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추석 보내고 올라 온 것이 20일 늦은 오후.
추석 아침에 무얼까?의 문자를 받았다.

“감 그래도 몇 개 남았음. 금방 딸 듯 ㅎ”

세 군데를 돌아야 하는 것이 우리 집 제사의 특성인데 첫 코스에서 문자를 받았을 것이다.

그냥 확인한 것이다. 우리에게 ‘감은 없다’는 사실을.











21일 토요일 아침. 파도리 감밭으로 향했다. 어차피 내 눈으로 확인해야 한다.
언제나 주차하는 자리에 차를 세우고 내려다본다. 지금 이 계절에 파도리 감밭에서
멀리 강 건너 간전면이 보이는 것은 정상적이지 않다. 감나무 잎에 가려서 보이지 않아야 한다.











나무에 매달려 있어야 할 잎과 열매는 땅으로 쏟아졌다.
‘떨어졌다’라고 표현하지 않고 ‘쏟아졌다’라고 표현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추석 전에 광의 순영이 형님네 올라갔을 때 그런 말들이 돌았다.
계산리 감들이 며칠 사이에 쏟아졌다고. 구례 이곳저곳에서 감들이 쏟아졌다고.
일부 선수들 감도 그렇게 되었다고.

“약을 하지 않았나요?”
“하제. 며칠만 늦어도 그래. 권 선생 감은 괘안해?”
“예. 며칠 전 부터 마지막 예초기 작업 중인데 뭐 약간 맛 간 잎은 있어도 매달려 있는데요.”











오미동으로 돌아와서 무얼까?에게 확인을 했다. 그러지 않아도 오미동 사무실 뒤
한동댁 감나무 두 그루가 딱 하루 사이에 잎과 열매를 쏟아 낸 모습을 본 뒤끝이라.
하루 전까지 파도리 감밭 예초기 작업을 한 무얼까?는 혼자 작업하기도 심심하고
추석 지나고 나머지 풀을 벨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 감은 무사하다고.
명절 서울 행 전에 한 번 확인해 보라고 부탁했다. 그 오후로 나는 부산으로 갔고
이틀 뒤 추석 날 아침에 무얼까?의 문자를 받은 것이다. 감은 없다.











9월 첫 주에 무얼까?가 예초기 작업을 할 때 파도리 언덕을 찾았었다.
혼자 작업해야 하는 사람에 대한 미안함 같은 것. 그 날 촬영을 하지 않았다.
감은 정말 따글따글하게 붙어 있었다. 첫 날이라 풀을 벤 면적이 적어서 이틀 후에나
촬영하자 하고 내려왔다. 그리고 며칠 비가 내렸다. 결국 나는 그 많던 감의 상태를
증명할 수 있는 사진 한 장 없다. 그때 우리의 고민은 위 사진을 자세히 보면,
넝쿨이 감나무 아래에서부터 감나무 꼭대기까지 퍼져 나가는 정체를 알 수 없는
풀에 대한 고민이었다. 그 풀을 잘라서 광의 올라가는 길에 순영이 형님에게 보였다.
형은 피식 웃었다. 외래 종인데 제초제 말고는 답이 없다고. 밑단을 잘라봐야
전체 면적에 이미 떨어진 무수한 풀씨를 잡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 넝쿨은 8월 중순까지
보이지 않던 것이다. 한 순간 소홀하면 땅과 식물은 전혀 엉뚱한 모습을 보여준다.











2012년도 그러했고 원래 파도리 감밭은 약을 할 생각이었다. 작년에는 토지 사는
종회 형님이 두 번 약을 했다. 그때 낙엽병 약은 필수였다. 우리가 직접 약을 하지 못하는
문제는 장비의 문제와 경험의 문제였다. 시작부터 무농약을 고민했다. 파도리 감밭의
특성상 납작한 에스에스기라는 농약 분무 차가 작업을 하기 힘들다. 경사지라 그렇다.
가령 홍기표가 뿌리는 자가 제조 제제를 뿌리는 것을 염두에 두면 최소한 2주일에
한 번은 경운기를 끌고 와서 감밭에 선을 넣어서 작업을 해야 한다? 누가?
그때마다 민폐를 끼쳐야 한다. 돈으로도 해결하기 힘들다. 그래서 농약 두 차례 정도를
예정했지만 파도리 감밭의 특성 상 물 문제가 있다. 톤 정도의 물을 담아서 올라와야 한다.
결국 시기를 놓쳤고, 어쩌면 ‘약 안하고 한 번 해보자’는 본심도 작용을 해서 부득이한
유기농을 하게 된 것이다. 낙엽병은 피하지 못할 것이란 생각을 했다. 그러나 나는
전면적인 그 상황을 경험해 보지 않았다. 5월에서 6월 초순 무렵에 어린잎에 감염이
발생한다. 그리고 차례로 전염을 반복한다. 그래서 6월에 낙엽병 약을 해야 한다.
발병하기 전에. 일종의 포자다. 탄저병 같은 것이다. 그 시기를 놓치면 9월에 병은 외화된다.
반점이 생긴다. 그리고 잎이 떨어진다. 잎이 떨어지면 나무와 열매로 영양분을 공급하는
광합성 활동은 현전하게 줄어들고 감은 익기 전에 영양분과 일종의 방어벽인 잎을 상실하면서
낙하하는 것이다.











