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기표. 1989년 생. 스물다섯이다.
전남 구례군 광의면 온당리에서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고 있다.
비슷한 문장에 대한 기억이 있다. 그의 아버지에 대한 인터뷰 또한 이와 같은 글로
시작을 했었다. 이 젊은 농부의 아버지는 우리들이 익히 알고 있는 ‘농부 농순영’이다.
홍기표의 아버지의 아버지가 그러했듯 홍기표 역시 광의면에서 태어나서 인근의
구례 북중학교를 다녔다. 고등학교는 읍내의 농고를 다녔다. 그리고 2008년에
한국농수산대학 과수학과에 입학했다. 3년제 농업전문대학이다.

“그 학교는 농부의 아들이 많은가?”
“대략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나는 홍기표에서 말을 편하게 한다. 기표가 내 카메라 속으로 처음 들어 온 것이
지난 2009년 가을이었다. 순영이 형님의 사이트를 오픈하고 조촐한 파티를 열었었다.
그때 기표는 스물하나였다. 지금 내 아들 나이였다. 보리새우를 굽고 있던 기표는 아이였다.
한국농수산대학을 졸업하면 군대는 면제를 받는다. 특례다. 등록금도 없다. 단, 졸업 후
9년 동안은 농사를 의무적으로 지어야 한다. 무 자르듯 구분할 수는 없지만 3년은 군면제에
대한 의무, 3년은 등록금에 대한 의무, 나머지 3년은 직업 농부로서의 의무로 이해하면 되겠다.
그래서 스물다섯 홍기표의 시간은 주변의 우리 자식들 보다 빠르다.

“농부가 되겠다고 언제부터 생각을 했나?”
“어릴 때부터 그랬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지나면서 완전히 마음을 먹었습니다.”
“보통 도시로 나가고 싶어 하지 않나?”
“도시 나가서 별 뜻 없는 다른 일 할 바에야 농사가 더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부모님은? 보통 농사짓는 사람들은 자식들이 대물림 하는 거 싫어하는데…”
“엄마는 반대했고 아빠는 제 뜻대로 하라고 했습니다.”

농부 홍순영은 한 사람이 아니라 완전한 가족농이다. 그 가족을 대표하는 사람이 가장이다.
이 가족농의 엔진이자 선장은 순영이 형님이다. 형수님(나는 그렇게 부른다)은 어쩌면
가족으로서, 책임감으로서 형이 끝없이 ‘사고치는 농사’를 묵묵히 뒷바라지해 오셨다.
‘엄마의 반대’를 이해하기는 너무 쉽다. 나라도.
바꾸어 생각해보면 농부 홍순영이 참 특이한 사람이다. 그는 농사가 재미있는 사람이다.
그의 아들에게 다시 질문했다.

“어릴 때부터 농사를 봐 오고 집안일을 도왔을 것인데 그게 재미있나?”
“예. 어릴 때부터 저는 농사가 재미있었습니다.”

환장하겠네. 농사가 재미있단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일까?
어쩌면 당연한 일일까… 일이 힘들지만 아버지는 농사에 골몰했을 것이다.
단순히 돈벌이가 아닌 천직으로서 자신의 일을 연구하고 고민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홍기표가
알고 있는 농부라는 직업이었을 것이다. 홍기표에게 농사는 힘들지만 괴로운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고 홍기표의 귀에 악마의 속삭임을 다시 시도했다.











“시골 갑갑하지 않나? 젊은 사람은 도시로 나가야지.”
“젊은 사람 한 사람이라도 농사지어야죠.”
“긍께, 그걸 왜 니가 하냐고?”
“이거 재밌는데…”

포기. 대화가 안 된다. 뭐 이 따위 젊은이가 있어.
홍기표는 2011년 2월에 한국농수산대학을 졸업했다. 농사 엘리트 아닌가.

“농업대학에서 생활은 어땠나? 지금 농사에 도움이 되냐는?”
“뭐 그렇죠… 저희 집은 친환경농사이지 않습니까.
농업대학에는 친환경 농사에 대한 수업은 없습니다.”

뭐라고라? 농업대학에 친환경농법에 대한 수업이 없다? 한국농업을 이끌어 갈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서 세운 대학 아닌가? 그래서 군대도 면제, 등록금도 면제해 주면서 전문 농부를
양성하는 것 아닌가. 큰 정부와 작은 정부 모두 표면적으로 친환경 농지의 면적 확대를
그렇게 강조하는데 설마 그럴 리가 있겠는가.

“그럼 무슨 수업을 한다는 것이지? 현장 실습도 많았을 것인데.”
“관행농 수업합니다. 실습 나가도 농약 어떻게 하면 잘 뿌리는지, 그런 거 합니다.
과수에 대한 실질적인 지식도 배우지만 농법은 거의 관행농만 다룹니다.”

