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1-1 / 그 사람의 마지막 감

마을이장 2013.11.01 15:45 조회 수 : 6332







2013년 10월 29일. 무얼까? 집에서 점심 먹고 12시 30분 즈음에 길을 나섰다.
목적지는 구례군 계산리 독자마을 꼭대기 <조리봉 농장>. 지난 7년 동안 이곳을 자주
찾지는 않았다. 어차피 구례 안이라 멀지는 않지만 길이 가파르고 좁다.
‘마음먹어야’ 한 번 가는 그런 길의 표정이 있다.











지난 10월 20일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김광주 선생의 농장으로 향하는 길이다.
내가 이 농장을 처음 찾은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처음 구례로 내려와서 이곳저곳 차로
들쑤시고 다니던 시절에 무작정 길이 나 있는 곳이면 끝까지 오르곤 했다. 그때 독자마을
꼭대기에 올랐고 차를 돌리기 위해 어느 농장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가을이었다.
오르는 길에 대봉이 쏟아지고 있었고 사방을 둘러봐도 전부 감이었다. 그때는 내가 서 있는
곳이 읍인지 면인지,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하지 못할 때였던 터라 약간 신기한 눈으로 주변을 살폈다.











그리고 독자마을에서 매실농사 짓는 정은래 선생을 알게 되고 그 농장을 방문하고 보니
2년 전 즈음에 내가 무작정 올랐던 그 길이었다. 2009년이었나? KBS 뭔 다큐멘터리 팀에서
‘감밭 풍경’ 헌팅을 원하길래 이 농장을 소개한 적이 있다. 그러나 당시에는 구례에서 촬영
아이템이 넘쳐서 촬영은 불발되었었다. 미리 통보를 드렸기에 촬영 자체가 취소된 것은
나로서는 약간 어색한 장면이었다. 농장 안으로 들어서자 감이 쏟아진다.











처음 이 곳을 찾았을 때에 은행나무가 노랗게 물들어 있었다.
다른 곳에 비해서 은행나무가 유난히 많았다. 은행나무를 보면 ‘화석으로서의 나무’가 생각난다.
그것은 곤충 중에서 매미를 보는 듯 한 느낌이랄까. 길이 가파르다.











완성된 농장을 보는 일은 즐겁지만 단지 ‘하나의 산’이었던 시절부터 이렇게 오기까지
사람의 일을 생각하면 당연히 이것은 하나의 풍경으로 다가서지 않는다.
서울에서 시골로 이사를 온 이후 풍경을 바라보는 내 관점의 변화 중 하나일 것이다.
입구에 있는 집 앞에서 사람의 기척이 들리지 않아 전화를 했다.

“감 따세요? 아무도 안 보이네요?”
“윗집에 있습니다. 지금 나가겠습니다.”

김광주 씨의 처남 박기주 씨와 연락을 주고 받아서 이곳까지 오게 되었다.











다소 무거울 수밖에 없는 분위기에서 인사를 나누었다.
집으로 들어서기 전에 정은래 선생께 문자를 날렸다.
잠시 후에 아래 농장에서 정 선생께서 올라오셨다. 이 꼭대기에서 서로 유일한 이웃이었다.

“오늘 첨으로 조금 따 봤네요.”

감이 나왔다. 단단해 보였다. 하루 전에도 나는 마흔 박스의 감을 만지고 있었다.
선수들 감은 이제 수확을 시작할 것이다. 일종의 리허설처럼 오전에 감을 따신 모양이다.
사모님과 동생인 박기주 선생, 언니와 형부가 함께 계셨다. 수확도 수확이지만 갑작스러운
일을 당한 피붙이의 안녕을 돌보기 위해서라는 것은 뻔한 노릇이다.

“감 드셔요.”

한 입 감을 베어 무는데 맛이 아닌 사람이 생각났다.
농작물은 내가 이곳에서 경험해 본 바로는 그것을 키운 농부와 다르지 않았다.
농부 김광주를 내 안으로 모신다.











