그렇지 않아도 산만한 사무실 앞은 선거차량들의 주요 거점이었다.
그 수를 알 수 없는 다종다양한 후보들의 선전트럭들은 항상 사무실 앞에 주차하고 확성기 볼륨을 높였다.
무조건 무조건이야와 땡벌, 오 필승 코리아 등의 노래를 개사한 노래들이 확성기에서 흘러나오면
파블로프의 똥개도 아닌데 자동적으로 내 입에서도 흘러나왔다.

"무조껀 무조껀이야아~ 기호 7번!"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가 바쁘다는 소리를 믿지 않는다. 지리산 자락에서 '노는 놈'으로 인식되어 있다.
하긴 나도 내가 왜 이렇게 항상 일에 몰려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데 다른 사람들 눈에는 오죽하겠는가.
사이트만 보면 좋은 곳 찾아 다니며 놀고, 맛 있는 것만 먹는 인간 아닌가.
방문하면 당연히 하루 종일 놀아 줄 사람으로 지들끼리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 갑자기 연락이 오고 시간 있냐는 질문도 없이, '내일 점심 하지'라고 규정해 오면, 나는 내일
작업과 약속이 있어 잠시 차 한 잔 이상의 시간 이외에는 힘들다고 하면 어떤 이들은 화를 내기도 한다.
화를 내는 일은 나도 쬐끔 소질 있는 분야지만 어쩌겠는가.











오래간만에 집에서 작업을 하니 효율이 높았다.
일단 찾아 오는 사람이 없고(거의 -,.-) 밤 늦게까지 작업을 할 수 있다.
1주일 이상 TV를 켜지 않은 듯 하다. 보통은 저녁 먹고 나면 리모컨 성능 체크하는 것이 밤 일과였다.
문제는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서울 거주 프리랜서형 인간으로 바로 전환되었다는 점이다.
새벽 3시가 넘어서 자는 일이 대부분이었고 이 농번기에 시골에서 오전 10시 넘어서 눈을 켜는 일과였다.
혹시라도 마을 어르신들 중 누구라도 현관문을 열었다면 난리가 났을 것이다.

"자네 많이 아픈가?"

잠자는 마을과 일하는 마을이 같아지면서 종종 회관으로 불려 내려가는 경우가 발생한다.
우리밀체험단인가 뭔가 하는 행사 때문에 마을에 60명 정도의 인원이 숙박을 하게되었고
그에 따른 몇 가지 준비가 있었다. 도착한 저녁에 이른바 '마을빵집' 선수들은 판매용 머핀과 쿠키를
준비했고 몇몇 엄니들의 된장과 고추장 판매가 있었다. 오충석의 차도 쇼케이스 끝자락에서
무료로 차를 제공했다. 장사는 잘 되지 않았다. 일단 그들은 너무 지쳐 있었고 그들 기준으로는
가격이 비싸다는 생각도 하였을 것이다. 하여간에 그렇게 밤이 깊어가고 배식과 허드렛일에 동원되었던
청년회 회원들 몇몇이 여자노인정에서 준비한 막걸리를 계속 '구입해 주는' 놀이를 했다.
오천 원 드리면 페트병에 든 막걸리를 들고 나올 수 있었다.
'아, 그냥 한꺼번에 돈 드리고 다 들고 와!' 라고 했지만 그것보다는 한 병씩 파는 재미에 엄니들이
맛을 들인 모양이다. 그래 그 재미에 보조를 맞추어 드린다고 순서대로 파견되어 '혹시 막걸리 남았습니까?'
놀이를 자정 무렵까지 계속해야 했다. 물론 계속 마셔야 하는 문제점도 있었다.











