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 / 구례의 닭국

마을이장 2018.08.02 21:35 조회 수 : 1522

 

 

  

 

 

 

 

 

식사 중이나 식사 뒤에 가장 많이 하는 이야기는 먹는 이야기다.

그날도 드물게 나를 싫어하지 않는 공무원 두 사람과 점심을 하고 커피 한 잔 앞에 두고

흰소리들을 나누다가 닭곰탕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간전면 모모한 곳에서 먹은 닭구이와

닭곰탕이 토지면 어디와 산동면 어디 같은 것 보다 나는 좋더라. 맑더라.

- 그거 원조 아닙니다 형님. 우리 큰어머님이 원래 그 동네 닭곰탕 선숩니다.

그러면 그 이전 ***군수가 해장으로 무시로 들락거렸다던?

- 맞습니다.

그거 한 번 먹어 봅시다. 식당은 그만 두셨지만 어째 한 번… 긍깨 내 말은, 단지 먹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구례서 언제부터 맑은 닭곰탕을 했는지, 구례는 닭을 발라내서 숯불에 구워 먹는데

내가 볼 땐 딱히 대표적인 음식이 없는 구례에서 그건 경쟁력이 있다고 보거등요.

그 손맛 사라지기 전에 내가 역사적 사명감으루다가 그 장만 과정을 기록하고 우리 민족으

고유한 음식문화 보전을 위한 력사적 임무를 완수함에 있어… 나 먹는 거 별로 안 좋아해요.

그리된 일이 8월 2일 점심으로 낙점된 것이다.

 

 

 

 

 

구례군 간전면. 내가 가장 적게 방문한 면이다.

동네서는 ‘간전 촌것들’ 이라는 말이 있다. 섬진강 건너에 있다. 그런 면은 문척면과 간전면인데

이전에는 여름이면 섬진강이 다리를 넘어 읍내 학교도 갈 수 없었던 열악한 조건이었다.

집단 심리에는 자신들이 맨 밑바닥이 아니라는 근거를 마련하려는 발심이 있다.

그래서 어떤 이유를 만들어서건 누구건 자신들의 아래로 위치지우고 싶어 하는 것이다.

전남대와 조선대가 '누가 더 명문' 논쟁을 벌이다가 서울 기업에 이력서 내는 것과 같은 결과다.

지방이 아닌 지역이듯, 강남구보다 구례가 더 농사를 잘 안다는 관점이 유효하다.

구례의 대부분 마을은 남향이나 남동향이지만 문척면과 간전면은 대부분 동향으로 집을 짓는다.

지형이 그러하다. 지리산과 섬진강을 팔아서 먹고 사는 동네서 간전면은 백운산 자락으로 깊숙하게

들어가니 해가 짧고 구례의 흔한 ‘그림 같은 풍경’과 이미지가 많이 다른 마을이다.

물론 관점과 취향에 따라 평가는 다르다. 땅값이 동네 위세를 결정하니 ‘간전 촌것들’은

오랜 세월 구례의 변방으로 묵묵하게 살아왔다.

그러나 지금은 2018년이다. 그러나 반전은 여전히 없긴 하다. -,.-

 

 

 

 

 

하루 전날 근자에 사귄 후배를 앞세워 간전면으로 갔다.

초면에 카메라 들이대고 이것저것 묻는 일은 정서적으로 힘든 일이다.

무엇보다 살아보니 구례에서 간전면과 산동면 노인들이 가장 방어적이다.

근현대사를 보면 그 이유는 나온다.

다소곳하나 소란스럽게 나의 행위 목적을 말씀 드리고 그냥 원래 하시던 그대로

이 염천에 불을 피우시면 된다는 말씀을 드렸다. 피붙이 포로로 잡고 경상도 말 하는

빡빡이가 탐탁치는 않으셨을 것이나 막상 어쩌시겠는가. 나는 밀어붙여야 하고.

 

엄니 저는 아침 여섯 시고 일곱 시고 다 됩니다. 언제 올까요?

- 점심이면 보자…

몇 시간이나 걸립니까? 닭 장만하고 삶고 하려면. 두 시간이면 되죠?

- 아녀… 세 시간은 걸리제.

아홉 시까지 올까요?