결국 홍기표에게 친환경 또는 무농약 농법을 가르칠 사람은 아버지 홍순영이다.
‘대학에서 농사를 전공’한 아들은 초등학교 나와서 평생 ‘농사지은’ 아버지의 제자로 되돌아왔다.
삶의 태도와 존경의 의미로서 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농사 교육에의 필요로서도 그렇다.
약간 숨이 막혀왔다. 도대체 시스템에서 대한민국 농업에 대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가족농장 ‘순영농장’에서 홍기표는 과수학과를 졸업한 이력을 살려 감나무를 책임지고 있다.
아들이 대학을 졸업했을 때, 순영이 형은 아들에게 감나무를 맡겼다. 감나무를 책임지고
그 수익이 곧 홍기표의 임금이라는 의사표현이었다. 2009년 당시 농부 홍순영을 취재할 때
그의 감밭은 칠천 평 정도였다.

“금년 감 농사 면적이… 몇 년 전에 칠천이었는데 좀 줄었나?”
“아닙니다. 작년부터 만 삼천 평 정돕니다. 저 위로 빌린 농장이 좀 있습니다.”
“환장하겠네. 그걸 어떻게 감당을 하겠다고… 좋다. 여튼 그럼 작년 감 농사 매출이?”
“작년에 태풍이 있지 않았습니까…”
“알고 있고 나한테 숨길 거 없이 솔직하게 감 농사 일만 삼천 평 총 매출이 얼마냐고오!
이거 기사로 나가지 않을테니까.”
“어… 하… 한 이십 톤 했는데… 작년에 감이 좋지 않아가지고 박스에 만 원에 주로 나갔거든요.”
“10kg 한 박스?”
“대충 사천 정도… 뺄거 빼면 이천 정도 수익…”
“한 달 월급이 얼만데?”
“긍께 그게 제 월급이죠. 이천에서 나누면. 아직까지 그 돈으로 살고 있는데요. 차 값 내고…”
“돌겠다. 대부분 공판장?”
“공판장 한 육십 푸로, 탑 프루츠로 나간 게 이십 푸로 정도, 집에서 직거래가 이십 푸로 정도.”
“금년 감 농사 상황은? 맨땅에 펀드 감나무는 낙엽병 왔는데.”
“낙엽병은 안 무서워요. 그건 잡았고요, 감꼭지나방 때문에, 아까 보셨죠? 감 떨어지는 거.
지금 익은 거는 다 떨어질 겁니다. 어떤 나무는 하나 남은 것도 있습니다. 하하하.”
“아니, 만든 제제를 했을 것 아닌가?”
“했죠. 보름에 한 번씩 석회·황토 유황압제 유화제하고 추출한 탄화물 계속 투여했구요.
그런데 안돼요.”
“차라리 약을 하지 그래. 뻔히 돈이 다 떨어지는데.”
“작년에 태풍에 그렇게 되고 진짜 금년에는 농약 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버님이 말려?”
“아뇨. 겨울 지나니까 다시 한 번 무농약으로 해보고 싶더라고요. 전부 다.
저농약은 사실 아무 의미도 없고… 약 안하고 농사지으면 어디 내 놓아도 떳떳합니다.”











지난 8월 31일에 홍기표의 결혼식이 있었다. 홍기표의 시간은 또 빠르다. 결혼이라니.
사진 촬영을 겸해서 새 식구를 청했다.
김보옥. 1989년 생. 스물다섯이다. 신랑과 같다. 경남 밀양에서 태어났지만 세 살 무렵에
부모님을 따라 서울로 옮겼다.

“서울 아가씨가 어쩌다가 기표를 만났을꼬?”

광양에서 보건대학을 다녔다. 지리적으로 지리산 자락으로 접근을 한 것이다.
친구 커플이 있었다. 그 커플이 만나는 자리에 제 각각 친구로 같이 만났다.
그 날은 이천십이 년 구 월 십사 일이었다. 젊은 친구들이라 날짜를 헤아리고 있었다.
결혼까지 일 년이 걸리지 않았다.

“서울 아가씨가 뭐하러 촌놈한테 시집을 생각을 했을까요?”
“히… 보니깐 ‘굶어 죽진 않겠다’ 싶더라구요.”

신부는 배시시 수줍게 웃었다.

“당연하지. 이 집 쌀농사가 몇 평인데… 부모님은 반대하지 않으셨고?
귀한 딸래미를 시커먼 농부한테 시집 보내기 쉽지 않으셨을 것인데.”

기표가 대답했다.