시골은 조문이 잦고 나는 항상 영정사진을 본다.
김광주 선생님의 영정사진도 이곳에서 흔히 그러하듯 작은 것을 많이 확대한 흔적이 역력하다.
어쩌면 당연하기도 하다. 영정사진을 준비해야 할 연세가 아니었다.
불과 예순이었다. 지금, 그리 가실 일이 아니다.

“왜 그 안에 계세요?”











탑푸루트 십여 분 이상을 알고 그분들의 모임에도 종종 기별 받고 합석하곤 했지만
사실 김광주 선생님은 나와 편안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다른 분들에게는 내가 스스럼없이
‘형님!’ 하고 호칭을 했지만 그에게는 ‘선생님’ 이라고 호칭을 했다. 나는 ‘선생님’ 이라는
호칭을 선호한다. 내가 알고 있는 가장 높은 존칭이다. 처음 만나는 이곳의 농부들에게도
나는 ‘선생님’ 이라고 부르고 이후에 형님이라 부른다. 몇 차례 만나도록 김광주 선생은
나에게 여전히 ‘선생님’이었다. 나의 눈에 그는 농부가 아니었다. 깔끔했고 세련되었었다.
이를테면 나와 비슷한 ‘꽈’로 보였지 시골사람 분위기는 아니었다.











“김광주 씨가 은행나무에 미쳐가꼬…”

어떻게 구례로 오시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여쭈었더니 엉뚱하게 은행나무 이야기가 나왔다.
원래 전남 영광 분이시다.

“아무 연고도 없는 이 골짜기에… 무등일보에 난 은행나무 광고를 보고 덜컥…
그때는 은행이 돈이 되었거든요. 은행 팔아 돈 벌어 가꼬 마누라 편안하게 살게
해 주겠다고. 하이고.”

금년에는 단풍이 아무래도 며칠 늦다. 감도 며칠 늦다. 그랬다. 이 농장 주변으로
은행나무의 그 빛나는 노란색은 장했다. 오늘은 좀 이르네.











17년 전에 영광에서 구례로 옮겨왔다. 김광주 씨는 영광에서 운수업을 했다고 한다.
사모님 표현을 빌리자면, ‘먹으러 돌아다닌 사람’이다. 그는.
짐작하건데 읍내에 사업을 펼쳐 놓고 일은 사모님과 직원들이 주로 했던 모양이다.
그리고 친구 좋아하는 그 양반의 취향 그대로 일상을 보낸 모양이다. 왜, 그 있지 않나.
비교적 신간 편한 남자들이 몰려다니는 풍경.

“기사하고 마눌에게 맡겨 놓고 날마다 먹으러 다녔어요.”

그대로 살았다면 그는 아마도 주변에는 좋은 사람이고 마누라가 보면 한 번씩 열 받는
한량 스타일로 살았을지도 모르겠다.











한갓질 뻔했던 그의 인생은 뜻밖에 <영광원자력발전소>를 만나게 된다.

“그 사람 별명이 엠비씨였어요.”

사람 사귀기 좋아하고 많은 사람들을 알고 있었던 그는 <원자력발전소반대대책위원회>에서
주도적으로 활동했다. 짧은 싸움이 아니다. 길고 길고 기인 싸움이고 무수한 말의 반복과
번복 속에서 다른 아무런 일도 할 수 없는 지경으로 내 모는 것이 그런 싸움이다.
그가 왜 연고 없는 구례로 옮겨 왔는지 말미를 잡을 수 있었다.

“그런 일을 겪고 나면 인간관계가 지긋지긋해지잖아요?”
“거의 그것 때문에 옮겼다고 봐야죠.”

처남 기주 씨가 확인을 해주었다.











“농장 면적이?”
“칠천 평 정돕니다. 단감 80%, 대봉 20%.”

김광주는 ‘탑푸루트’다. 농촌진흥청에서 추진하는 탑푸루트 프로젝트에 의해 생산된
사과, 배, 포도, 감귤, 단감을 크기, 당도, 색도, 안전성 등 최고품질 기준에 도달한
과실을 경작하는 농부를 뜻한다. 한 마디로 감 농사 잘 짓는, 최상품의 감을 키우고
판매하는 농부에게만 부여하는 라이센스다.