 

목요일 아침에 포로로 잡힌 후배가 청내 복숭아 농장에 부탁해 놓은 ‘씨알 좋은 복숭’

한 박스를 들고 간전면 역시기록 현장으로 다시 출동했다. 나는 점심 식사가 끝나는 시간까지

이곳에서 붙박이로 사진 찍고 말씀 여쭙고 밥상원정대들은 점심시간에 당도할 것이다.

 

 

 

 

 

이상하게 이런 날은 점심 먹자는 전화가 많다. 모두 거절이다.

“여름이라 밥맛이 없어 단식 중입니다. 다음에 하시죠.”

다무락이 있으니 원래 집터겠거니 생각했는데 아니란다. 밭으로 사용했는데 개고 고양이고 뭐고

들락거려 이후에 담만 둘렀다고 한다. 저 담장 안에 닭장이 있다.

 

 

 

 

 

다무락 안으로 들어서면 전체가 텃밭인데 한켠에 닭장이 있다.

빙그레 웃음이 나왔다. 닭장을 보면 이 집 분들이 어떤 분들인지 견적이 나온다.

닭장 천정으로는 파격적으로 높다. 바닥은 왕겨를 깔아 뽀송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닭장 안에는 에어컨은 아니고 선풍기가 팽팽 돌아가고 있다. 닭들의 상태는 물론

티라노사우러스의 용맹스러운 싱싱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시간에 따라 밖으로 방사하고

시간에 따라 닭장으로 넣는다. 사료만 먹는 닭들이 아니다.

혼자 촬영하고 댁으로 들어와서 물론 닭장에 대해 여쭈었다.

 

나 / 닭장이 유난합니다?

엄니 / 원래 우리 영감이 좀 꼽꼽시롸.

우리 영감 / 죽을 때 죽더라도 살 쩍시는 핀하게 살아야제.

 

동물복지인증 같은 거 필요 없다1. 내 눈으로 확인했다.

동물복지인증 같은 거 필요 없다2. 아들딸며느리사우손자손녀사돈만 먹을 수 있다.

 

 

 

 

 

암탉이다. 미리 장만해 두시려는 것을 하루 전에 말렸다.

닭을 손질하는 과정을 촬영하는 것이 오늘 미션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마트에서 구입하는 요즘 닭들은 내장이 없는 닭들이다. 아시다시피 비아냥이 아닌,

우리가 먹는 닭은 명백한 공장제품이다. 다른 육류보다 닭은 명백하게 공산품이다.

공산품이기에 원하는 부위를 특화시킨 종으로 개량하고 사료를 투입한다.

물론 인간은 ‘다리가 넷이어라’ 닭을 지금이라도 발명할 수 있다.

시골에 살다보니 공산품 아닌 닭을 가끔 먹는 경우가 있다. 나는 처음부터 좋았다.

그러나 손님들 중 일부는 질기다고 선호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살살 녹지 않는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공산품 닭을 닭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나 역시 하림닭과 목우촌닭을 구입하면 첫물은 끓여서 버린다. 내 코는 항생제 냄새를 느낀다.

 

“읍서 산 닭은 몬써.”

 

 

 

 

 

집으로 와서 사진을 일별하면서 고민에 빠졌다. 그리고 아래 사항을 결정했다.

대다수 촬영 분량을 차지했던 닭 해체 과정을 내보내지 않겠다.

나는 실제 전혀 의식하지 않았으나 일부 정서를 가진 분들에게는 다소 불편한 그림일 수

있겠다는 판단이다. 작지만 ‘해체된 고기’를 이장 같은 관점으로 접근한 사진은 다소 잔인해 보일 수 있다.

도시에서도 내 어린 시절에는 재래시장에서 닭 내장까지 탕탕 장만하는 일이 흔했지만

요즘은 피 한 방울 보이지 않는 포장된 닭만 보이기 때문에 그렇다.

다음으로, 오늘 사진과 글에서 요리사 모습과 실명이 보이지 않을 것이다.

실제 엄니 스스로 그런 목적이 전혀 없었고 단지 거절할 수 없는 피붙이 부탁으로 이 염천에

불을 피우는 선의를 보여주신 것이라 나 역시 그 약속을 지키는 것이 옳다.

따라서 댓글에서 구례에 사시는 분들 중 ‘누구 집이네’ 하는 입바른 소리를 할 필요도 없겠다.