“저를 보자마자 웃으시더라고요. 기가 차신지… 바로 허락하셨습니다.”
“엄마가 좋아하셨어요.”

신부의 부모님도 일반적이지 않으시거나 대단하신 분들이다. 물론 기표는 내 기준으로는
일등 신랑감이다. 하지만 세상 일반이 어디 그러한가. 사랑하는 여자를 얻기 위해 농사를
포기할 인간은 아니지 않은가.

“만약에, 장인·장모님이 농사짓는다고 반대하셨다면 무엇을 택할 것인가?”
“올 때까지 설득해야죠.”

만나야 할 사람들은 만나는 것. 인연이다. 두 사람은 신혼살림을 일단은 구례 읍내 아파트에
마련을 했다. 순영이 형님 내외가 미리서 그리 생각을 하신 것이다.

“계속 읍내에 있을 생각인가?”
“아뇨. 답답하기도 하고, 금년 중에 여기 마을 위 땅에 집 지을 겁니다. 가을일 끝나고.”











결혼식장에서 내 눈에는 어쩔 수 없이 ‘아이들’이었다. 요즘으로 보자면 이른 결혼이라
양쪽 친구들의 생김이나 노는 모습도 예비역 대학생 분위기로 보였다.
그러나 양가 부모님께 인사드리는 장면에서 신부는 눈물을 보였다.
시어머니 될 사람은 그 모습을 보고 벌떡 일어나서 새 식구의 손을 잡고 당신의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아 주었다. 어린 신부의 마음을 아는 것이고 바라보는 눈길에 진정이 맺혀 있었다.











파인더 속으로 양복 입은 까만 농부 한 사람이 들어왔다.
순영이 형은 그 모습을 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양복을 입고 있었지만 형은 스스로 홍순영임을 숨길 수 없었다.











기표와 보옥이 신혼여행을 떠났고 나는 순영농장의 오메가 쌀 소포장재 작업을 진행했다.
지원사업이었고 지원 액수는 이백만 원에 몇 만 원 더 붙었다. 박스를 만들 수 없었다.
금년에도 내 마음에 속 드는 형의 쌀 박스를 만드는 일은 틀렸다.











신혼부부 인터뷰 날짜를 잡아 두고 광의면으로 올라갔지만 일이 바쁜 모습이었다.
하필 감 선별기도 새로이 들어오는 중이었다. 기계 내리고 선별장에 세팅하고 사용 교육
받으려면 몇 시간은 흘러갈 것이다. 그 날 인터뷰는 포기했다. 기표는 제 자리로 와 있었다.











며칠 지나서 다시 기표와 마주 앉았다.

“아버지 말고 농부로서 기표한테 농부 홍순영은 어떤 존잰가?”
“너무 높은데 있습니다. 쳐다 보도 못합니다.”
“기술이?”
“아뇨. 일상이 그렇습니다. 저는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데 아버지는 새벽 세 시에
일어나서 논으로 나가십니다. 돈이 안 돼도 시작하면 끝을 봅니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농부 홍기표는 농부 홍순영의 판박이일 수는 없다.
농부 홍순영의 태도와 기술을 전수받아도 순영이 형의 시절과 기표의 시절이 같을 수는 없는 것이다.











“농사를 짓는 문제 이외의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유통이나 뭐 그런 거.”
“직거래로 가야죠. 작년에 감 한 박스에 만 원에 (공판장으로)넘기는데 진짜 미쳐버려요.”
“직거래에 대한 방안이 구체적인 방안이 있는가?”
“그렇죠. 그걸 마련해야는데… 아버지하고 탑프루트 쪽이 더 활성화되어야겠죠.”
“틀렸네. 기표 니가 아버지하고 친구들 끌고 가야지. 대한민국 농사 십 년 후를 어떻게 봐?”
“어둡습니다.”











그리고 긴 이야기를 나누었다.
공판장 구조, 직거래 방안, 온라인을 강화하는 문제, 대한민국 농정, 농협, 농기계회사…
농사에 대한 태도는 아버지의 그것을 한 톨도 흘리지 말고, 기술은 좀 부족해도 좋다,
그러나 홍순영이 아닌 농부 홍기표는 쟁기에서 스마트폰까지를 모두 다루어야 한다.
인터뷰어와 인터뷰이 관계는 갑작스럽게 아저씨가 조카에게 장광설의 요구를 쏟아내는
자리로 바뀌었다. 어쩌면 나는 이 자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농부 홍순영 V2.0을 찾고 있는 것이 아니다.
전혀 다른 농부, 홍기표 V1.0의 완성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표정을 바꾸고 배에 힘을 주었다. 모래시계에서 최민수로 빙의해서 말했다.











“기표야, 니가 해주라.”

희망의 근거는 찾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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