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5일 금요일. 하동 악양 대축리 축지 방앗간.
홍순영 형님 찰수수를 빻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쌀을 한창 수확하는 시기라 찰수수를
밀어 넣기 쉽지 않아서 악양까지 내려왔다. 햇살이 좋았다.
지나친 적은 있지만 발 딛긴 처음인 마을인데 내려서니 기분이 좋아지는 마을 표정이었다.











악양의 상추쌈 출판사로부터 소개받고 주소를 받았지만 설명만으로 쉽게 찾아 들어갔다.
방앗간은 척 보면 방앗간이다. 축지 방앗간은 당당하게 ‘내가 마을의 중심이다’는 표현을
자연스럽고 자랑스럽게 하고 있었다. 방앗간을 구경하는 일은 언제나 즐겁다.
순영이 형 트럭이 보였다.











오우! 이전에 소개받았던 부계리 방앗간 보다 훨씬 넓고 높다.
자고로 방앗간은 천정이 높아야 한다. 오미리 옆으로 하죽, 내죽마을 안에 방앗간도
오래 되어서 사진이 제법 되지만 양명한 느낌은 아닌데 축지 방앗간은 양명하다.
내용적으로는 정미소에 역할이 강하다. 하동도 다르지 않아 같은 시절의 일들을 하고 있다.
소개 받을 때 2014년 밀가루를 빻을 곳으로 예정했기에 점검 성격도 있었다.
이제 진주 금곡정미소와 거래하기도 힘들고(내 마음이) 구례의 소형제분소는 금년으로
문을 닫는다. 포장해서 나와서 아주 편했었는데… 여기서 밀가루를 가공한다면 꼼짝없이
사람이 손으로 담아야 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축지 방앗간은 아름답다.
방앗간 하나를 사용할 수 있다면 뭔가 많은 일들이 가능할 것이다.
방앗간도 하고 공연도 하고 뭣도 하고 다양한 이벤트가 가능하다.
방앗간은 자체로 인테리어가 필요 없는 산업혁명적 분위기의, 근대적 아우라의 표상이다.











순영이 형은 새벽 5시 30분에 구례에서 출발했다.
원래 새벽 4시 전에 일어나는 분이라 축지 방앗간에서 점심 전에 오라는 말을
전했더니 ‘새복에 가도 된가?’ 라고 물어왔다.
나는 9시 넘어서 도착했다. 그 며칠 동안 잠이 부족했고, 원래 잠이 많고,
하루 전에 뱀사골을 다녀 온 다음이라 더더욱 늦잠을 자고 싶었다.
그러나 순영이 형은 심심했을 것이다. 8시 넘어서 전화가 왔고
‘이제 (수수가)들어가요’ 라는 소리를 들었다. 오라는 소리다. 차로 30분 거리다.











테스트 겸해서 10가마니 가지고 가기로 했었는데 그냥 16가마니 모두 들고 내려왔다.

“한 번에 해 삐리제. 길도 먼데 머하러 자꾸 와싸.”

찰수수다. 시험재배한 ‘동안메’ 라는 매수수는 모두 수매를 시켰고 찰수수는 형이 팔 것이다.
팔려면 빻아야 한다. 계속 수수 가격은 좋았다. 검색해 보면 1kg 일만오천 원은 본다.
쌀 4배다. 최근에 잡곡이나 통곡이 각광받는 추세다. 2014년에도 형은 수수를 심을 것이고
다른 잡곡으로도 생각이 있는 듯했다.











빻는 것이 쉽지 않다. 더 말려야 한다는 것이 방아실 주인 어르신의 말씀이다.
그러나 햇볕에 두 번 말리고 건조기에 돌려도 더 이상 마르지 않는다는 것이 순영이 형 주장이다.
여튼 수분이 많으니 정미기는 자주 막히고 알곡도 손실률이 높다. 더 깎인다는 말이다.
더 깎이니 더 막히는 것이고. 방앗간 어르신의 타박이 은근하고 순영이 형은 계속 한 귀로 흘린다.











