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0-3 / 콩 그리고 대평댁

마을이장 2013.10.15 23:37 조회 수 : 4518

 

 

 





10월 12일 토요일.
아침부터 문자가 오고 전반적으로 난리통 분위기가 완연한 날의 시작.
정신없이 점심까지 넘어 서고 오후에 잠시 여유가 생겼을 때, ‘지금이 마지막’ 이라는
위기감이 밀려오면서 카메라를 들고 오미동 끝으로 이동했다.











양교 형님이 주로 모자리로 이용하던 구역은 이미 베었다. 나에겐 ‘이미’에 해당하고
아마도 이른 아침이거나 멀어봤자 하루 전 오후였을 것이다. 쾌청했다.
구례 전역은 아니더라도 오미동 일부라도 좀 담자는 생각.











들판의 단풍이 절정인 시절이다.
가을이 항상 그러했지만 금년 들판은 쾌청한 날에 유난히 투명하다. 벼멸구가 극성이지만
들판은, 땅은 묵묵히 제 할 일을 한다. 숙명이란 표현은 이런 때에 하는 것이겠지.
사람은 그 명을 거스르곤 한다.











최광두 어르신이 지나치며 툭 말씀을 던진다.

“대평댁은 괘안한가?”
"예. 집으로 일단 오셨어요."











아침 9시 3분. 무얼까?의 문자가 왔다.

- 어디세요?
- 상사. 와이?
- 오미 오세요?
- ㅇ 10시쯤 손님이 40명 정도 있어.
- 조금 일찍 오세요. 저 콩 정리하고 잠깐 봬요.











대평댁이 쓰러지셨다.
아침에 무얼까?가 콩밭에 있는 것을 보고 당신도 콩밭으로 내려서려고 했던 모양이다.
토시까지 끼고는 쓰러졌다. 어지럼증이다. 사실은 지난밤부터 누운 상태에서 두통과 어지럼증이
있었던 것이다. 무얼까?의 용건은 대평댁이었다. 일전에 애지중지란 글에서 대평댁의 애지중지는
튼튼한 엄니의 몸이라는 말을 했는데 호사다마였단 말인가. 노인들의 일이란 예측불가다.
대평댁 방으로 들어서니 모로 누워 계시다. 이리저리 자식들에게 전화를 한 모양이다.
대평댁은 원래 멀미가 하도 심해서 차를 타지 못한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

“엄니, 병원 갑시다.”

무얼까? 트럭은 높아서 타는 것 자체가 힘들고 내 차로 움직여야 한다.











별 일 아닌 듯 대응하고 움직였지만 사실 내 가슴이 죄어온다.
어디로 갈까? 왜 항상 이런 일은 주말이나 연말에 터지는 것일까?
시골의 의료 수준은 정말 심각한 수준이다. 이런 경우 제일 갑갑하다.
여차하면 입원이라도 할 수 있는 구례병원이 정답이겠지만 초등 진단이 중요할 것 같아서
몇 초 고민하다가 읍내의 이정회 내과로 전화를 했다. 작은 의원이지만 개인적으로
구례에서 가장 믿을만한 의원이다. 친절하고, 무엇보다 설명을 자세하게 한다.
대평댁을 앞좌석에 태우고 아주 천천히 운전을 했다. 그러나 곧 구토 자세를 취하신다.
차를 세운다. 문을 연다. 다시 출발. 다시 구토. 다시 세운다. 다시 이동…
원래 멀미가 심한 분인데 어지럼증과 두통이 심하니 읍내까지 5km가 사하라사막 횡단이다.
병원은 만원이었다. 이 병원은 항상 그랬지. 기다렸다. 순서가 되었다. 원장실 문을 열고 들어선다.
이 의원이 흠칫한다. 그리고 나의 상황을 파악하고 이리저리 살펴본다.
대평댁이 원래 드시던 약을 한 봉지 무얼까?가 그 와중에 챙겼기에 보였다.
당뇨, 혈압, 고지혈 약이다. 몰랐다.

“심전도 검사를 합시다.”

검사실로 옮겨서 상의를 탈의시켰다.

“아 뭐 어때! 아들인데. 여름에는 마루에서 내둥 벗고 살면서…”

이 의원이 기록지를 살펴본다. 부정맥이 잡힌다. 다시 진료실로 자리를 옮겼다.
이 의원이 직접 따님과 통화를 해서 설명을 하겠단다. 감사합니다.
24시간 심전도 검사가 가능한 병원으로 가서 하루 정도 측정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인근에는 그런 기계가 없다. 당장 위급한 상황은 아니다. 조만간 그리 했으면 좋겠다.
의견서와 기록지를 챙겨주었다. 다행이다.

“닝게루 안 맞나? 주사도 없고?”
“엄니, 혈압하고 당뇨병 주사 맞아요? 이것도 같아요. 검사하고 이상 있으면 심장약을
아주 오래 드셔야 해요. 오늘 주사는 없습니다.”