 

곱이네요. 같이 넣고 끓입니까?

- 하. 밀가리로 뽀득뽀득 씻슨께 암시랑토 안해요.

귀찮네요.

- 그라녀믄 먹을 수 있간디요.

 

간, 염통, 모래집… 하나하나 분리되고 처리되었다.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칼질이 있었다.

 

엄니 껍질을 다 벗겨요?

- 기름 긁을라믄 빗기야돼요.

 

대부분의 껍질을 부위별로 벗겼다. 그리고 뒤집어 껍질 안쪽 얇은 기름을 칼로 긁어내었다.

구례 닭곰탕이 유난히 맑았던 비결 중 결정적인 대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따라서 나의 상상과 달리, 또는 다른 지역에서 닭칼국수 방식으로 통으로 삶은 후 살을 발라내는

것과 달리 생닭 상태에서 살을 발라내고 남겨진 뼈를 탕탕 조각내는 이유도 설명이 되었다.

 

저는 통으로 삶은 다음에 살을 발라낸다고 생각했어요.

- 그라믄 백숙이고.

 

다음에 뵈면 여쭈어 보아야겠다.

구워 먹기 위해 살을 발라내다보니 남은 뼈로 국을 끓인 것인지,

맑은 국을 위해 살을 발라내고 껍질을 분리한 김에 구워 먹기 시작한 것인지.

물론 어느 누구도 정답을 가지고 있지는 않겠지만.

 

 

 

 

 

두 종류의 칼을 사용했다. 무쇠칼과 스테인리스칼.

 

와, 엄니 그 뼈칼은 몇 년이나 되었어요.

- 첨서부터.

그거 혹시 남원 칼입니까?

- 그라지요. 차에 실고 오요 지금도. 어쩌다가지만. 우리 영감님이 칼을 잘 갈아주신디

  오늘은 야그를 안해논게…

 

서른 무렵에 식당을 시작하셨으니 사십 년 넘은 칼이다. 역시 인근에서 칼은 남원칼이다.

무쇠칼은 관리가 힘들다. 손잡이만 수십 번은 갈았을 것이다. 삼십 년 가까이 식당을 하셨다.

저 칼은 버릴 수 없는 몸의 일부다.

 

 

 

 

 

첨서부터 이 자리에서 식당을 하셨습니까?

- 그라지요. 첨에 여그는 오두막이었어요. 오두막에서 이십 년 하고 집을 새로 지었지요.

  그라고 몇 년인가 더 하다가 얼라들 다 키우고 그만두고…

들어보니 군수님이고 도지사고 여기서 밥을 드셨다고 하데요?

- 그라지요. 언젠가 그때가… 간전서 산태가 나서 마을이 씰려 내려가고 해서 도지사님이

  순시를 왔고 쩌그 방에서 닭국하고 구워서 드시고 하셨지요.

  군수님은 오전 열 시에 갑자기 전화하셔 가꼬 몇 사람이다 하셔가꼬 쪼까 힘들었고.

  그라믄 마 정신없이 닭장만을 해야고. 많은 날은 열 및 마리썩 잡아.

  (3류의 추측성 증언에 의하면 간전 만수동 산사태일 것이라는 전언이다.)

 

면 소재지 앞의 간문초 교장선생님, 면직원들, 조합직원들, 교육청 직원들이 주요 고객들이었다.

당시 구례인구는 전성기를 구가하는 칠팔만 명 시절. 그 정도면 지역 경제가 자체적으로

어찌어찌 억지로 돌아갈 수 있는 인구다.

 

“교장 선생님은 잠은 관사서 자고 삼시세끼는 우리집서 드시고…

  지금은 면직원들도 밥 묵으러 읍에도 가고 해싸터마.”

 

 

 

 

 

닭을 다듬고 야채로 손이 가신다.

 

“여름에는 박을 넣고 닭국을 끼리는데 시방 박이 없어서 오늘은 무를…”

 

하루 전에도 말씀하셨다. 그래서 읍내 마트서 박을 하나 사다드릴까 여쭈니 싫으시단다.

당신이 키운 박이 아니면 아닌 것이다. 아쉽다. 내 평생에 박 속을 넣은 닭곰탕을 언제 먹겠는가.

살짝 상상을 해보니 그게 이 계절에 가장 정답인 것 같다. 오늘은 무다.

