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 정말 오고 싶다면 오지 않겠어요?

마을이장 2010.05.03 01:09 조회 수 : 12283 추천:180





2009년 7월 어느 날. 서울 사는 젊은 부부가 구례를 방문했다.
후배의 문의가 있었다. 지리산 자락에 살고 싶어 하는 친구부부가 있는데 한번 찾아가도 되겠냐고.
지리산닷컴을 보고 간혹 메일로, 전화로 귀촌 관련한 문의를 받지만 원론적인 수준 이상의 답변은
하지 않는다. 나는 귀촌, 귀농에 관해서 고민해 본 사람이 아니다. '그냥 내려온 사람'이라 특별히
도움될 만한 의견이 없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말을 하고 싶지도 않다.
일종의 개인적인 원칙이다.









비가 억수같이 내리는 날이었다. 그 부부는 버스를 타고 내려온다고 했다. 터미널에서 픽업을
해야 한다는 의미이고 예정한 것보다 좀 많은 시간을 붙어 있어야 한다는 상황이기도 했다.
기억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나는 바빴을 것이다. 16개월째 바쁜 상태이나 일 처리 능력은 형편없는
상황이니 그리 짐작한다. 오전에 도착했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차에 태우고 산동으로, 송정리로
가이드를 했다. 내가 사는 마을을 보여주었고 우연히 마을 이장님과 같이 점심을 했을 것이다.
오후에는 사무실로 돌아와서 그 부부의 계획을 들었다. 지리산둘레길, 게스트하우스, 땅 사고 집 짓고...
뭐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 연배와 다닌 직장을 유추해보면 돈이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란 것은 분명했다.
그래서 없는 것들의 정착 방식 중 땅 사고 집 짓고 모든 것을 던지는 방식은 가장 좋지 않은 방법이라고
말해 주었다. 일단 돈을 들이지 않고 1년 정도 살 수 있는 방법이 최선이라고.
그 시간 동안 본인들이 몇 가지 판단을 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말해 주었다. 이를테면 마을 사무장
같은 일이 요즘 시골에는 있다고. 여자는 활달했고 남자는 신중한 스타일로 보였다.









부부 중 남자는 2010년 1월 4일부터 내가 사는 마을의 사무장으로 출근하기 시작했다.
나를 처음 만나고 6개월 후 내가 사는 마을의 사무장이 된, 그리고 이곳 생활 4개월이 된
사무장부부를 인터뷰하기로 했다.
지난 4개월 동안 140일 정도 얼굴을 본 까닭에 인터뷰라는 형식이 좀 우습지만
'인생을 걸거나', '겁나게 심각한' 귀농이나 귀촌이 아닌 경우를 함께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 될 것이기에 인터뷰 요청을 했다.
2010년 4월 27일. 저녁을 먹고 걸어서 3분 정도 거리에 있는 사무장네 집으로 훠이훠이 마실 갔다.
보름 하루 전이었고 달이 유난한 밤이었다.









도시를 떠나려는 사람에게 도시의 친구들은 두 가지 질문을 한다.
- 왜 떠나는데?
- 내려가면 어떻게 먹고살 건데?

시골로 온 외지껏들에게 이곳 사람들은 두 가지 질문을 한다.
- 왜 왔는데?
- 이곳에서 뭐 해서 먹고살 건데?

그러나 대개의 경우 아버지를 죽인 원수를 찾아 복수를 해야만 하는
필연적인 스토리를 가진 인생은 드물다.

나 / 왜 내려왔나?
부부 / 특별히 할 게 없었다.
나 / 회사를 짤린 것인가?
부부 / (강하게 부인하며)아니예욧!
나 / 왜 발끈한 반응을 보이지?
부부 / 우리가 그만두면 안 되는 상황이었지만 그만두고 싶었어요.
나 / 보통 그렇게 주장하지만 당신들이 그만둔 이후에도 회사는 잘 돌아가지 않나?
부부 / 그건 그래요. -,.-
나 / 그 봐, 짤린 거 맞지?
부부 / 아니예욧!









보리출판사에서 10년 가까이 근무한 부부다. 사내 커플이다.
남편 박용석. 38세. 총무, 관리, 인사, 저작권 등의 업무를 담당했다고 한다.
아내 윤은주. 36세. 10년차 경력의 전형적인 편집자였다.
근자에는 어린이잡지 '개똥이네 놀이터'에 매달려 있었다고 한다.