이 의원은 엄니가 가장 알아듣기 쉬운 방법으로 설명했다. 시골의사답다. 병원을 나섰다. 다시,
대평댁을 앞좌석에 태우고 아주 천천히 운전을 했다. 그러나 곧 구토 자세를 취하신다.
차를 세운다. 문을 연다. 다시 출발. 다시 구토. 다시 세운다. 다시 이동…











집을 나서서 다시 집으로 돌아 올 때까지 대평댁이 손에서 놓치지 않았던 것은 지갑이었다.
병원비, 약값, 그때마다 지갑을 열었다. 모두 해서 일만 원도 나오지 않았다. 마음이 불편하신게다.
다른 뜻이 있는 것이 아니라 빠른 처리를 위해 먼저 움직였을 뿐이다.

“아 그냥 냅둬라니깐! 다음 달 엄니 월급에서 까면 되잖아욧!”
“잉. 그럼 내 월급에서 까이.”

다시 방으로 모시고 돌아서 나올 때까지 걱정 소리를 하신다.
양파 가지고 가라,
콩 작업 못해서 어쩔까나,
삼식이(나) 하고 상훈이(무얼까?를 어느 날부터 마음대로 그리 부르신다) 바쁜데 어쩔꺼이나,
나한테 월급 주는 사람들한테 잘 말해줘이잉,
...
일단 가슴을 쓸어내렸다. 오후에 서울에서 둘째 아드님이 당도할 것이다. 그러면 서울로의
이송방안이 갑갑하지만 일단 아드님과의 통화에서 기차가 최선이라는 경험적 이야기를 한다.
그리하면 되겠다. 문제는 대평댁이 말을 듣겠는가 하는 점이지만.

아직은 안 된다. 7년 전에 내가 오미동에 착륙했을 때 처음으로 얼굴 박치기를 한 두 엄니,
대평댁과 지정댁은 100년은 채워야 보내 드릴 수 있다. 금방 털고 일어나실 것이다. 암만.
탄저왕 어르신 댁에서 오셔서 흰죽을 끓이셨다. 오후에 서너 번 들락거리며 대평댁의 기색을 살폈다.











콩밭으로 내려섰다. 절반 이상의 콩을 베어야 한다. 이미 익었다.
빨리 수확하지 않으면 썩거나 싹이 날 수도 있다. 대평댁은 콩 수확 시기를 9월과 10월 월급에
대한 몰아치기 주간으로 설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당분간 대평댁을 맨땅에 농지에서 볼 일은 없다.
이 밭으로 내려서지 못하게 할 것이다. 대평댁 시즌아웃!
그러면 이 콩은 누가 다 수확하지? 무얼까?가 나를 가만두지는 않을 것인데…











10월 13일 일요일 새벽 6시.
하루 전 날 무얼까?는 남자가 필요하다고 했다. 연곡분교 남자 학부형들에게 SOS를 타전했다.
제주도에서 구례 정착지를 모색 중인 윤이 아빠가 걸려들었다.
그들은 항상 언제든지 불러달라는 소리를 나에게 하곤 했다.

- 몇시 어디로 가면 될까요?
- 음… 6시 오미동요. 콩 베는 일인데 젖었을 때 베야해서. 초큼 늦어도 되요.
- 헉! 아침 6시 맞죠?! 알겠습니다.

문자였는데 표정이 보였다.
6시 조금 넘어 오미동에 도착하니 마을에서 나를 팥쥐엄마로 만들어 버리는 연기력의 대가,
콩쥐 캐릭터의 대가 무얼까?가 이미 일을 하는 척 하고 있었다. 영악한 것.
안개 때문에 라이트를 켠 내 차를 보고 허리를 숙인 것이다.











무얼까?는 여름 동안 심심했거나 쓸쓸했다.
나는 무얼까?가 혼자 일하는 장면을 거의 촬영하지 않았다.
무얼까?가 수박을 몇 번 따 가지고 왔을 때에도 웃지 않았다.
무얼까?가 옥수수를 걸어 두고 말리는 사진도 게으르게 찍었다.
무얼까?가 옥수수 알갱이를 혼자서 까고 있던 몇 날 며칠을 기록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무얼까? 역시 약간 김이 샌 상태의 여름을 보내었다.
무엇이건 혼자 한다는 것은 일의 힘듬 때문이 아니라 다른 무엇으로 힘든 것이다.
늦게 제주도 김 선생과 내가 콩밭으로 내려가서 무얼까?와 함께 콩을 베었다.
정확하게는 가위로 잘랐다. 이 역시 무얼까? 농법이다.

“어느 세월에 잘라. 낫으로 베던지.”
“콩대가 세서 베면 뽑혀요, 그러면 흙이 따라 올라와서.”