문수골 정도에서 겨울에 꿩탕이나 산비둘기탕 같은 것을 먹을 때도 무를 넣었는데

그 역시 여름이었다면 이전에는 박을 넣었다고 한다.

 

날 더운데 요즘 어르신하고 뭐 해서 드세요?

- 우리는 기양 된장도 찌지고 호박, 까지너물도 하고. 이가 안 좋으신게.

  늙어보믄 아픈데만 생게.

 

 

 

 

 

활수(滑手)하다. [형용사] 무엇이든지 아끼지 않고 쓰는 솜씨가 시원스럽다.

 

엄니는 야채건 마늘이건 앞에서의 닭장만이건 손놀림이 거침없고 손바닥을 활짝 열고 집는다.

이른바 ‘손이 크다’의 전형적인 자세를 바로 느낄 수 있었다. 마늘 찧으니 재료 장만 끝물인 모양이다.

 

원래 구롓분이셔요? 엄니.

- 순천서.

하이고 순천서 깡촌으로 오셨네요.

- 엄니 친구가 중신을 서서…

첫 고로쇠 나오믄 막걸리 담그신다고 들었습니다. 술은 누구에게…

- 친정 엄니한테 배웠지요. 고로쇠 술은 구례 와서 해 본 거이고.

요즘도 술 담으세요?

- 하이고…

 

고로쇠 막걸리 같은 것이나 박 속 넣은 닭곰탕 같은 것은 지자체에서 매뉴얼을 데이터화 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지금 대단한 일 보다 나중에 남을 일은 그런 것인데.

구례군의 경쟁력은 반도체 사업이나 큰 건물 짓기 같은 것은 아닐 것 같은데.

 

 

 

 

 

사진 찍는 중에 쉼 없이 질문을 던졌기에 엄니의 살아 온

이력서는 노트 4페이지로 채워졌으나 오늘 그 이야기는 하지 않을란다.

10시 10분이나 되어서 준비는 끝이 났다. 90분 정도 끓이실 모양이라

나는 오래간만에 간전면 용지동까지 들어갔다가 사진 몇 찍고 한 시간 후에나 다시

역사기록 현장에 오기로 했다.

용지동 계곡에는 평일임에도 가족단위 피서객들이 간간히 보였다. 휘 둘러보고 그냥 내려섰다.

효곡 다리에 차를 세우고 효곡초등학교가 사라지고 새롭게 생긴 ‘목재체험관’인가 뭔가 하는

건물을 바라보고 셔터를 한 번 눌렀다. 목재로 지었네. 하드웨어가 문제랴.

내가 돈 쓰는 결정권자라면…

 

 

 

 

 

돈사(豚舍)로 인한 현수막이 많이 붙어 있었다.

선전효과로 보자면 간전면 문제를 간전면에 가장 많이 선전하는 방식은 비효율적이다.

이러나저러나 현수막으로 봐서는 민과 민의 갈등으로 보인다. 회사 단위로 진입한 것이

아니라면 해결하기 골치 아픈 케이스로 보인다. 내막을 모르니 의견은 불가능하고 간전면의

축사와 돈사 문제는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지역에서 구역을 정한 기획축산 방식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해결난망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어차피 그리 될 것이다. 인재로 인한 환경 재앙은

더욱 빈번할 것이고 필연적이기에 산개한 소규모 농축산은 붕괴할 수밖에 없다.

간전에서 축사와 돈사가 치명적 단점이 아닌 강점으로 변모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동물복지인증 수준의 개편과 수익이다. 홍수 현장 순시 나온 도지사 이야기를 들어서

그런 것인지 오늘 나으 멘트가 좀 거시기하다.

 

 

 

 

 

수내마을 입구 푸조나무 군락지에 차를 세웠다. 좋아하는 곳이다.

그러나 나무의 기운이 많이 쎈 편이라 뒷골 땡기는 장소이기도 하다. 서늘하다고 표현하는.

개팽나무라고도 부르는 이 나무는 정자 있는 곳에 많이 심어진 듯하다.

그러고 보면 이제 참 돌아다니지 않는 편이다. 이전에는 일 년에 몇 번이고 이 나무 아래로

와서 손님들과 이야기도 하고 그랬는데. 사실 나는 간전에 터 잡는 구상을 몇 번 했다.