윤 / 지쳤다. 그리고 처음부터 10년만 하고 싶었다. 경영진이 교체되면서 기회가 왔다.
사표 던지고 15일 후에 출국하는 비행기티켓을 끊어 둔 상태였다. 그만두어야 했다.
나 / 그러면 용석씨는?
박 / 따라한 거다. 마누라가 간대잖아!
작은 조직에서 나는 경영진과 직원의 경계선에 위치했다. 실질적으로는 경영진의 입장에 서야했다.
스트레스였다. 능력의 한계를 느꼈다.
나 / 통상 한 명은 벌어야 하지 않나?
윤 / 사표 지점에서 사람들이 놀랐다. 사람들은 박용석씨를 현실적인 스타일의 사람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박 / 나 혼자 돈 벌 수는 없었다. 쟤 혼자 노는 꼴은 못 본다.
나 / 불안하지 않았나?
박 / 둘이 하면 뭘 해도 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윤 / 둘 다 술 좋아하니 술집을 할까라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5분만 생각해도 그건 아니더라.









귀농과 귀촌의 이유에 꼭 포함되는 것 중 하나가 '지쳤다'는 항목이다.
먹고사는 일은 역시 쉽지 않은 일이다. 사냥 아닌가. 짐승은 지금 배가 부르면 만족하지만
인간은 지금 배가 불러도 내일을 걱정하는 스타일의 생명체다. 그것을 '미래에의 준비'라고 하는데,
짐승이 아니기 때문에 하는 행동이라고도 한다.

나 / 두 사람 모두 보리출판사가 첫 직장인가?
윤 / 서양사학을 전공했는데 졸업하고 6개월 후에 입사했다.
나 / 사무장도 사전에 보리출판사를 알았나? 전공이 뭔가?
박 / ... 해양학.
나 / 해양학?
박 / 배 타는 일인 줄 알았다.
나 / -,.- 그동안 무슨 일들을 했나?
박 / 농수산물유통회사에서 일했다.
나 / 해양학과 농수산물유통회사와 출판사는 도대체 어떻게 연결되는 것인가?
박 / 그 농수산물 회사를 같이 다니던 선배가 실질적으로 보리출판사가 관여하던 잡지 '작은책'으로
직장을 옮겼다. 그 잡지를 구독하다가 그렇게 흘러갔는데 지금은 괴산으로 귀농한 상태다.
여튼 그 선배가 '보리‘라는 데서 사람을 뽑는다며 지원해 보라고 했다.
그 선배가 '꼼꼼한 사람이 있다' 고 추천을 한 모양이더라.
나 / 장기적인 직장으로 생각했을 것 같지는 않은데?
박 / 대전을 떠나고 싶었다. 계기가 필요했다.
나 / 그러니까 대전 촌놈이었네?
박 / 시골 아니다. 신작로 옆이 집이었다.









나 / 윤은주씨는 보리출판사를 알고 있었나?
윤 / 학교 앞 인문학서점에서 알바를 하던 시절부터 보리출판사를 알고 있었다.
아는 사람에게서 '자리가 났다. 원서를 내라'는 소리를 들었다. 맞담배질 하면서 면접을 90분 정도 봤다.
박 / 나는 보수적인 사람이다. 여자에 대한 생각도 그랬다.
면접 보는 데 여자 셋이 담배 빡빡 피우면서 질문을 했다. 익숙하지 않았다.
그런 분위기는 나에게 문화적 충격이었다. 국보법 전과자 많은 회사, 보리 다니면서 생각이 많이 변했다.
나 / 보리는 '변산공동체'에 내려가서 정기적인 노가다를 하지 않나? 그런 것이 귀촌에 영향을 주었나?
윤 / 입사하면 1주일 동안 변산공동체에서 연수를 한다. 봄(모심기)과 가을(수확)에도 정기적으로 내려간다.
나 같은 사람은 절대 귀농 못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 뭐랄까 원칙주의적인 분위기가 강하다.
그리고 공동체란 게 쉽지 않아 보였다. 변산공동체 경험은 오히려 귀촌을 망설여지게 만든 요인이기도 했다.
그러나 어떤 형식이건 결국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아무튼 나에게는 맞지 않았다. 나는 너무 날라리라서.
나 / 원래 귀농이나 귀촌을 생각했나?
박 / 4~5년 되었다. 시골에 살고 싶었다기보다 도시를 떠나고 싶었다.
윤 / 회사 그만두고 간 여행에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도시에서 살지 않아도 되겠다는.
박 / ㅋㅋㅋ 점쟁이를 찾아갔는데, 시골과 우리는 맞지 않다고 했다. 그래도 정 살고 싶다면,
'시골 근처에 살아라. 우울하면 차 타고 읍내나 한 번씩 돌아라' 라는 이야기를 했다.
나 / 여튼 도시를 떠나는 문제를 합의했을 것 아닌가.
부부 / 설득하거나 합의한 적 없다. 나는 좋다, 너는 어때? 뭐 나도 괜찮아. 그런 식이었다.
나 / 그게 언제냐?
부부 / 사표 내고 여행 다녀와서. 지리산에서 게스트하우스나 할까? 그런 이야기를 했다.
나 / 여행은 언제, 어디를 다녀왔나?
부부 / 2009년 4월 13일부터 6월 13일까지 2개월. 태국 - 라오스 - 운남성 - 베트남 - 태국으로
돌아오는 코스였다. 중국 운남성 리장에 호도협이란 곳이 있다. 해발 3,000m 넘는 협곡인데
'차마객잔'이란 곳에 머물렀다. 그곳에 머무는 동안 구체적이지 않은 그런 이야기를 했다.
이렇게 살면 좋겠다 뭐 그런.