모눈이 낙엽병? 전화로 순영이 형님에게 들은 것이라 정확하지 않다. 이를테면 병반의
포자가 사각과 육각이 있는데 이 낙엽병은 사각이란다. 쉽게는 ‘급성 낙엽병’이라고 한다.
구례로 보자면 계산리와 곳곳에서 이 병이 왔다. 한 날 한 시에 일제히. 참 신기하다.
음력도 아닌 양력 9월 16일이 중요하다고 형은 자주 이야기했었다. 이번에도 그 무렵을
전후로 낙엽병은 자신의 위력을 일제히 출력한 것이다.
방치된 감나무 밭은 보통 높은 곳에 있는데 비에 포자가 씻겨 내려온다고 한다.
지난주에 예초기 작업을 시작할 무렵에 3일 정도 비가 왔다. 그 비로 포자가 확산되고
시기가 맞아 떨어진 것이다. 병원균인 포자는 비가 내리면 공기 중으로 방출되어 확산된다.
순영이 형님은 다가오는 주에 이틀 동안의 비가 예보되어 있은데 그 비가 결정타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과연 그러한지 목요일 즈음에는 확인하러 다시 갈 것이다.











감나무 사이를 걸으며 한숨이 새어 나왔다. 정말 많이 떨어졌다.
이 감들은 감식초 재료로도 사용할 수 없는 상태다. 이 낙엽들은 겨울을 지나면서
다음 해 낙엽병 포자로 기능할 것이다. 태우는 방법 밖에 없다고 한다.
일천 평, 일백오십여섯 그루 나무 아래가 추풍낙엽인데 이것을 어디서 태울까?











나무에 매달려 색깔이 난 것들에 감꼭지나방이 붙어 있다.
이 감들도 조만간 떨어질 것이다. 아직 파란 감들 중 몇 개를 수확할 수 있을 것이다.











백분의 일 정도 느꼈다.
생업으로서의 농부 마음이 한 순간 망가진 농사 앞에서 어떻게 무너지는 것인지.
나는 편드라는 것을 운영하고 있고 그것은 남의 돈을 가지고 일정한 직영농지에서
농사시늉을 하는 것이다. 이 감밭에서 금년에는 육백만 원 정도의 매출을 목표로 했었다.
그것이 단감이건 감식초건 곶감이건 금년 직영 농지의 임무는 무조건 수익성이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 우리는 감식초냐 곶감이냐, 그 일은 누가 하냐? 이런 젠장! 에 관한
이야기들을 나누었었다. 이제 그런 논쟁은 없을 것이다. 감은 없다.











2년째 쇼를 하고 있다. 금년에는 이미 고추 역병으로 이백 주의 고추 중 절반을 포기했다.
앉은뱅이 밀 건국수는 성황리에 완판했지만 가공시설이 없는 우리는 적자를 면하지 못했다.
옥수수는 많이 뿌렸지만 334가구에 공급할 양은 되지 않았고 우리가 먹어치우기엔 너무 많았다.
요즘은 말리고 있다. 다음 배당에 가공해서 보내려고. 남은 것은 콩이다.
콩에 희망을 걸어야는데 콩으로 가공한 물건의 매출량이 얼마나 될까.











투자자들은 우리를 믿고 돈을 맡겼고 우리는 스스로에게 월 100만 원의 임금을 책정했다.
그 돈으로 우리가 보여줄 수 있었던 것은, ‘농사는 이래서 안 된다’는 증명 시리즈였다.
나의 생계가 걸린 농사였다면 과연 그럴 수 있었을까. 내년에는 농사를 짓지 않을 것이다.
영화 「마농의 샘」에서 이브 몽땅이 날린 악담이 생각나는 밤이다.

“농부는 꼽추가 될 수 있지만, 꼽추는 농부가 될 수 없다.”











무얼까?가 새와 째려보던 6월 초순을 경과하면서 나는 어쩌면 2014년에도 펀드를 지속한다면
직영농지는 운영하지 않는다는 결심을 하고 있었다. 이미 가학적 농사이거나 바보 같은 농사였다.
8월부터 이곳에서 펀드 중계방송이 게을러지면서 나는 어쩌면 2014년에 대한 고민에 들어가 있었다.
개인적인 화두는,

"우리가 잘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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