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0-5 / 김종옥과 김종옥

마을이장 2013.10.22 23:34 조회 수 : 4415







한겨레에서 발행하는 사람만 다루는 월간지 <나.들>에 「맨땅에 펀드」를 연재하고 있다.
11월호는 김종옥을 다룰 것이기에 뭔가를 건지기 위해 10월 21일 오후에 광의면으로 올라갔다.
그러나 나는 사실 더 이상 김종옥 형에게 특별하게 물어 볼 말이 없다.
날씨는 흐렸고 사진은 힘들었다. 마지막으로 사진 한 장 정도 건져볼 요량으로 올라갔는데.
형의 세 번째 농장은 처음 방문한다. 여기를 수월리로 봐야하나?











“뭔 작업 하시는 겁니까?”
“밀 뿌릴라고.”
“밀?”
“콩 털고 인자 밀 뿌릴라고.”

콩과 밀은 땅에 이로운 작물이다. 이제 막 조성한 감나무 묘목에 힘을 주기 위해서,
또는 풀도 잡기 위해서 연이어 밀을 뿌릴 모양이다.

“콩이 너무나 많이 나왔어.”
“네네 그렇겠지요. 칫.”

누구는 감나무 영양제로 콩을 뿌리고 수십 가마니를 수확한다.
우리들 직영 농지는 농사가 그리 힘든데.











어린 묘목이다. 2년 되었다. 내년부터 아주 조금 수확이 가능하다.

“품종이?”
“거반 태추.”

내년부터는 태추가 많이 나올 것이란 말씀이 이것이었군.
올해도 이른 추위가 올 것이란 예보가 있는 상태다. 점차 조생종으로 나무를 바꿀 모양이다.
그 결정이 옳을 것이다. 태추는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품종이다.
‘선수 농부들’을 보면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는 능력이 일반적인 농부들에 비해 탁월하다.
얼핏 봐도 그가 이 농장에 걸고 있는 기대 수준이 보였다. 내년 가을에 이곳 사진을 볼 기회가
있다면 여러분들은 깜짝 놀라게 될 것이다. 나무들이 얼마나 놀라운지.











김종옥을 만나면 나는 항상 그의 손을 쳐다보는 버릇이 있다. 김종옥의 손이니까.
비하인드 하나. 내가 김종옥 형을 처음 만난 것은 기억이 맞다면 2008년 가을이었을 것이다.
그때 그는 상사마을에 집을 짓는 중이었다. 박스 디자인이 필요한 그에게 누군가 나를 소개했다.
별로 내키지 않았는데 같은 마을이고 하니 집 짓는 곳으로 올라가서 그를 만났다.
내키지 않았던 이유는 뻔히 그런 일에 돈을 제대로 받지도 못하거나 아예 그냥 해 줄 것이
뻔한 일이라 가급이면 피했다.
그때 김종옥은 뭔가 정체가 아리까리한 나에게 그렇게 신뢰하지 않는 눈길을 보내며
탑푸루츠에 대해 설명을 했다. 이야기를 듣는 중에 나는 이 사람 일을 하지 않을 것이라
이미 결정하고 있었다. 이 사람은 나에게 신뢰가 없군. 처음 본 얼굴끼리 신뢰를 논하는 것은
좀 엉뚱하기도 하지만 내 방식이기도 하다.
2010년 가을의 지리산닷컴 전설의 ‘서리 감 파동’이 없었다면 나는 어쩌면 여전히 그의
이야기를 다루지 않고 있을지도 모른다.
요즘은 그냥 이런 식의 멀지 않은 과거로부터 지금의 사람들을 생각하곤 한다.
사람의 인연이란 어떻게 꼬일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나에게 그것은 두 김종옥 즉,
김종옥과 김종옥의 이야기다.











서순덕 형수는 당촌 선별장에 있다고 했다.
그러면 어차피 두 사람을 같이 촬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로 또 같이 찍자.
선별장으로 도착하자 통상 주차하는 자리에 콩이다. 이게 그 콩이군. 젠장.
무얼까?가 믿을 만한 콩을 구하고 있는데. 그런데 이틀 전에 다른 일로 광주 가자고
했을 때 콩 타작 한다고 하더니 이틀 사이에 일을 거의 다 해 두었다.
우리는 2주일째 콩 잡고 씨름 중인데. 완전 젠장.











선별장 안에는 형수 혼자 작업 중이었다. 대략 예순 정도 되어 보이는 도시 스딸의
아주머니들이 감을 흥정 중이었다. 물론 맛을 본다는 이유로 몇 개째를 먹고 있었던 분위기.
그 응대와 선별기 돌아가는 소리와…

“형수. 형수!”
“아, 삼촌.”

왔다는 사인만 보내고 형수는 형수의 일을 하고 나는 나의 일을 했다.











전화기가 울린다. 기계처럼 스피커 모드로 바꾸고 일을 계속한다.
단골인 모양이다. 대화를 나누다가 주문 들어온다. 주소를 불러주는 대목에서
다시 핸드폰의 녹음 버튼을 누른다. 기계적인 동작이다. 자주 보는 모습이다.











나의 말이 들어 설 여백은 없어 보였다.
사진을 찍고 아무 말 없이 선별장을 나왔다.
3년 전, 같은 시기 같은 공간에서의 풍경이 생각났다. 그때는 라디오 소리가 낮게 깔렸고
몇 사람이 조용하게 일을 하고 있었다. 그때는 이른 서리로 감이 거의 없는 상태였다.
한 번씩 생각한다. 무엇이 우리를 이토록 치열하게 살아가게 만드는가.











다음 날 아침. 화요일이다.
통일쌀 수확하는 날이다. 농민회장 님 주관 행사다.
화엄사와 기아자동차 광주공장 노조가 몇 년째 함께 진행하는 행사다.
나는 물론 모두 익숙한 얼굴들이다. 여성농민회장 님은 지난 매실 시즌에 여러분들도
이미 만났다. 도의원 정정섭 의원은 농민회장 출신이다. 나와는 그냥 형 동생으로
지내지만 연곡분교 문제로 예산이 필요한 때가 아니면 나는 항상 피해 다닌다.
군수 님은 나를 아는지 모르는지 여전히 판단하기 힘들다. 분명한 것은 약간 정체를
알 수 없다는 의문의 눈빛을 보내는 경우가 많았다. 몇 년 동안 이런 행사 사진은
찍지 않았는데 간만에 내 포커스 안에 나로서는 엉뚱한 조합의 사람들이 모였다.
그 속에 농부 김종옥은 농민회장 김종옥으로 등장했다.
이 아침, 나에게 김종옥은 다시 김종옥과 김종옥이다.
형 눈을 보니 마음은 감밭에 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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