나 / 왜 지리산인가?
부부 / 뭐 우리나라에 별 다른 산이 있나? 그냥 지리산이 일반적이지 않나?
제주 올레, 지리산둘레길 정도 생각했다. 2008년 실상사 템플스테이 기억도 좋았고,
그래서 돌아와서 지리산둘레길을 좀 걸었다.
나 / 그러면 아주 긴 고민이나 깊은 생각, 이곳 저곳을 둘러 본 것은 아니네?
부부 / 그렇다.
나 / 그러면 구례에 살고 싶었다, 뭐 그런 것은 없었네?
부부 / 그때 만났을 때 당신이 지금처럼 하라고 말하지 않았나? 그래서 그냥 그렇게 한 건데.

종합해보면 내가 몰랐던 사실은, 또는 들었는데 잊어먹고 있었던 사실은, 이 부부는 긴 시간은 아니더라도
다양하고 깊이 있게 새로운 정착지를 탐색하지 않았다. 짧고 쉽게 결행했다. 그것은 장점이기도 하고
단점이기도 한데 사실 딱히 드러나는 단점은 보이지 않는다. 왜냐면 직장 주고 집 주는데 손해 볼 것은
없는 경우다. 그래도 약간 분하다는 생각은 들었다. 너무 쉽잖아.

나 / 그럼 사무장은 용석씨가 한다고 원래 정했던 것인가?
부부 / (동시에) 아뇨.
윤 / '남편이 잘 해낼 거야' 라고 생각했죠.
박 / 그래서 그랬죠. '야! 니가 안 해?'

2009년 12월 어느 날 '녹색농촌체험마을 사무장 채용공고'가 나갔고 12월 24일에 면접이 있었다.
내가 한 일은 '할 의사가 있는지?'를 두어 번 확인한 것과 '군청 사이트에 채용공고 올랐어요' 라는
정보전달 정도였다. 아, 그리고 또 있군. 우리 집으로 전입신고를 시킨 것이다. 바뀐 규정에 의하면
마을사무장은 해당 지자체에 거주하는 사람이어야 했다. 급 전입신고를 한 것이다.
인근 도시에서, 또는 외지에서 지원해서 마을사무장을 맡은 경우들이 있는데, 이게 전국적으로
그렇게 좋은 결과를 얻지는 못했다는 소리다.
거의 100% 마을사람들과 융화되지 못한 것이 원인이다. 물론 서로가 서로의 역할을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한 탓이기도 하다. 회사에서 업무 분담하듯이 '여기까지가 내 일' 뭐 이런 것은 시골 정서상 힘들다.
마을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한글문서 작성, 첨부파일로 메일 보내기, 사이트 게시판에서 댓글 관리 능력
뿐만 아니라 '마음'이나 '태도'를 원한다. 이것은 월급 100만 원짜리 봉사직이란 생각이 필요하다.
원론적인 마을사무장의 주요한 업무는 마을체험프로그램 개발과 운영, 마을사이트 운영과 관리 등이다.









채용공고에서 채용 결정까지 1주일도 걸리지 않았지만 박용석은 구례군 마산면 상사마을 사무장이 되었다.
2010년 1월 4일부터 출근을 해야 했다. '그렇게 하면 되겠네'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막상 순식간에
일이 그렇게 진행되었으니, 무엇보다 서울, 아니 파주 살림집이 정리되지도 않았으니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옷가방 하나 달랑 들고 박용석만 전라도 땅으로 입성했다. 며칠은 우리집이었지만. 주소지니까.