내 원고 정리에 우선 순위를 두었다. 3일 정도만 집중해도 될 것 같은데 그것이 되지 않는 것이다.
지방선거 홍보물 관련한 일도 하고 있었다. 두 사람의 농민후보와 비례대표 후보까지 해서 세 사람을
위한 뭔가를 만들어야 했다. 전면적으로 만들 수는 없는 것이고 그럴 여력도 없었다. 촬영과 간단한
일감들을 즉시 즉시 처리해야 했다. 어차피 정해진 시간게임이 선거 아닌가.
나는 이런 상황이 전개될 것을 짐작하고 2월부터 '선거는 안한다!'는 원칙을 세워두었지만 그게 그런가.
갑자기 사무실로 들이닥쳐 '내일 명함 나와야는데 지금 사진 좀 찍어주쇼' 하고 들이밀면 대책이 없는 것이다.
선거는 시간이 정해진 일이고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대기 상태로 있다가 요청이 오면
바로 처리하는 쪽으로 다시 원칙을 정했다. 발가락 담그면 전신입수하는 것이 이 바닥이다.
좆도 마음에 들지 않는 여러가지 먼 기억 저편의 감각을 동원해서 정말 찌라시같은 작업들을 진행했다.
그렇게 파일 보내고 며칠 후에 읍내에서 결과물을 보면 내가 보낸 파일의 3할에서 5할은 바뀌어 있는
희한한 꼬락서니의 시각물을 만나고 깜딱깜딱 놀라곤 했지만 뭐 관계있나. 선거에 영혼은 없다.
그런 혼전을 진행했지만 스스로 생각해도 기특하게 집중력을 계속 유지하면서 세 가지 정도 종류의 일들을
완료했다. 책 원고를 이런 아수라장 속에서 정리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하면 된다'는 군인정신으로
어느 새벽 3시 무렵에 출판사 웹하드에 올리는 것으로 한 시름은 날아갔다.
아케이드류 게임을 진행하듯이 계속 난관을 뚫고, 일감을 아작내면서 고지를 향해 나아갔다.
나의 고지는 선명한 형상을 하고 있었다.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됨'이 깃발이다.
그 와중에 사무장네 부부와 연곡분교에서 급식을 먹기 위해 피아골을 찾았던 날의 녹綠음은 인상적이었다.
며칠 바탕화면용으로 활용했다. 그 며칠 동안 촬영은 그것이 모두였고 나들이는 3시간을 넘지 않았는데
이곳을 보는 사람들 중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은 '이장은 매일 논다아~' 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책 원고를 넘기고 나니 잠시 기분이 향긋했다. 대학시험 끝난 수험생의 기분과 제대하고 집으로 향하는
군바리의 기분을 합체한 듯 했다. 남은 인생에 어떤 난관이 닥쳐도 쉽게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 충만삘이
되었지만 역시나 하루 정도 지나자 나의 객관적 현실은 계속 일을 처리해야 하는 냉혹한 상황이었다.
12월에 납품해야 할 구례에 관한 포토에세이 때문에 신록까지는 '찍어야 할 순간'에는 찍어야 했다.
그 그림을 놓치면 1년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신록을 지나 초록이 짙게 물들면서 '그 순간'을
잡아야 하는 압박감은 줄어들었다. 의무방어전 성격의 촬영 횟수가 줄어 든 것이다. 노고단 진달래를
포기했다. 구례 밖으로의 순수한 놀이 산행은 엄두에 둘 수 없었다. 그럴 여유가 있다면 구례를 찍어야 했다.
금년에 놓친 장면들은 지난 4년 동안의 사진들 중에서 골라야 한다. 사찰들 촬영이 유효한 시기였지만
그냥 무시했다. 한달 후에 촬영해도 대세에는 지장이 없는 장면들이다. 어차피 9월까지는 초록이다.
들판 상황을 대부분 놓쳤다. 밀과 모심기 준비 등을 기록하지 못했다.
어느 오후에 다음 날 바탕화면도 없고 해서 며칠 만에 운전해서 광의면 들판으로 나갔다.











저녁밥을 먹다가 그랬는지 여튼 매실이야기가 나와서 1년 전에 정은래 선생이 부탁한 전단지가 생각났다.
매실은 곧 수확이다. 전화를 드렸다. 6월 10일경부터 수확이란다.

"이제 만들어야겠지요?"
"급해요..."

다음 날 늦은 오전. 계산리 매실농원으로 향했다.











3년 전에 처음 뵈었지만 정선생님 매실농원을 찾은 것은 처음이다.
계산리는 감농사로 유명한데 정선생은 매실이다. 특별하게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라 구입한 농원이
매실농원이었던 것이다. 서울에서 '걸프전 때문에 다 말아 먹고' 무작정 하방했다.
농사를 몰라 농약을 하지 않았고 스스로 생각에 이런저런 것이 나무에 좋을 것 없다는 생각에 그리
하다보니 지금 같은 모양이 되었는데 사람들은 그것을 유기농이라고 불렀다. 이천오백 평 정도라고 했다.

