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0일 일요일.
아침 6시 30분부터 콩수확 작업이 예정되어 있었다.
매일 조금씩 무얼까?가 수확하고 나는 콩단을 옮기는 일을 계속 했었다.
익어야 수확하니 그렇다. 일요일은 제법 많이 수확을 하는 날로 정했다.
왕샌을 청했다. 하루 전에 광주, 늦게까지 손님맞이 등으로 약간 피곤했던 탓에
어차피 옮기는 것이 나의 일이니 새벽에 일찍 나갈 필요는 없었다.











아침 9시 40분. 문자가 온다.
8시에 알람을 맞춰뒀는데 그냥 지나친 모양이다. 이렇게 누워 있는 경우는 잘 없는데
이상하게 완전히 뻗어 있었다.

“언능 오세요.”

막걸리 참을 들고 오란 소리다.
세 시간 전에 일어난 듯 한 얼굴로 나가야 하는데 좀 힘들겠다.
들녘밥상에 들러서 막걸리 두 통과 김치, 나물 등속을 받아서 밭으로 내려갔다.
많이 베었다. 그러나 많이 남았다. 콩 수확이 많을 듯하다. 300kg 이상인 것은 분명하다.
10시가 넘어서야 안개가 물러갔다. 해가 나오면 베는 일은 틀렸고 묶고 옮겨야 한다.











콩단 사이즈는 묶는 사람 마음이다. 대개는 점점 커지기 마련이다.
묶다보면 일을 빨리 끝내고 싶은 욕심이 생기기 마련이다. 너무 거대하게 만들지 마라는
주문을 넣지만 일일이 참견할 일은 아니다. 단을 잡고 훌러덩 어깨 뒤로 넘겨서
두 손으로 끈을 잡고 밭을 걸어 나온다. 늦잠에 몸은 깨어나지 않았다.
세 덩어리 째 옮기다가 문제가 발생했다. 논두렁 올라서는데 오른쪽 종아리에서 뚝 소리가 났다.
직감적으로 인대에 문제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ㅅㅂ 2주일 짜리군…
찌르는 듯한 짧은 통증이 허벅지로 올라오고 오늘 노가다는 글렀다는 환희의 미소를 짓고
무얼까?에게 선수 교체 사인을 보낸다.











몰라 류정수 선생은 자신의 논 일은 거의 하지 않지만 항상 우리 옆에서 구경하다가
벼락을 맞는 경향성이 있다. 내 종아리에서 뚝 소리가 날 때 눈 앞에는 류정수 선수가
‘머더요?’ 하고 막 등장을 한 순간이었다.
무얼까?는 원래 다리가 불편하고 류정수는 작년 고구마 경운기 추돌 사고의 여파로 아직 절룩거린다.
가을걷이 끝나면 철심 뽑는 수술 날짜를 잡을 것이다. 여기에 나까지 해서 세 명이 다리를 절룩이는 풍경.
몸 성한 사람이 거의 팔순 노인 왕샌 밖에 없다. 젠장.
슬리퍼 신은 류정수는 다른 후보 선수가 없는 경기 상황이라 알아서 그라운드로 투입될 수밖에.











일은 끝이 나게 되어 있다. 나는 철수해서 장화 벗고 카메라 들고 잠시 나왔다가
콩 옮기고 합류해서 점심밥이나 대접할 밖에. 간만에 동아식당으로 가서 점심을 먹었다.
식당 옮기고는 한 번도 오지 않았던 탓에 좀 쑥스럽다.

“엄니, 옮기고 장사?”
“더 잘돼.”
“저 빼고 다 온 모양이네요.”
“시방 왔자녀.”

콩은 이제 조금씩 계속 벨 것인데 1주일은 더 갈 것이다.
청국장이 보인다. 청국장 배당하고 남는 콩은 물론 판매용 청국장으로 가공할 것이다.
금년 펀드 수익은 이 콩에 기대를 걸 수밖에 없다. 아, 곧 매실청도 판매를 같이 할 것이다.
현재로서는 0.9리터 334병을 제외하고 몇 병이나 가능한지 가늠하지 못하지만 여튼 판다.

그렇게 콩을 대략 마무리 하고 앉은뱅이 밀 종자를 순영이 형님에게 전달하러
광의면 올라갔다가 날벼락 같은 소식을 들었다.