나 / 처음에 혼자 내려왔을 때 기분은?
박 / 깜깜했다. 불을 끄면 눈을 감은 것 같이 정말 깜깜했다. 시골은 정말 깜깜했다.
서먹했고 업무파악도 되어 있지 않았다. 겨울이고.

사무장 업무를 시작하면서 가동을 시작한 사무장의 블로그에서 당시의 심정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을 들고 왔다. 참고적으로 이 부부의 블로그에서 아이디 '사무총장'은 윤은주, '사무장'은 박용석이다.
자신이 개설한 블로그에서 마눌과의 세력 싸움에서 패퇴한 이후 실질적으로 빼앗기고 블로그 기생 중이다.


2010/01/28 12:19
비도 오고 파전에 술 한잔이 생각나는데...
지리산닷컴 이장님은 맛있는 거 먹으러 멀리 가시고
아는 사람도 없고......... 외롭다 T . T
주말부부... 할 게 못된다. -_-;;

물론 나는 전혀 미루어 짐작하지 않았지만 그런 고충도 있었군. 뭐 그래봤자 그게 며칠이나 된다고.
사람이 터전을 옮기는 일이 설마 완전 쉬울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주말부부 생활도 2~3회 정도 하는
듯 했는데 곧이어 윤은주도 간략한 가방을 꾸렸다.

2010/02/19 10:53
1월 한달 동안은 파주 구례를 오르락내리락 지냈다.
하지만 마누라를 심하게 사랑하는 사무장을 더 이상 외롭게 둘 수 없었던 관계로
커다란 가방 두개를 들고 1월29일 구례로 이주한다.
<중략>
물론 겨우 20일 동안에도 진한 커피 한잔이 간절하고 내 입에 딱 맞는 엄마 반찬이 고프고
서로의 안면에 침을 튀어가며 떨어대야 하는 바로 그 수다가 그리울 때가 있었다.









나 / 언제부터 마을에 대해서 감을 잡기 시작했나?
박 / 여자노인정에서 점심을 먹기 시작하면서부터인 것 같다. 어르신들을 알게 되고 마을사람들과
구체적인 접촉을 하기 시작한 계기가 되었다. 일 때문에 여자노인정으로 들어가면 꼭 취해서 나왔다.

2010/02/20 10:08
새해 모두 건강하자고 축배도 들었습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취해서 노인정을 나왔습니다.
밥그릇, 커피잔에 가득 부어주시고 마실 때까지 쳐다보고 계십니다.
이러다 알콜 중독이 되겠습니다.
그래도 항상 반겨주시는 노인정 어르신들이 고맙습니다.
여기만 오면 저보고 '애기'라십니다.
젊어지는 느낌입니다. ^^

윤 / 처음에는 집도 전쟁터 상태고 수리도 되지 않은 상황이라 추워서 힘들었다. 그러나 곧 좋아졌다.
10년 만에 노니까 정말 좋다. 신경쓰던 것들 다 놓아버리니까 정말 살겠다. 심지어 '이래도 되는 건가'라는
생각도 가끔 들지만 뭐 아직은 그냥 좋다.
나 / 살아보니 어떤가? 좋은 점 나쁜 점 뭐 그런.
박 / 불협화음이 많을 줄 몰랐다. 그러나 좀 생활하다보니 그조차 마을의 일상인 듯하다.
그리고 시골에 대해 아는 게 없었으니까 모든 게 새로웠다. 무엇보다 마을분들이 생각보다 쉽게
마음을 열어줬다. 할머니들이 큰힘이다. 아주 작은 일에도 고마워하신다. 읍내 나갈 때 차 한 번
태워드리는 것도 무지하게 고마워하신다.
그리고 인간관계에서 머리를 안 써도 된다. 좋고 싫고가 명확하다. 칭찬과 비난이 직설적이다.
서울에서는 일을 중심으로 놓고 대화에서 산수를 해야 했는데 여기는 그런 것이 없다.
윤 / 사무장은 서울에서 처음에 5~6평 반지하에 살았다.
박 / 햇볕이 한 뼘 지나갔다. 그러다가 돈을 불려서 창문 하나 정도 햇볕이 들어오는 곳으로 옮겼다.
또 지상으로 옮겼는데 창문은 있었지만 서향이라 햇볕을 거의 보지 못했다. 이 마을은 음지를 찾기 힘든 곳이다.
그런 면에서 이곳이 좋다. 여러가지로 좋은 조건이다. 잘 풀려나간다는 생각이다.
나 / 사무장이란 역할이 도움이 되나?
박 / 아 그렇다. 마을사람들과의 관계를 형성하는 데 엄청나게 시간을 단축시켰다.
그리고 직장생활처럼 그렇게 눈치를 살피지 않아도 된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연착륙하는 중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듯하다.
개인적으로 '마을과의 관계에서 이렇게 저렇게...' 라는 조언이나 메뉴얼을 제시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시골에서 산다는 것은 정말 케이스 바이 케이스다. 일반화는 힘들다. 내가 이러했으니
너도 이럴 거야 라는 것은 백전백패다. 사람과의 관계가 가장 중요한 일인데 그것은 상대적이다.
내가 봐도 사무장은 이런 면에서 탁월한 자질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강하게 요청한 것은 '가급이면 1년 임기는 채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중도에 대략 떠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누가 뭐래도 내가 소개해서 마을로 들어 온 케이스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청년회 모임에서 '사무장이 잘못하면 우리는 산이 형을 조지면 되는 것이여!' 라는 소리는 내 입장에서는
꼭 농담으로만 들을 수 없었다. 세상에서 가장 조심스러운 일이 사람을 소개하는 일이다. 그리고 나는
이 부부와 원래 알고 지냈던 것도 아니었다. 인정하긴 싫지만 괜찮은 부부였다.