순영이 형은 열일곱 살부터 마을 정미소를 직접 운영했던 사람이다.

"정미소 딱 2년 하고 논을 두 마지기 샀습니다. 제 나이 열아홉에 처음으로 땅을 샀지요.”

그와의 첫 인터뷰 때에 이 말을 듣는 순간 이 사람에게 빠져들었을 것이다.

“저 영감이 징글징글하다네. 당신 나이가 시방 팔십인데 이라고 몸쌀나게 일 한다고.”











지금까지 그가 집어 든 가마니 수는 얼마나 될까.
옛날 쌀가마니는 80kg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40kg이다.
내가 무조건 피해 다니는 일은 40kg 쌀가마니를 운반하는 일이다.
그런데 80kg을 어떻게 옮긴다는 것인지. 혼자서.
나는 한 번은 40kg를 똥을 쌀 듯이 들 수 있지만 몇 십 가마니를 옮기는 일은 사절이다.
이전에 오미동에서 두어 번 그렇게 가마니를 옮겨 준 날은 삭신이 내려앉는다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홍순영이 또 가마니를 든다. 평생 그러했듯이.











뒤에 알았는데 저 찰수수 가마니는 40kg이 아닌 50k이었다.
정미소 어르신은 연신 ‘축축해서 더 못 한다’고 손사래를 쳤다.

“어쩌실래요?”
“뭘 어째, 왔슨께 다 빻아서 가야제.”

손사래를 치는 사람은 상대방의 눈을 피했고 조르는 사람은 상대방의 눈을 찾았다.
결국 다 빻아갈 것이다. 방앗간 영감님도 그 사실을 알고 있다.











시간이 제법 걸렸다. 기계는 자주 막혔고 헛돌았고 청소를 반복했고 이 과정이 반복되었다.
방앗간으로 들어서는 사람들 마다 수수를 보고 입을 댄다.
남쪽 농부들도 수수를 오래간만에 보는 것이다. 구례에서 30분 하동 악양.
경상도 질문과 전라도 대답이 재미나게 이어지는 광경을 구경했다.
나는 2개국어에 유창한 사람이라 관전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었다.

노인에게 여쭈었다.

“어르신 이 방앗간이 얼마나 오래 되었습니까?”
“… 오래 되었어…”
“네…”

시골에서 흔히 경험하는 답변이지만 역시 맥 빠지는 일이다.











“수수를 얼마나 짓길래?”
“삼천 평 정도 했다지요. 아마도.”
“저 사람이 농사를 많이 짓나?”
“예, 구례서 쌀만 사만 평정도 짓습니다.”
“하이고 대농이네… 수수 가격이 요즘?”
“키로에 만오천 원 정도로 소매하던데요.”
“만오천 원? 금이네.”

몇 초 침묵 후,

“한 육십 년 된 모양이네.”
“예?”
“방아실 말이다. 한 육십 년 되었다고.”

계속 기억을 더듬으신 모양이다.











먼저 길을 나섰다. 모두 빻으려면 한 시간은 더 기다려야 할 것 같아서.
나서기 전에 방앗간을 한 번 더 둘러보았다. 내년 6월에 보자.











최근에 방송을 타면서 아로니아와 뭐와 수수가 회춘 식재료니 뭐니 하는데
그런 것은 모르겠다. 그냥 밥에 섞어 먹으면 맛있다. 구수하고. 몇 시간 먼저 불려야 한다.
볶아서 보리차처럼 마셔도 좋다. 나도 금년에는 백 년 만에 수수 섞은 밥을 먹어 볼 것이다.
펀드 투자자 여러분들께는 1kg씩 보내드릴 것이다.
200kg 정도 더 있다. 판매를 한다. 주문은 홍순영의 사이트로 직접 가셔서 하시면 된다.
검색해 보시면 아시겠지만 비교적 싸게 내어 놓은 것이다.
물론 홍순영 표 수수라 무농약이다.

 

 

수수완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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