구례에 7년 넘게 살면서 콩대를 가위로 자르는 것은 우리 말고는 못봤네! 젠장.
나는 8시에 밭을 떠나야했다. 화엄사 쪽으로 이동해서 웬수들의 아침밥을 거시기해야 했다.
토요일 점심 무렵부터 나는 34명의 손님을 맞이하고 있는 중이었다.











생각해보니 내가 가장 선배였군. 대학교 후배들이 구례를 찾았다.
민주동문회라는 타이틀을 가진 오래된 기억의 무리들을 나는 의식적으로 멀리했다. 아마도.
나는 그냥 내 일을 했고 세월은 80년대 중반을 관통한 지방삼류대학 출신들의 앞길에 호의적이지 않았다.
스스로 그렇게 걸어왔으니 누구를 탓할 일은 아니다. 비슷한 신세 또는 상황의 무리를 대면하는
일이 나는 즐겁지 않았다. 어쩌면 당시의 상황에서 어느 정도 책임감까지 가져야 할 학번이거나
위치였지만 나는 그들을 외면했다.
그런데 그들이 찾아왔다. 정 나타나지 않겠다면 찾아오겠다고. 이리저리 외부로 노출되는 경우가
생기다보니 발생한 일이다. 나는? 진실로 항상 미안했다. 자랑스러운 선배가 아니라서 그렇다.
어떤 후배들은 아마도 거의 25~6년 만에 보는 경우였다. 사람의 시간으로 보자면 제법 긴 시간이다.
기억이 남아 있다는 것이 신기한 일이다. 이름 아닌 당시의 별명을 서로 부르는 것은 짙은 동질감
또는 전선의 기억을 되살린다.
그러나 토요일 모임의 마지막, 그러니까 일요일 새벽 1시 즈음에 모임을 정리하는 노래가
‘임을 위한 행진곡’이었다는 것은 시골 사는 선배 입장에서는 정말 진땀나는 일이었다. -,.-
아, 사진은 이 모임의 밴드에서 89학번 후배님의 사진을 그냥 훔쳐왔다.
이들의 아침을 해결할 식당으로 인도하고 나는 다시 콩밭으로, 이들은 노고단으로 향했다.
잊지 않고 찾아줘서 고마웠습니다. 사실은 당신들을 항상 그리워했습니다.

이곳을 보고 있는 후배들 몇몇 분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으니 과거의 글 흔적을 남겨둔다.
이틀 전 밤에, 그때 왜? 라는 질문들에 대한 나의 기억이자,
내가 그대들 앞에 나서지 못했던 지루한 변명이기도 하고.
2003년, 진성일 제삿날 지나서 허한 마음에 끌쩍거렸던 글이다.
나 역시 이 글이 생각나서 지금 찾아보고 기억을 되살렸다.
다소 거칠고 다소 마음에 들지 않는 대목이 있더라도 2003년 서울시절 당시 나는 그러했으니,
또는 당신들도 그러했을 것이니…

화석 - 나의 11월 혁명

 

 

 

 

 

 

 





9시 30분 정도에 콩밭으로 돌아왔다. 멀리 세 개의 점.
무얼까? 제주도 김 선생 그리고 왕샌을 모셨다. 화엄사 식당가로 출발하기 전에
나의 대타, 아니 농사 일의 대가를 한 분 급 수배했다. 오미동 남자 어르신들 중에서
일의 달인은 왕학봉 어르신이다.











전체 밭 고랑의 절반도 나가지 못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거의 끝까지 나갔다.
오호! 이렇게 기쁜 일이. 나는 조금만 해도 된다는 소리 아닌가. 역시 왕샌의 위력은 대단하다.
해가 아침 안개를 거의 밀어내고 있었다. 해가 뜨거우면 이 작업은 어차피 못한다.
뜨거우면 콩이 떨어진다. 젖은 상태에서 작업해야 한다.











“아냐세여? 저희 농사 잘 지었죠?”
“…어”

약간 미지근하시다. 베는 것은 끝이 났고 이제 묶고 옮기는 일이 남았다.
새참을 준비해야 하나? 무얼까?에게 물었다.

“레드? 화이트?”
“…”
“알았어. 내가 들녘밥상 가서 막걸리 들고 오께.”











한 통 들고 오려고 했는데 마침 구워 놓은 감자전을 싸 주길래 막걸리 두 통을 들었다.
김치 없는 막걸리와 김치 없는 라면 중 어느 것이 더 비참한 상황일까.

“어여들 오세요!”











햇볕 좋고 이제 조금만 더 하면 끝이다. 일의 끝이 보일 때 새참은 더 맛나다.
왕샌은 막걸리만 드신다. 아, 이 콩밭의 일부 고랑은 왕샌의 종자를 구입해서 심은 것이다.