나 / 요즘 서울 가면 어떤 느낌인가?
윤 / 뭐 파주에 살았으니 많이 다른 느낌은 없다. 파주에서 서울 가면 공기 탁하고 소음공해...
박 / 서울은 직장을 다니는 사람들이 사는 곳? 뭐 그런 느낌이다. 중독성 강한 월급에서 벗어났다, 뭐 그런.
나 / 귀촌에 이르기까지 가장 중요한 결정은 결국...
박 / 사표를 내는 것이었다.
한달짜리 인생이었다. 월급에 맞게 모든 것을 짠다. 전형적인 월급형 인간이었다.
나 / 다시 서울에서 살 수 있겠나?
윤 / 못하지는 않겠죠. 이곳에 투자한 것도 없고. 우린 어디에서건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안 갈 거예요.
나 / 그래도 귀촌이라는 결정은 중요한 장면 아닌가?
박 / 당연하죠.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중요한 마디인 것은 분명하죠.
나 / 부모님의 저항은 심하지 않았나?
박 / 그게 예상보다 심하지 않았어요. 처음에는 직장을 그만두었으니 걱정이셨는데 곧 직장을 구했다,
100만원이지만 도시에서 200만원 이상 효과가 있는 액수다. 뭐 그런 식으로. 최소한 뭐 해서 먹고살 거냐는
질문은 단기적으로 피한 것이니까.
나 / 친구들 반응은?
윤 / 처음에 내려가겠다니까 별 반응이 없었어요.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이야기하니까.
그런데 정말 내려와 버리니까 전부 놀랐어요. 정말 그렇게 할 것이란 생각은 하지 않았던 것이지.
나 / 그런데 왜 내려왔어요?
윤 / 좋은 곳에 가서 살고 싶다. 이기적인 욕망에서 출발한 것이겠죠. 그러지 못할 이유도 없고.
나 / 사무장은 왜 변기를, 아 쏘리... 화덕을 제일 먼저 만들었지?
박 / 도시인의 로망이잖아요. 어디 놀러 가면 숯불 피우고 삼겹살, 버섯, 소시지...
아직 많이 못했다. 여섯 번 구웠나.
나 / 텃밭은?
부부 / 재밌어요.









2010/03/15 14:50
이사 날짜를 잡았다.
파주집은 다음 달에나 이사가 들어온다지만
그때까지는 도저히 못 기다리겠는지라
다음주 토요일(3월 27일)에 하기로  했다.
매화 보러 광양에도 가야 하고
노고단에 쬐끔 남아 있는 눈도 보러 가야 하고
더 늦기 전에 봄숭어도 먹으러 가야 하고
실상사 스님한테 인사도 하러 가야 하고
아직도 못 간 연곡사에도 가야 하는데
변산 감자도 심어야지,
꽃도 심어야지,
허브도 심어야지,
핸디코트 75킬로그램 벽에 발라야지,
던에드워드 페인트 2리터 욕실이랑 화장실에 칠해야지
타일 300장 붙여야지,
장판 30미터 깔아야지,
도배지 10롤, 요건 도배 아저씨가 하겠구나.
오일스테인 한 통 마루에 발라야지, 아니 그전에 마루 벗겨야지
전등 7개, 요건 사무장이 달겠구나.