한갓지다. 찾는 이가 드물다. 읍내까지 이동 거리가 좀 멀지만 길은 간명하다. 비교적 싸다.

보자 몇 시고…

 

 

 

 

 

11시 30분이나 되어쓰까? 엄니는 기름을 계속 걷어내고 계셨다.

고깃국이 맑으려면 여러 번 손길을 필요로 한다. 무를 투하하신 것을 보니 완성이 10분 남았다.

밥상원정대 3인은 정오 전에 도착하기로 했다. 이왕 엄니가 힘들게 땀 흘려 차린 밥상,

여럿이 맛나게 먹는 것이 가장 적합한 인사일 것이다.

 

 

 

 

 

김치가 아니라 겉절이라 하셨다. 모든 찬을 담고 깨소금을 손으로 붙이셨다.

오랜 식당의 경험 때문일까? 엄니는 차린 찬이 없어 쪼까 거시기 하다고 연신 소리하셨지만

막 버무린 겉절이 하나에 뜨거운 닭곰탕이면 끝난 것 아닌가.

 

 

 

 

 

토란대 무치고 고사리 무치셨다.

배추 겉절이 이미 보았고 열무도 담았고 파김치도 장만하셨다. 닭고기에 파는 궁합 아닌가.

고추 밀가루 버무려 쪄서 내셨고 청양고추 붉은 놈 파란 놈 쫑쫑 썰어 국에 얹어 먹게 준비하셨다.

일행들이 당도했다. 포로로 잡힌 후배가 밥상을 옮기고 황송하게 시간 전부터 에어컨까지

가동을 하셨다. 몇 장의 사진을 찍었다. 카페 디스플레이 같은 밥상이 아니라 필요만으로

가득한 밥상을 마주했다. 젊은 사람들(?) 불편하다고 어르신들은 자리를 피하신다.

이게 아닌데… 그러나 포도청에서 호통 소리가 들리고.

 

 

 

 

 

매운 고추 약간 올리고 국물 한 술 입으로 먼저 모신다.

먹방에서의 요란한 리액션은 우리끼리 필요 없다. 나를 제외하고 모두 구례 출신이다.

자연스레 어린 시절 제 각자의 집에서 닭곰탕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다.

 

“아부지는 닭국 끓이는 날은 가슴살 몇 점 따로 회로 드시고 했제.”

 

닭국. 물었다.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닭곰탕이 아니라 ‘닭국’이라고 표현하는데

그게 원래 이름이냐.

 

“닭 넣고 끼린 국 맞자녀.”

 

그래서 오늘부터 나도 이 국을 닭국이라 부르기로 했다. 이것은 ‘구례의 닭국’이다.

이후 3년 이내에 대한민국 사람들이 앞 다투어 찾아와서 먹을 ‘닭국’. 구례하면 닭국.

 

조용하고 차분한 맛이다. 간은 소금인데 슴슴하게 엄니가 맞춘 간에 더하지 않았다.

이제까지 먹었던 닭곰탕, 내가 끓인 닭곰탕과는 다르다. 확연하게 탕이 아닌 국이다.

재료에서 장만까지 한 단계 차이가 난다. 그 한 단계는 어쩌면 별 것 아닌 것일 수도 있으나

누군가에게는 평생 넘을 수 없는 한 단계일 수도 있다.

즉각적이지 않으나 시간이 지나면 은근히 생각날 깊은 맛.

이 여름, 구례의 맑은 닭국을 권한다.

 

 

 

 

 

“뭣이 중헌디”

 

귀한 음식은 추억을 소환하고 밥상을 의미 있게 만든다.

염천에 엄니를 힘들게 만들었다. 그러나 엄니도 이대로 은퇴할 것이 아니라

세상의 소환에 약간은 긴장하시는 것도 건강에 아주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웃음 가득한 밥상에서 일어섰다. 각자의 일터로 가자.

 

포로 / 우리 큰엄니 자연산 미꾸라지로 추어탕 기가 막힌데…”

큰엄니 / 그거 할라믄 **이가 잡아라이.

나 / 엄니 하실라고요? 여보세요. 엄니 어디 가세요 대답을 하셔야죠.

  이거 오늘 것도 무효예요. 박이 안들어갔잖아욧! 엄니 가을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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