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0-2 / 가을 들 그리고 홍순영

마을이장 2013.10.14 21:59 조회 수 : 3615

 

 

 





9월 중순부터 들판은 색을 달리하기 시작했다.
주로는 퇴근길에 그 색의 아름다움을 느끼곤 했기에 다음 날 날씨가 좋다면 금년에는
들판 사진을 제대로 찍어야겠다는 마음을 먹곤 했지만 역시 나는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구례 전역의 들판 표정을 다양하게 잡고 싶었다.
정말 ‘날 좋다!’는 소리를 반복했던 어떤 이틀이 지나고 나서 좀처럼 그런 날은 오지 않았다.











그러다가 겨우 마음 다잡고 카메라를 잡은 날이 10월 1일.
다음 날 비가 예보되어 있었기에 빠른 걸음으로 일단 오미 지나 하죽마을 입구까지 걸어 나갔다.
그러나… 동쪽과 북쪽과는 다르게 남서쪽에서는 구름이 아주 커다랗게 형성되어 있었다.
조금 기다리면 지는 해의 강렬함을 볼 수 있을 것이란 판단을 했지만 완전한 오판이었다.
그 구름은 물러가는 구름이 아니라 산을 향해 다가오는 구름이었다.











아쉬운 마음에 부질없는 셔터를 몇 번 누르면서 오미동으로 걸어왔다.
차를 타고 지나치던 어느 순간 마음에 남는 상황들은 역시 그 순간뿐이다.
내일 그 순간은 절대 찾아오지 않는다.











요즘은 카메라 자체를 들고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
언제 만날지 모르는 상황에 대비해서 항상 카메라를 몸에 붙이고 다니던 전투력을 상실한 것이다.
생각해보면 좋았던 사진은 예정하지 않았던 순간을 담은 것이 더 많았다.
결국 9월 마지막 주의 그 ‘좋았던 날’은 10월 초에는 연출되지 않았다.
조금 더 기다리면 되지 않느냐고? 꽉 찬 들판은 10월 첫 주가 마지막이기 때문이다.
곧 들판은 빠른 속도로 비워질 것이다.











역시 순영이 형이 스타트를 끊었다. 조기재배 쌀이 아닌 제 시절 추수도 형이 먼저다.
물론 농지 면적 문제가 있다. 순차적으로 베어나가면 11월 첫 주까지 베고 뿌릴 것이다.
먼저 모를 옮긴 논부터 먼저 수확을 하는 것이다.
10월 5일 토요일. 첫 수확이라는 전화를 받고 광의면으로 오르자 또 뭔 방송 촬영이다.
나 원, 이제 당분간 방송은 응하지 마시라고 말씀 드려야겠다.











인터뷰가 길어지길래 기다리기 지루해서 형에게 맞은 편에서 사인을 보냈다.
빨랑 끝내고 언능 갑시다아! 나도 일정이 있는 사람이라니깐! 그렇게 중단시키고
광의면 방광리를 바라고 콤바인과 수집트럭을 앞세우고 길을 나섰다.











방광에서 오른쪽 샛길로 꼬부라져서 들어갔다. 처음 들어가 보는 길이다.
음… 이쪽에서 보니 이런 뷰가 나오네. 괘안네. 다음에 한 번 와야지.
아침 안개가 빠르게 흩어지는 시간대다. 오전 9시 넘은 시간이다.











북쪽으로는 쾌청하다. 이곳이 홍순영의 본격적인 가을걷이 첫 작업장이다.
하루 전에 가양으로 베어 둔 모양이다. 콤바인은 지체없이 바로 논으로 들어섰다.
그냥 바로 일을 시작한다. 습관처럼.











나는 별로 궁금한 것이 없었기에 몇 발 걸어서 들판을 보러 나갔다.
어쩌면 이렇게 취재차 나온 김에 촬영을 하는 이 순간이 금년 들판 촬영의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 걸어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길이다.
아침 7시경의 차분한 빛에서, 짙은 안개 속에서 누군가 걸어온다면.