순영이 형님이 보이지 않길래 어디갔냐고 물었더니 계산리에서 감 농사짓는
김광주 선생께서 아침에 갑자기 세상을 떠나셨다는 것이다.
이게 뭔 소리… 연세가? 예순이 되지 않으셨다. 약간 멍한 상태로 오미동으로 돌아왔다.
마지막으로 뵌 것이 언제였지? 지난봄이었을 것이다.
지리산 치즈랜드를 운영하는 사위와 딸을 소개시키러 오미동으로 오셨었지.
며칠 전 <탑푸루츠영농조합법인> 모임에 내가 나갔었다면 어쩌면 뵈었을 것이다.
그 날 나는 원고 마감이 하나 걸려 있어 그 모임에 나가지 못했다.

월요일 오전에 김광주 선생 감농장 바로 아래에서 매실농장을 하는 정 선생님 전화를 받았다.

“속상해서 오미동 카페 앉아 있으니 나오세요.”

궁금했던 하루 전 아침의 상황을 전해 들었다.
그 하루 전에 같이 감 수확을 대비한 창고 청소를 했다고 한다. 이번 주부터 본격적으로
수확을 시작할 것이고 이를테면 한 달 동안의 전투태세에 돌입하는 것이다.
계산리 독자마을에 있는 김 선생님의 감농장은 제일 꼭대기다. 바로 그 아래 정 선생님의
농장이니 외지에서 귀농한 두 집은 가까울 수밖에 없다.
자주 가고 싶어도 차량 통행이 쉽지 않은 산이라 자주 방문을 취소하곤 했었다.











산으로 이어진 감농장은 가꾸기가 쉽지 않다. 김광주 선생은 듣기로 구례로 옮겨 오신지
20년 가까이 되셨을 것이다. 원래 농부가 아닌 분이 탑푸루츠가 되기까지 말과 글로 표현하지
못하는 어려움을 많이 겪었을 것이다.
정 선생님은 내가 더 걱정될 만큼 이 갑작스러운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하셨다.
어제까지 보았는데… 그 어떤 예고도 없었는데. 유일한 이웃이 어느 아침 다른 세상 사람이 되었다.

“구례가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왔는데, 이제 어디로 갈 곳도 없고… 이제 농장이 무서워요.”
“자녀가 치즈랜드로 시집간 친구 말고?”
“딸이 하나 더 있고 아들도 하나 있어요. 지금 군대 있어요. 안 그래도 첫 휴가를 이번 주에
나온다고… 지 아부지 감 수확 돕는다고 휴가를 계속 미루어서 그리 했다데요.”

아들이 늦었구나. 나도 듣고 있기 힘들었다. 어제부터 나 역시 이 문상을 가야할지 어쩔지
결정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당연히 가야겠지만 이런 초상은 문상도 참 마음이 힘들다.

“나는 어쩌면 이해가 되요. 매실 따는 한 달 동안 모든 신경을 집중합니다.
오직 매실에만. 가슴이 오그라들어요. 이게 수확 시즌이 되면 농부는 그래요.
그냥 일 하는 것처럼 보여도 온 마음으로 매달립니다. 김 선생님도 창고 치우고
싹 다 정리했거든요. 감만 따면 되도록…”

전투를 앞 둔 병사의 심정으로 1년 농사의 마지막에 임한다.
주변 풀도 정리했고 창고도 치웠고 수확할 컨테이너를 비롯한 장비들도 정비했다.
이제 내일부터 칠천 평이 넘는 비탈 농장에서 1년 동안의 땀을 마감할 것이다.
그리고 그의 새로운 아침은 없었다. 나의 눈에 농부라기보다 약간 세련된 중년으로
보였던 그는 어쩔 수 없는 농부였다. 정 선생님의 마지막 말씀이 가슴을 후벼 팠다.

“김광주 씨 감 농사지은 중에 금년처럼 잘 된 적이 없을 거예요.
태풍도 그냥 지나갔다고 좋아했는데. 그렇게 키워 놓고…”

오후에 조문을 했다. 탑푸루츠 팀들이 와 있었다.
순영이 형에게 도울 일이 있다면 요청해 달라고 말씀 드렸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큰 딸의 손을 꼬옥 잡아 주는 것 이외에는 없었다.
이름 없는 한 사람의 농부가 세상을 떠났다.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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