아침에 수확한 김광주의 감을 들어본다. 단지 감 하나인데 무겁다.
이제 나는 이런 감이 익숙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이런 감을 보면 타지 사람들은 놀란다.
탑푸르트는 감 하나의 무게가 250g 이상, 컬러 4도 이상, 당도 15브릭brix 이상
나와야 한다. 영광에서 운수업 하고 원자력발전소반대운동 하던 김광주 씨는 처음부터
농사에 탁월한 선수였을까?











“갈대가 많았어요. 그때 이 산은. 올라오면 차 다 기스나고…
찾을 수가 없으니까 ‘에잇 모르겠다’ 하고 돌아서 가려다가 후회될까봐 들어와 봤데요.”

사모님은 한숨을 뱉었다.
일천구백구십육칠 년 경이었다. 김광주 씨 나이 마흔셋에 구례로 왔다.

“처음에는 이혼한다고 그랬어요, 저는 안 올라온다고 했어요.”

오십까지 하면 먹고 살게 하겠다고 김광주는 안 사람을 설득했다.
무엇이 그를 이곳으로 끌어 당겼을까?











잠실 사는 선배하고 두 사람이 합자해서 이 농장을 구입했다.
그런데 그 사람은 김광주 씨에게 전체를 인수하라고 뒤로 앉아버렸다.
당시로는 1억이 넘는 큰돈이었다. 운수업과 자동세차장 등해서 비슷한 액수에 청산을 했다.
빚이 진다. 사모님은 죽을 맛이었다고 한다.

“살아서 이 길을 갈까?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어요…”

사모님 말씀이 목에 맺힌다.











일이 터지면 업친데 덮친다. 고향의 땅에 변고가 발생한다.

“옛날 땅이 특정법(특조법을 말하는 듯)으로 걸려 이것저것 뒤죽박죽이 되었어요.
그때는 형제도 없는기라. 세 번, 대법원까지 가서 이기고…
그런 거는 세밀하게 하는 사람이라. 여기 사 놓고 정말 마음고생도 말할 수 없다.
나한테는 모르게 한다고 그랬는데 그 사람 답답하면 여기 뒷산에 가서 울고 그랬어요.”











김광주 선생이 쉰이 되었을 때 농장은 안정되었을까?

“10년 중 거의 8년은 낙엽병으로 수확할게 없었어요. 그랬어요.”

귀농한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이 그러하듯 그도 무농약을 고집했을 것이다.
감 농사에 대한 교육을 처남 박기주 씨와 같이 받으면서도 신입들은 고집이 깊다.
칠천 평 과수 무농약은 하느님 말고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면 정확하다.











2003년부터 그럭저럭 수확을 하기 시작했다. 대략 이곳으로 터를 옮긴지 칠팔 년째였다.

“아유, 힘들었어요.
저는 여기서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한 것이 한 5년 밖에 안 돼요. 저는 일 안했어요.”

박춘숙 씨. 쉰 넷이다. 여자의 운명이라는 것이 한 남자의 손길에 이끌려,
자신의 뜻과 무관하게 진행될 때, 이 높고 깊은 골짜기에서 참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대부분은 남자들이 문제다. 그러나 같이 산다. 부부다.











아래, 독자마을 입구 사람들은 몇 년 지나자 그런 말을 했다고 한다.
그냥 투기목적으로 산 줄 알았다고. 그래서 모모한 사람들은 외지 것이 농장을 인수하자
바로 곧 떠날 것이니 ‘저 농장을 살 것이라고’ 돈을 준비해 두고 그랬단다.

“본께 이 사람이 일을 하는 거야. 한 3년이 지나도 팔 생각을 안하네.”

그래서 독자마을에서도 김광주 선생을 농부로, 정착할 사람으로 인정을 하기 시작했다.
통상 원래 살던 주민들은 ‘우리를’ 몇 년 살다가 떠날 사람들로 생각한다.
실제 그러하기도 하다.