2010/03/28 23:54
정말 그랬다. 2년 동안 우리는 이 집을 너무나 좋아했다.
짐을 다 싸고 텅 빈 거실과 방을 돌아보았다.
마음 한구석이 '찡' 하고 울렸다.
이제 정말 안녕이구나.

2010년 3월 27일 토요일. 사무장네는 파주에서 상사마을로 이사를 완료했다.
나도 막상 서울 연신내 골방을 떠나올 때는 흔한 표현 그대로 시원섭섭했었다.
약간의 불안과 미지에의 기대감 등이 혼합된 조금 복잡한 감정.









사무장네가 사는 집은 마을에 남은 거의 유일한 빈집이었다. 부모님은 모두 돌아가셨고 자식들은
모두 도시로 나간 빈집. 하지만 매매는 하지 않는 집. 언젠가 고향으로 돌아올지도 모르니까.
여튼 이 집은 집주인들과 마을이장님의 합의하에 '마을에 외지사람이 사무장으로 들어온다면'
그냥 살게 하고 집을 돌보는 조건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빈집수리자금을 지원받는 것이 결정되었고
다시 사람이 살 수 있게 수리를 진행했다. 그 작업으로 2월과 3월이 스쳐 지나간 것이다.
그렇게 마을에 젊은 부부가 들어오게 된 것이다. 인연이고 재수다. 다만, 그것을 획득한 사람들은
그때가 찾아왔을 때 즉시 움직일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었으니 이것은 역시 준비된 필연이다.
그렇게 또 다른 신입생의 시골살이가 시작된 것이다. 짧은 기간이지만 무수히 많은 에피소드들이 있다.
그러나 정말 재미있는 이야기들은 세상 밖으로 발설할 수 없다. 그것은 나 역시 그렇다.
그런 발설은 영화사에 시나리오로 팔아 먹고 마을을 튈 때나 발설 가능하다.

2010/03/21 22:25
**병원 응급실에 근무하는 키 크고 잘생긴 청년 의사 선생님은 어디까지나 환자의 의견을 존중했다.
"수술을 해도 되고, 안 해도 됩니다."
"안 해도 된다고요? 이 정도 상처면 보통 안 꿰매나요?"
"이 정도 상처면 보통은 꿰맵니다. ."
"네? 그럼 꿰매야 하는 거 아닌가요?"
"꿰매면 더 빨리 낫기는 하지요. 그런데 안 꿰매도 시간이 좀 오래 걸려서 그렇지 다 낫습니다."
어쩌라는 거냐. 애매한 대화는 계속 이어졌다.
"그런데 파상풍 주사를 맞아야 할까요?"
"낫이 녹슬어 있었나요?"
"아니요. 녹은 없었어요. 그럼 안 맞아도 되나요?"
"그럼 맞아도 되고 안 맞아도 됩니다."
"아무래도 바깥일을 많이 하게 될 것 같은데, 미리 예방주사를 맞는 게 좋을까요?
예방주사를 안 맞고 녹슨못에 찔린 다음에 주사를 맞아도 효과는 마찬가지인가요?"
"그래도 되고 안 그래도 됩니다."
결국 하면 빨리 낫고 안 하면 더디 낫는다는 수술은 하는 것으로 결정,
맞아도 되고 안 맞아도 된다는 파상풍 주사는 안 맞는 것으로 정리했다.
굳이 나가라는 소리를 안 하길래 수술하는 동안 옆에서 구경을 하고 있는데
세번째 안타를 날리는 미남 의사.
"보호자가 옆에 계시는 것도 좋지만 나가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나 / 재미 있는 이야기 몇 개 해보지.
윤 / 퇴근하고 집에 오면 사무장이 혼자 '히힛' 하고 웃고 그래요.
그러면 저는 말해 봐 말해 봐~ 그러죠.
박 / 마을에 외판원이 와서 여자노인정에서 믹서기를 몇 사람이 샀어요. 그래서 제가
'그런 건 인터넷으로 사면 싸다'고 말씀을 드렸고 할머니들의 믹서기 구매대행을 했지요.
인터넷의 위력을 할머니들이 알게 된 것이지. 며칠 뒤, 읍내 택시 승강장에 마을 할머니들
여섯 분이 택시를 기다리시길래 두 분 정도 태우고 들어가려고 이야기 중인데
그 **댁이 저에게 비밀스러운 요청을 하신 것이지.
- 그... 인터방에서 미국쌀 좀 사다 줘.
- 아유, 미국쌀 사면 안 돼요. 맛도 없다는데.
- 그랴? 음... 그래도 인터방에서 좀 사줘. 떡국할라고 떡국. 떡국은 관계없어.