"작네요."

매실 이야기보다는 외지껏들의 구례살이에 관한 담화가 주를 이루었다.
만두국을 준비했다고 하시니 버리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만두와 묵으로 점심을 먹었다.











매실나무 10년생인데 사이즈가 작다.
아는 분에게 물어보니 유기농이라도 5년차까지는 비료를 해서 사이즈를 키우는 것이 좋다고 했단다.
곰곰히 생각하다가 그리 하지 않았다. 작다면 작은 그대로, 나무 하잔대로 그냥 키우는 것이 답이다.
보통의 매실농원처럼 가지를 벌어지게 만드느라 무거운 것을 매 단 것이 없어 사진을 찍기에 좋은 농원이었다.
진작에 알았더라면 매화를 여기에서 찍을 걸 그랬다. 2011년 매화꽃 사진은 계산리에서, 불끈! 삼겹살 굽고. -,.-
유곡마을의 구조는 오후에 해가 서쪽으로 기운 다음에 사진이 적절하다. 내려다보면서 역광.
그것이 내가 원하는 빛의 조건이었다. 본격적인 촬영은 아니었고 몇 컷 눌렀다.
그리고 나는 전단지를 인쇄소로 넘긴 지금까지 다시 매실농원을 찾지 못하고 있다. -,.-
역시 현장에 있을 때 결판을 봐야는 것이다. 한량 찍사와 언론사 찍사의 차이점은 그런 것이다.











돌아와서 선거 막바지 작업과 또 뭐 했더라? 여튼 일들을 처리하다가 정은래 선생의 매실전단지는
이런 모양으로 만들어서 인쇄소로 넘겼다. 목요일이나 금요일 즈음에 택배가 도착할 것 같다.
여튼, 금년 매실효소는 정은래 선생의 믿을만한 매실로 담그는 것이 어떨까나.
원하시는 분은 직접 농원을 방문해서 직접 수확하고 그 자리에서 담고 지정 장독에 봉인하고
돌아가시는 방법도 가능하다. 몇 개월 지나 다시 방문해서 자신의 매실효소를 담아 가는 것도
구례행의 빌미도 되고 재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홍순영 형님을 인터뷰하면서 생각한 것은
도시의 소비자들이 생산자와 직접 관계를 맺고 상시적으로 교류하고 신뢰를 쌓아가는 것이
최선이겠다는 것이다.
'매화가 다음 주에 만개할 듯 합니다. 한번 방문하셔서 밀린 이야기나 나누시지요?'
뭐 이런 문자를 날린다는 둥.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면서 삽겹살을 뒤집는다는 둥. 좋지 않은가.
내가 먹을 것을 키우는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는 일상이 꼭 정상은 아니지 않은가?
6월 15일에서 20일 사이에 수확할 황매를 권한다.
*주문정보는 위 이미지를 참고하세요.











선거.
여튼 다음에는 안할꺼다. 진짜 안할꺼다. 명함만 만들어 달라고 해도 절대 안할꺼다.
다음 선거면 내 나이가 쉰이 넘는다. 그때까지 이런 것 들여다보고 있는 것은 너무 하지 않은가.
나에게 일이 몰리는 이유는 간단하다. 돈을 받지 않았다. 달라고도 하지 않았고 얼마냐는 물음도 없었다.
그런데 '선거 때문에 돈 좀 만졌다면서요' 라는 농진반반의 이야기를 두 차례 들었다.
전체 작업량으로 보자면 천만 원 정도 챙겼을 것 같다. 시골 견적이라 하더라도.
군청에서 만드는 소식지 뒷면에 몇 가지 카피성 글을 주고 난 다음에도,
'형님 소식지 만들고 돈 많이 벌었다며?' 라는 진담 농도가 짙은 질문도 들었다.
일로 인한 전쟁을 치루지 않아도 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모든 일에 견적서를 날리는 것이다.
이렇게 티를 내는 이유는 이 좁은 동네에서 잡스러운 여러 소리들에 진지한 얼굴로 답하는 것도 우스운
노릇이고, 그러나 명확하게 알리는 것이 역시 좁은 동네에서 역소문의 효과가 있기에 하는 소리다.
개인이 개인이 아니라 '지리산닷컴이 어떻게 했다더라~'는 오해의 소지가 있는 것이다.
여튼. 삼만 명 축구장을 다 채울 수 없는 인구가 살고 있는 아담한 곳에서는 비밀이란 없다.