처남 박기주 씨는 실질적으로 김광주 씨와 함께 이 농장을 일구어 왔다.
도시에 살고 있지만 긴 시간, 짬만 나면 이곳으로 와서 자형과 함께 농장을 일구었다.

“이름표 바꿔 달고 교육도 받고 그랬어요. 허허허.”

갑작스러운 죽음 앞에서 박기주 씨가 정리해야 할 일이 많다.
원래 10월 말로 다니던 직장에 사표를 낸 상태였지만 김광주 씨가 별세하던 날로
바로 내려와 버렸다. 이 감을 누가 다 수확할 것인가. 무엇보다 그는 이 농장을 주인처럼 잘 알고 있다.
그가 있어 다행이다.











“공판장 비율을 줄이려는게… 공판장 가면 이 감들이 구분이 안 됩니다.
공판장으로 싣고 가면 경매까지 봅니다. 그러다가 뒤집는 것을 봤어요.”
“뒤집기가 뭡니까?”
“박스 가운데 속박이, 알짱을 박기도 하죠. 상한 거나 작은 놈. 그러면 가서 딱 잡아요.
저희 감은 그런 짓 안하거든요. 뒤집히면 가격이 더 올라가요. 뒤집은 경매인이 사거든요.
그 날 경매가 중 제일 비싼 가격으로. 그 바닥은 그래요. 공판장 허무하지만 무시할 수도 없고 그렇습니다.”











이야기를 나눈 집 앞으로 강아지들이 올망졸망이다.
산골 농장은 산짐승들 때문에 개를 필요로 한다. 개가 짖는다는 사실만으로도 효과가 있다.
범 같은 개건 개 같은 개건. 달포 넘은 강아지들이다.

“야, 너거들 촌스럽게 생겼다이.”

김광주 씨는 생전에 주변으로 사람이 많았던 모양이다.
차를 타고 지나가다가도 인사를 항상 했기에 그 문제로 부부싸움도 많았던 모양이다.

“저 분은 당신을 안 봐, 그런데 당신은 왜 인사를 해?
그라고 차 안에서 부부가 다투다가 차도 두 번이나 박았자녀.”

그러나 지금은 그 풍경조차 그립다.

“사람을 좋아했어요. 영광에 좀 모자라는 친구가 있었어요. 그 분한테 그렇게 잘 했는데,
그 양반한테 나이를 물어보면 항상 그랬어요. ‘광주하고 동갑이다’ 그라고 그런 사람들한테
더 잘해줘얀담서…”











“이게 아직 남아 있나요?”

선별장으로 나오니 이전에 내가 탑푸루트 용도로 디자인 해 준 박스가 보인다.
디자인 파일 말고 실물은 나도 처음 본다. 이런 박스는 공판장에서 잘 보이지 않아서
이곳 농민들에게 그렇게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 그때 가장 연장자이신 회원이

“구례, 라고 커다랗게 넣어얀당께. 구례 감이라고 혀야 알아주제.”

가락시장에 잔뜩 쌓여 있는 감 박스를 보고 답답한 마음에 박기주 씨가 물었단다.
저 감 다 팔리냐고. 자신도 감을 싣고 올라왔지만.

“구례 감 팔리고 나면 이 감 다 나가요.”

그렇게 구례 감에 대한 평판은 시장에서 좋은 모양이다. 그것에 한 술을 더한다.

“원래 계산리 감 팔고 구례 감 팔린다는 말이 있어요.”











감 농장은 아름다웠다. 내가 본 구례의 어느 감 농장보다 시각적으로 아름답다.
그만큼 힘들었을 것이다. 완전한 아마추어가 탑푸루트가 되기까지 가늠하기 힘든
날들이 이어졌을 것이다. 이 중 40% 정도의 최상급 감이 나온다. 높은 비율이다.