2010/04/20 01:27
어르신이 말씀하신다.
미소를 지으며 경청한다.
듣는 자세는 목 15도, 등 15도, 무릎 15도를 굽힌 자세로 살짝 웃으며 '아~', '예~'를 이어가며
알아듣는 척한다. 물론 알아듣지 못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되는 일이 많으니 걱정할 것 없다.

사무장의 이런 태도가 긍정적이다.
노인들의 사투리를 알아듣지 못해서 자꾸 '예? 예?'를 반복하면 그 노인분들은 이후에 말씀을 꺼리게 된다.
다른 방식의 언어를 구사하실 수 없기 때문이다. 그냥 알아듣는 척하고 뒤에 정황을 조합해서
해석하고 젊은 사람들에게 확인받는 것이 좋다. 그래서 귀촌메뉴얼 작성이 무의미하다.
핵심은 '인간에 대한 예의'다.









나 / 마을사람들 어떤가?
박 / 처음에는 내가 일하는 마을회관에 거의 아무도 찾아오시지 않았다.
그냥 이장님이 주는 일만 했다. 그러다가 한 사람씩 오기 시작하는데 일단 커피를 대접한다.
그러면 본인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나, 일자무식이여!'로 시작한다. 결국 하신 말씀의 요지는 '날 무시하면 안 된다'는 말이다.
주로 듣는 일이다. 어차피 뭔 목적을 가진 말씀들이 아니니 경청하면 된다.
들어 준 것만으로 그분들은 고맙게 생각한다. 며칠 지나면 집에 된장, 채소, 모종 등을 들고 오신다.
나 / 중요한 대목이다.
사람은 대우받을 때, 인격적으로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 상대방을 새롭게 본다.
특히나 대우받지 못한 인생을 살아 온 사람들은 특히 그렇다. 그 반대일 경우 사람은 거칠어진다.
윤 / 도시에서는 거의 일하면서 만든 인간관계였다. 여우짓도 많이 했다. 감언이설 같은 것.
편집자이다보니 필자들과의 관계에서 종종 그래야할 필요가 있었다. 또는 도시라는 곳 자체가
내 스스로 부각되거나 주목받는 것이 생존에 유리했다.
그런데 시골 마을은 여자가 부각될 필요 없는 환경이다. 그냥 사무장댁으로 모든 것은 정리된다.
지금은 그게 편하고 좋다.
박 / 도시에서는 지식을 배웠다. 일에 필요한 것들. 그래서 어느 순간에 조직에서 더 이상
배울 것이 없거나, 이전에는 나보다 위였던 사람이 그렇지 않게 되어버리기도 했다.
그런데 여기서는 지식이 아닌 다시 살아가는 방식을 배운다. 도시에서는 점점 꼰대가 되어갔는데
여기서는 다시 어려진 상황이다. 장면이 형님에게 버섯 따는 것을 배우거나 점식이 형에게
닭에 대해 물어본다. 경목이 형님에게도 배울 장면이 많다. 그런 것은 지식과는 좀 다른 차원인 것 같다.

그렇다. 이곳에서는 익히고 배우고 싸우는 일들이 단순명료하다. 비방하면 듣고 아니라면 화를 내면 된다.
'이 일의 여파'에 대해서 복잡한 경우의 수를 계산하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바쁘다. 귀촌자들은 특히나
여러 겹의 일들을 진행하기 때문에 나름으로 더 바쁘다.









나 / 금년에 초상이 두 번이었나?
박 / 아... 사람 죽는 걸 보는 게 좋지 않다.
나 / 그러나 이곳에서는 자주 있는 일이다.
나는 두 마을에 걸쳐 있으니 지난 2년간 열다섯 번 정도 문상을 갔다.
박 / 며칠 전까지 같이 이야기 나누던 분들이다. 나에게 뭔가를 요청했던 분들이고.
화순댁은 우리가 집수리 한 것 보고 당신 집 재래식화장실 수리 지원에 대해서 알아봐 달라고 하셨다.
나는 어떻게든 지원금을 받아 화장실을 고칠 수 있게 해드리겠다고 약속했다.
앞의 김** 어르신은 구판장 없어지고 술 때문에 불만이셨는데 언제 술 한잔 받아 드리겠다고 약속했다.
좋아라 하셨다. 그런데 그분 상여를 들었다...
나 / 좀 뭣한 말이지만 익숙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나는 사무장이 상여 드는 것 좀 그렇다.
뭐랄까... 너무 깊이 발을 담그지 마라는. 우리는 외지껏들인데... 뭐 각자 판단하자. 다른 이야기하자.