“어르신은 밖에 나가셨다가 다시 돌아오시 전에, 그니까 지금 사시는 집이 원래 댁이셨어요?”
“글제.”
“혹시 대평댁 시집 오셨을 때 기억하세요. 대평댁이 옛날에 한 미모했다고 주장을 해서…”
“그…랬…제…”











이제 어깨에 지고 트럭으로 옮겨야 한다.
남자들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대목이다. 나도 남자다. 그런데 왕샌이 묶는 콩다발이
점점 거대해지는 경향이 있었다. 목덜미로 콩깍지가 파고들고 이마에 땀이 흐르기 시작한다.
사사분기 일은 오늘 다 했다. 죽갔다. 뭐 한다고 콩은 오지게 심어가꼬. 젠장.











수고하셨고 들어가시라고 했지만 왕샌은 같이 공장으로 내려가자신다.
이유가 있었다. 콩을 늘어 말리는 방법까지 코치를 하신다. 그냥 펼친다고 되는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지시대로 펼치다보니 작년보다 시간이 더 걸린다. 그리고 약간 늦은 점심을 먹었다.
화요일 오후에 비가 예보되어 있었다. 볕 좋을 때 최대한 말려야 한다.
작년에는 콩 펼쳤다가 비 때문에 세 번을 공장 안으로 끌어 들여야 했다.
콩 양이 많다보니 그 일이 상당한 노가다를 필요로 했었다. 여튼 비는 오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10월 15일 화요일 아침. 콩을 말린지 이틀 지났다. 오후에 비가 예보되어 있다.
늦은 아침에 무얼까?의 전화를 받았다. 백 년 만에 Mac앞에 앉아서 작업을 하려는데.
기술센터에서 탈곡기를 빌렸단다. 콩 턴다고. 아침에 일탈과 콩 두드리고 있는데
양교 형님이 지나가다가 그 양을 그라고 있다고 타박을 했다고 한다. 탈곡기 빌리라고.
2012년 탈곡기에 대한 좋지 않은 기억이 있었던터라 금년에는 할매들 두 분 정도 동원해서
콩을 털 생각이었다. 2012년은 일주일 넘게 망할놈에 타막기를 원망하면서 끝도 없고
마무리도 안되는 콩털기를 했었다. 그때 일탈이 해그름에 그랬다.
‘벌을 받고 있는 것 같다’고. 그랬는데 무얼까?가 갑자기 탈곡기를 빌렸다.
문제는 기계가 300kg이다. 장사들을 동원해서 공장 마당으로 내려야 했다.
몰라 류정수 선생과 지저스 사무장에게 전화를 했다.
원래는 기계만 내리는 것이 내가 부탁한 사항이었는데 바로 시험가동으로 콩을 집어 넣다보니
결국 그 자리에서 결판을 보게 되었다.

“어어어, 나 놉 못 준다. 탐나는 인력도 아니고. 밥은 준다이.”











작년 고구마 경운기 사고의 두 선수가 1년이 지난 오늘 다시 맨땅에 펀드에 밴딩되었다.
몰라 류정수 선수는 조만간 다리에 박은 철심을 제거하는 수술을 해야 한다.
두 사람이 동시에 프레임 안으로 들어오니 만감이 교차한다.











콩은 작년에 비하면 일취월장이다. 60% 정도 수확한 상태에서 이미 작년 수확량을 넘어선다.
어쩌면 금년 펀드 수익 예정사업의 마지막 희망은 콩이다. 청국장이건 매주건 돈이 되어야 한다.
나는 촬영만 하고 사무실로 올라가서 사무직에 매진했다. -,.-
아차차, 대평댁한테 가봐야 한다. 조금 전에 지나쳐 오는데 잡혔고 집에 들리라는 협박을 들었다.











“엄니 뭐하세요?”
“쫌만 지달려잉. 고매(고구마)하고 양파하고 줄텐께.”

대평댁은 둘째 아들을 따라 서울로 가지 않았다. 다음 날 어찌어찌 일어나셨고 자식들
말을 절대 듣지 않았다. 일주일 후에 다시 내려와서 모시고 가겠다는 다짐을 받아들고
아들은 서울로 갔지만 과연 그러할까?

“왜 아들 따라 서울 가지 그러셨어요.”
“앙가. 콩도 따야고 배차도 숭그놨고 못가.”

들어보나마나 뻔한 답이 준비되어 있었다.
무엇 무엇이 끝나야 간다는 엄니들의 말씀은 열에 열하나는 거짓말이다.











“그라믄 안된다니깐! 언능 검사를 받아야 한다니깐!”
“콩우유하고 배도 가지고 가이. 하이고 내가 콩을 못 털어서 어쩌까.”

어차피 대평댁은 누구의 말도 듣지 않을 것이다. 다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엄니 오래오래 살아야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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