금년 예상 생산량은 많다. 풍년이다.
<탑푸루트>로 6톤 정도 의무적으로 내어 놓아야 한다. 공동선별 공동판매를 한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단감 10톤 이상 대봉 6톤 이상을 팔아야 한다.
완판남이라는 오해를 받고 있는 나로서는 전대미문의 미션이다.
물론 그 동안 농장에서 판매해 왔던 직거래 통로는 그대로 가동이 될 것이다.
힘을 합쳐서 최대한 팔아 볼 생각이다.
앞으로 10일을 예정으로 놉을 5명 정도 얻고 자원봉사 성격의 가족과 이웃이
부정기적으로 1일 4명 정도 투입될 것이다.
결국 10일 동안 90명 정도 인원을 투입해서 수확을 끝낼 계획이다.
저온저장고는 충분하다. 2층으로 계산하면 10평정도 규모다. 설 명절까지 통상 판매한다.
선별장과 저온저장고 등의 기본 시설을 갖추고 있다.











정상적인 탑푸루트 감이라 이제까지 지리산닷컴에서 내어 놓던 SOS적 성격의
비교적 싼 물건들과 비교하면 비싼 감이다. 최상의 감이기 때문이다.
가을이라 이것저것 팔 것이 산적해 있지만 금년에는 다른 감은 손대지 않을 것이다.
펀드 배당으로 종옥이 형 감을 이미 약속했기에 그것을 제외하고는 김광주 선생의
감으로 올인할 생각이다.
장터로 가시면 제품 안내가 나와 있는데 ABCDE 등급은 맛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
사이즈와 모양에서의 차이가 주로다. 시장에서 그리 물건을 판가름 하니 관행이다.

부탁드린다. 개별 소매 이외에 회사나 조직에 몸담고 계신 분들 중에 연말 사내외
선물로 대량 구매 건이 생기면 좋겠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주인 떠난 이 많은 양의
감을 파는 일은 아주 힘든 일이다. 일단 한 박스 정도 주문해서 맛을 보시고 결정이나
건의를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하여간 한 달 정도 예정으로 한 번 판매를 시작해 볼랍니다.











다시 산을 내려간다.
오후 빛에 길가로 늘어 선 감들이 반짝이며 인사를 한다.
이 길을 당분간 몇 번은 오르내릴 것이다.
이번 감 판매는 지리산닷컴이 대행하고 주문과, 결재까지 책임진다.
<조리봉농장>에는 택배 주소만 넘겨 드릴 것이다.
수확하고 당일로 바로바로 처리되는 것은 아니다. 입금 확인 후 최대한
3일을 넘기지 않은 시간 내에 발송해 드릴 것이다.
물건 쌓아 놓고 있는 일반적인 쇼핑몰이 아니니 이 점은 이해를 구한다.
그리고 가급이면 금요일 발송은 피할 것이다.









 

이제 ‘김광주 선생님’에서 ‘농부 김광주’로 내 스스로 호칭을 바꿔야겠다.
선생 스스로 그것을 원했던 시간들이었다.
이제 ‘김광주’로 생산자가 인쇄 ‘그 사람의 마지막 감’을 판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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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21일부터 불편하시더라도 농장으로 직접 주문하셔야 합니다.

메일이나 문자로 아래 제품 중 선택하시고 성함/전화번호/주소/입금자를 보내시면

입금 계좌를 안내해 드릴 것입니다. 지리산닷컴에서 주문받는 것은,

2014113, 1주일만 설 명절 선물용으로 주문받도록 하겠습니다.

 

박기주 zmmxnnpk@naver.com / 010-6804-6003 으로 주문해 주세요.

 

* 모든 제품은 택배비 포함입니다.

* 하루에 수확할 수 있는 양의 한계가 있습니다. 입금하신 후 3일 이내에는 발송하도록 하겠습니다.

* 단감은 '부유' 품종입니다. 대봉은 112주차에 공지하겠습니다.

* 많은 양을 필요로 하실 경우에는 별도로 문의를 해주시면 됩니다. 4dr@naver.com

* 입금 확인 후 발송하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제품 구성 및 가격은 사이즈별 등급으로 분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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