콤바인 너머 수한마을이 낮게 깔렸고 그 뒤로 화엄사 오른편 능선이 내려선다.
저 철탑은 19번 도로 하사마을 입구에서부터 이곳을 지나 지리산으로 이어진다.











편안했다. 이곳은 여유로운 곳이고 나의 일상은 여유가 없다.
그것은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7년 전에 서울에서 구례로 이사를 올 때에는
나의 이런 일상을 상상하지 않았다. 너무 번잡스러워진 것은 분명하다.
게으른 가운데 이 가을 나는 더 번잡스러운 일들의 한 가운데 자리하고 있고
어느 일 하나 제대로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











나락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가만히 앉아 있거나 목적 없이 들판을 바라보는 일은 없다.











여물어 가는 식물들은 고개를 숙이고 늙어가는 포유류는 고개를 든다.











두리번거린다.











아버지와 아들이 제 각각의 역할을 수행한다.
언젠가부터 바라보면 이 가족은 작업을 할 때 별 다른 말이 없다.
제 각각 해야 할 일을, 포지션을 아는 것이다. 진주는 보이지 않는다.
다음 작업 논의 가장자리를 낫으로 베고 있을 것이다.











아침의 방송 촬영 차량이 들어오는 것이 보였고 나는 빠져 나왔다.
그들은 내가 지난 5년간 홍순영에게 했던 질문의 일부분을 할 것이고
나는 그것이 궁금하지 않다.











수월리 소나무 밭이 보였다. 조금 내려서면 매천 황현의 마지막 장소다.
어쩌면 매천이 약간 긴 산책을 위해 이 길까지 걸어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다음 행보에 대해 방황했다.
날이 그럭저럭 좋은 듯하니 다른 들판을 촬영하러 움직여볼까?











그러나 이 날 나는 다음 날 강원도 길을 예정하고 있었기에 이미 마음은 딴 나라에 있었다.











형에게 말하지 않고 그냥 홍순영 가족의 들판을 빠져나왔다.
이 날 오후에 나는 다른 들판을 촬영하지 않았다.











10월 10일 목요일. 아침에 진주의 전화를 받았다. 수수를 벤단다.

“10시까지 가겠습니다.”

현장에는 기표와 순영이 형이 있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











찰수수와 메수수가 있는데 이것은 메수수다.
새로운 품종이고 ‘동안메’라고 이름을 부여한 모양이다. <밀양작물연구소>에서 종자를
받아와서 심은 것이다. 구례 우리밀공장에서 수수국수로 가공하기 위해 시험재배를 하는 것이다.











수확 막바지에 새가 많이 달려든 모양이다. 하늘은 흐렸지만 오늘 수확을 예정했기에
조금 서두르는 중이었다. 처음에는 낫으로 베고 있길래, 뭐라뭐라 물었더니 콤바인으로 벤단다.











호밀 보다는 낮았지만 180cm는 되어 보였다.
콤바인 날을 최대한 올려서 목을 쳐나가는 방식이었다. 300평 정도 될까.
하여간 이 가족의 농사양은 항상 이런 식이다.











수수 가격은 좋은 편이다. 쌀보다는 훨 비싸다.
순영이 형은 장기적으로 잡곡 방면으로 전망을 두는 것 같았다.
펀드 배당으로 수수를 소량 넣어볼까 생각 중이다. 밥에 섞어 먹는 정도.











키가 되니까 콤바인 안으로 뭉쳐 들어가는 경우가 빈번하다. 이를테면 이 콤바인은
수수 수확용으로는 적절치는 않다. 쌀과 밀 전용으로 보면 된다. 그렇다고 대한민국에
드문 다른 콤바인을 구입하는 것은 턱없는 일이다.











이 사람. 가끔씩 웃긴다.

“이 수수가 뭐가 특별하다고요?”
“내가 뭘 알아. 몰라 나도.”











또 다른 방송이다. 젠장.
연구소에서 동안메라는 품종을 개발한 박사님이 나와서 함께 수확을 지켜보는 중이다.
뭔가 대책을 마련해야겠다. 농부가 연예인 병에 걸리면 약도 없다.











농사를 지원하는 펀드 방안. 내년에도 펀드가 지속된다면 생각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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