나 / 다른 힘든 점은 어떤 게 있나?
박 / 긴장감의 종류가 다르다. 그러데 겸손하기만 하면 대략 해결된다. 그리고... 늦잠 문제.
윤 / 지난번에도 마을 할머니들이 사무장한테 새우젓 신청하는 거 확인하러 아침 여덟시에 오셨잖아요.
제가 깨어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지... 정말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문제가 어쩌면 지금 당면한
가장 큰 문제점이다.
박 / 나는 지난번에 벚꽃 출사 나갈 때 새벽 여섯 시에 사람이 그렇게 많을 줄은 몰랐어. ㅋㅋㅋ
나 / 곧 새벽 네 시에 일하러 나가기 시작할 철이지. 순영이 형은 새벽 두세 시 사이에 일어나. ㅎ
윤 / 그리고 주시는 게 너무 많아요. 어떻게 해얄지 모르겠어요.
나 / 지금 자랑질이지?

원래 살던 마을사람들은 서로 주고받는 것이 거의 없다. 생산물이 거의 동일하기도 하고 제 각각의 살림이 있다.
외지에서 들어온 젊은 부부가 어찌 귀엽지 않을 수 있겠는가. 더구나 그들은 이야기를 들어주기도 하는데.
외로움이다. 자식은 멀리 도시에 있고 노인들은 젊은 사람들과의 대화를 즐거워한다. 최근에 나는 불화 아닌
불화하고 있는 마을의 몇몇 노인들과 화해하는 방안에 대해 생각 중이다. 내가 머리를 숙이는 방법 이외는 없다.
따지고 보면 아주 간단한 일이다. 대우해 달란 것이다.

나 / 돈. 그러니까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어때?
윤 / 전 돈 걱정은 안 해요.
박 / 저는 미래에 대해서 생각하는 스타일인데, 한 달짜리 인생을 살았으니까 당연한 것이기도 하고.
요즘은 좀 바뀌었어요.
나 / 사무장 월급 100만원이면 두 사람 충분히 살지 않나?
부부 / 그렇죠. 사실 이전에는 적금이나 보험 같은 것이 우선이잖아요. 지금은 그냥 미래에 대한
투자를 덜하고 살면 된다는 생각이지요. 이전에는 전세 기간 만료되면 집 알아봐야하고 그래서 일하고...
아, 내일 시간 어때요? 집수리 비용 어제 나왔는데, 숭어회 먹어야죠.
나 / 가지 뭐. 그런데 먹는 생각만 해?









이틀 후 점심시간 지나서 하동 갈사포구의 횟집에 전화를 했다. 숭어가 없단다.
그래서 사무장부부에게 문자를 넣었다.

"숭어 없대. 날씨가 그렇대. 깔따구, 도다리, 배도라치 뭐 그렇대. 어쩌까?
걍 가? 아니며 메뉴 변경? 아니면 없던 일로? 선택하시욘."

곧바로 답 문자가 왔다.

"못 먹어도 고!"

며칠 지나 밤마실 가서 그래도 뭐 멋있는 말로 인터뷰를 마무리해얄 것 같아서
마지막이랄 수 있는 의례적인 질문을 던졌다.

나 / 귀농이나 귀촌을 생각하는 사람이 많이 있잖아요.
귀농학교다 뭐다 여튼 오랫 동안 준비하면서도 막상 결행을 못하는 이유가 뭘까?
박 / 돈?
권 / 음... 그건 내가 이전에도 주변에 이야기했었는데,
돈 때문에 오지 못한다면 서울에서는 얼마나 안정적이란 이야기야?
돈돈돈 돈세상이 지긋지긋해서 옮기고 떠나고 싶은 것 아닌가?
그런데 시골에서는 그것을 마련할 방도가 더 불안해서 못온다? 소박한 삶을 지향한다며?
박 / 내 말이...
윤 / 음... 정말 오고 싶다면 오지 않겠어요? 뭐 다른 복잡하고 거창한 이유가 필요하나요?

그렇군. 지금을 박차고 떠날 만큼 오고 싶다면 오는 것이지.
정말 오고 싶어요?









2009년 7월 어느 날. 서울 사는 젊은 부부가 구례를 방문했다.
그 부부는 2010년 5월 현재 우리 마을에 살고 있다.
정신상태가 불량해서 나에겐 좋은 이웃이다.
우리 어머니가 아시면 그렇게 좋아하실 것 같지는 않다.
그런데 이미 내 인생은 내가 결정할 수 있으니 대세에는 지장이 없을 듯하다.






<뱀발>



이건 화덕이 아니고 변기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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