6월 2일 선거가 있던 날 저녁에 사무장네 부부에게 생긴 공돈을 탕진하기 위해 곡성으로 갔다.
곡성에서 생긴 돈을 곡성에 반환하는 것은 알흠다운 결말이다.
참게수제비와 참게탕이 장렬하게 전사했고 보성강을 보며 배를 두드렸다. 그리고 빠짐없이,
'우리 매일 이렇게 먹고 살아도 되는걸까?' 라는 말이 나왔지만 이렇게 살지 않을 도리 또한 딱히 없다.

선거 결과는 재미있었다. 구례에서 민주노동당의 정당지지율이 37% 나왔다.
나는 민주노동당 당원이 아니지만 그런 현상이 고무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평소 전라도 땅에서
경상도 남자가 '갱상도 한나라당이나 전라도에서 민주당이나 뭐가 다른데?' 라고 말을 하곤 했지만
시골선거의 판세 전개는 사실 재미있기도 하다. 자체로 한 편의 영화가 성립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37%라는 민노당의 득표력이 영화의 한 장면으로 보이는 것이다. 극적인 드라마가 아니라
시트콤에 가까운 것이다. 군수는 보수, 도의원은 친인척, 군위원은 농민후보 뭐 이런 비논리적이나
지극히 시골의 인관관계에 정확하게 부합하는 선거행태를 다수 목도하면서 참게탕을 비우게 되는 것이다.
하루 종일, 두 달 내내 '나는 어떻게 하겠다'는 단 한 마디도 없이 줄기차게 상대방 욕만하는 선거운동도
나중에는 일기예보나 스포츠뉴스처럼 일상의 한 단면으로 이해되는 신기한 기적도 경험했다.
또 분명한 것은 거의 대부분의 후보와 선거운동원들은 마을에서 신망을 얻지 못하는 사람들로
구성된다는 전국적인 현상도 확인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중에서 골라야 한다.
이 작은 동네에서 스무 명이 넘는 후보를 식별하기란 나 역시 힘들었다.











매실농원을 방문한 날 오후에 내친김에 광의 순영이 형님네까지 달렸다.
매실을 체크하고 싶었지만 상황이 좋지 않았다. 4월 눈雪 때문에 꽃이 얼었었고 매실 작황은 좋지 않았다.
금년부터 시장에 내어 놓을 유기농 매실이었는데 농사가 그렇다.
호밀밭도 보고 싶었다. 두 단지 정도이니 아주 작은 면적이지만 직접 호밀을 보고 싶었다.
흔히 키우는 작물도 아니고 수확하고 난 다음에 한 가마니라도 확보해야 하기에 눈도장도 찍어야 했다.
멀리서도 식별이 되었다. 키가 전부 미국프로농구선수들이다. 2m를 넘어선다.
호밀밭에는 파수꾼이 있어야 되겠더라.

한낮 더위가 30도를 넘어섰다. 이제 외부 온도에 즉각 반응하는 집의 실내온도가 점점 올라간다.
나는 여전히 집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사무실을 떠난 것이 3주일 정도 되는 모양이다.
운조루 형님의 '삼촌 빤스 줄여놨다. 언능 돌아와라'는 전화도 며칠 잠잠하다.
그러나 컴퓨터와 의자를 서서히 챙겨야 할 것이다. 한 마을에만 머무니 그림이 단조롭다. 그러나 몸은 편하다.
단조로움이 싫은 것이 아니라 아직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언제가 그때냐라고 묻는다면 나 역시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지쳐 나가 떨어지는 날이 그날이 아니겠나.
다음 주에는 밀밭을 정리할 것이고 '밀가리장사'로 다시 나서야 한다.
작년에 나는 다짐했었다. 다시는 밀가루를 팔지 않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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